-
-
김호연의 작업실 - 김호연의 사적인 소설 작업 일지
김호연 지음 / 서랍의날씨 / 2023년 2월
평점 :
김호연 작가의 에세이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를 읽고 글쓰기에 진심인 그의 열정에 깊은 감동이 일어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소설 작법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 쓰기의 비법을 담은 책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에 신춘문예에 도전해보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하지만 계획만 세우다가 흐지부지되었다. 그런 내가 요즘 소설 쓰기를 한번 배워 볼까, 하는 생각이 동해서 작법에 관한 책이나 소설가가 쓴 에세이 등을 관심 목록에 올리고 있다. 사실 예전부터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변명과 함께 소설가가 될 것도 아닌데 하는 핑계를 대면서 소설 읽기는 별로 열중하지 않았다. 역시나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확인하고 말았다. 비록 쓰지 않더라도 공부 삼아 배워두는 건 나쁘지 않겠지. 소설을 읽을 때 분석하고 평가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고.
먼저 목차를 살펴보니 1 소설을 쓰며 생각한 것들 2 나의 소설 작업 친구들 3 이야기 탄생의 비밀 4 소설 쓰기의 기쁨과 슬픔 5 글쓰기 마음 쓰기 6 마감하고 다시 쓰고 팔아라 7 쓰기 위해 읽다 이렇게 일곱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만 보아도 소설가의 글쓰기 작업과 일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단은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 소설 편집자를 하다가 전업 소설가가 되었고 밀리언셀러『불편한 편의점』이 해외 판권으로 수출될 만큼 중견 소설가로서 자리매김하기까지 얼마나 분투했는지 행간에서 알 수 있었다. 특히 김호연 작가는 소설을 쓰는 장소인 작업실을 중요시했던 것 같다. 무명 시절 첫 작업실이었던 동인천의 낡은 빌라부터 카페, 공공 작업실, 문학관, 이동 작업실 등에서 체류하고 경험했던 에피소드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 소설가가 되면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다니 감탄했고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버지니아 울프도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글 쓰는 공간은 작가들에게 그곳에 있다면 편안한 마음이 들고 영감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겠다. 김호연 작가는 자신의 소설 작업 친구들은 작업실과 루틴, 산책과 독서라고 했다. 여기서 그는 루틴에 대해 말하기를 종종 작가의 삶이 운동선수의 삶과 비슷하다고 했는데 깊은 공감을 했다. 오랜 시간 훈련을 하고 노력을 해서 프로 선수가 되는 과정이 작가들의 모습과도 겹쳐졌다. 3,4장에서는 이야기의 아이템을 떠올리고 제목을 짓는 방법과 소설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플롯과 캐릭터 구상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소설의 장르에 대해서도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귀에 쏙쏙 들어왔다. 소설을 쓰기 전에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신이 어떤 성질의 소설을 쓰는지 알고 써야 한다고 했다. 잠깐 언급해 보면, 문학성, 작품성, 실험성, 대중성, 통속성, 흥행성 등을 고려하여 그중 한 가지 성질을 기억하며 이야기를 완성해나가라고 했다.
나는 5장의 글쓰기 마음 쓰기 편이 가장 좋았다. 첫 문장을 쓰거나 글쓰기를 규칙적 습관으로 만드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소설 쓰기도 일단 시작이 어렵다고 했다. 이에 대한 멋진 처방을 내리는데 다음과 같다.
‘첫날은 작업 파일을 만들고 아무 문장이나 쓰세요. 그럼 당신은 작품을 시작한 것입니다.’(김호연)(p106)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다. 그냥 파일을 만들고 아무 문장이나 쓰더라도 작품을 시작한 것으로 치자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의 부담을 가볍게 한다면 시작하기도 쉽다. 여기에 헤밍웨이도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무척이나 곤란해했다면서 헤밍웨이의 글을 인용하여 다시 이렇게 말한다.
‘첫날은 작업 파일을 만들고 진실한 문장 하나를 쓰세요. 그럼 당신은 좋은 작품을 시작한 것입니다.’(김호연)(p107)
한 번 따라 해봐야겠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집필 생활의 영양제’라는 글쓰기 금언을 소개하는 부분도 좋았다. 대작가들도 처음엔 힘들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글을 쓰면서 경험하고 깨달은 글쓰기 철학이 절절히 담겨 있는 것이다.
‘글을 쓸 용기를 낸다는 것은 두려움을 지워버리거나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현직 작가들은 불안감을 씻어낸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속이 울렁거려도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랄프 키스(p114)
'글 쓰는 일을 받아들여 습관으로 만들고 그 습관이 강박관념이 되기 전에는, 그 사람은 작가가 아니다. 글 쓰는 일은 강박관념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말하고 잠자고 먹는 일처럼 본질적이고 생리적이며 심리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니위 오순다례(p118)
좋아하는 일도 일이 되면 힘들다더니. 이 글을 보니 책이 좋아서 글 쓰는 작가가 되었다면 그 강박관념도 즐길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숙명은 평생 작품을 쓰고 마감을 하는 반복의 연속이다. 그런 시간이 쌓여야 진정한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작가들의 루틴이나 글쓰기 금언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된다.
6장에서는 마감력에 대한 얘기와 마감 노동자, ‘마감 좀비’로 살아가는 소설가의 고뇌를 있는 그대로 전해준다. 마감이 있어서 글을 쓰고 마감이 있어 존재한다고 했다. 마감은 매니저이자 멘토이자 영감의 원천이자 삶의 동반자라고 하는 김호연 작가는 소설가의 삶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고를 읽어 줄 모니터 요원의 중요성과 원고는 반드시 출력본으로 읽어볼 것을 강조한다. 출력본을 읽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 모니터 요원의 역할을 한다고도 했다. 또 ‘다시 쓰기’ 작업은 이야기도 작가도 성장하는 길이라고 했다. 소설가의 일상 루틴을 실천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마감과 다시 쓰는 일의 반복을 통해서 소설가는 성장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7장은 작가가 지난 10년 동안 인상 깊게 읽은 소설 7편을 소개하고 있다. 소설 읽기는 최고의 소설 공부라고 했다. 두말하면 잔소리가 아닌가. 앞으로도 이 작가의 작품을 하나씩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