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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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이란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설레는데 코로나19로 온 세상을 뒤덮어 꿈도 못 꾸는 요즘 상황에 딱 어울리는 책을 만났다. 여행책이 아니고 여행준비 책이라는 책 소개에서 벌써 재미는 보장하겠다 싶었다. 여행은 못 하지만 여행준비는 할 수 있다. ? 책은 제목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참 잘도 지었다. 여행준비의 기술이라니. 원래 여행을 가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떠나기 전부터가 이미 설렘과 기대감으로 날개를 단 기분이지 않나. 이 책 쓰려고 계획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예약해 두었던 출장과 여행이 모두 취소되는 바람에 서둘러 쓰게 되었다고 한다. 여행이 취미가 아니라 여행준비가 취미였다는 것을 다시 떠올리면서 말이다.

 

 

 

 

 

영어가 안 되면 시원스쿨

여행을 못 가면 여행준비!

딱 보는 순간 영어학원과 여행사 합작의 광고 카피인가 했다

다 읽고 나서 보니 이 책 핵심 내용을 제대로 뽑아 놓은 거였다.

 

 저자의 다재다능한 이력도 흥미를 끌었다. 의사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여행준비러책 팟캐스트(YG)JYP의 책걸상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장편소설 종합병원2.0, 한국의료 해설서 개념의료, 평론집 한국의료, 모든 변화는 진보다등이 있고, 청진기가 사라진다(공역), 환자의 경험이 혁신이다(공역), 차가운 의학, 따뜻한 의사8권의 책을 번역했다.

 

 이 이야기는 여행준비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다. 오래전 여행 추억담과 여행준비를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떠나지 못한 아쉬운 여행 등 온갖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더구나 가보지 않은 여행지를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리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여행준비 스토리도 들어있다. 이 정도 되면 여행준비가 취미라는 걸 확실히 인정해야 할 정도다.

 

 저자가 말하는 여행준비의 기술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일은 여행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오는 시점의 각종 기념일을 활용하거나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성취를 기념하는 것으로 명분을 만들면 된다. 후자의 경우 예를 들면, 책 한 권 낸 후, 승진 후, 악기 하나 배운 후 등 나에게 보상하는 것으로 여행의 명분을 찾으면 된다. 여행적금을 들어 여행을 준비하거나 노력형의 대표격인 외국어 공부를 적극 추천하고 있다. 적금은 2년이 적당하며 끊이지 않게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외국어 공부에 대한 부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여행 때마다 현지인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돌아왔던 일을 떠올리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동안 여행을 돌아보니 어쩌다 1년에 한 번 아니면 두 번의 여행이라 최소한으로 준비만 하고 갔지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해 본 적이 없다.

 

 여행준비하는 과정도 버리기 연습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여행의 기회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여행지를 찾는 과정에서 버릴 것은 버려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시 여행준비러다운 통찰이다. 여행지 목록을 만들 때는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처럼 막연하게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적으라고 했다. 예를 들어 현대미술관 다섯 곳, 영화 촬영지 다섯 곳, 특이한 박물관 등. 이렇게 목록을 만들고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엔 자신에게 딱 맞고 만족할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아내는 작업이고 그렇지 않은 곳을 걸러내는 작업이 여행준비의 단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준비가 취미일 때 장점은 무엇일까. 이것은 여행준비를 많이 하고 떠난 여행일 때도 그렇지만 준비만 하고 떠나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비즈니스 미팅에서 노르웨이 여행이 화제에 올라 대화가 무르익었는데 가본 적은 없지만 미리 여행준비를 해 두었기에 척척 이야기가 진행된다. 상대방은 가봤느냐고 물었다는데 아직이라는 저자의 말에 크게 웃었다는 이야기. 결국 좋은 분위기가 미팅 결과도 긍정적인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화의 기술이 제대로 빛을 발한 것이다. 여행준비의 진가는 이런 것이었다.

 

여행의 좋은 점은 무엇일까. 여행의 좋은 점은 100만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라고 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피하고 싶었으나 평소에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P78)

 

 여행준비에 있어서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과 지겨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에 큰 비중을 둘 것이냐에 있다고 했다.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여행준비의 시작은 평소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찾아보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다 주어지는 여행을 별다른 계획 없이 떠났다가 가보고 싶은 장소가 문을 닫았거나 하는 바람에 아쉬운 발길을 돌렸던 적이 있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여행준비는 다르다. 특히 구체적인 여행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언젠가 꼭 가리라는 다짐도 없는 채로 느릿느릿 하는 여행준비는 괴로울 까닭이 없다. 내가 이런 여행 계획을 세웠노라고 어디 가서 발표할 일도 없고, 내가 준비한 계획을 다른 사람의 그것과 비교하여 잘했니 못했니 따질 필요도 없다. 그저 가고 싶은 곳의 목록을 하나 늘리고,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한두 가지 상상만 하면 된다.’(P87)

 

 시험준비, 출근준비, 식사준비, 회의준비 등은 즐겁지 않아도 어쩔 수 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여행할 곳을 공부하고 준비하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트레스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참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구글 지도에 가고 싶은 곳의 별을 찍으며 여행지의 목록을 늘리는 방법도 있었다. 이 부분은 욕심보다는 희망에 방점을 찍으며 희망은 최대한 많이 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여행의 목록을 늘리면서 언젠가의 여행을 꿈꾸고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공부하는 과정도 좋을 것 같다. 이밖에도 인생의 맛집, 추억의 맛집에 대한 에피소드와 맛있는 음식에 대한 애착으로 좋은 식당을 예약하고 거기를 찾아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독서와 여행준비는 좋은 짝이다. 둘 다 좋은 취미지만, 두 가지를 다 좋아하면 확실한 시너지가 생긴다. 목적지가 정해졌을 때, 조금만 검색해보면 그곳과 관련된 책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책값 몇만 원을 미리 쓰면, 여행이 최소 몇십만 원어치는 더 즐거워진다. 독서는 여행준비를 자극하고, 여행준비는 독서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독서는 여행을 더 즐겁게 만들고, 여행은 독서를 더 즐겁게 만든다. 이런 게 바로 선순환의 좋은 예가 아닐까.(P167) 

 

 코로나로 인해 우울증 비슷한 상황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 정말 여행의 기분을 되살릴 수 있다. 역시 기대한 것처럼 재미있었다. 나도 이제는 닥쳐서 준비하지 말고 평소에 차근차근 여행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여행지를 꿈꾸며 틈틈이 가고 싶은 장소의 정보를 탐색하고 목록의 리스트를 적어 가면서 여행을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공부도 되고 여행하는 설렘으로 일상에 활력소가 될 테니까. 지금 여행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 우울한 기분 탁 털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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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 - 삶의 의미를 더하는 작가의 말 지노 지혜의 말 시리즈
케빈 니퍼트 엮음, 금정연 옮김 / 지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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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이벤트가 나왔을 때 내가 꼭 읽어야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제목도 끌렸지만 이름만 들어도 술렁거리게 하는 작가들이 원고 수정 문제로 편집자와 옥신각신했다는 등 책 소개를 보고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풍성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상상하며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받고 보니 생각보다 작은 판형에, 짧은 문장의 원문과 번역 문장으로 된 구성을 보고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금세 읽을 수 있어서 좋긴 하겠다. 바쁜데 잘 됐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그런데 웬 일, 반전처럼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속에 파고들어왔다. 짧은 문장 속에 숨어있는 글쓰기의 기쁨과 고뇌에 깊은 공감을 하며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부분인 역자 후기를 읽고 있었다.

 

소개하고 싶은 문장이 너무도 많았지만 그 중 많이 공감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했던 문장들을 소개해 보겠다.

  

Your mother will 

not make you a 

writer. my advice 

to any young person 

who wants to write

is: Leave home. -Paul Theroux(1941~)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을 작가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작가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은 하나다.

집을 떠나라. (폴 서루(1941~)(P42~43)

 

 작가가 된다는 것은 집을 떠나는 것처럼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걸어가야 하는 일이 아닐까. 글을 쓴다는 것은 기꺼이 혼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이다. 꼭 집을 떠나야만 작가가 되는 건 아니겠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과 결별을 하는 것, 어떤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THE FIRST 

THING A 

WRITER 

HAS TO DO 

IS FIND

ANOTHER 

SOURCE 

OF INCOME.

 

작가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다른 수입원을 찾는 것이다. - 엘렌 길크리스트(1935~) (P56~57)

 

 너무 짧은 문장으로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다니, 너무 냉정하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의 냉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말인지도 모른다. 어느 사회든 어느 분야든 파레토 법칙이 성립되지 않는 예가 없을 정도니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작가가 되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가 소원인 사람들은 최소한 이 말을 명심해야겠다.

 

I really want to 

escape muyself as 

much as I can 

myself as the artist, 

or as the writer, 

or as the thinker.(Chan-Rae Lee(1965~)

 

나는 가능한 한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싶다.

예술가로서의, 작가로서의, 사상가로서의, 모든 나로부터,

(이창래(1965~)(P88~89)

 

 글쓰는 것만 빼면 작가는 정말 좋은 직업이라는 말을 읽은 적 있다. 출퇴근에 매이지 않는 작가란 얼마나 자유로운 직업인가. 하지만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싶다'고 한다. 글쓰기라는 중압감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대변하는 말인가.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일이 되면 재미가 없어지고 무거움이 되겠지. 어떤 일이든 그렇지 않을까. 드라마 작가 최연지는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에서 한 장의 글을 쓰는 일이란 한 마지기의 밭을 매는 것과 비슷한 강도의 노동이라고 했다. 그것도 반드시 혼자서 해야하는 노동집약적 작업이 집필이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한 마지기의 밭을 매 본 적 있는지 묻고 싶은 장난기가 발동한다. 실제로 경험해 보았다면 그래도 글쓰기가 쉽다고 하지 않을까. 어쨌든 그만큼 글쓰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표현한 거겠지.

 

The first draft is 

torture! It's so hard 

for me. Once I've 

written the first 

draft, I Have the

 pieces to the puzzle, 

and I love to put it 

together and make 

it into a whole.- Judy Blume(1938~)

 

초고는 고문이다! 정말 너무 힘들다. 일단 초고를 쓰면 내 손에는 퍼즐 조각이 생긴다

나는 그 조각들을 맞춰 커다란 전체를 완성하는 것을 사랑한다.

- 주디 블룸(1938~) (P144~115)

 

 

 초고를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고문에 비유했을까. 뒤에서도 초고에 관한 글이 한 번 더 언급되겠지만 어쨌든 쓰레기 같은 초고를 계속 쓰는 과정을 통해서 문장은 유려해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한 권의 책이 완성될 것이다.

 

How to write: butt in chair.

Start each day anywhere.

Let yourself do it badly.

Just take one passage

at a time. Get butt back

in chair. - Anne Lamott(1954~)

 

글을 쓰는 방법:

엉덩이로 써라.

매일 어디서든 시작하라.

멋대로 쓰도록 내버려둬라.

한 번에 한 구절씩 써라.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여라. - 앤 라모트(1954~) (P220~221)

 

 참 명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공부도 엉덩이로 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주디 리브스는 365일 작가연습에서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위대한 작가들이 어떻게 글을 썼는지 알려준다. 아침 9시면 어김없이 펜과 공책을 들고 책상에 앉아서 글을 썼다는 다니엘 스틸, 그는 새벽 3시에 찾아오는 영감을 믿지 않았단다. 25년 동안 매일 썼던 토마스 만, 1800편의 시를 썼지만 생전에 발표된 시는 고작 7편에 불과했다는 에밀리 디킨슨, 3주만에 『변신』을 완성했다는 카프카, 매일 혼자 방에 틀어박혀 10~12시간씩 글을 쓴 이사벨 아옌데, 500권이 넘는 책을 쓴 아이작 아시모프 등 여러 작가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 모두 진득이 앉아서 엉덩이로 썼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작가들이다.

 

 

Get a dog

Being a dog owner

requires a similar

form of dissciplme

[to writing]. You wake

up every morning.

You walk the dog.

You do this whether

you do this whether

you're tired, depressed,

broke, hung over,

or have been recently

dumped. You do it. - Jennifer Weiner(1970~)

 

개를 키워라

개를 기르는 일은 (글쓰기와)

비슷한 규을을 필요로 한다

당신은 매일 아침 일어난다.

당신은 개를 산책시킨다.

당신은 지쳤거나, 우울하거나,

절망하거나, 숙취가 있거나,

최근에 차였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없이 그렇게 한다.

당신은 그것을 한다. - 제니퍼 와이너(1970~) (P226~227)

 

 '개를 키워라'는 말로 규칙적인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애완동물, 반려식물을 키우는 일은 사람의 따뜻한 손길이 규칙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때맞추어 밥을 주고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고 산책을 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것처럼 글쓰기도 비슷한 규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하루의 시간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Here's a short list 

of what not to do 

when you sit down to 

write. Don't answer t

he phone. Don't look 

at e-mail. Don't go 

on the Internet for 

any reason. - 

Dani Shapiro(1962~)

 

여기 당신이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을 때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의

짧은 목록이 있다.

전화를 받지 마라.

이메일을 확인하지 마라.

어떤 이유로든

인터넷을 하지 마라. - 다니 사피로(1962~) (P228~229)

 

 

 이 부분은 정말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메일을 열어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 두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 버렸는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 한다고 붙잡을 수도 없다. 글을 쓸 때는 글쓰기에 집중하자. 이건 내가 명심해야 할 말이기도 하다.

 

YOU CAN ONLY WRITE

REGULARLY IF YOU'RE

WILLING TO WRITE

BADLY. YOU CAN'T

WRITE REGULARLY

AND WELL. ONE SHOULD

ACCEPT BAD WRITING

AS A WAY OF PRIMING

THE PUMP, A WARM-UP

EXERCISE THAT ALLOWS

YOU TO WRITE WELL. - jennifer Egan(1962~)

 

규칙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형편없는 글을 기꺼이 쓸 수 있어야 한다.

규칙적으로 잘 쓸 수는 없다.

못 쓴 글을 펌프의 마중물로,

잘 쓸 수 있게 하는

몸풀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 제니퍼 이건(1962~) (P236~237)

 

 쓸 때마다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잘 써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안 써지는 날이 있다. 항상 잘 써진다면 작가 노릇하기가 식은 죽 먹기겠지.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처음엔 쓰레기 글을 썼다고 하지 않은가. 형편없는 글을 쓰는 시간을 보낸 만큼 문장은 다듬어질 것이다. 다음 글을 잘 쓸 수 있는 몸풀기로 받아들이라는 말에 위로를 받는다.

 

You can 

always fix 

bad pages. 

You can't fix 

no pages. - Harlan Coben(1962~)

 

못 쓴 페이지는 언제든지 고칠 수 있다.

아무것도 쓰지 않은 페이지를 고칠 수는 없다. - 알란 코벤(1962~) (P238~239)

 

 더 말해 무엇 하랴. 써야만 고칠 원고도 있다는 것이다. 모니터의 빈 화면을 마주할 때 참 막연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씩 쓰다보면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고 빼곡하게 채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그러니 무조건 그냥 앉아서 써야 한다.

 

 

 이 책에는 역사상 존경받는 문인부터 촉망받는 신예 작가까지, 소설가, 에세이스트, 저널리스트, 문법학자, 교사 등이 전해주는 글쓰기의 기쁨과 고뇌 위트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수많은 글쓰기 관련 책을 읽어왔다.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은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과 이로운 점을 알려주는 책이었고,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글쓰기의 태도와 자세에 관한 책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 책은 작가들의 일상인 글쓰기에 녹아든 명언 같은 것이었다. 글쓰기는 최고의 자기계발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크고 작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의 글쓰기 등 글쓰기의 목적은 다양하다. 그런데 직업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 은 어떻게 말 할 수 있을까. 이 책에 언급된 작가들의 문장을 통해서 느낀 것은 글을 쓴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네 삶의 과정에 희로애락이 반복되듯이 작가들의 글쓰기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삶이 계속되는 한, 글쓰기도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과정이었다. 물론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을 때 글쓰기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감정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지금 책쓰기를 위한 글을 쓰고 있어서 더욱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한 권의 책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원고를 쓰고 그것을 읽어주는 편집자가 있고 수정에 수정을 거치고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한 권의 책이 나온다는 것. 그럭저럭 술술 써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엉뚱한 내용을 쓴 원고를 보냈다가 민망한 마음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날이 있었다. 그렇게 진땀나는 과정도 모두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과정이었다.  편집자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책을 좋아하고 활자 자체를 좋아하고 갓 나온 새 책 냄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감성을 가진사람이 편집자이고 출판사라는 걸, 나아가 책 한 권으로 많은 이들을 꿈꾸게 하고 싶다는 사명감을 가진 분들이 출판 일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편집자님께 정말 감사드린다.(너무 바쁘셔서 이 글을 못 보시겠지만) 그래서 이 책은 원고를 탈고하고 책이 나오기까지 나에게 많은 힘과 응원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매일 써라, 절대 멈추지 마라.(릭 바스(1958~)

 

 

 

 정리하자면, 이 책의 특징은 글쓰기에 관한 작가들의 함축된 짧은 문장이 원문과 번역 문장으로 함께 나와 있어 영어공부도 되는 일석이조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이자 편집자인 케빈 니퍼트와 역자 모두 디테일한 문장 속에서 뽑아낸 명언을 책으로 엮고 번역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직역으로 번역한 부분도 있다고 하니 이 점 감안해서 읽으면 좋겠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고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옆에 끼고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문장 속에 감탄과 위트가 넘친다. 이 책 이벤트 때 출근할 때마다 울었다는 역자 소개를 접하고 빵 터졌는데 역자 후기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좀 한가해지면 역자가 쓴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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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쾌변 - 생계형 변호사의 서초동 활극 에세이
박준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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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처음 접하고 제목과 표지 그림부터 흥미롭게 다가왔었다. 처음엔 쾌변이란 말이 화장실의 그 쾌변인가 했는데 말로 시원하게 쏟아내는 쾌변이었다. 중의적 표현이 재치 만점이다. 배설을 시원하게 해야 독소가 쌓이지 않듯이 할 말도 하고 살아야 앙금이 남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할 말 다하고 살 수 있을 만큼 만만하기나 한가. 온갖 사연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변호사라는 직업도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변호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일상을 살면서 회의가 밀려올 때마다 그것을 분출할 수 있는 출구가 필요했다 한다. 우연히 브런치를 발견하고 잡담처럼 써내려간 이 이야기가 브런치북 7회 대상을 수상하고 책으로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법률과 사법제도나 법률가의 심오한 개똥철학 같은 것은 나오지 않으니 기대하지 말라고 한다. 아프기만 한 청춘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도 없고 오히려 자기가 더 아픈 것 같다는 말에 웃음이 빵 터졌다.

 

 흔히 변호사라는 직업군은 엘리트 집단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사연들을 들어주고 대변해주는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든든한 원군처럼 여기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고상함과 무거움을 확 벗어버리고 가볍고 아주 신랄하게 자신의 일터 풍경을 털어놓는다. 부제도 생계형 변호사의 서초동 활극 에세이라고 되어 있듯이 톡톡 튀듯 살아있는 생생함이 전해졌다. 예전에도 법정 드라마를 꽤 좋아했고 2년 전에 언제나 승승장구하는 괴짜 변호사의 이야기를 담은 일드 <리갈 하이>를 엄청 재미있게 보았는데 이 책을 보니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었다. 저자는 현실과 괴리가 있는 변호사에 대한 해묵은 오해와 편견이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 한다.  보통 사람들이 소름 돋을 만큼 똑같은 일상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과 같이 변호사의 삶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저마다 사연을 갖고 변호사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모습이 보였다. 억울한 사연을 들고 변호사를 만나러 왔을 때는 어떻게든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찾아오겠지만 어떻게 항상 이길 수 있겠는가. 수임료를 지불했는데 패소한 것에 불만을 품고 찾아오는 의뢰인들을 마주하는 일이 참 난감하고 괴로운 일이겠다 싶었다. 억울한 사연이라는 건 거의가 돈 문제가 걸리지 않은 게 없었다. 재산 싸움, 못 받은 돈을 받아내는 사건, 사기에 휘말려 돈을 되찾는 사건 등 사람 사는 삶의 냄새가 폴폴 났다. 열심히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사건을 마무리한 후에 변호인으로서 수고한 대가인 성공 보수금을 주지 않으려는 의뢰인에 대한 이야기 등 일터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보통 사람들의 고정된 월급도 아니기 때문에 싸워서 받아야 하는 불편함이라니.

 

 이 땅에 27,880명 이상의 변호사가 있다는데 의뢰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변호사는 변호사 놈아니면 변호사님딱 두 종류로 불린다는 이야기는 정말 웃기고도 씁쓸했다. 승패에 따라 호칭이 달라지는 거였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재판도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일 텐데. 1등만 알아주는 세상은 어느 분야에나 속속들이 파고들어 있었다. 사건이란 생물과도 같아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고 멀쩡히 잘 살아 있다가도 하루아침에 죽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그걸 마음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승률을 따지는 것은 스포츠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변호사 생활 3년 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남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찾아온 의뢰인을 만난다.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싸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기사를 통해 들은 적 있다. 새로운 사건을 만날 때마다 어떤 법리가 적용하는지 공부해야만 한단다. 이런 상황에서 일에 대한 경험이나 사명감이 크지 않을 때이니 어떻게든 회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겠다. 이런 사건은 승산이 높지 않다,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의뢰인의 적극적인 행동에 어쩔 수 없이 사건 해결에 힘을 모아 승소하게 되고 저자는 뼛속까지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어렵고 힘든 일을 기피하려는 우리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삶이 일이고 그 속에서 배우면서 반성하고 좀 더 성숙한 직업인이 되어 가는 건 아닐까. 부끄러운 이야기를 털어놓는 용기에 진솔한 감동이 묻어났다.

 

 오래전에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로펌 이야기다. 변호사 군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곳은 거의 전투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사건을 수임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중무장한 변호사들 집단이 아닌가. 간혹 의뢰인들은 변호사들이 많이 모여 있는 로펌에 오면 그 숫자만큼 능력도 클 것이라는 오해를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한 지붕에 각각의 1인 기업이 밀집되어 있는 공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로펌의 이익 극대화라는 공통된 목표가 있을 수 없고 오직 구성원 개인의 이익 극대화라는 개별적인 목표만 있을 뿐이다. 심지어 사무 집기에 대한 비용을 분담하는 문제로 변호사끼리 다투어서 법인이 깨지는 일도 있다는 말에 너무 웃음이 났다. 점잖고 고상해 보이는 변호사 분들도 손해를 보고 싶지 않은 보통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었다.

 

'한 지붕 밑에 있지만 죄다 남의 식구들이라, 알고 보면 우리는 우리가 아니라 그렇다.'(P144)

 

 웃기고도 슬픈 이 문장. 그냥 모여서 각자 일할 뿐이라는 것. 이런 이야기를 털어내는데 꽤 눈치가 보이지 않았을까. 만만한 막내라서 복 대리를 섰다가 판사에게 핀잔을 듣고 왠지 호구가 된 것 같아 씩씩거린다.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서 변호사를 때려치울까 하다가도 대출금 메시지에 다시 꼬리를 감춘다. 아참, 너무 솔직해서 공감하게 되고 위로가 된다. 다 그렇게 사는구나 싶다. 실무 실습하러 온 새내기들에게 남의 돈 계산 잘해야 하니 엑셀을 잘 익혀두면 편하다는 말을 했다가 찬물 끼얹은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고, 직업병으로 인해 10년 만에 상담을 요청한 친구에게 맞춤법을 트집 잡다가 바가지로 욕을 얻어먹기도 한다. 생생한 일터의 이야기가 이상하게도 응원의 메시지 같이 느껴졌다.


 

아등바등 간신히 오늘을 보내봤자 오늘을 쏙 빼닮은 내일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쩐지 이번 생애는 갑갑한 현실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 같고, 사실 다음 생이라고 이보다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생업으로 심신을 하얗게 태운 보통 직장인이 하루를 반추한 결과가 고작 이 모양일 때, 어느덧 나만 이렇게 사나싶은 짜증과 불만이 밀려올 때, 똑같은 소릴 읊조리며 옆에 쪼그려 투덜거리는 생면부지의 동병상련이 되고 싶다. ‘그래도 오늘까지 별 탈 없이 수습해서 다행이야를 되뇌며 마법 같은 정신 승리로 한 줌의 안도감을 얻고 싶다.'(P258)



 다른 직업의 세계가 좋아 보여도 실상 안을 들여다보면 다 비슷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꿈에 그린 직업이 아니라 어쩌다변호사가 되었단다. 살아가는 것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이 땅에 직업인으로 살면서 자신의 일에 긍지와 사명감으로 충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오늘 간신히 일을 해결하고 나면 또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맞이하게 된다. 고상해 보이는 변호사의 세계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용가리도 아니고 통뼈도 아닌, 생계를 위해 일하는 변호사도  똑같이 아프고 늙는 사람이라는 말에 깊은 공감이 갔다. 오늘도 열심히 삽질하며 하루 일과가 무사히 끝나기를 기도하는 보통 사람들이 읽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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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줘서 고마워 - 고위험 임산부와 아기, 두 생명을 포기하지 않은 의사의 기록
오수영 지음 / 다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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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모체태아의학을 전공한 산부인과 교수 오수영 저자가 쓴 첫 책이라고 한다. 제목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현장을 지키는 의사로서 일에 대한 사랑과 사명감이 듬뿍 느껴져서 관심이 생겼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엄마로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서 손에 잡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금세 읽어버렸다. 안타가운 장면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세상에! 를 연발하면서 눈물이 핑 돌다가 가끔 웃음도 선사하는 마치 한편의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바쁜 병원 일정 중에도 20116월부터 틈틈이 적어둔 것이 이제야 책으로 나온 것이며 산부인과 교수로서의 15년을 돌아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1부 너의 이름은 기적, 축복, 사랑

2부 가장 사랑하는 사람

3부 아주 작은 확률을 뚫고 찾아와줘서 고마워

4부 첫 숨을 듣기 위해 힘껏 달린 시간

5부 생사를 가로지르는 앎의 무게

부록 의학상식

 

 1부에서 3부까지의 이야기는 위급한 임신부와 태아를 만나 초를 다투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펼쳐진다. 결혼 20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를 출산한 산모의 스토리는 그야말로 감동적이었다. 탯줄을 네 번이나 목에 감고도 건강하게 태어난 태아의 이야기는 기적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미력한 생명처럼 보이는 태아지만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위급한 신호를 보내어 알리는 것 같았다. 신장기능이 좋지 않은 임산부가 입원해서 태아를 제거하는 소파수술을 할까봐 마음 졸이는 인간적인 의사가 있었고, 신장 투석을 해가면서 임신을 유지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조언을 따르면서 의료진들을 감동시킨 임산부도 있었다. 그 임산부는 27주에 810g의 아이를 낳아 결국 건강하게 퇴원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습관성 유산으로 6년을 고생하다가 아기를 안게 된 부부의 이야기 등 뭉클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고 모성은 역시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임신 9주 2일 크기의 태아 초음파 사진이란다.

5~6주의 '배아'라고 하지만,  '9~10주' 이후의 '태아'로 부른다.

 

 4부에서는 산부인과 의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애환을 엿볼 수 있었다. 불철주야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가야 하는, 임산부와 태아에 대한 사랑과 일에 대한 사명감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된 계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임상의학을 공부하면서 산부인과 실습을 하던 중 분만 과정을 지켜보면서 새 생명이 태어나고 대량 출혈이 분출되는 모습을 보고 역동적으로 느껴서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분만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인권침해라 하여 인턴들이 분만 과정을 한 번도 못 보고 의사 면허를 취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한다. 이것은 산부인과를 지원하는 의대생이 줄어드는데 일조하게 되는 것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또 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의사의 조언보다는 역술인의 말을 믿고 좋은 ()’를 선택해 출산하려다 소중한 생명을 잃기도 하는 사례를 말하면서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생명을 지키는 현장에서 긴장감을 놓치 못하고 일 하는 가운데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이들 덕분에

큰 힘을 얻을 듯하다. 오수영 산부인과 의사의 마음 씀을 충분히 엿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다.

 

 임신이라는 자체는 생리적인 현상이면서도 병리적인 현상이라고도 했다. 위험한 상황을 안고 사는 시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위험 임산부와 아기, 두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의사의 기록이다. 이 이야기를 쓴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단순히 의사생활 15년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예전부터 젊을 때 아기를 출산해야 아기도 건강하고 영리하게 나온다고 했고 산모의 건강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점점 임산부들의 연령이 고령화되어간다는 것이 문제다. 2012년 기준으로 미국보다 우리의 경우가 5~6세나 높다니 놀라운 일이다. 공부나 취업 준비로 늦어지는데다 안정된 기반에서 결혼하겠다는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팽배해졌기 때문에 고위험 임산부의 증가는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저출산 문제는 이미 세계적으로 대두된 문제이다. 그런데 점점 고령화되어가는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을 지키지 못한다면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얼마나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건강한 출산정책을 위해서 국가차원에서 합리적인 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산부인과 의사가 생명을 다루는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읽은 것은 아마도 처음 인 것 같다. 이제 건강한 청년이 된 두 아들을 갖고 출산했던 때를 떠올려 보았다. 입덧으로 약간 불편했지만 큰 고생 없이 두 아이 모두 자연분만을 했으니 행복한 임산부였다. 신생아 때는 교과서대로 하루 스무 시간이 넘도록 잘 자고 무럭무럭 자랐으니 행복한 엄마임에 틀림없었다. 아무 걱정 끼치지 않고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고맙다, 두 아들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 가슴 벅찬 생명 탄생의 이야기를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친절하게 풀어주는 의학상식도 싣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그토록 힘들게 역경을 뚫고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냥 던져진 게 아니었다. 이것만 알아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힘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 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은 출생 전후 염색체 이상을 진단받고 삼성서울병원에서 태어나 치료받는 아이들의 치료비로 전액 기부된다고 한다.

 

 

 

도서출판 다른 님, 소중한 책 잘 읽었습니다.^^

언제나 불철주야 애쓰시는 의료진 분들께도 무한한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오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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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 a love letter to my city, my soul, my base
유현준 지음 / 와이즈베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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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도시는 부서진 장난감 더미와도 같다. 곳곳에 쓸모없는 공간들, 버려진 공간들, 쓰레기 같은 건축물들뿐이지만 그 와중에도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건축가의 눈으로 보면 도시에는 재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우리가 프랑스어를 배우면 샹송이 들리듯이, 공간에 나만의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배운다면 이 도시는 새롭게 재창조될 수 있다.'(P16)-플롤로그

 

 책 제목이 꽤 낭만적으로 다가왔었다. 유년시절, 청년시절의 추억이 담긴 공간 외에도 보물찾기 같은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많은 도시 공간을 알려준다. 특별함을 주었던 공간, 연인을 위한 도시의 시공간, 혼자 있기 좋은 도시의 시공간, 일하는 도시의 시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늘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흔한 공간임에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저 스쳐지나가는 곳과 일생 동안 한 번도 가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장소까지 쉴 새 없이 우리를 안내한다. 건축가라는 저자에게는 공간의 의미가 각별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의 글은 내 유년시절 추억 속의 공간들을 불러내기도 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뭉클해지기도 했다.

 

 ‘나를 만든 공간들은 유년 시절의 장소와 청년 시절 공부했던 곳과 여행지의 장소들을 보여준다. 유년 시절의 골목길 등 학교 계단, 운동장 등의 공간은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다정했던 형과 마당에서 놀던 모습의 사진 등 가족 이야기를 통해서 여유 있고 다복하게 살아가는 서울 사람들의 가정은 이런 분위기였구나 싶었다. 그렇게 행복한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것에 큰 자부심이 느껴졌고 부럽기도 했다. 시골에서 자란 나의 어린 시절은 무엇이든 결핍의 일상이었다. 학용품도, 비오는 날 쓰던 우산도. 초등학교 시절 몹시도 바람 불고 비 오던 등교 길에 파란 비닐우산이 뒤집혀 부끄럽던 기억도 떠올랐다. 집에서 제일 먼저 나서야만 제대로 된 우산을 갖고 갈 수 있었던 시절. 지금은 웃을 수 있는 아련한 추억이지만. 그는 그동안 지내온 좋아하는 공간들을 추억하면서 글을 쓰는 동안에도 무척 행복했을 것 같았다. 역시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더 들여다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지냈던 공간은 어떤 모습으로든 한 사람의 평생 동안에 각인 된 이미지로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P156. 한남대교 다리 밑 공간.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다리 밑 공간이 아닌가. 한남대교 아래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이 1킬로미터 넘게 줄을 서 있는데 저자는 이 모습이 이집트 신전 기둥보다 멋진 모습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사진> 두무개길(P168)옥수동, 금호동 한강변에 있다는 두무개길.

 

건축에서 아치arch‘는 특별하다. 다른 예술과 달리 건축만의 아름다움이라고 한다면 중력을 이기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치는 중력을 이기는 모습이 우아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곡선으로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위대한 건축가 루이스 칸은 이런 이야기로 아치를 설명하기도 했다. “벽돌은 아치가 되고 싶었다. 그러자 건축가가 아치는 비싸서 안 된다고 말했다. 그 말에 벽돌은 슬퍼졌다.” 그만큼 아치는 만들기 어려운 건축양식이기도 하다.’(P166)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 양식임에도 비싸고 만들기 어려운 특성 때문에 아치 구조를 찾아보기 힘든 가운데 서울에 이런 건축물이 존재한다니 정말 신기하고 반가웠다. 반원형의 아치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풍경을 보는 일은 색다른 경험일 것 같다. 저자는 마치 르네상스 시대 빌라에서 아치 창문으로 서울 풍경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공사비를 절약한다는 착상으로 건축되었지만, 채광과 통풍은 물론 보기에도 아름다운 아치 구조를 갖게 되었으니 그 아이디어도 대단하다.

 

서초동 경부고속도로 옆. <사진>P287.

 

건축에서 벽이 얼마나 위대한 건축 요소인가를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다. 벽은 이러한 반전의 공간을 만든다. 벽은 단순히 소통을 막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안 좋은 요소를 차단함으로써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P287)

 

 방음벽을 사이에 두고 가장 빠른 경부고속도로와 나무가 울창한 산책로가 펼쳐진 가장 느린 공간이 하나의 장소에 공존할 수 있는 이유를 알려준다. 벽이란 대개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았나 싶다. ‘벽창호가 그렇고 살면서 수없이 보이지 않는 에 부딪히기도 하고. 벽은 그렇게 걸림돌을 제거하고 반전의 공간을 만드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삶에 대한 깊이를 더 느끼려면 죽음은 그림자처럼 따라야 한다. 삶이 빛이라면 죽음은 그림자다. 그림자는 빛을 느끼게 해준다. 가끔씩 죽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보는 것도 의미있는 삶을 위해 좋을 것이다.’(P340) -현충원

 

 어렸을 적 고모네 집에서 돌아가신 고모부의 신주를 모시는 공간을 보았고 마을에는 사당이 있었다. 자주 볼 수 없었지만 어쩌다 그런 곳에 들어가면 왠지 쭈뼛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만 해도 죽은 사람들과 함께 한 공간에 있었구나 싶었다. 지금 우리 현실은 많이 달라졌고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 환경에서 살고 있다. 가끔은 죽음을 떠올리면서 현재의 삶을 돌아보고 가꾸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인생은 차선(次善)이 모여서 최선(最先)이 되는 것이다.

원래 최선들이 모여서 최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온갖 멋진 옷과 고가의 액세서리를 다 하고 나면 완전 촌스러워질 수 있다. 모자라는 듯한 것들이 모여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답다. 그러니 내가 원했던 길이 막힌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라. 때로는 그게 빨간 신호등처럼 조금만 기다려도 파란불로 열리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옆길로 가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지금 열린 길이 최선이 아닌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그런 길들이 모여 예상치 못한 멋진 곳으로 인도해주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P403)-남산 순환도로

 

 우리는 누구나 인생이 고속도로에 직선도로이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삶 아닌가. 길을 가면서 그 길의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좋은 것을 상상하면서 희망을 거는 일, 그것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구불구불 돌아가지만 경치 좋은 남산순환도를 애용한다는 저자는 지금 우리가 돌아가는 길이 남산순환도로 일지도 모른다면서 일단 길이 열리는 데로 걸음을 떼라고 말한다.

 

인생을 살면서 모든 순간이 아름다울 순 없다. 순간순간이 아주 가끔 아름다울 뿐이다. 우린 그 순간들을 이어서 별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삶이 모두 대낮처럼 밝을 수 없고 약간의 별빛만 있다면 우리는 그 별빛들로 별자리를 만들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만들려면 희미하지만 검은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을 찾고, 잇고,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P411)

 

 밝고 찬란한 빛은 아닐지라도 희미한 불빛 같은 희망으로도 우리는 살 수 있다. 그 희미한 별빛을 이어서 우리만의 별자리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을 갖자고 한다. 그것은 지치고 힘든 현실에서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다시 나아가는 삶의 메시지가 될지도 모른다.

 

 소박하고 인정미 넘치는 재래시장의 냄새부터 미술관의 세련된 공간 등 수많은 도시의 시공간들을 눈앞에 소환시켜 닫혀 있던 우리의 감각을 깨운다. 건축가의 글이 이렇게 감성적이어도 되는 것일까. 마치 건축을 하듯 세밀한 언어를 짓는 듯 소박함과 세련미가 느껴지는 공간에 대한 통찰에 감탄했다. 사진가 양해철이 촬영한 공간들의 멋진 시각적 이미지와 더불어 이 책을 빛나게 하는 것 같다. 이제 우리도 지금 머무는 공간, 앞으로 마주 할 공간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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