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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 - 좋은 카피를 쓰는 습관 ㅣ 좋은 습관 시리즈 5
이원흥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0년 7월
평점 :
이 책은 좋은습관연구소의 습관시리즈 중 다섯 번째 책이고 나는 세 번째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카피라이터의 직업의 세계가 궁금했고 『책은 도끼다』로 유명한 박웅현님의 단독 추천에 무엇보다 깔끔하고 멋진 표지 디자인에 반했기 때문이다.
역시 실물을 받아보니 마음에 꼭 들었다. 짧은 문장에 전하려는 메시지를 농축시켜 명문장을 뽑아내는 카피라이터의 책답게 시집처럼 얇은 두께감과 표지디자인이 손에 착 달라붙는다. 저자 이원흥은 “광고 카피만 카피랴, 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 라고 주장하는 28년차 카피라이터다. 고려대 불문학과를 나와 제일기획 카피라이터로 광고에 입문하여 컴온, 한컴, TBWA에서 크리에이티브 담당 임원을 거쳐 현재 농심기획 대표이사를 지내고 있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삼성), 장애라는 말이 장애가 되지 않는 사회(삼성), 오징어 없는 짬뽕이 짬뽕이니?(오징어짬뽕) 등의 카피를 다수 썼다.
이 책을 단독추천 했다는 박웅현 님에 대해 먼저 알아보려고 『다시, 책은 도끼다』(『책은 도끼다』가 없어서 꿩 대신 닭으로.)를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미리 읽어보았다. 책을 읽을 때는 천천히 읽을 것을 권한다는 말과 김사인 선생의 『시를 어루만지다』에서 시를 읽는 방법을 언급한, '사랑이 투입되지 않으면 시는 읽힐 수 없다.'는 대목을 만났다. 이 책은 시인의 감성을 가진 카피라이터의 이야기니까 시를 대하는 마음으로 읽기로 했다. 장황하지도 길지도 않은 이야기에 과연 독서가다운 독서의 흔적들, 세상과 일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긍정적인 마음, 시적인 감성이 느껴져서 좋았다. 게다가 재미까지 있다. 금세 읽을 정도로 이야기는 짧지만 우리가 평소 모르고 지나치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먼저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언급하며 그것을 뒤집은 회의실의 분위기를 얘기하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행복한 제작회의는 제각각 다르고 불행한 제작 회의는 모두가 비슷하다.”
역시 즐거운 분위기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샘솟듯 떠오른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쥐어짠다고 해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리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회사가 경직된 회의실 분위기인 것을 생각할 때 행복한 직장의 이미지가 상상되었다. 또 좋은 카피를 뽑아내기 위해 모인 회의실을 목욕탕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재치가 느껴졌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식구 같은 동료의식으로 힘을 모아야 하는 일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실행되지 못한 아이디어는 아이디어가 아니며, 실행은 결코 저절로 되는 법 없이 집요한 노력과 영리한 계산이 이뤄져야 개시된다. 실행을 잘하기 위해선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카피를 쓰는 일에서도 순발력보다는 집중력을 더 필요로 한다. 잘 쓴다는 건 설득에 유능하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설득력이 높은 카피는 톡톡 튀는 순발력이 아니라 놀라운 집중력, 즉 몰입에서 나온다.’(p23)-몰입에 대하여 中
순발력이 아니라 집중력이 더 중요하단다. 톡톡 튀는 신선한 발상에서 좋은 카피가 나올 것 같은데 몰입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에 대한 인용으로 성석제 작가의 <몰두>를 언급하며 개의 몸에 기생하는 진드기를 예로 들고 있는데 음.. 좀 끔찍하다. 개의 몸 속살에 파고드는 진드기 같은 정신으로 카피를 써야 한단다. 공부에도 저렇게 몰입할 수 있다면 대단할 텐데.
경의선의 종착역은 신의주가 아닙니다.
압록강을 건너 모스크바를 지나
파리와 런던까지 이어집니다.
경의선은 이산가족만을 실어 나르지 않습니다.
대륙과 대양을 오가는 세계의 물자들까지
실어 나릅니다.
경의선은 남북을 잇는 길만이 아닙니다.
한반도가 다시 대륙으로 이어지고,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경의선은 기찻길이 아닙니다.
경의선은 경제입니다.(P25)
DJ정부 시절, 지금의 TBWA의 박웅현 크리에이티브 대표와 저자가 같은 팀 카피라이터 시절에 쓴 카피라고 한다.
‘좋은 카피를 쓰고 싶은가? 우선, 사실과 상황을 냉정하게 이해하자. 그러려면 잘 들어야 한다. 클라이언트의 말을, 소비자의 목소리를, 회의실 동료들의 견해를, 그래서 ‘쨍’하게 이해했을 때, 그때! 써라.‘(p31)-경청에 대하여 中
잘 들어야 하는 일이 어디 카피에만 해당할까. 가족과 친구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내 말만 주장하다가는 관계가 틀어지기 쉽다. 광고주를 비롯하여 소비자 등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공통분모로 설득해야 하니 잘 듣고 공감할 수 있는 데서 좋은 카피가 탄생한다는 것은 당연하지 싶다.
‘놀라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능력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도 놀라움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과 놀랄 만한 대상에게조차도 심드렁한 사람의 성장그래프는 시간이 갈수록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고.’(p34)-경탄에 대하여 中
감탄하는 능력도 능력이다. 웃긴 코미디를 보고 웃을 줄 아는 것도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웃긴데도 뭐가 웃기냐며 썰렁하게 구는 사람이 간혹 있다. 그런 사람은 별로 친하고 싶지 않다. 시인들이야말로 감탄하는 능력의 대가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사물을 보고서도 시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그들의 탁월한 관찰력과 직업정신(?)에 놀라게 된다. 점점 삭막하게 변해가는 우리의 감정을 되돌아보고 배워야 할 것이 감탄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카피라이터를 위한 독서라면 남들이 다 알고 있는 카뮈가 아닌 ‘새로운’ 카뮈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그러니 무턱대고 남들이 좋다는 책을 펼쳐보기에 앞서 나를 들여다보는 일에 더욱 시간을 쏟을 일이다.
나를 들여다보는 데에는 산책만한 ‘책’이 없다. 산책은 굳이 멀리 제주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일 필요는 없다. 내가 사는 동네의 익숙한 골목길이면 어떻고, 차로만 다녀 오히려 눈에 닿는 풍경이 낯선 출퇴근길이면 또 어떠하랴.'(P46)-산책에 대하여-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할 것 같다. 카피라이터의 독서방법이란. 책보다 낫다는 산책을 권하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도 생각이 정체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다 털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곤 한다. 바람 소리, 새 소리를 들으며 걷는 동안에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가 딱 떠오르는 신기함이란. 독특하고 신선한 발상과 함께 공감을 주는 카피를 얻기 위해서는 당연할 것 같다. 카피라이터에게 제일 좋은 책이란 ‘산책’이라는 것을, 나를 들여다보는데도 가장 좋은 것은 산책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오늘의 일정에 집중해서 오늘을 산다. 이렇게 살다보면 인생을 멀리 계획하지 못해 생기는 필연적인 약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대충 미루거나, 갑자기 술이나 한잔하자는 동료의 제안에 우물쭈물 고민하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전전긍긍하게 될 일은 없게 된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오늘 다하기에도 오늘은 늘 짧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발밑만 보면서 오늘을 산다. 오늘이 쌓여 인생이 된다.’
(P97)-일정에 대하여 中
우리는 앞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운다.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얘기도 어디서 본 것 같다. ‘오늘의 일정에 집중해서 오늘을 산다.’는 문장을 만나고 나는 ‘오늘’을 대충 두루뭉술하게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계획이란 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정도로 급한 일은 아니니까, 오늘 하루쯤은 좀 느슨하게 보내도 되지 않을까 그런 태도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오늘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말을 명심하고, 이제부터 ‘오늘’에 집중하는 태도를 내 일정에 포함시켜야겠다.
‘삶은 언제나 글에 우선한다. 쓴다는 것 이전에 삶이 있다.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부정적인 뉴스의 주인고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감동적인 에세이의 필자가 되기도 한다. 타인과 세상에 대해서 또 자기 자신의 현재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갖느냐의 문제는,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 일 뿐만 아니라 내 동료들과 어떻게 일을 도모해 가느냐와도 반드시 연결된다.’(P126)-집요한 긍정에 대하여 中
이 이야기는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10대들의 명문대 지원 에세이 일부를 소개한 후 감회를 쓴 부분이다. 어린 나이임에도 아버지를 따라 배관을 청소하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을 하면서도 초 긍정적인 마음과 열정을 가진 10대들을 보고 정말 놀라웠다. 세상은 그렇게 집요한 긍정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에 의해서 조금씩 변화해 가리라 생각되었다. 변화무쌍한 날씨에도 잘 적응하는 사람이 카피라이터의 일이라고 했다. 그들 ‘날씨의 인간’처럼 유연한 삶의 태도와 몰입할 수 있는 집중력을 나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읽었던 김고명 번역가의 책과 바쇼의 하이쿠가 나와서 반가웠다.
SNS가 카피의 연습장이 될 수 있다니 활용해 봐야겠다.
1,2분 정도의 짧은 광고 한 편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아내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여러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담긴 광고를 우리는 참 쉽고 간단하게 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멋진 아우라를 느끼게 하는 광고가 탄생하기까지 과정과 광고인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이제 광고 방송을 보게 되면 그 과정을 조금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는 카피를 잘 쓰는 비결은 나오지 않는다. 좋은 카피를 쓰기 위한 스물세 가지의 태도와 습관을 배울 수 있는 이야기다. 이 습관은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 싶었고, 세상만사가 프레젠테이션 아닌 게 없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 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이 책은 카피를 잘 쓰고 싶은 카피라이터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따뜻하고도 공감어린 한 마디를 건네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도 좋겠다.
오른쪽 책은 『바쇼 하이쿠 선집』과 『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