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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평점 :
책을 읽고 나면 으레 습관처럼 책을 읽었던 소회,
좋았던 이야기들, 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뭉쳐서
기록하곤 했고 그래서 독서 후 제일 마지막이 독서기록이었다.
그렇게 해야지 책 한 권 다 읽고 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유독 책을 다 읽고 나도 독서기록이 되지 않는 책이 있다.
책 내용이 좋지 않거나, 내용에 동의할 수 없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너무 좋은 책, 구절구절 재밌고 배우고 감동했음에도 다 읽고 나면 뭐하나 제대로
적어낼 수 없는 것이다. 내게 그런 책은 유홍준 교수님의 책이다.
학창 시절 공부 못했던 코찔찔이였지만
미적 감각이 없어도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어도
책만 읽어도 얼마든지 느끼고 이해하며 즐기다 보면
배움이라는 알맹이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 였고
그렇게 나는 유홍준 교수님의 숨은 팬이 되었다.
교수님의 책을 모아가면서 주변에 답사기 시리즈
몇 권 빌려주기도 해서 지금은책장에 책이 좀 비었지만,
책이 있는 책장을 훑다보면 뭔가 가득찬 느낌이 든다. 아직
다 읽어내지 못한 책도 많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든든한 느낌. 교수님의 책은 내게 그런 존재다
그러던 차에 <유홍준 잡문집 -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가
출간되어서 창비에서 서평 이벤트를 한다는 것이다.
어찌 신청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창비 서평 이벤트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번 일본편 4권 '교토의 명소'에 참여했고
교수님의 글과그림, 직인과 내 이름이 상단에
적혀있는 귀한 책으로 받았다.
책 면지에 사인을 받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첫 번째는 <나의문화유산답사기 8권 남한강>편이 나왔을 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강의를 오셨는데 그때 사인으로 받은 것이다.
한참 줄을 서있다가 내 차례가 되어서 사인을 받게 되었는데
이름 대신 닉네임을 말씀드렸더니 무척 당황해하시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귀한 책은 현재 시댁에 가있어서 나중에 다시 가져올 생각이다.
생각해보면 이때도 서평쓰는 일이 수월치 않았다.
책을 읽다보면 역사 이야기인가 싶으면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 있고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으면 수천년 묵묵히
살아낸 땅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 있다. 진짜와 농담을
씨실과 날실로 교차해가면서 유쾌하게 엮어가는 교수님의 말재간에
웃음과 감동이 넘쳐나는데 어떻게 이걸 서평으로 쓸 수 있을까?
교수님은 이번 책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에서 이런 본인의 글을
'잡저'와 '잡문'이라 평하셨다.
나의 글쓰기는 일반적인 산문 형식을 벗어난
'잡문'의 성격이 강하다. 이는 내가 젊은 시절에
루쉰의 잡문에서 받은 영향 때문이다. 또 내 또래와
내 선배들 세대에게 루쉰은 지식인의 표상이었다.
루쉰은 자신의 글을 잡문이라고 했고 <아침 꽃을 저녁에줍다>등
루쉰 잡문집이 여러 형태로 나와 있다.
그러나 루쉰의 잡문집이란 그냥 잡문이 아니라 일상사에서
시작해 사상의 담론에 이르는 글이다.
옛 문인들의 문집을 읽을 때도 나는 시, 논, 소,차
서, 서,척독 등 전통적인 글쓰기보다도 대개 마지막에
실려 있는 잡저를 눈여겨보았다. 잡저에는 세상만사가
다 들어 있고 거기엔 인생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답사기'라고 해놓고 이 소리 저 소리 다 이야기하는
것에는 이런 잡저와 잡문의 정신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에 나의 산문을 아예 <유홍준 잡문집- 나의 인생만사답사기>라 이름지었다.p6
이런 책을 어찌 나같은 말발 글발이 허약한 독자가 서평할 수 있으리오?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는 총 5장의 본문과 '나의 글쓰기'라는 부록으로 엮어졌다. 제 1장에는 인생 만사, 제 2장 문화의 창, 3장 답사여적, 4장 예술가와 함께, 5장 스승과 벗으로
묶였는데 미술사에 대한 이야기, 문화재청장 시절에 대한 이야기, 답사회를 이끌며 지냈던 이야기, 이땅에 함께 한 시절 보냈던 예술가들 백남준, 신학철, 오윤, 김지하, 김가진
그리고 스승과 벗으로 리영희, 백기완, 신영복, 이애주,박형선, 홍세화, 김민기 선생님들에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이 책이 인상적이었던 점은 '제 1장 인생만사'편에
수록된 '고별연 - 마지막 담배를 피우며'로 시작하는 도입부분이이다.
어째 하고 많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가깝던 인생의 벗(담배)과 이별을 고하는 이야기로
이야기를 시작하셨을까?
" 잘가라, 담배여. 그동안 고마웠다. 나의 연차여!'
라는 마지막 인사에 이런 각주가 달렸는데
'고별연 이후 나는 진짜 금연을 잘하였다. 그러다 금년(2024년) 봄, 벗들이 연달아 세상을 떠나면서 장례를 치르다 다시 담배를 입에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책이 나오면 할 수 없이 다시
금연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p21'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떠나보낸 벗들과 선생님에 대한 나름의 추도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독 올 해 떠나보낸 이들이 많으셨으니 그 마음 얼마나 적적하셨을까.
숨은 팬심은 오지랖이라는 담장을 넘기도 했다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옛 그림 감상법'이라는 제목으로
경북 북부 지역의 시각장애인 30여 명을 초대하여
강연한 일화에서는
철판 요철에 프린팅한 기술을 사용해서 시각 장애인들이
손끝으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던 이야기가 담겼는데
교수님이 '지식인이 체득한 전문적 지식을 대중에게 전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p5'
던 말속에 그 '대중' 에는 어떤 사람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던 대목이라 참 지성이심에 존경심도 샘솟았다.
이렇게 학식이 많으신 교수님이시라 배움 보다는지식 나눔으로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계실 것 같았는데 '말일파초회'에서 학생임을 이야기하신 대목에서는
놀라움도 있었다.
"내 직함이 석좌교수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정년퇴임한 몸이지만 평생 학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해 지금도 한 달에 한번씩 다니는 수업이 둘 있다.
모두 '그놈의' 한문 공부다. 매달 둘째 목요일에는 한시를
배우는 '이목회'가 있으며, 마지막 일요일에는
초서를 공부하는 '말일파초회'에 나간다'
1981년 서른을 훌쩍 넘은 나이에 조선시대 서화사로
전공하기 위해서 한문을 배워야했는데 당시 청명 임창순
선생님의 지곡서당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입학 나이 제한이
28세라서 절친한 벗이자 한문 선생이신 이광호 선생 집에서
'고전 강독회'를 이어오고 계신다고.
세월동안 수많은 강연회와 책을 출간하시며 대중화에 앞장서는 과정 속에서도 '한문'이라는 배움이 꼭 필요했고 이런 각고의 노력으로 책이 세상속으로 나올 수 있었구나 싶은 생각에 잔잔한 감동을 받기도 했다.
책에는 다양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었지만
독자로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다름아닌
유홍준 교수님의 어머님과 교수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어머니 이력서'에서는 88세 미수연을 치뤘던 자리에서
어머님이 88년 생을 살아오셨던 그 고난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이나, '나의 문장 수업'에는 유홍준 교수님이 유년 시절부터 글쓰기에 영향받았던 책과
유공희라는 국어 선생님의 영향들 그리고 60년대 민주화
투쟁이었던 암울했던 그 시기를 몸으로 부딪치면서 살아낸 이야기들과
<창작과 비평>,<사상계>라는 책을 읽으며 세상을 좀 더 넓게 바라보게 되었음을 이야기 한다.
감동받은 책이 있으면 곁에 두고서 여러번 읽었다는 것과
" 그때 최채현은 그해 3월에 혁신계 인사들이 창간한 월간지 <아세아>의 창간호와 4월호 두 권을 갖고 왔다. 나는 여기 실린 이동주의 '우리나라의 옛그림'의 <김단원이라는 화원>.<김재일파의 진경산수>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서양미술사가 아니라 한국 미술사에도 이런 콘텐츠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이 연재를 매회 충실히 읽었고 연재가 끝난 뒤에는 이 글들을 잡지에서
떼어내어 한데 묵어 제본해놓고 여러 번 읽었다. 이 거칠지만 든든한 제본은 지금도 내 책꽂이에 꽂혀 있다. 이것이 내가 한국미술사, 그중에서 회화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군대를 갔다 온 뒤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도 이동주의 <한국회화소사>를 품고 몇번을 읽고 또 읽었다.p330
중앙일보의 기자 시절에 홍사중 선생님의 '분수대'라는 글을 원고지에 필사하면서 명문을 필사하는 것이 문장수업에 가장 좋은 방식임을 실감했다고 회고하는 부분들을 읽으며 인간 '유홍준' 이라는 분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알 수 있는 시간이었고 팬으로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책 부록에 실린 '좋은 글을 쓰기 위한 15가지 조언'에는
주제를 장악하기, 잠정적 독자를 설정하기 등 좋은 조언이
가득 담겼는데 나는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15번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점검하라'던 부분이다.
책에 실린 사진에 보면 유독 교수님이 부채를 들고 다니시는
모습이 많이 나와서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후반부 글쓰기 편에서는 이 부채를 메모지처럼
사용하신다던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다.
교수님은 책을 한 권 출간하기 위해서 먼저 글을 퇴고하고
그 내용을 학생들과 답사회와 관련 지식인들에게 검증 받는 과정을 몇 번씩 거치면서 부채에 수정 보완할 내용을 기록하고 전체적인 얼개를 세우신다던 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책 표지 뒷면에는 이욱연이라는 서강대 교수님의
추천사가 실렸는데 처음 책을 받아들고서 책 뒤표지의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절망했더랬다.
분명 책을 읽고나서 이 추천사 보다 더 멋진 글을 만날 수 없을 거라고.
'간결하면서도 깊고 문학적이고, 사사로우면서도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글, 중국작가 루쉰이 즐겨 쓴 잡문이다.
유홍준 선생의 잡문도 그렇다.
역시 책을 읽고 났더니 내 예감은 딱 들어 맞았다.
이 추천사보다 더 멋진 글은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을 듯 싶다.
이 시대의 이야기꾼, 역사와 예술이라는 소재를
빌려 현재를 들춰내는 세상 하나 뿐인 '문사' 유홍준 교수님의
이번 책< 유홍준 잡문집-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는
교수님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뜻깊은 선물같은 책이었음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받아서 성심성의껏 읽고 기록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