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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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몰라 한참 동안 찾곤 한다. 잘 두었다고 신경 써서 둔 것을 잊어서 곤란해 하기도 한다. 이런 때 농담으로 치매 아니야? 라는 말을 가볍게 하지만, 그러한 중증의 환자가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 중에 있다면 결코 웃을 일이 아닐 것이다. 기억을 잊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살아오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 중에서 나쁜 기억만 잊어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오베라는 남자』로 감동을 선사한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이다. 아주 조그맣고 얇은 두께의 책으로 맑은 동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손자의 이름을 남들보다 두 배 더 좋아하기에 항상 ‘노아노아’라고 부르는 할아버지와 노아의 이별 연습이다. 때로는 기억 속에서 때로는 꿈인가 싶은 이야기로 환상의 공간을 보여준다. 아주 담담하게.


“어떤 기분이에요?”

“주머니 속에서 계속 뭔가 찾는 기분, 처음엔 사소한 걸 잃어버리다

나중엔 큰 걸 잃어버리지. 열쇠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거야.”(p183)


 궁금한 노아가 할아버지에게 머릿속이 아프냐고 묻기에 이렇게 대답한다. 이렇게 적절하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사람들, 특히 가족들과 함께 했던 추억의 기억을 서서히 잊어간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아마도 무너지는 마음일 것이다. 시간적 공간을 오락가락하면서 헤매기도 한다. 어릴 적 노아와 청년 노아를 보며 당황해 하는 할아버지가 있다. 젊은 날 만나 사랑에 빠졌던 할머니는 히아신스 향기가 나는 아가씨의 모습으로. 수학자였던 할아버지는 일이 너무 바빠서 아내였던 할머니의 설거지도 도와 준 적이 없고, 할머니에게 까다롭고 뚱하게 대했다. 노아의 아빠인 테드가 음악을 좋아하여 기타를 치는 것도 못마땅했다. 이 모든 것이 후회로 남는다.


 묵직한 소재를 다룬 이야기지만, 전혀 무겁지는 않다. 큰 사건도 없이 담담한 가운데, 웃음도 선사한다. 자주 노아의 학교생활에 대해서 묻는 장면이 나온다.


“수학은 별로 안 하고 쓰기만 많이 해요.”

“그리고 계속 글을 쓰래요! 한번은 선생님이 인생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쓰라고 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뭐라고 썼는데?”

“함께하는 거요.”(p113~115)


그래, 인생은 함께 하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다. 참 따뜻한 말이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대화도 있다.


“가장 평범했던 일들이 그리워. 베란다에서 아침을 먹었던 거. 화단에서 잡초를 뽑았던 거.”

“나는 새벽이 그리워요. (중략) 호수 위로 반짝이던 햇살이 부둣가 돌멩이들을 지나 뭍으로 올라와서 정원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집 안으로 살그머니 쏟아져 들어오면 이불을 박차고 나와서 하루를 시작했잖아요. 사랑스럽게 졸음에 겨워하던 그때 당신 모습이 그리워요. 그때 당신 모습이.”(p119~121)


 살다보면 일에 치여서 가족과의 평범한 일상도 데면데면 해지기도 한다. 부모의 주장을 자녀들에게 앞세우다보면 약간의 불협화음도 생긴다. 하지만, 그런 것도 모두 지난 일이 된다. 세월 앞에서는. 읽는 동안 생각난 것이 있다. 부모와 조부모와의 추억을 요즘은 얼마나 만들어가며 살고 있는지. 추억으로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는 것인데. 아이들이 성장하며 경쟁교육에 내몰리면서 평범하고 소중한 관계의 추억 만들기가 너무 결여된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가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족의 사랑을 생각한다면 전혀 무서워 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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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사랑한다 3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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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권에서는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입은 세 사람이 서로를 만나기 위한 여정이 펼쳐진다. 광대한 타클라마칸 황량한 사막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지만, 도움의 손길을 받아 새 삶을 꾸려간다.


권력욕에 눈이 먼 송인 등 주변세력은 모사를 꾸미느라 여념이 없고...


 당한 대로 갚아 주는 것!

이 문장을 발견하고는 전에 본 일드가 생각났다. 은행원으로 월등한 실적으로 승승장구하던 주인공은 어릴 적 아픈 기억이 있다.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도산 직전에 대출을 요청했지만, 끝내 거부하며 아버지가 자살하게 된다. 그 사건은 성장하는 내내 피맺힌 한으로 작용하고, 거절했던 그 은행에 취직한 주인공이 해결하기 어려운 채무를 걷어 들이는 일을 맡게 된다. 거의 가능성 제로였던 것을 해결하면서 반전이 된다. 그 주인공이 자주 부르는 노래. ‘당한만큼 갚아준다. 열 배로 갚아준다.’ 는.  피바람을 부르는 복수도 아닌, 통쾌한 복수이기 때문이다. 왕좌를 노리기 위한 복수와는 격이 다르다.


  반면, 왕좌를 노리기 위한 복수는 비열하기 짝이 없고, 인간은 과연 어느 선까지 사악할 수 있을까 가늠할 수 없다. 그렇게도 왕의 자리가 탐나는 걸까.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향한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송인 등은 있지도 않은 죄를 조비를 비롯한 측근에게 덮어씌워 왕전을 내세워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혈안이다. 왕의 자격 같은 것을 갖추지도 못한 허수아비나 진배없는 위인을 내세워서 권력의 실세를 노리려는 음흉한 간계다. 개혁이란 명분을 내세워 자기들의 세상을 만들려는 검은 음모다.


 현애택주 산을 찾아서 왕에게 수십 배의 고통으로 복수하고 싶은데,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예상치 못한 가까운 곳에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하는데...


 단의 도움으로 밀실에 갇혔던 산은 탈출에 성공한다. 죽은 줄 알았던 린이 살아 있고 노예로 팔려갔다는 정보를 듣고, 장의, 송화, 비연 등 일행은 린을 찾아 길을 떠난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물이 없어 탈진하는 등 고생고생 끝에 사막 가운데 있는 마을 주민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한편 원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대도에 있다는 소문이 들리고...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마을. 원나라의 공녀로 차출되어 왔다는 미금. 그들의 보살핌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힘을 얻어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이곳은 누가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일하지 않는다. 소유권을 위한 다툼도 고발도 없다. 냉혈한의 비열한 웃음도 없다. 척박한 환경이지만,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산은 일행과 더불어 사랑이 있는 삶의 풍경을 떠올린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 참으로 고생길이다. 사랑에 관한 갈망은 왕실의 사람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독점하고 소유하며 괴롭히는 원의 방식은 안쓰럽다. 건전한 정신에서 우러나는 사랑이 아니다. 어떤 폭력으로도 소유하려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성스러운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이다.


 원이 린과 산에게 그렇게 끔찍한 고통을 안겼는데도 미워할 수 없다. 오히려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는 산. 다시 우정이 보이는 대목이다. 그렇다. 고통은 고통으로 치유할 수 없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오직 사랑으로 치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모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스진의 현명한 처사, 부자지간을 증오의 대상으로 여겼던 원의 태도가 조금씩 유연해진다. 어쩌면 성군이 되기에 앞서 자신이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증오와 야욕이 가득 찬 마음으로 좋은 왕이 된다는 것은 역시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권력욕도 마찬가지다. 왕좌를 노리기 위해 사랑으로 가장하고, 신분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사랑하는 척 하는 것이 오래갈 수 없다. 역사적 상황의 전개와 인연이 된 세 사람의 사랑, 우정,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사람의 운명은 결코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정당한 방법으로 취하지 않은 권력은 머지않아 모래성처럼 무너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역사와 상상력이 가미된 역사소설을 읽으면서 인간과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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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사랑한다 2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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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외모만큼 그에 따른 인품이나 행적도 걸맞다면 얼마나 그 사람이 아름다울까. 한 사람에게 좋은 것을 다 몰아줄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모양이다. 바뀌기로 결심한 세자 원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백성의 원성을 듣는 부왕처럼 살지 않으려고 빈민가의 사람들에게 쌀죽을 제공하는 등 선행을 베풀기도 했는데, 선한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분노를 풀기 위한 건수를 찾기 위해 혈안이다. 아직 왕의 위치는 아님에도 원성공주의 힘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른다. 권력 앞에서는 부모자식의 관계도 결코 용납이 되지 않는다.


 왕실의 여인으로 살아간다는 무엇인가. 화려함 겉모습 속에 숨어 있는 눈물과 한숨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자의 정비가 되었다고, 아이를 먼저 가졌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명의 여인들이 세자 한 사람을 보고 왕실의 가족이 된다. 저마다 사랑을 갈망하지만, 엇비슷한 슬픔과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 ‘부자관계’ 자체를 증오한다는 원. 결과 건강한 관계라고 할 수 없는 부모를 보면서 자란 원에게 깊이 심겨진 일종의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무비와 방탕하게 놀아나며 국정을 돌보지 않고, 썩어빠진 관료와 환관들로 둘러싸여 있는 부왕에게 환멸을 느끼지만, 어느새 그것을  따라하고 있다. 미워하면서 닮는다더니.


 ‘환자가 앓은 지가 오래됐으면 의원을 바꾸어야 한다’는 송인의 뜻을 이용하여 모후의 사망을 계기로 왕좌를 차지하려 한다. 있지도 않은 역모죄를 뒤집어씌워서 피바람을 일으킨다. 우아한 미소 뒤에 숨겨진 잔혹함이 치를 떨게 한다.


 무능한 왕실이 이렇게 허점을 보이는 틈바구니에서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조정에서는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런 기회를 노리는 자들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손아귀에 권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최고의 권력자를 꿈꾼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한 나라의 명운이란 리더의 행보에 걸려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세자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벗이라는 이름으로 가슴에 새겨져 있는 린. 가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질투로 인해 우정도 금이 간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어디서부터였을까. 뒤늦게 산에 대한 사랑임을 깨닫게 되는 원. 떠나고 싶다는 린의 말은 하늘이 무너지는 배신으로 여긴다. 원에 대한 린의 너무 충직한, 한편으로는 융통성이 없는 충직함에 한숨이 나온다. 충성, 신의도 도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한 왕에게만 적용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미(美)를 탐하고 그 대상을 소유하려는 검은 마음의 근원은 어디에서 나올까.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잔혹함은 그 끝이 어디일까. 소름끼치는 잔인함에 전율을 느낀다. 고혹적인 아름다운 겉모습 속에 숨겨진 야욕은 누구와도 화합할 수 없다. 모두를 파멸로 끌고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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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사랑한다 1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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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오랜 침입에 견디다 못해 항복한 지 십 수 년이 흘러간 때가 이 작품의 배경이 된다. 왕실과 무인 권력자들 귀족들은 강화로 도망을 갔지만, 몽골에 끈질기게 항거했던 것은 민초들이었다. 전쟁 중에는 어느 누구보다도 백성들의 고초가 큰 법이다. 더구나 조정에서는 전쟁 전이나 전쟁 중이나 똑 같이 세금을 거둬들였다니 그 고통으로 인해 오히려 항복을 내심 반겼다는데, 얼마나 팍팍한 삶이었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도 없다. 그렇게 몽골제국의 부용국(附庸國)이 되어 공물과 공녀의 부담까지 떠맡아야 했다. 무신 집권자들의 횡포와 착취, 국왕의 폐신들이 백성들을 상대로 등쳐먹는 일도 허다하여 민초들의 하루하루의 삶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이 보인다.


 정략결혼으로 맺은 몽골의 원성공주인 왕비는 고려 최고의 권력자였다. 탐욕으로 똘똘 뭉친, 표독스럽고 거만하기 짝이 없는 그녀에게 설설 기는 왕을 보고 백성들은 자존심을 구겨야 했다. 그럼에도 서민들은 험담을 하며 쌓인 분노를 풀었으니 그것 또한 아이러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사랑은 싹튼다. 사랑이야말로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해 주는 위대한 일이 아닐까. <왕은 사랑한다>는 백작약 같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고려의 세자 원, 고아한 분위기의 미청년으로 원의 둘도 없는 벗이자 호위 무사인 린, 고려 제일의 거부인 영인백의 딸 산의 사이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를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아울러 빚어낸 작품이다.


 올해 MBC 드라마로 방영될 원작이라고 한다. 전에도 대하드라마 사극을 즐겨보았었다. 이 작품도 드라마로 재미와 감동, 대리만족을 선사하기에 딱 맞는 내용이었다. 우선 맛깔난 대사와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일품이다. ‘철동 불주먹’ 개원이와 말더듬이 염복이의 역할도 대단할 것 같다. 그들은 가난한 생활 속에서 병든 노모를 모시고 권력자들에게 붙어 온갖 비리에 얽힌 심부름을 해결해주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다. 일이 틀어지면 얻어맞기도 일쑤다. 쫓고 튀는 그들의 일상은 땀과 긴장으로 범벅이 된다. 표독스러운 원성공주의 역할은 누가 맡게 될 것인가 상상하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일전에 악역에 성공한 그 여배우가 제격 일 것 같은데, 하며 몰입할 수 있었다.


 왕실의 사건에서는 주변 세력과 결탁하여 피 튀기는, 권좌를 빼앗는 일이 빠질 수가 없다. 고려 왕실을 바로 세운다는 명목으로 세자 원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며서 왕과 세자가 겨루는 사냥 내기를 개최한다. 충직한 호위무사 린과 산의 도움으로 실패로 끝난다.


 세자 원은 미(美) 추구하는 기질이 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 학문, 무예, 역어(譯語), 악기를 다루는 재주, 그림을 그리는 재주 등 뛰어난 사람을 좋아한다. 외모가 특출한 사람을 좋아해서 린을 친구로 삼았다는데... 서민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놀라운 친화력이 있다. 형제, 누나들을 사랑하는데, 그를 두려워하는 상황적 분위기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부왕 같은 왕은 되지 않을 거라며, 권력을 등에 업고 백성들을 농락하는 신하를 한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미(美)를 탐하는 파격적인 기질과 이미 가슴에 사랑의 열병으로 가득 차 있는데, 온전하게 백성을 보듬을 수 있는 왕으로 탄생할 수 있을까 염려된다.


 원, 린, 산의 우정에서 사랑으로 바뀐 이들의 삼각관계는 어떤 결말로 갈 것인지 무척 궁금하다. 사랑함에도 말 못하고, 몰라주는 상대에 대한 안타까움, 뒤늦게 사랑임을 알고 후회하는 이들의 사이가 어떻게 흘러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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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혼자가 되다
이자벨 오티시에르 지음, 서준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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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제베 고속 전철 안에서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연인이 된 루이즈와 뤼도비크.

두 사람이 ‘제이슨’호를 타고 세계 일주에 나섰다. 젊은 혈기와 약간의 치기어린 일탈의 마음과 같이.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어 설레던 마음도 잠시, 루이즈는 잿빛으로 흐려진 하늘을 보며, 그만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걱정한다. 하지만 뤼도비크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기회도 없을 거라며 강행한다. 등반대에서 경험으로 심각함을 느끼고 루이즈는 다시 한 번 돌아가자고 설득하지만. 그러면서도 둘은 화구호(호수인 듯하다)의 얼음 기둥들 사이를 헤매고 돌아다니며, 아름다움에 도취된다. 게다가 얼음 기둥은 이미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 얼른 돌아가지. 무슨 일 생기기 전에. 두근두근 마음이 동요되면서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날씨는 돌변하여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렸고, 야생 그대로 사나운 폭풍우가 휩쓸고 간 후 그들의 배가 없어진 것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가벼운 산책처럼 생각했지만, 산책이 아닌, 생사를 알 수 없는 사지의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순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배를 쇠사슬로 몇 미터 더 감았더라도, 돌풍이 다른 쪽으로 비켜갔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극한상황에 놓인 사람의 불안한 마음의 심리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 사람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에서 두려움이 고조된다. 섬세하면서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그 여정에 같이 동행하는 듯 실감이 난다. 스크린이 연상될 정도로 선연하게 눈앞에 떠오른다.


 루이즈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던 뤼도비크, 서서히 연인이 되고 여행을 계획하며 떠나면서 환희에 빛나던 설레임의 순간이 머지않아 분노와 충격에 빠지게 되는 것을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다고 먹을 것을 찾다니. 서서히 루이즈의 마음에는 뤼도비크에 대한 원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등반대를 이끌어본 경험으로 여기서 더 험악해지는 지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양식은 다 떨어져가고 고립되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은 두려움을 넘어 서로에 대한 분노로, 밥 먹듯이 싸우게 된다. 그야말로 서스펜스다!


 예기치 않게 이러한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먹을거리도 연락할 방법도 배도 모두 사라졌다. 게다가 무인도 접근 금지된 자연보호구역의 섬이다. 그들은 위법행위의 공범자다. 그나마 보이는 낡은 건물들은 방치된 지 오래되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서로를 비난하며 으르렁거린다. 당연히 더욱 두려운 공포가 엄습할 것이다.


 이 섬 스트롬니스는 한때 강치와 바다코끼리 등 동물들의 낙원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풍요를 위해 무자비하게 도륙하여 동물들의 씨가 말랐고,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기지들은 생기를 잃고 사체 더미의 폐허가 된 채 폐쇄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인간의 탐욕을 부린 결과, 이곳은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었다. 인과응보다. 거센 바람만이 들락거리며 황폐함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망망대해 말고는 나갈 길이 없으니, 동선은 제한되어 있다. 섬에서는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 뭔가 기적이 일어날 만한 일을 찾아서 헤매고 다닌다. 1954년 이후 완전히 사람의 발길이 끊긴 섬에서 그들의 흔적을 느끼며 위안을 느끼기도 한다. 기계에서 짜낸 동물들의 기름으로 파리는 ‘빛의 도시’로 불렸다는데. 온갖 폐기물을 산더미처럼 남기고. 지금 그런 것을 비난할 때가 아니다. 중요한 건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참된 모험을 하여 살아남았노라고 강연하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곧 허망함에 사로잡힌다. 이제 원하지 않아도 진짜 로빈슨 크루소 같은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인다. 펭귄 사냥을 시도한다. 기아 직전에 자책이란 있을 수 없다. 눈부신 오렌지색 반점이 있는 펭귄들의 머리가 얼마나 곱고 예쁜지 감탄하지만 그뿐이다. 물을 끓여 털을 뜯어내고 식량으로 비축해야 한다.


 시일이 지나면서 이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섬에서 겨울을 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체념으로 바뀌어 강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월동준비에 돌입한다.

 

오로지 먹는 것만을 해결하면서 버텨야 할 상황이 된다면?

그들이 과연 이 섬을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인가.


 혼자 요트를 타고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는 저자의 생태 환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엿보이는 동물 개체들의 특성, 행태의 묘사는 마치 동물의 왕국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빠른지, 자연스러운지, 살고자 하는 욕망이 어떻게 광기로 변해 가는지 분노와 두려움이 사람을 어떻게 바뀌어 놓는지 일깨워 주는 작품이었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미약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인간. 풍요로운 삶을 위해 무자비한 포획으로 인해 황폐화된 자연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인간에게 복수를 하는 건 아닐까. ‘과거를 조작할 수 있는 자는 미래도 조작할 수 있다.’(P337)고. 인간은 양심을 저버리고 정상적으로 살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아직은 희망이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직접 겪어보기에는 상당히 두려운 이야기다. 극한 상황의 모험의 세계를 간접체험 하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더위를 시원하게 날릴 만큼, 오싹한 스릴러물 못지않다. 아니, 그 이상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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