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사이언스 - 프랑켄슈타인에서 AI까지, 과학과 대중문화의 매혹적 만남 서가명강 시리즈 2
홍성욱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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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서울대 학생들이 듣는 인기 강의 서가 명강시리즈 중 두 번째 책이다. 저자는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다양한 매체로 소통하는 과학기술학자다.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이라는 용어가 좀 생소하게 느껴졌다. STS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규명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사회가 과학기술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그 내용과 방향을 어떻게 바꾸는지 반대로 과학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한다는 것이다.

 

1부 대중문화와 과학의 크로스

2부 세상과 과학의 크로스

3부 인간과 과학의 크로스

4부 인문학과 과학의 크로스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을 통해 나타난 과학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다. 각 장의 주제를 보더라도 과학은 우리와 동떨어지지 않으며 일상의 문화 속 어디에나 스며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전이 된 프랑켄슈타인을 언급하면서 그동안의 과학자의 이미지가 미쳤거나 괴짜로 굳어지게 된 사례를 이야기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의 피조물을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그 피조물로 인해 곤란을 당하게 되는 이야기다. 새로운 지식을 발견한 대가로 고통을 당하는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라는 평을 받기도 했으며 차후 과학자의 이미지로 굳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수많은 작품이나 영화에 정형화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신의 영역에 도전한 인간이 자신의 피조물, 즉 지식을 얻은 후에 어떻게 사용 하였는가 등 인간의 책임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들고 있다.

 

 2부에서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변화되는 사회의 모습을 여러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결과 일어날 수 있는 변화를 보면 그다지 환영할 수만은 없는 것이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사회의 불평등을 야기하고 세상을 양극화 시킬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세상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아니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자질로 덕()을 내세운다. 반면 100년 후에 나온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는 과학기술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어서 흥미를 끌었다


 이렇게 유토피아를 향한 작품은 꾸준히 나오는데 1888년 미국에서 출간된 에드워드 벨라미의 뒤를 돌아보면서에 이르면 이런 시스템이야말로 유토피아가 아닐까 싶었다. 빈부가 없기 때문에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없고 범죄가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런 미래상을 이야기하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사람들의 핀잔 속에서 잠에서 깨어나며 소설은 끝난다는 이야기다. 이런 유토피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디스토피아적 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고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전체주의와 닮은 모습이라고 했다. 1984, 멋진 신세계에서 이야기하는 디스토피아를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하고, 지금껏 어떤 길을 밟아서 여기에 왔는지, 즉 우리의 과거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로써 자신이 누구인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속한 세상이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에 대한 통찰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의 풍성한 언어를 지키고 언어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3부에서는 과학의 혁명의 시대에 인공지능이나 로봇의 역할과 그에 따른 인간관계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크리스퍼(CRISPR)유전자 가위로 이해하면 되는데 유전자에서 원하는 부분을 잘라낼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병을 유발하는 특정 유전자를 잘라서 비활성화 하면 그 병의 진행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이런 기술이 발전하게 된 계기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연구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박테리아는 처음 공격한 바이러스의 DNA조각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똑같은 것이 공격하면 그 바이러스의 DNA조각을 잘라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기술적 방안을 고안해 냈다고 한다.

 

 사이보그 인간과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로 보여주는 미래의 모습은 좀 두렵기도 했다. 인간과 초지능의 중요한 차이를 말하는 부분에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인간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랑, 명예, 우정, 행복 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인간처럼 진화를 거친 것이 아니라 기계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사이보그의 고전이 된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예를 보면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살려주고 인간다운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으로 나온다. 4년으로 설정된 수명을 연장하고 싶어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목적 달성을 한 후에는 그냥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버려도 되는 것인가, 인간의 이기심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여러 영화 속의 과학과 만나면서 과학을 소재로 한 영화에 관심이 생겼다.

 

 마지막 4부는 인문학 속에 들어있는 과학의 이야기다. 전기, 전차, 활동사진 등이 들어오면서 작품에 많은 소재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무정, 경성 유람기, 술 권하는 사회등 여러 작품이 언급되고 있다. 처음엔 어두운 밤을 밝히는 신기한 것으로 묘사되다가 나중에는 개인과 사회에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는 생각이 나타나며 그렇지 않아도 힘든 식민지 일상의 불편함이 문학적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묘사된다. 보통 과학은 사실에 근거를 두면서 다소 차가운 느낌이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에도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에서는 노벨상 수상자를 연구한 이야기의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 과학자들 중에는 사진, 음악, 미술, 공예, 작가 등 거의 대부분이 한 가지 예술에 준 전문가적으로 깊게 몰입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창의적인 과학자일수록 예술을 병행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 주며 이는 과학이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활동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했다.

 

푸른 구슬이라는 지구의 모습을 담은 사진 <블루 마블>을 보면서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게 했다고 한다. 멀리 떨어져 보면 우주 속에 작은 점 같다는 지구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웅다웅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결합은 나를 둘러싼 조건들을 이해하고, 그런 조건들 속에서, 또 그런 조건들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적극적인 삶을 위해서 필수적인 일이다.’(P345)

 

 문학 작품과 영화 등 다양한 문화 속에 들어 있는 과학이야기를 읽으면서 과학은 결코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장마다 궁금한 내용에 대한 QA가 있는데 마지막에 나온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대중문화로 과학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주의할 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영화나 문학에 나오는 내용을 사실이냐 아니냐에 가치를 두는 것보다는 여기서 무엇을 전하려는 것인가, 그 메시지를 파악하며 고민하는 것이 훨씬 의미 있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의 변화가 두렵기도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과학의 연결점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자주 나오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필요한 몫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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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의 말 - 파리에서, 밥을 짓다 글을 지었다
목수정 지음 / 책밥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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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밥상은 유혹하길 거부하는 밥상이었다. 넘치지도 과시하지도 않으며, 흔들림 없이 단정한, 통깨를 뿌리거나 실고추를 얹는 것 같은 사소한 장식도 엄마는 질색하셨다. 그것은 장식도 속임수도 타협도 없이 언제나 본질로만 존재하고자 하셨던 엄마가 지은 세상이었다.

…… 엄마는 실험실의 과학자 같은 진지함으로 요리를 하셨다. …… 엄마는 그 고집스런 정직함을 차곡차곡 음식에 담아 3남매를 키우셨다. 그 어떤 타박도, 별스런 칭찬도 안하시고, 하셔야 할 모든 말씀을 음식에 새겨 우리에게 건네셨다. 그 신념과 정성으로 빚어진 음식들로 나는 자랐다.


외할머니의 밥상은 풍요의 식탁이었다. 단칸방에 사셨던 할머니의 부엌에선 언제나 들판에서 온 상냥한 풍요가 상을 채웠다. 들에서 캐 와 말린 나물들 4~5가지가 들기름 향을 풍기며 옹기종기 놓였고, 도토리를 따서 집에서 쑨 묵, 소쿠리 하나 가득 만들어서 손으로 집어먹던 쑥버무리, 깨강정, 식혜……. 할머니는 음식으로 축제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자연이 주는 것들로 손끝에서 풍요를 지으며 살아가는 할머니는 삶의 기쁨을 만들어주는 선물 같은 존재였고, 할머니를 통해 매일 선물 받는 복된 시간을 누렸다.’(서문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의 인권, 올바른 정치, 교육 등에 관한 다양한 매체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워낙 유명한 저자임에도 이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만큼 냉철하고 뚜렷한 주관을 가진 그녀가 밥상 이야기를 한다니 호기심이 생겼다. 파리지앵으로서 세련되고 분위기 있는 와인이라든가 서양요리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추억담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여서 금세 따뜻하게 젖어들었다. 음식으로 축제를 만들었다는 외할머니의 전설 같은 과거사는 안타깝고 잠시 먹먹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토록 굴곡진 삶을 살면서도 어떻게 홀로 6남매를 키우고 시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었을까. 자식들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면서 마음속의 응어리를 녹여낼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안달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포기했던 것일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씩씩하고 유쾌하게, 자식들을 걷어 먹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할머니를 추억하는 부분은 짠한 감동이었다. 또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어머니의 친구 분이 끓여 온 육개장을 처음 먹었던 기억은 훗날 인생의 중요한 아이템이 되는 이야기 등... 먹는 행위란 함께 했던 이들의 사랑을 온 몸과 마음에 아로새기는 일이구나 싶었다.

 

  밥 짓는 냄새가 제일 좋을 때는 몹시 배고플 때 일 것이다. 그때만큼 환상적인 냄새도 없으리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배고플 때 먹는 밥이고 남이 해주는 밥을 먹을 때가 아닐까. 한 끼 한 끼의 밥이 생명을 지키는 원천임에도 귀찮아질 때가 있다.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밥을 짓고, 식탁보를 깔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가끔 바느질을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길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기고, 김치를 담그는 그 모든 반복적 일들을 일컬어 우린 살림이라고 부른다. 그 살림과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는 남성들의 삶은 균형을 잃고 치우치기 쉽다. 그래서 그들은 도약하기도 쉽지만 추락에도 익숙하다. 세상 대부분의 거부도 그들이지만 대부분의 노숙자들도 그들인 이유다.‘(P86)


‘1차적인 인간의 노동 없이 세상은 결코 형성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 1차 노동이 나로부터 점점 멀어질 때 우린 괴물이 되어갈 거란 걸 직감한다.’(P87)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해야지 하다가도 너저분한 것이 눈에 보이면 그것을 제거하려고 달려들다 보면 끝이 없는 게 집안일이다. 누군가의 손길이 있어야 말끔하게 유지되고 평온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림이라는 행위로 반복되는 노동이 우리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준다고 했다. 이런 일련의 노동은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 내가 머무는 공간에 대한 사랑이 아니면. 그래서 여성은 그것과 멀어진 남성에 비해 더 오래 산다는 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살림에서 멀어진 남성들의 삶은 균형을 잃고 치우치기 쉬워서 도약도 쉽지만 추락에도 익숙한, 거부(巨富)도 노숙자도 남자가 많은 이유라고 했다. 이런 거라면 앞으로 나는 더욱 기쁜 마음으로 살림을 할 것이며 상대방에게도 기회를 주어 참여하게 하는 현명한 살림을 모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유쾌한 모색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밥을 먹고 사는 남녀노소라면 모두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365일 집에서 먹는 레알’ ‘삼식이와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조화롭게 분담을 하고 그것을 당당하게 누리는 분위기가 참 멋져보였다. ‘삼식이라는 이 단어가 나온 배경도 알고 보면, 어느 한쪽에 치우친 희생이 담긴 말이라는 것이다. 365일을 삼식이와 산다는 것이 보통사람들에겐 만만치 않은 일이다. 어찌 보면 슬픈 일이기도 하고. 요즘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나가지 못하고 주말에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먹고 치우고 나면 또 끼니가 돌아온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굴러가는 가족은 병들고 말 것이며, 가사노동이야말로 인류가 가장 치열하게 싸워왔던 계급투쟁이라고 했다. ‘서로를 베지 않게 두텁고도 보드라운 헝겊으로 둘둘 만 협박의 언어와 함께 적절한 타협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맞다. 그런 걸 조율하는 것이 왠지 유치한 것 같아서 내가 하고 말지 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경단녀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는 이 단어가 언론과 공권력에 의해서 계속 사용되는 있는 저의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여성들을 차별하는 이 단어야말로 하루빨리 없어져야 하는 말이라고. 이 경우도 출산과 육아를 위해 홀로 독박을 쓰게 되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닌가. ‘경단녀는 있는데 왜 경단남은 없는 것인지, 부모가 평등하게 육아의 의무를 나눠질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100조나 퍼부었다는 저출산 대책이 육아를 어떻게 도왔는지 물어야 한다고 설파한다.


   밥상 이야기는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밥상 이야기를 넘어 지인들과 함께 토론했던 밥상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음식 레시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시절 대표적인 채식주의자였으며 동물 애호가이기도 했던 그를 총애하던 프랑수아 1세는 다빈치가 만들어 대접하던 스파게티를 즐겨했다고 한다. 미지의 대상을 향한 호기심이 대상을 세심하게 살피게 되고, 이해하기 위해 그림으로 옮기고 건강한 식단을 위한 레시피로 발전하고 그것은 걸작<최후의 만찬>에도 리얼하게 묘사되었단다. 그림을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역시 다재다능한 천재 예술가는 그냥 태어나는 게 아니었다. 호기심은 주변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이렇게 한국과 파리를 넘나들며 과거의 밥상 이야기, 현재 우리 식탁은 안전한지 미래의 밥상은 어떠해야 하는지 사회에 대한 냉철하고 따뜻한 시선을 담아 풀어나간다. 간편식의 으뜸인 시리얼이 사람을 어떻게 바뀌게 하는지 위험성을 경고하는 부분은 놀라웠다. 시리얼에 들어있는 곡물들이 글리포세이트라는 제초제에 적셔져 키워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2016년 마리-모니크 로뱅이 자폐 진단을 받은 자신의 아들을 위해 원인을 추적하다가 알아냈다고 한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내 몸이 결정된다는 말이 있었다. 내가 먹는 것이 를 이룬다는 말이다. 먹거리가 넘치는 풍요 속에서도 인간은 온갖 병으로 죽어가는 세상이다. 전염병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인간의 생명을 앗아 갔는지 역사 속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글로벌 세상은 초유의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쟁을 치루는 중이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로지 고속 성장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모든 것을 장악하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고. 이제는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을 자세히 살펴 볼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것은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최대한 부딪히지 않고 이동하는 것”(P246. 조르주 페렉(프랑스 작가, 1936~1982)


  ‘최대한 부딪히지 않고 이동하는 것’, 이라는 말에 왠지 아슬아슬한 분위기도 느껴진다. 이따금 밥 짓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때가 종종 있었다. 저자는 이것에서 벗어나려면 먹을 사람이 없어져야 끝나는 일이라고 했다. 거의 모든 노동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인데 밥을 짓는 일은 끝이 없다고. 먹을 사람이 없어져야 끝나는 거라고.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 웃음으로 공감했다. 살아있기 때문에 모든 고통이 있는 거라고 하듯이 밥 짓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면 삶이란 세상의 남자와 여자가 서로 부딪히지 않고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가족의 따뜻한 밥상 이야기로 시작하여 이제는 하나뿐인 지구에 남긴 멍들을 보듬을 때라는 묵직한 과제를 제시하며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YES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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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철학이야기 - 2020 세종도서 교양부문
강성률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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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에 읽었던 철학 관련 책과 달리 표지부터 흥미를 끌었다. 흔히 철학은 어렵다는 고정관념과 함께 우리에게 비춰졌던 철학자들의 이미지, 사상과 명제를 설명하는 식의 딱딱한 철학 관련 책도 철학과 친해지는 기회를 방해한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야기의 내용을 상기시켜주는 그림이 삽입되어 있고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주석을 해당 페이지에 실어 놓아서 참고하기에도 편했다. 보통 주석이 맨 끝에 놓이는 것을 생각할 때 앞뒤로 왔다 갔다 하다보면 독서의 흐름이 끊기기도 하는 등 맥을 놓치기도 하는데 이런 점을 보완해 주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저자는 현재 1988년부터 광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교내외에서도 다양한 역할과 학회활동을 펼쳐오면서 칸트철학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2500년간의 고독과 자유,청소년을 위한 동양철학사,칸트, 근세 철학을 완성하다, 장편소설땅콩집 이야기7080등 다수 있다. 거꾸로 읽는 철학 이야기는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철학과 근엄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철학자들의 이미지를 거꾸로뒤집어 보고 철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서 다른 사고로 바라보는 지평을 열기 위해서 썼다고 한다. 저자의 말대로 성인을 대상으로 집필되었지만, 삽입된 그림으로 흥미와 호기심을 갖게 하고 핵심 단어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어서 청소년 이상이라면 무난히 소화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동서양의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들어있는데, 우리의 신라, 조선시대를 살았던 유명한 선비들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이야기의 구성은 1. 명언에 대한 뒷담화(?) 2. 황당한 궤변 시리즈 3. 출생의 비밀 4.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 5. 모범생과 문제아 6. 금수저와 흙수저 여섯 개의 장으로 되어있다. 철학자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상기시켜주는 것이 명언이 아닐까 싶다. 또한 황당하지만 들어보면 거기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그럴듯한 궤변, 출생하고 성장하기까지의 배경은 철학자이기 전에 한 인간이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그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첩경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저명한 철학자의 이야기라면 더욱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많이 알려진 노자나 공자, 맹자 등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서양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그들의 내밀한 성장 배경을 알게 되어서 흥미로웠다. 이 덕분에 고정관념으로 자리한 그들의 철학 사상에 대해 재고해 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1장 명언에 대한 뒷담화(?)

  수없이 인용되는 너 자신을 알라”, “악법도 법이다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델포이 신전 현관 기둥에 쓰여 있는 말이라고 한다. ‘gnoth seauton’, 원래는 너를 알다라고 하는 평어체인데 나중에 너를 알라라는 명령체로 바뀌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40세 무렵에 그의 친구이며 제자였던 카이레폰이 델포이 신전에 가서 아폴로 신에게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는데,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도 현명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신탁을 듣는다. 정작 소크라테스는 그 새겨진 글을 외고 다니며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 그 자체가 철학의 시작이라는 것, 그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존재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 악법도 법이다는 말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해석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당시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정치적인 면과 상당 부분 맞물려 있던 것을 생각할 때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맺어져 이들 도시국가들이 30년 동안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스파르타가 승리하게 된다. 아테네에는 스파르타식의 귀족정치와 과두정치가 세워졌는데 소크라테스는 바로 이 귀족주의적 정파에 이념적 무기를 제공하고 있었던 바, 또 한 차례의 정부 전복에 의해 민주주의자들이 권좌에 올라서게 됨으로써 누명을 쓰고 고소를 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죽마고우였던 크리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탈출을 권했지만 자신은 아테네 시민으로서 특권과 자유를 누려왔는데 그 법이 자신에게 불리해졌다고 해서 그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비겁하지 않은가, 하며 단호히 거절했다는 데서 악법도 법이다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라고 한다.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철학자의 명언이 재해석되는 느낌이다. 이밖에도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 정신적인 사랑을 고귀하게 표현하는 플라토닉 러브는 플라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재미있는 뒷담화도 들려준다.

 

2. 황당한 궤변 시리즈

  많이 들어본 유명한 궤변 중의 하나가 황희 정승의 두 계집종의 다툼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누구를 콕 찍어서 잘못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며 양쪽이 다 옳다고 했던 이야기를 그저 재미있게만 느꼈었다. 3자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유연하고 관대한 판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억울한 쪽은 있기 마련이다. 결국 황희 정승의 양시론(兩是論)’적 발언은 어느 한쪽에 자신이 부정적으로 남지 않으려는 처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궤변이 한 사람의 금전상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면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까. ‘궤변(詭辯)’이란 말 자체가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이리저리 따져서 말하는 모습을 담은 글자라고 한다. 프로타고라스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며 인간의 감각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감각에 의존하는 모든 지식이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진리는 객관적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하는 우리들 주관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고 더 나아가 소피스트 고르기아스에 이르면 유용한 변론이란 객관적 진리를 논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누구나 그렇게 믿도록 설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역시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언어유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허무맹랑한 말솜씨로 장난을 치는 느낌 또한 떨칠 수 없지만 궤변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3.출생의 비밀

  이 장에서는 키르케고르의 이야기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집에 태어났지만 그의 어머니 안네는 그 집의 하녀였고 전처가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버지는 안네를 강간하여 임신케 하였고 당시 교리에 금지되어 있는 재혼을 감행했다는 사실. 원래 양심적이고 종교적이었던 그 아버지는 이 사실을 두고 평생 괴로워했다고 하는데. 그런 인물이라면 좀 더 나은 방법을 썼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이 사실을 키르케고르는 스물두 살에 알게 되는데 그에게는 대지진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었다. 어려서부터 신체도 허약했고 열일곱 살에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신학과에 입학하지만 문학과 철학 쪽으로 관심이 기울어지고 방탕한 생활이 이어진다. 상당한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그런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23세에는 자살미수 소동까지 벌어진다. 그의 정신적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부분이다. 부침 있는 그의 삶은 18551020순간10호를 준비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마흔 두 살의 짧은 생을 마치게 된다. 또 병실에 누워있을 때 불화로 끊고 살았던 목사 형이 찾아왔는데 끝내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종합해 보면 자녀를 둔 부모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자녀에게 있어 부모의 위치란 얼마나 중요한지, 인간이란 강한 것 같으면서도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런 면을 보면 강하고 근엄할 것 같은 철학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인간이란 누구나 똑같은 존재라는 측은지심이 느껴진다.

 

4.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

  여기서는 아버지의 선한 영향력과 나쁜 영향력, 어머니의 선한 영향력과 부재에 따른 영향력을 이야기한다. 증자와 파스칼, , 키르케고르, 사르트르 마하비라, 맹자, 구라마습, 이이, 아우구스티누스 등 많은 철학자가 여기에 속한다. 성장하는 배경을 다루는 데서는 몇 명의 철학자는 겹치는 부분도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의 아버지는 해군 장교였고 어머니는 슈바이처의 사촌으로 자존심이 무척 강한 여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르트르가 두 살 때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얻은 후유증으로 죽어서 아버지의 존재를 처음부터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아버지 없는 어린 시절이 오히려 축복이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좋은 아버지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나의 아버지가 오래 살았다면, 그는 나의 머리 위해 군림하며 나를 억압하고 있었으리라나는 내 위의 어떤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P115)

 

  어째서 그랬을까. 아마도 대단한 독서가였던 외할아버지의 사랑과 문학적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또 하나는 어머니가 재혼하게 되어 의붓아버지 밑에서 살아야 했는데 그의 생애 중 가장 불행한 3~4이었다고 한다. 특별히 구박이나 미움을 받지는 않았지만 눈치를 보게 되는 분위기와 환경이 자유를 향한 욕구가 더 커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버지라는 존재를 모르다가 의붓아버지가 나타나자 낯설게 느껴지고 불편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아버지 없는 자유를 누구보다 더 누렸을 법하지만, 유난히 자유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는 걸 보면 감수성 있고 예민했던 그의 정신을 오래도록 지배했던 힘든 부분이 아니었을까 짐작케 했다.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개성과 특성이 존재하는 걸 보면 이해 못할 부분도 아닌 것 같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어머니의 선한 영향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야기다. 선한 영향력은커녕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66년 동안의 삶이 방황의 연속이었던 루소의 삶도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교육론을 이야기한 그의 작품 에밀을 한동안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읽은 적이 있었다.에밀에밀이란 이름의 고아가 태어나서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25년 동안 현명한 교사의 이상적인 지도를 받는 과정을 그렸다고 한다. 루소의 성장 배경을 전혀 모르고 읽었다. 보통 고전이라면 작가의 유명세와 긍정적인 끌림으로 읽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그래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적으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이 거꾸로읽는 방법을 착안해 낸 저자의 책이 더욱 유용하게 다가왔다.

 

  그는 다섯 명의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버린다.(나중에 다른 책에서도 접하게 되었다.) 16세 때는 집사로 일하면서 그 집의 남작부인과 연인사이로 발전하거나 매춘부와 난잡스런 관계를 맺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하며 혼란스런 삶을 살았다. 가난한 시계공 이었던 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것과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출산 후유증으로 죽은 어머니에 대해 많은 자책감을 느꼈다고 하는데 그러한 마음이 역설적으로 반영되어 에밀이란 작품을 쓴 것은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좋은 교육을 받고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으며 자랐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정신적 반항으로 아이들을 고아원에 버리는 기행을 벌이고 정상적인 사랑을 통해 가정생활을 영위하지 못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을 논하면서 남의 잘못을 보면 그러지 말아야지 뉘우치며, 배워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나약한 인간의 삶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5.모범생과 문제아

  모범생으로 간주할 수 있는 철학자로는 공자, 주자, 헤겔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문제아였던 철학자들에게 관심이 쏠린다. 문제아였음에도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게 되었는가가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 안셀무스, 마르크스, 니체, 야스퍼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 중 야스퍼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하이데거와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철학자로 불리는 야스퍼스는 독일의 작은 도시 올덴부르크에서 부유하고 자애로운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는데 문제는 어린 시절부터 몸이 너무 약하여 부모의 병간호를 받아야 했다는 점이다. 심한 천식에 시달리고 피부병을 앓기도 했으며 모범이 될 만한 영재는 결코 아니었다고 한다. 또 김나지움 시절에는, 신분이나 계급 등의 외적인 것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을 용인할 수 없으며, 음주 등으로 소란을 피우는 것 역시 저속하며, 거창한 의식이 싫다는 이유로 어느 조직에도 가담하지 않고 고립을 자처했기에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어떤 조직에 속하거나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에 어려움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아마도 자신의 병약함이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에 가장 커다란 불편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그런 그에게 김나지움 졸업은 해방감을 느끼게 했는데, 건강상의 문제는 항상 따라다녀서 열여덟 살에는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진단을 받기도 한다. 그는 동기생인 에른스트 마이어의 누이를 만나 삶의 의욕을 느끼면서 바뀌어간다. 결혼을 하고 건강을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평생 동안 실천하면서 여든 여섯 살의 장수를 누렸다고 한다. 당시의 의학 수준과 다른 철학자들의 짧은 삶을 비교해 볼 때 대단한 일이다.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노력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성취로 보인다.

 

6.금수저와 흙수저

  왕족 출신의 철학자로 의천, 석가모니, 구마라습, 아우렐리우스를 명문귀족 출신으로 플라톤, 베이컨, 러셀, 완적을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아리스토텔레스, 포이어바흐, 비트겐스타인 등, 선비나 하급관리 집안 출신, 가난한 집안 출신부터 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던 사상, 철학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조선 정조의 문신이자 실학자, 저술가, 시인, 철학자, 과학자, 공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많은 사람들이 흠모해 마지않는 위인 중의 하나이다. 유배지에서 가족의 안녕을 걱정했으며 나라의 위안을 걱정하며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누님의 남편인 이승훈과 학문적으로 명성이 높은 이가환을 만났는데 이승훈은 조선에서 최초로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인물이고, 이가환은 이승훈의 외삼촌이자 성호 이익의 종손이었다. 정약용은 이들을 통해 성호의 학문을 접하고 실학사상의 토대를 다졌다고 한다.

 

  열성적인 가톨릭 신자였지만 신해박해 당시 조상의 제사를 허락하지 않는 교황의 교서가 내려지자, 대부분의 양반 신자들과 함께 배교했다고 한다. 또한 교우를 고발하고 도망간 신자를 붙잡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며 수사에 협조했다고 한다. 매부 이승훈은 천 사람을 죽여도 정약용을 죽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자신이 정약용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자백할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이 일에 대해 참회했다는 내용도 있는 걸 보면 없는 일은 아닌가 보다. 그동안 알고 있던 실학자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 맞아? 하고 반문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아무리 고고한 철학자들도 한 가지 흠결도 없이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고 보면 남보다는 내가 살아야 했을 것이고 보살펴야 할 가족을 생각했을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의 감추고 싶었던 비밀 이야기를 알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왠지 전보다 인간적인 면이 느껴져서 더 친숙해진 느낌도 들었다. 위대한 사상과 명제를 낸 철학자들도 알고 보면 우리와 똑같이 희로애락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 그 공감대만으로도 충분했다. 환경은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좋은 환경을 떨쳐내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짊어진 현인들도 있었고 역경을 이겨내고 훌륭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도 있었다. 어쨌든 모두 주어진 상황에서 치열하게 살아서 자신들의 언어를 세상에 내놓은 것은 분명하다. ‘거꾸로보는 방법으로 동서양의 여러 철학자의 이야기를 제공해 준 저자 덕분에 철학은 어렵다는 편견과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 알고 보면 재미있고 우리의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높여줄 수 있는 철학에 많은 독자들이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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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 지중해의 태양 아래에서 만난 영원한 이방인 클래식 클라우드 16
최수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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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작가나 예술가들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편안하게 앉아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잘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했던 마음이 환해지기도 하고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은 어떤 시선과 관점으로 읽으면 되겠구나 생각을 하면서 오롯이 그 작가와 대화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 때문이다. 카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양복 차림에 말끔한 스타일의 짧은 머리, 담배를 물고 있는 시니컬한 표정이다. 왠지 상냥할 것 같지는 않은 지식인의 모습으로 각인된다. 카뮈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오롯이 담은 이 책을 읽고 그 많은 역경을 이겨냈구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고 그 모습도 나름 멋이 느껴졌다. 사람이 살면서 그가 속해있는 환경이나 생각 등 여러 요소가 그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카뮈의 작품 페스트를 고1때 읽었는데 오래되어 가물가물하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헤쳐 나가려는 긍정적인 성격의 주인공이 있었기 때문일까. 요즘 신종 코로나 전염 확대로 인해 시끄러운데 처음으로 이 사실을 알리고 자신은 환자에게 전염되어 세상을 떠났다는 중국인 의사가 떠올라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알렸다고 당국에 처벌을 받기도 했다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고 애쓰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것도 카뮈가 말하고자했던 세상의 부조리의 단면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삶 자체가 반항이며 부조리에 걸려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더 이상 부조리로부터 발을 빼지 않는 것이다.”(P142)작가수첩2는 카뮈의 말이 계속 뇌리에 남는다.

 

  이 책의 저자 최수철은 1981조선일보신춘 문예에 맹점이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며, 그동안 이상문학상, 윤동주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다수 수상하였고, 고래 뱃속에서등 다수의 장편소설과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한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는 다소 평범하게 시작되는 것 같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이 저자도 처음엔 카뮈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이어 이방인』『페스트』『전락을 읽으면서 강한 인상으로 남았고 그 다음에는 저자가 소설쓰기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무렵 자신의 장편소설 페스트를 쓰면서 카뮈의페스트를 다시 읽기를 통해서 카뮈의 삶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풍부한 사진 자료와 작품 읽기를 통해 함께 하는 여행처럼 실감나고 재미있게 읽혀서 좋았다.

 

  카뮈는 프랑스 이민자 3세대로 알제리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8개월에 1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 카뮈의 어머니는 가정부 일을 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야말로 가난과 온갖 역경과 싸워야 하는 삶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장기를 보냈던 알제리의 벨쿠르,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발견했던 카빌리, 청년시절에 자주 들러 명상에 잠겼던 티파사, 카뮈의 피난처이자 페스트의 배경지가 되는 오랑과 예술과 정치 활동의 정점을 찍었던 프랑스 파리, 평생 카뮈를 힘들게 했던 폐병으로 요양을 하면서 보냈던 파늘리에, 연극 축제가 열렸던 앙제, 말년의 거처가 있었던 루르마랭 까지 돌아보는 여정이다. 이 여정은 카뮈의 여러 작품 속의 주인공들을 불러낸다. 작품마다 카뮈의 분신과 함께 호흡하는 듯 더욱 실감나는 여행으로 만들어주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 주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르침을 주었던 루이 제르맹 선생을 만날 수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족들 대부분이 문맹이었고, 어머니는 선천적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데가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말을 더듬고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던 스페인 출신 여성이었다. 집 안에 책이나 잡지 한 권도 없는 문화적 진공 상태에서 살았던 카뮈가 파리의 지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를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 스승의 사랑이 기초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의무교육만 마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처지였던 카뮈에게 있어 커다란 삶의 은총이었다. 학교는 책과 더불어 지적 욕구를 마음껏 채울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었지만 집에 오면 낯선 세계처럼 이방인이 되었고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안 계셔서 어려운 집안 환경이 부끄럽고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용납되지 않는 모순 속에서 반전이 일어나는데...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위로 내리쬐던 그 아름다운 햇볕 덕분에 원한이라는 감정을 품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햇볕 때문에 살인을 했다는 주인공 뫼르소가 떠올랐다. 한 번 더 읽는다면 카뮈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좀 더 명쾌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빈곤 속에서 살았지만 즐거움을 만끽할 줄도 알았다니 아마도 선천적인 활기를 갖고 있었던 듯하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작품인데 작가 수첩에 대한 언급이 꽤 많이 나온다. 카뮈가 19355월부터 195312월까지 일곱 권의 공책에 쓴 것인데, 이것을 모두 모아 출간하면서 그 제목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작가 수첩은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품 구상도 아니지만 그 두 가지가 합쳐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걸 나도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뮈는 자기의 삶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걸 싫어했는데 이것은 나중에는 조금 경향이 바뀌기도 했다.이방인을 두 번 읽었지만 같은 제목의 시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바로 보들레르의 시 <이방인>이라고 하는데 카뮈는 스무 살 무렵부터 이 시를 암송했다고 한다.

 

 

수수께끼 같은 친구여, 말해보게.

너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아버지, 어머니, 누이, 형제?

나에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소

친구들은?

당신은 이날까지도 내가 그 의미조차 모르는 말을 하는 구려.

조국은?

그게 어느 위도 아래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오.

미인은?

불멸의 여신이라면 기꺼이 사랑하겠지.

황금은 어떤가?

당신이 신을 싫어하듯, 나는 황금을 싫어하오.

그렇군! 그렇다면 너는 도대체 무엇을 사랑하는가, 별난 이방인이여?

나는 구름을 사랑하오……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 신

비로운 구름을!

 

-샤를 보들레르, 이방인-

 

 

  마치 카뮈를 위해 지은 시 같지 않은가!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벙어리처럼 살았던 어머니의 존재, 프랑스와 알제리 가운데서 정체성의 고민이 끊이지 않았던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야했던 카뮈의 고독감,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아내의 배신 등 삶 자체가 온통 부조리였던 카뮈를 온전히 떠올릴 수 있는 시여서 묘한 신비감이 느껴졌다.이방인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에도 파리 지식인들 사이에서의 냉담한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 후유증으로 밀실 공포증을 겪기도 한다.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비판으로 사르트르와의 결별 등 파리의 좌파 지식인 사회에서 고립된다. 이런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연극 활동에 주력하며, 지식인들 사이에서보다는 연극을 하는 사람들과 더 진한 동지애를 느꼈으며 직접 몸으로 뛰면서 축구를 할 때 살아있는 자신을 느꼈다. 카뮈는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윤리도 축구 경기장과 연극무대에서 배운 것이라고 할 만큼 애정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시대가 급변하여 카뮈의 정치적 신념이 옳았음이 인정되었고 짧은 생을 치열하게 살며 실천한 지식인으로 추앙받기에 이른다.

 

 

루르마랭에 있는 카뮈의 집. 지금은 그의 딸 카트린이 살고 있다고 한다.

 

 

 

                                  루르마랭에 있는 카뮈 묘석.

 

 

  자신의 남은 삶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삶을 미완성인 채로 놓아두고 떠나지는 않을 텐데. 1960년 미셸 갈리마르의 차를 타고 루르마랭에서 파리로 가던 중 가로수를 들이받는 사고로 마흔 일곱의 짧은 삶을 마치게 된다. 그때 튕겨 나간 가방 속에서 최초의 인간미완성 작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가난과 폐병, 두 나라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독감, 냉대를 극복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려 했던 그 작품은 미완성으로 남는다. 좀 더 오래 살아남아서 온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우리도 또 하나의 감동적인 메시지를 듣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이다. 카뮈의 딸 카트린의 노력으로 최초의 인간34년 만에 출간될 수 있어서. 인생이란 언제나 연습이 없고 미완성으로 끝난다. 작품의 뒷이야기는 살아남은 우리가 잘 살아냄으로써 찾아야하는 몫이 아닐까. 아직 읽지 못한 카뮈의 많은 작품을 만날 생각을 하니 기대감으로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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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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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어클럽 이벤트에서 이 책을 접했을 때 두근두근 설렜다. 이름만 봐도 울렁거리는 버지니아 울프부터 프리다 칼로까지 지난 400년간 이름을 알린 소설가, 안무가, 화가, 영화감독 등 131명의 예술가들의 은밀한 일상의 루틴을 소개하는 이야기라고 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살아가는 모습은 모두 다르다. 똑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성과를 내면서 성공을 이루어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전이나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디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 답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위대한 작가와 예술인들은 영원한 우리들의 우상이 아닌가. 우리는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감추어진 노력은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단조로운 일상의 루틴을 따랐던 사람도 있었고, 불규칙하지만 영감을 받아 폭풍처럼 일을 했던 이들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아침을 커피 한 잔으로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흥미로웠다.

 

  작가나 에디터,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의 하루에 관심이 많았던 메이슨 커리는 2013년에 데일리 루틴이라는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어 그동안 모은 결과물을 토대로 리추얼을 출간했다. 하지만 그 책에 소개한 161명 중 여성은 단 27명뿐인 성비 불균형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기울인 결과 예술하는 습관이 탄생했다 한다.

작가는 물론이고 화가, 작곡가, 저널리스트, 시인, 복식 디자이너, 사회운동가, 극작가, 사회학자, 싱어송라이터 등 정말 다양한 일에서 성공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한마디로 말하면 거저 성공을 거머쥔 경우는 없었다. 좋은 배경의 집안에서 성공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그들의 열정과 땀으로 성취해낸 삶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작가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쏠렸다.

 

  첫째 장의 쓰는 사람들의 집필 습관에서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을 만나게 된다. 올콧의 글쓰기가 얼마나 맹렬했는지 알게 되었다. 창의적 에너지가 쏟아질 때는 식사도 건너뛰고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쓸 정도여서 오른 손에 쥐가 나서 왼손으로 쓰는 법을 익혀야 했다고 한다. 작품 속 주인공 조에게 글쓰기용 모자가 있었다면 올콧에게는 기분 베개가 가족과의 소통을 연결해주는 도구였다. 인기 있는 아동서의 수익성을 바라는 편집자와 아버지를 즐겁게 해 주려고 썼던 작품이 순식간에 돌풍을 불러일으켰다니 놀라웠다.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오랜 시간 무명 시절을 버텨야 했으니 독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고 돈이 잘 들어왔기 때문에 그 일을 했다는. 그 덕분에 전업 작가가 되었지만 야망은 도리어 사그라졌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작품이지만 정작 작가 자신은 영감을 느끼지 못했던 작품이라니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엄격하게 루틴을 지키는 작가도 있었다.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에게 쓰기 시작한 편지로 첫 소설 영혼의 집을 출간한 이사벨 아옌데의 루틴은 얼마나 황당하고 재미있었는지.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는 등 차려입고글을 쓴다는 것이다. 잠옷을 입은 채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면을 자주 들어와서 인지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아옌데의 경우는 외관을 갖춤으로써 글쓰기에 필요한 정신을 무장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개성이 남다른 이들의 색다른 루틴을 만나는 것도 신선한 기쁨을 주었다.

 

  좋은 날이든 나쁜 날이든 언제나 쓰는 버지니아 울프가 있는가 하면 습관적 삶은 따분하다는 프랑수아즈 사강도 있었다. 겨우 열여덟 살에슬픔이여 안녕으로 놀라운 데뷔를 한 그녀에게 우리는 천재 작가라는 칭호를 아끼지 않는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것들을 겪으며 살아가는 습관적 삶에 빠지고 싶지 않아요. 전 항상 이사를 다녀요. 광적일 정도죠. 일상생활의 물질적 문제들은 따분하기 그지없어요.”(321)

 

그 작품을 아무런 준비 없이 하루에 두세 시간씩 써서 두세 달 만에 그 작품을 끝냈다고 한다. 하루에 쓸 분량을 정해놓고 규칙을 지키는 이들도 있지만 사강의 경우는 몰입을 활용해서 작업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방법이든 두 경우 모두 그것을 해 내고야 말겠다는 열정과 신념이 공통분모였던 것이다.

 

정신이 녹슬기 시작하면 대책 없이 심각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글을 쓰는 게 중요한 것이다. 더없이 한탄스러운 허튼 소리를 쓸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매일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한두 쪽의 글이 나온다. 그러므로 계속 글을 써야 한다. 그것이 레이스 드기를 제외한 여성의 유일한 희망이다.(P196)

 

  20세기 모더니즘 영문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동성애를 주제로 한 대표작나이트우드를 쓴 주나 반스(Djuna Barnes 1892-1982)의 말이다. 매일 써야 한다는 글쓰기의 중요성에 공감이 간다. 보통 사람인 우리가 얼마나 영감을 받을 일이 있을까 생각하면 기분이 좋든 나쁘든 매일 쓰는 습관이야말로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시키는 요소라고 생각되었다.

 

화장실, , 제트기, 헛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는 기차나 파리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기차에서도 글을 썼어요. 침대에 누워서, 혹은 병원의 기계장치에 기대어 글을 썼고, 호텔과 지하창고, 모텔, 자동차 안에서도 글을 썼죠. 건강하든 아프든, 행복하든 절망적이든 상관하지 않고 항상 글을 썼어요.”(P296)

 

  스물한 살 때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 매일 아침 9시에 일어나 하루 천 단어를 목표로 글을 썼다는 에드나 페버의 이야기다. 그녀는 일반근로자는 주 5일을 일하지만 작가는 일주일 내내 일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매일의 힘이 소설 12권과 단편소설집 12, 연극 각본 9, 자서전 2권을 내면서 50년의 집필 경력을 이루었던 것이다. 작가를 부러워하면서도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둥 글을 쓰는 분위기 조성이 안 된다는 핑계의 무덤 속으로 파고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어떤 환경이든 언제든 하고자 하는 열정만 있다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에드나 페버의 성취로 배울 수 있다.

 

우리의 일치된 존재감을 보여주는 영웅적인 시기였어요. 작업 환경이 열악했지만 우리는 아주 행복했어요. 우리는 하루하루를 그 실험실에서 보냈죠. 그 허름한 창고에는 깊은 평온이 감돌았어요. 우리는 때때로 몇몇 실험을 지켜볼 때 현재와 미래의 작업에 이야기하며 왔다 갔다 했죠. 추위가 느껴지면 난로 근처에 놓아둔 뜨거운 차 한 잔으로 추위를 달랬어요.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한 가지에 사로잡혀 지냈죠.”(P411)

 

  마리 퀴리가 남편과 함께 방사능 연구를 하여 최초의 방사성 원소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다. 자신의 일에 몰입하는 행복은 성취로 이어지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도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신념으로 버텨내며 성취해 낸 이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쉽게 미루고 포기하곤 했던 것이 떠올라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여성들의 이야기라서 더욱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집안일은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육아를 하며 그 많은 일들을 해냈는지, 위기는 어떻게 극복해나갔는지 궁금한 마음을 안고 읽어나갔다. 예술을 위해서 평범한 삶과 결혼을 거부한 이사도라 덩컨을 비롯한 몇몇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설거지를 끝내고 나서야 작업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화가 캐럴리 슈니먼이 있었고,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아침을 제일 힘든 일로 시작했던 줄리아 워드 하우 같은 작가도 있었다. 그녀는 남편 몰래, 남편의 허락 없이 시계꽃을 출간하여 남편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당시 여성의 사회 참여가 어려웠던 상황을 상기할 때, 주변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성취 해낸 열정과 도전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또 일요일도 아까워하며 일과 치열하게 연애를 한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일 중독자였던 코코 샤넬 이야기 등 잘 알지 못했던 많은 예술인의 루틴을 읽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졌다. 여성에게 있어 일상의 삶과 자신의 일을 균형 있게 양립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충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지만, 무엇에 우선하느냐에 따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일상 루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루틴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전에 비해서 얼마나 성장했는가. 보완할 점은 없는가, 등등... TV를 끊은 지 수 년이 되었는데도 나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다독하는 편도 아니고 한 달에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어려울 만큼 시간에 쫓기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잠은 일곱 시간을 자야 하는 것을 고정관념으로 갖고 있는 나... 그래서 다짐했다. 나도 좀 아침형인간이 되어보자고. 어려운 조건하에서도 훌륭한 업적을 이루었거나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시간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 똑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마법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일까. 131인의 다양한 예술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마법 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그것을 성취하고 싶다는 열정과 신념만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위대한 작가와 예술가들의 루틴을 따라한다고 해서 당장 삶의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활 습관을 점검하고 재고하면서 동기부여를 갖게 되면 이전보다 성장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 나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로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밤에는 그런 의욕으로 가득하지만 아침이 되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약한 멘탈을 가졌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매일은 힘들겠지만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강한 의욕을 느꼈다. 꼭 예술가를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삶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이들 131인의 루틴 이야기가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나태함이 내 안에 파고들 때마다 자주 펼쳐 보게 될 책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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