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평전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32
도가와 신스케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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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쓴 작품에는 자신의 삶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소세키의 작품 중에서 한눈팔기가 가장 자전적인 소설이다. 이 평전에서는 풍부한 사진 자료가 들어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작품을 읽어나갈 때는 상상하면서 읽는 것에 비하면 평전은 궁금했던 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인 것 같다. 본가를 떠나 양자로 살아야 했던 불안정한 성장 과정부터 만년의 소세키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다.

 

 소세키의 본명은 긴노스케다. 본가에서는 불우했지만 교우관계에서는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났다. 활발한 성격이었지만 도쿄대 예비과정(나중에 제일고등중학교) 시절부터 병치레가 잦아서 학업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입학 후 2년 후에는 복막염으로 학년말 시험을 치르지 못해서 낙제를 하게 된다. 추가 시험을 봤다면 진학할 수도 있었는데 친구의 충고를 듣지 않고 스스로 낙제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여 수학도 매우 탁월하게성과를 낸다. 그의 강직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소세키는 자신의 진로를 건축가 그것도 미술적인건축가가 되기를 원했는데 낙제 후에 동급생이 된 요네야마 야스사부로 라는 엄청난 수재가 문학을 전공하도록 권유해서 그 의견에 따랐다고 한다. 그 친구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전해지는 작품을 만날 수도 없었겠지.

 

 그런데 그 요네야마는 긴노스케의 표현에 의하면 타고난 성품이 활달했으며 독서와 참선에 대해 논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좋아하는 것이 업었던인물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장티푸스로 요절한다.

 

 그 무렵 본가와 양가 사이에서 힘들었던 긴노스케는 자립을 하고 싶었던 듯하다. 하숙을 하거나 사설학원 강사 생활을 하면서 학원 기숙사에서 지내기도 했는데 그런 상황에 마사오카 시키가 등장한다. 소세키(漱石)라는 아호는 시키에게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때부터 소세키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둘은 라쿠고(落語) 공연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서로 잘 맞다는 걸 인정하고 친구가 된다. 모두 자존심이 강해서 문장이나 모리 오가이의 단편소설, 메이지 호걸 이야기기개론에 관해 의견 차이를 보이며 대립하기도 했지만 우정에 금이 가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이렇게 대립과 혼란을 거듭한 교류를 하면서도 소세키와 시키는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와 국문학과로 각각 진학한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공부했다 한다. 졸업 후에 영어교사가 된다. 월급은 3750전인데 학자금 대출금 750전을 갚고 10엔은 아버지에게 보내고 남은 돈 20엔으로 매달 생활해야 했다.

 

 18942월 초기 결핵 진단을 받는다. 스가 도라오의 권유로 가마쿠라의 에카쿠사 안에 기겐원(歸源院)에서 참선을 한다. 이때 참선한 내용은 에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그 후 마스야마 출신 마사오카 시키의 재회하게 된다, 하숙집에서는 시키가 객혈을 해서 함께 지내지 말라고 했지만 소세키는 시키의 집에서 지낸다. 하이쿠 가인들이 들락거리는 아지트가 된다. 시키는 다시 객혈을 시작하고 매일 늦은 밤까지 하이쿠 모임을 하다가 시키는 도쿄로 올라간다. 시키가 떠나고 나자 소세키는 에히메현에 다소 정이 떨어지고 고독해진다. 이 무렵 결혼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다가 구마모토에 있는 제5고등학교로 전근을 간다. 결혼식은 결혼식 의례대로 세 개의 잔에 세 번씩 모두 아홉 잔의 술을 마시고 부부 서약을 할 때 삼삼구배를 하는데 마침 잔이 하나 모자랐다고 한다. 나중에 교코가 소세키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자 어쩐지 부부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며 웃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열 살이나 아래인 교코에게 자신은 학자라서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당신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했다는 말도 있었다. 신혼여행은 하카타, 다자이후를 일주일 정도 돌고 오아마 온천을 돌아본다. 오아마 온천은 풀베개의 배경이 된 장소이다. 참 어렵게 읽었지만 소세키의 예술관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영어 연구를 위해 유학을 하라는 문부성의 명을 받고 유학길에 오른다. 소세키는 일본인이면서 영문학을 전공한 것에 무거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백 년도 더 전에 프로이센호를 타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가야 했을까. 영어 회화에도 능숙했지만 런던식 억양은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한다. 지리를 익히기 위해 시내 돌아다닌다. 파리에서는 문부성 서기관이 있어서 모든 곳을 안내해 주었지만 런던에서는 스무 번이나 길을 묻고 또 물어서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내용이 교코에게 보낸 첫 편지에 들어있다고 했다. 동양의 이방인이 길을 헤매고 묻고 또 묻는 장면이 생각나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낯선 곳에 가면 누구나 부자연스럽다.

 

 유학생활을 할 때 소세키는 하숙을 자주 옮겼다. 두 번째 하숙집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온화함이 없었고 딸이 아버지를 대할 때도 표정이 험악해 보였다. 과거의 냄새에는 양자로 갔던 집에서도 본가에서도 소속되지 못하고 하나의 작은 장애물로 취급되었던 겐조의 불쾌했던 기억(한눈팔기)이 하숙집의 하녀 아그네스와 겹쳤기 때문인지 40일 만에 이사를 간다.

 

 다섯 번째 하숙집을 구할 때는 문학적 취미를 갖고 있는 영국인 가정에 국한됨이라는 내용을 신문광고에 냈다고 한다. 그렇게 들어가게 된 미스 릴의 집에는 할머니가 밀튼이나 셰익스피어를 읽고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했기 때문에 조금 위축되며 대단하게 여겨진다고 시키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그 시절 가족과 연락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편지였을 것이다. 문부성의 명으로 원치 않는 유학을 갔기 때문에 불만도 있었고 꽤 외로웠던 것 같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렇게 뚝뚝해 보이는 사람이 교코에게 쓸쓸함을 호소하며 나처럼 인정에 얽매이지 않는 인간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 당신이 그립게 느껴지오.”라고 난생 처음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을까.(19012월 편지) 그런 소세키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교코는 자주 편지를 하지 않았다. 그 무렵 교코에게 보낸 편지에는 당신의 편지는 달랑 두 통 왔을 뿐이오.”라는 말로 시작된다고 한다.

 

 젊은 시절 자주 읽었던 작가 칼라일의 집을 찾아가는 이야기,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에 나왔던 조금은 익숙한 지명 켄싱턴 등 여러 곳이 나왔다. 이 무렵 신경쇠약이 심각해지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좋지 않은 소문이 전달되기도 한다. 영국 유학시절 흔적이 있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생각났다. 나쓰메 소세키 편은 언제 나올까, 학수고대하고 있다.

 

 영국에서 귀국한 소세키는 제일고등학교에 복귀하고 메이지 대학 강의도 하게 된다. 사일러스 마너(Silas Marner)강독과 영문학 개설강의가 진행되었는데 나중에 쇼와 여자대학 학장이 되는 가네코 겐지가 두 강의를 듣고 일기에 쓴 내용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외국인으로 일본인으로 귀화한 고이즈미 씨와 소세키를 비교하면서 아무리 소세키가 천재라 해도 고이즈미에게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 멕베스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대강당은 청강생으로 가득찼고 가네코도 이 강의를 유익하다고 생각하면서 불만이 수그러지게 된다.

 

 그러다가 제자 후지무라 미사오가 암두지감(巖頭之感)’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게곤폭포에서 자살하게 된다. 처음엔 수업준비를 해오지 않은 그를 혼낸 것을 마음에 걸려 했지만 삶에 대한 번뇌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소 안도를 했겠지만 마음은 무거웠을 것 같다. 거기다 자신의 건강도 악화된다. 하녀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쫓아버리고 불같이 화를 내며 교코에게 집중 공격을 하며 친정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반복하는 바람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바람에 별거를 하게 된다. 소세키의 병에 대한 것을 소상히 알게 된 교코는 아무리 학대를 당하더라도 결코 헤어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집으로 돌아온다. 한동안 진정되었다가도 다시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내던지고 교코를 들볶았다니 대작가 소세키가 얼마나 심각한 정신 상태였는지 상상할 수도 없다. 이 무렵부터 수채화를 그리며 위로를 받기 시작한다. 그림엽서에 그림을 그려서 지인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그 무렵 1904210, 러일전쟁이 발발했는데 원래부터 소세키는 무력에 의한 전쟁 자체를 싫어했다고 한다. 이것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구샤미 선생이 러일전쟁 출정 병사의 의연금을 내라는 편지를 받고 그냥 훑어보기만 했다는데 소세키 본인의 태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한번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지만 이런 배경을 모르고 읽었기에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재독을 하게 되면 더욱 깊이 있는 독서가 될 것 같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풀베개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을 무렵 도쿄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하게 된다. 집필 의욕도 왕성해졌고 문학 지망생 제자들과의 교류도 빈번해졌는데 그때 목요회를 시작한다. 나중에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나 구메 마사오 등도 참여했고 그들에게 특히 다정했다 한다.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등의 강의는 첫해의 딱딱한 강의 스타일을 탈피했고 종횡무진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치면서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단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나온 배경은 센다기에 살 때 검은 고양이가 집에 들어왔는데 몇 번이고 내보내도 다시 들어와서 그냥 살게 해달라는 교코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집에 자주 오던 안마사 할머니가 복을 부르는 보기 드문 고양이니까 키우면 이 댁이 번창할 거라는 말도 솔깃 했을 것이다. 그 예언처럼 문운과 금전운이 상승했다고 한다. 등장인물들은 구샤미(재채기) 도후(고치) 메이테이(몹시 취했음을 가리키는 일본어) 간게스, 도쿠센 등이 나온다. 이들은 타인이 놀림을 받으면 열렬히 환호하고 자신이 그런 경우를 당하면 화를 내는데 고양이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란 정말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이다.

 

 소세키의 작품에는 죽음에 대한 발언이 자주 나온다. 삶과 죽음에 대한 관심은 소세키의 내면에 있었지만 작품에서는 구샤미의 발언이 최초였다. 그리고 다른 작품에서도 여러 죽음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양이로소이다는 골계적이고 소탈하고 서민적인 맛이 난다는 등 표면적으로는 익살맞지만 그 이면에는 스스로를 잃어버린 일본인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그려낸 소세키 최초의 걸작이라는 평에 방점을 찍게 된다.

 

 첫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작가의 입지를 굳히고는 교직을 모두 그만두고 아사히신문사에 소설기자로 취업을 한다. 평전을 쓴 저자는 직업작가가 된다는 것에 의무와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 나와서 웃겼다. 작품을 쓰는 작가가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창작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거겠지.

 

 시마자키 도손이라는 작가가 자주 언급되고 있었는데 소세키와 같은 시대에 있었던 작가인가보다. 최근 읽은 작품 갱부가 나온 내력이 흥미로웠다. 현재 신주코에 있는 소세키 산방기념관인 마지막으로 살게 된 그 집에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아라이 도모오라는 사람이 자신의 갱부 체험을 소설로 써달라고 부탁해서 소설로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동안 서생처럼 소세키의 집에 함께 기거했는데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다가 나타나곤 하는 이상한 남자였다고 한다. 화자인 가 이야기한 것은 그가 구술한 대로이고 사건이나 사태에 대한 감상은 소세키가 덧붙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소설은 소세키가 인간 심리에 깊이 파고들어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인간을 그리게 되는 첫걸음이 되었다고.

 

 1909년 소세키는 남만주철도회사 총재가 된 오랜 벗 나카무라 제코가 귀국하고 함께 여행하기로 한다. 43일의 만주와 한국을 여행하고 만한 이곳저곳이라는 책이 출간된다. 압록강을 건너 평양, 경성, 인천을 거쳐 귀국길에 올랐다.


 여기서는 그 후, 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문은 요요네의 봄이 와서 고맙고 기쁘다는 말에 소스케는 하지만 다시 또 겨울이 올 거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좋은 일 궂은 일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소세키가 참선을 했다는 절 가마쿠라의 엔카쿠사 사진이 나왔다. 가마쿠라는 절이 많기로도 유명한데 둘러본 곳이 몇 개 되지 않는다. 수많은 인파로 들썩이는 곳, 그것을 바라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다시 가보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

 

 위장병이 악화된 소세키는 온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슈젠지 온천으로 떠난다. 죽음의 시간을 겨우 넘기고 퇴원하여 도쿄로 왔는데 나가요 병원의 원장이 벌써 지난달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놀란다. 자신은 살아있는데 자신을 치료하라고 명하던 이는 세상에 없는 사람임을 알고 얼마나 놀랐을까. 이런 하이쿠가 짠하게 다가왔다.

 

'떠나는 사람 머무는 사람 결국에는 찾아올 잠깐뿐인 삶 


 문부성이 소세키에게 수여하려 했던 박사학위를 거부했던 일은 유명한 일화다. 평소에도 박사학위만을 위해 공부하는 학자들을 경멸했다 한다.

우리들이 세인들 이상으로 뛰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사회에 대한 영예로운 공헌에 의해서만 뛰어나야 한다고 적어 보냈다. 출세를 위한 일이 아닌 인간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미완의 작품 명암이야기로 마무리된다. 그해에 소세키는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천분만큼을 다하고자 생각한.” 이라는 신년 벽두의 소감을 말한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을까.

 

여기저기에 묻어둔 감자를 하나씩 하나씩 파내면서 나아갈 것이라고 했던. 그의 계획과 달리 마무리하지 못하고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다. 그것을 상상하는 우리의 몫으로 남겨놓고. 1916년 영면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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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28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대 문명에 빛과 그림자를 탁월한 시각과 문체로 남긴 소세키에 관한 좋은 평전이네요
이와나미 문고에 교양시리즈물이 번역되었네요.
소세키에 그후와 문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하니 꼭 읽어봐야겠네요.
모나리자님 페이퍼 잘읽었습니다.^.^

모나리자 2021-01-28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일본에도 소세키의 팬이 많은 것 같아요.
작품세계의 배경과 작품에 나타난 그의 흔적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시나요? ㅎ 왠지 반갑네요.^^
편안한 밤 되세요. scott님.^^

scott 2021-01-29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저는 매년 겨울에는 행인과 문을 읽고 여름이 시작되면 그후를 읽어요 봄에는 산시로 그리고 가을에는 몽십야 ^.~

모나리자 2021-01-29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대단하세요! 문은 겨울에 읽기 딱이죠.ㅎ 그 분위기가.. 행인은 제가 블로그 활동 안할 때 오래전에 읽어서 리뷰도 없는데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전 산시로의 연못을 몇해전에 갔다왔는데.. 문득 그립네요.^^
몽십야는 아직 못 읽고 작품 속에서 인용으로만 만났어요. 와. 소세키 팬을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ㅎ 감사합니다.^^
 
로르샤흐 - 잉크 얼룩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다
데이미언 설스 지음, 김정아 옮김 / 갈마바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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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렬한 인상의 어디선가 본 듯한 배우를 닮은 헤르만 로르샤흐가 나온 책 표지가 시선을 사로잡아서 기대감에 읽고 싶었다. 어릴 적 물감을 종이에 짜서 반을 접었다 폈을 때 완전한 대칭을 이루는 그림을 보며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바로 그 데칼코마니 기법의 잉크 얼룩으로 심리검사를 고안해낸 정신과 의사이자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로르샤흐의 평전을 만났다. 그 잉크 얼룩 카드 10장은 지금도 남아서 검사에 활용되고 있는데 로르샤흐에 대해 다룬 전기는 한 권도 없었다고 한다. 1954년 앙리 엘렌버거가 간략한 정보만으로 펴낸 40쪽 짜리 전기 형식 논문이 전부였으며 그후 로르샤흐를 다룬 모든 이야기는 엘렌버거의 글을 근거로 삼았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로르샤흐에 대한 평가가 왜곡된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태어난 스위스에서부터 시작하여 세계 곳곳을 둘러보며 그와 관계한 사람들을 만나고 편지 자료 등 수많은 자료를 통해서 그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로르샤흐는 다시 태어난 듯 생생한 드라마틱한 그의 생애를 알 수 있었다.

 

 1884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헤르만 로르샤흐는 화가인 아버지 울리히와 따뜻하고 활기찬 성품을 지닌 어머니 필리피네의 사랑 속에서 자랐다. 12세에 어머니가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이모 레기나와 재혼을 하지만 오래 살지 못하고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때부터 헤르만과 아나 파울 세 남매는 새엄마 레기나와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이때 고등학생인 헤르만은 레기나와 대화를 통해서 남을 사랑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동생들에게 새어머니에게 날을 세우지 말라고 타이른다. 일찍부터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섬세함이 있었던 듯하다. 여동생 아나에게 있어 아버지와 어머니의 존재였던 헤르만은 일찍 철이 들었고 아픈 아버지를 보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인간의 영혼은 세상에서 더없이 흥미로운 존재라고 생각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아픈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톨스토이주의자의 강렬한 마음과 트레구보 같은 러시아인에게 느낀 호감 때문이었다.

 

 저는 러시아 사람들을, () 상반된 요소가 뒤섞인 러시아 사람들의 정신과 진심 어린 감정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 그토록 쾌활하면서도 슬플 때 울부짖을 줄 알다니, 질투가 나도록 러시아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 그리스와 로마 사람처럼 세상을 보고 빚어낼 줄 아는 능력, 독일 사람처럼 세상을 느낄 줄 아는 능력, 이런 능력들이 한 번이라도 하나로 합쳐질 수 있을까요?(P75) 

 

 이것은 대문호 톨스토이에게 쓴 편지라고 한다. 이렇게 풍부하고 현실감 있는 자료는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얼마나 러시아를 사랑했으면. 아내도 여섯 살이나 연상인 러시아인인 올가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감성적인 그에 비하면 올가는 화가가 나면 무엇이든 내던지며 격렬한 반응을 보여서 로르샤흐도 올가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사랑하면서도 무서워했다니.

 

 사람들에 대한 낯가림이 있었지만 여러 언어를 배우고 특히 러시아어는 유창할 정도로 학업성적은 거의 상위권을 차지했다. 자연을 사랑했으며 인간의 마음을 읽고 싶었다는 로르샤흐에 대한 생애를 읽으면서 경외감이 일었다. 지금도 잊을 만하면 뉴스 기사에서 접하게 되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그들과 생활하면서 검사를 통해서 대화를 하는 사례가 많이 나와서 직업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이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읽는 내내 흥미로웠던 것은 20세기의 위대한 위인들이 총집합한 것처럼 20세기의 역사적 상황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리학의 거장 카를 융, 프로이트를 비롯하여 톨스토이, 헤켈, 레닌, 아인슈타인, 슈바이처 등과 사람이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사상 처음이자 유일무이한 로르샤흐 평전이라는 이 책을 만난 덕분인 것 같다.

 

 당시 의료계는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경계가 생긴다. 심리학의 목표를 과학의 눈으로 정의해야 할지, 개인과 그 개인의 고통을 인문학의 눈으로 더 깊이 이해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로르샤흐가 학생이었을 때는 이러한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프로이트는 이미 무의식과 성 충동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이론을 수립한 상태였다. 심리학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1899년에 출간된 꿈의 해석이 출판 후 6년 동안 고작 351권이 팔렸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나온다. 또 카를 융이 블로일러의 조수로 들어가 일을 했는데 계급간의 갈등으로 인한 반목으로 융이 스승인 블로일러를 지워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블로일러를 모르게 되었다는 일화가 흥미로웠다. 더 성공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융과 프로이트, 블로일러를 심리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블로일러가 배제된 것처럼 로르샤흐도 그랬다. 로르샤흐와 블로일러의 공통점을 언급한 것이 흥미로웠다. 둘 다 사회적인 배경이 대단하지 않았고, 심각한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였고, 다른 동료들에게 없는, 자기만의 길을 찾을 때도 남을 존중하고 남에게서 배울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따뜻한 인품과 일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잉크 얼룩 실험을 거듭하고 출판사를 설득하는 우여곡절을 통해서 1921심리 진단이 출판된다. 그가 고안해 낸 잉크 얼룩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쓰인다고 한다. 수십 년 동안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오늘날 로르샤흐 검사는 미국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되고 의료보험 회사에서 검사 비용을 환급할 수 있는 검사가 되었다. 광고계 스포츠계는 물론 영화 예술계로 확산되어 로르샤흐 검사라는 말로 은유되는 것이다. 이것은 로르샤흐 검사 자체가 잉크 얼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고 수검자가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말하는 그 특성을 패러디한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왼쪽은 카드 3번의 초안. 오른쪽은 카드 3번의 초안(위)과 최종본(아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던 로르샤흐가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맹장 파열에 따른 복막염으로 수술대에서 죽음을 맞은 일은 정말 비극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었다.

 

 로르샤흐 사후 잉크 얼룩 검사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데이비드 모더카이 레비에 의해 처음으로 널리 알려진다. 영국에서는 완전히 외면받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인기 있는 심리검사라고 했다. 로르샤흐 검사를 추종자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람은 사무엘 j 벡과 브루노 클로퍼였다. 벡은 평생동안 잉크 얼룩 검사를 연구한다. 클로퍼는 가족과 독일을 떠나 카를 융의 보증을 받아 스위스에 입국허가를 받아 취리히 정신기법연구소에서 로르샤흐 검사 일을 수행하다가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 조수 자격으로 일을 시작한다. 바로 로르샤흐 검사에 관심있는 대학원생과 교직원에게 검사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이 두 추종자는 사이가 좋지 않아 대립을 하곤 했는데 어느 편에 서지 않고 비판을 하면서 지금의 로르샤흐 검사가 되기까지 발전시킨 초기의 개척자의 양심으로 불리는 사람은 마거리트 헤르츠다.

 

 헤르츠는 몇 년 동안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의 브러시 재단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여러 인종과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로르샤흐 검사 기록을 3천 건 이상 갖게 된다. 그것이 책으로 출판되었다면 미국의 로르샤흐 검사 역사를 바꾸었을 텐데 브러시 재단의 연구가 취소되는 바람에 폐기하게 되는데 실수로 소각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된다. 재앙이나 다름없는 이 사건으로 인해 아까운 로르샤흐의 귀중한 자료를 잃은 것이다.

 

 헤르만 로르샤흐가 세상을 떠난지 17년 뒤에는 잉크 얼룩 검사는 심리학과 문화 전반에서 최고의 투사법이자 현대의 성격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다행인 것은 심리학자 에르네스트 G. 샤흐텔(Ernest G. Schachtel(1903~1975)에 의해 로르샤흐의 철학을

가장 근접하게 계승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샤흐텔은 클로퍼가 쓴 저서 로르샤흐 기법전체 인간 경험과 유리되어 있다고 비판하면서 잉크 얼룩 실험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 심리를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고 로르샤흐는 이 목표를 한 번도 잊지 않았다고 설파했다. 오늘날에는 MMPI에 밀렸지만 그것이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에서는 수십 년 동안 가장 많이 활용된 성격 검사였다고 한다.

 

 심리학계의 선구자들 가운데 로르샤흐만이 시각을 중요시 하였고 시각심리학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친가와 외가 양쪽에서 물려받은 미술적 재능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평생 지각이 마음과 몸, 세상이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믿었다. 사람마다 보는 시간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어했다. 이 책을 통해 심리학의 역사적 배경과 20세기의 역사적 상황까지 돌아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완벽하게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 평전을 통해 로르샤흐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헤르만 로르샤흐라는 인물을 통해 그가 읽어내고 싶었던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오묘하고 변화무쌍한 것인지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열정어린 삶이 좀 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그 영향력이 좀 강하게 남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심리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번역카페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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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6
강상중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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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소세키에 대해 뭔가를 말하는 것은 참으로 식은땀이 날 일입니다. 하지만 소세키에 대한 제 각별한 마음만은 다른 누구에게도 절대 지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소세키를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며 저는 그것을 인생의 큰 양식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멋대로 소세키를 인생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P8)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작가이기 때문에 소세키(漱石) 연구자들이 무척 많으며 작품을 다룬 책과 논문이 수없이 많은데 강상중 저자는 자신이 소세키(漱石)에 대해 논하는 것을 식은땀이 날 일이라며 겸손해 한다. 이 책은 이렇게 인생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주요 작품에 대한 매력을 알려주는 책이다.

 

 강상중 저자가 소세키(漱石)에 깊이 빠져든 계기는 중학교 시절 친구 두 명과 가출하여 도쿄를 돌아보고 돌아온 후 산시로를 읽고 깜짝 놀라는데서 시작된다. 대학생이 되어 도쿄로 떠나 산시로가 느낀 경험을 중학생 강상중이 느꼈던 것과 완벽하게 일치했다는 것이다. 원래 그 작가가 좋아지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작품의 주인공이 느낀 감정이나 경험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저자는 구마모토에서 태어났는데 소세키(漱石)도 구마모토에 있는 제5고등학교에 강사의 삶을 살며 43개월 동안이나 체재했다고 한다. 이곳을 배경으로 쓰인 작품이 풀베개, 이백십일이다. 그럼에도 10년 후, 1년 정도 머물었던 마쓰야마를 배경으로 쓴 도련님이 유명한 작품이 되었는데, 그에 비하면 더 오래 머물었던 구마모토는 많이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어쨌든 대문호가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한 동안 살았다는 흔적만으로도 가슴 설렐 일이 아닐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전기 3부작인 산시로, , 그 후마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작품읽기가 시작된다. 내가 맨 처음 이 작품으로 나쓰메 소세키를 만났다. 이 작품으로 박람강기(博覽强記)한 모습 즉, 번뜩이는 재담이나 독자적인 조어방식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패러디, 해학, 소탈함 등 뭐든지 감당할 수 있는 작가라는 거다. 요즘 읽고 있는 갱부에서도 그런 유머가 느껴졌었다. 반면, 어둡고 날카로운 일면도 볼 수 있는데 당시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유머를 섞어가며 거침없이 뱉어낼 줄 아는 다면성이 있다고 했다.

 

 영국 유학시절을 경험으로 쓴 단편도 몇 가지가 짤막하게 언급되고 있다소세키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는 것도 많이 알려져 있다. 지인들에게 보낸 엽서에 그림을 그려서 보낸 사진도 소개되고 있다. 나체화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영국 유학시절에는 스코틀랜드 출신자들과 교류를 많이 했다고 한다. 칼라일의 서적도 가까이 했고 그의 기념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칼라일 박물관이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칼라일의 의상철학을 훌륭하게 패러디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건 처음 알았다. 조금 어려운 책이라고 하는데 언젠가 읽어보고 싶다.

 

 3부작에 나오는 주인공 산시로, 다이스케, 소스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랑, 실존적 불안, 문명비판과 시사문제, 메이지의 부패를 다루고 있다. 특히 소세키의 작품에서는 연애가 간통이라는 테마로 그려지고 있는 부분이 많은데 남녀의 에로틱한 장면은 일절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별로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강상중 저자는 이를 두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깨달은 건데 여기에는 매우 계산된 에로스의 장치가 삽입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산시로,그 후,으로 이어지면서 주인공들의 사랑도 점차 깊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에 이 순서대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강상중 저자는 마음을 고등학교 1학년 때 읽었는데 그때는 작품 속의 선생님의 유서에 토로한 외로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2학년 때 다시 읽었을 때는 무척 마음이 흔들렸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나도 두 번 읽었는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작품 해석은 정말 새롭게 다가왔다. 선생님의 친구 K가 죽은 것은 실연의 의미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K와 선생님 사이에 하숙집 딸이었던 선생님의 아내가 둘 사이에 들어와서 두 사람의 우정이 깨져버렸다는 해석이다. 그래서 K가 자살을 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여기에는 도플갱어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었는데, 도플갱어란 한쪽 편을 잃어버리면 나머지 한쪽이 머지않아 죽을 운명이라고 한다. K가 죽자 선생님도 그 뒤를 따른 것을 보면 섬뜩하게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다. 항상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했다는 소세키(漱石)의 생각을 이 작품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과거의 하 사건을 계기로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네. 그래서 실은 자네도 예외는 아니라네. 하지만 아무래도 자네만큼은 의심하고 싶지 않네. 자넨 내가 의심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사람인 것 같아서. 나는 죽기 전까지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마음 놓고 흉금을 터놓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자네가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자네는 진정 뼛속 깊숙이까지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제 생명이 진정한 것이라면 제가 드리는 말씀도 진심입니다.”(P113)마음

 

 

 ‘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서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피붙이가 아닌 남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선생님이라고 불러준 제자 같은 와 교류를 하면서 인간에 대한 정이 싹텄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생명을 언급하며 부모와 조상에 한정시키지 않고 인간이라는 ()’로서 계속 이어져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생명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할까. 그렇게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자신의 생명, 자신의 마음이 안에서 계속 살아가리라 확신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에게 남겼다고 본다. 결국,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소세키가 말하는 영혼의 상속에 대한 이야기라는 결론에 이른다. ‘영혼의 상속이란 말에 왠지 따뜻해졌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두 번 읽은 마음』이지만, 이전과 달리 새로운 시각으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움을 발견하려면 읽고 또 읽어야 하리라.

 

 

 

마사오카 시키가 소세키(漱石)에게 보냈다는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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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 -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 클래식 클라우드 22
정여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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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작가가 나오면 기대감으로 설렌다. 헤세의 작품은 내가 고교 때 많이 읽었고 지난 4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은 여운이 남아있어서 기대되었다. 정여울 작가를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헤세와 그의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느껴졌다. ‘글을 쓸 때마다 매일 조금 더 나은 자신이 되기를 꿈꾸는 글쟁이라는 작가 소개와 이 책의 부제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라는 문장을 보면서 헤세와 그의 작품이 정여울 작가로 이어지는 어떤 영혼의 교류가 느껴졌기에 더욱 궁금했다. 헤세와 함께 걸어온 지난 10년 여정에서 배운 마음의 기록이라고 했다. 저서로는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한 산문집 마음의 서재, 심리 치유 에세이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등 다수 있으며 KBS1라디오 <백은하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을 진행하고 있다.

 

 정여울 작가는 헤세의 생애를 여행자, 방랑자, 안내자, 탐구자, 예술가, 아웃사이더, 구도자로서의 시기와 그 무렵 쓴 작품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생생하게 들려준다. 오래전에 읽은 싯다르타, 데미안』 『크눌프등의 이야기가 새록새록 떠올랐고 주인공들의 음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누구나 처음 어떤 작가를 만나게 된 계기가 있을 것이다. 정여울 작가는 10대 시절부터 10년을 바쳤던 우정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많은 작품 활동으로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만 같았던 작가가 부모님의 빚을 11년이나 갚았고 박사학위를 땄음에도 교수가 되지 못한 뼈아픈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힘들었던 시기를 살면서 헤세의 문학에 많은 의지를 했구나 싶었다.

 

 헤세는 자전적인 그의 작품을 통해서 원만한 교유관계를 유지하지 못했고 퇴학을 당하는 등 부침이 있던 청소년 시절을 겪었던 과정을 볼 때 자신의 상처와 동일시하며 많은 위안과 치유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만큼 이야기를 풀어내기까지 얼마나 헤세의 작품을 읽고 또 읽었을까. 전에 어떤 책에서 책을 읽는 동안에 아무리 큰 슬픔이라도 치유 받지 못하는 슬픔이란 없다는 말을 접한 적이 있다.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새 살이 올라오는 기쁨을 느꼈다면 정신적 지주처럼 여겨지던 작가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자연스런 수순일 것이다. 길치에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도시도 아닌 시골을 찾아 떠나는 여행임에도,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말렸음에도 용기 있게 발을 내딛었던 것은 작품에서 받은 상처의 치유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의 황금으로 풀어가는 수레바퀴 아래서가 인상적이었다. 지난 4월에 읽고 참 마음이 아린 작품이었는데.

 

 ‘내면의 황금이란 이루지 못한 꿈이나 표현하지 못한 감정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정신의 뇌관’(P56)으로 심리학자 로버트 존슨(Rovert A. Johnson)은 각자가 지닌 내면의 황금은 혼자서 다루기에는 너무도 무겁고 힘든 대상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다. 현대인이 쉽게 피로와 우울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내면의 황금을 공유할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서라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그런 역할을 해주고 부부에게는 서로가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바쁜 일상과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현대인들이 내면의 황금을 갈고 닦기에는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약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한스를 지켜줄 만한 어른이 없었다. 구둣방 아저씨 클라이크와 신학교 교장 선생이 있었지만. 구둣방 아저씨는 힘이 없었고 교장은 하일너를 친구로 사귀는 것을 싫어해서 만류하지 않았는가. 한스가 기댈만한 지혜로운 교사가 있었거나 부모가 사랑으로 품어 줄 만한 인격의 소유자였다면 하일너에게 자신의 내면의 황금을 몽땅 맡겨 버리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 결국 하일너와의 우정도 산산조각 나버리자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하고 급기야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고 만다.

 

 헤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라고 한다. 왜 그렇게 헤세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의 작품의 주인공에 대한 대리만족이 아닐까 한다. 일상에 매여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그의 방랑자로 순례자로 거리낌 없이 떠나는 여행을 무척 부러워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방랑자로서 작품 크눌프, 페터 카멘친트와 종교적 초월을 꿈꾸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싯다르타, 종교와 예술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험을 그린 나르치스 골드문트순례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여기서 페터 카멘친트는 헤세의 청소년기 체험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는 흥미진진한 성장소설이며 첫 장편소설로 단번에 독자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헤세의 작품세계는 데미안이전과 이후로 나뉘는데 데미안탐구자로서 이정표와 같은 셀프를 찾는 에고의 험난한 투쟁을 그린 이야기다. 헤세가 자신의 심리치료 경험을 작품으로 빚어낸 작품으로 싱클레어라는 작중인물 속의 이름으로 펴냈을 때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 카를 구스타프 융이었다고 한다. 정말 오래전에 읽었는데 다시 읽으면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정여울 작가는 모범생으로 오래 살아왔고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인 줄 알았다고 한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안정적인 사회인이 되면 더 행복해지는 줄 알았는데 서른 즈음에 자기 안에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내면에서 더욱 선명한 셀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 책이 바로 데미안이었다고 한다.

  

 헤세가 작가의 꿈을 키운 독일을 거쳐 궁극의 안식처 스위스까지 정여울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는 여행을 마쳤다. 작가가 헤세의 작품으로부터 무엇을 치유 받았는지 무척 궁금했었다. 사람은 저마다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헤세가 분신처럼 들어있는 작품 이야기와 함께 처음 만난 정여울 작가와도 조금은 친숙해진 느낌이다. 앞으로 만날 헤세의 작품과 정여울 작가의 작품이 기대된다. 그래서 마음에 남는 문장들을 모아 보았다.

 

<마음에 남는 문장들>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마음 자세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나만의 꿈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그것이 외로울 용기가난할 용기라고 생각했다. 타인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외로움, 그리고 남다른 꿈을 오직 힘으로 실현하기까지 필연적으로 견뎌야 할 가난, 그 두 가지는 인간이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장벽이기 때문이다.(P13~P14)

 

 때로는 삶이 우리에게 너무도 가혹하고 불친절하게 느껴지고, 나이 듦이 무작정 두려워지는 순간이 많지만, 나는 헤세로부터 흐르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그 방법은 바로 문학과 예술과 자연을 항상 물처럼 공기처럼 내 곁에 두는 진지하고도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P15)

 

 ‘우리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혼자서도 광야의 벌판에서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헤세는 이렇게 말한다. 용기는 이성을 필요로 하지만, 용기 자체가 이성의 산물은 아니라고, 용기는 이성보다 훨씬 깊은 곳에 우러나오는 것이라고.(P87)

 

 나는 그 훨씬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용기를 기르는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문학과 예술, 철학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라고 믿는다. 문학, 예술, 철학에 관심을 두는 것은 타인의 삶에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만 가능하다. 타인의 삶에 귀 기울임으로써 우리는 마음의 주파수를 항상 나 자신에게만 맞춰놓는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끊임없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이 바로 삶 속에서 나다움을 찾아가는 길이다.'(P87)

 

 마음 챙김도 오답노트를 닮았다. 나를 진정으로 성장시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높은 존재로 이끌어가는 힘은, 오직 내가 나의 그림자와 싸울 때만 나타난다. 나의 상처와 나의 콤플렉스와 나의 트라우마와 싸울 때만 우리는 좀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P139)

 

 ‘개성화한다는 것은 자신의 블리스가 있는 자리에 자기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피하지 않고, 내 아픔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픔을 똑바로 바라보면 그렇게 아프지 않다. 아픔을 똑바로 보지 않기 때문에 더 아픈 것이다. 아픔을 주시하다 보면 내가 왜 아픈지 깨닫게 되고 두 번째 화살을 막을 용기도 생긴다.’(142)

 

 ‘내가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어 결국 고통에 빠진 나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는 이야기, 내가 나의 멘토가 되고, 내가 나의 스승이 되어 그 누구도 나를 다치게 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데미안이다.’(P149)

 

 

 이 클래식 클라우드 헤세편을 읽으면서 정여울 작가가 얼마나 분투하면서 살았는지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현실을 사는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 속의 나에게 충실하다보면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지나치게 에고가 팽창된 상태를 에고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단다. 본연의 자신으로- , 개성화하기 위해 투쟁을 해야 하는데 -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데 안락한 사회화의 길에 만족해버린다는 거다.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는 그 그림자를 제대로 인식했을 때 자기 인식의 진정한 관문이 열리며, 자신의 상처가 무엇인지 알고 그 핵심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야말로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했다. 또 블리스(bliss)는 내 안의 진정한 멘토이며 에고의 모든 욕심을 잊게 하고 오직 셀프의 기쁨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많은 상처와 고통을 글로 고백할 때마다 그 상처로부터 해방되었단다. 글쓰기가 주는 치유를 경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헤세의 고향 칼프에 있는 헤세의 동상.

 

 

 오랫동안 헤세의 작품과 함께하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간 여정을 보낸 정여울 작가와 함께 하면서 헤세의 작품에 한걸음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을 읽을 때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했다. 물론 하나하나의 작품이 저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문학은 독자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작가 자신의 경험과 허구를 조합하여 빚어진 예술품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그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일에 투영하거나 동일시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헤세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나 관심 있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다. 또한 정여울 작가가 내면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며 본연의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많은 용기와 힘을 얻으리라 생각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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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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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6월에 읽고 두 번째로 읽게 되었다. 당시에도 먹먹한 감동과 함께 이런 일이 같은 인간에 의해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수용소의 삶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나만 힘든 것처럼 여겼던 태도가 부끄럽게 느껴졌었다. 그때 좀 힘든 상황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겪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큰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전에도 이시형 박사의 번역으로 읽었는데 이 책 또한 그분의 번역으로 만나서 반가웠다. 까만 표지에 뚜렷한 금박의 디자인의 대비가 마치 죽음을 뚫고 나온 승리의 월계관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다.

 

 책의 내용은 첫째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둘째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셋째 비극 속에서의 낙관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익명으로 출판하려던 것을 친구의 권고로 초판이 출판되기 직전에 속표지에 이름이 들어감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어떤 명성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어떤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순수한 의도로 나왔고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는 것도 다행한 일이다. 인생을 살면서 여러 힘겨운 상황에 놓였을 때 삶의 해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1984년판에 부친 서문에 나온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에 따라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얘기하건대 언젠가는!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P9~P10) 

 

 저자가 평소 학생들에게 자주 해 준 이야기라고 한다. 이 책이 의도치 않게 베스트셀러가 된 데서 얻은 교훈과 연결 지어 이야기하고 있었다.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에서 나오는 역설 의도(paradoxical intention)’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지나친 주의 집중이 오히려 원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만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보다는 그 과정에 충실하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과정을 충실히 즐기다 보면 성공은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1.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수용소에서의 체험 이야기는 너무나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이 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들고 들어와 그것을 베개 삼아 잠을 잘 잤다는 사람 이야기, 이를 닦을 수 없는 수용소의 규칙 때문에 심각한 비타민 결핍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잇몸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했다는 사례를 들어 인간이 얼마나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한지 이야기한다. 또 죽음으로의 선발을 피해가려고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된 육체노동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회교도로 취급되어 가스실로 보내지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면도를 하고 똑바로 서서 걸어야 하는 등 최대한 건강하게 보여야 한다. 어디서든 연기가 필요한 걸까,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났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던 장교의 손짓의 의미를 알게 된 이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다음에는 혐오감이 찾아오고 무감각이라는 감정에 도달한다. 괴롭힘을 당하고 죽어가거나 죽은 것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게 되면서 더 이상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전처럼 다른 감정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우슈비츠에서 바바리아 수용소로 이송되는 도중 찬란한 석양빛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을 하거나 수용소 안에서 행해지는 예술 행위가 그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유머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건축 공사장에서 일을 빨리하라고 고함을 질러대거나 콩알을 더 먹기 위해서 '밑바닥에서 퍼' 달라는 말을 패러디하는 방식으로 유머를 이야기하며 견디고 있었다. 다른 수용소로 이동해서는 동료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밤을 꼬박 새우고 이튿날 아침까지 꽁꽁 언 채 비를 맞으며 서 있어야 했지만 그 수용소에는 굴뚝이 없고 아우슈비츠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행복감을 맛보기도 한다. 그렇게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수용소의 일상을 살면서도 삶의 의미를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P110)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느낌이었을 것 같다. 아무리 시련이 한 사람의 인생을 단련시킨다는 말도 있지만. 수감자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생각이 부유하고 있을까,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물론 저자의 체험이다. 찢어진 신발 때문에 발에 심한 종기가 생겨서 극심한 통증을 걸으며 절뚝거리며 걸어간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사정없이 내리치지만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게 될까, 그것을 빵과 바꾸어 먹을까, 끊어진 신발 끈을 대신할 철사를 어디서 구할까,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수용소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는 카포는 없을까, 그 카포와 잘 사귀려면 어떻게 할까. 이런 하찮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 때 빅터 프랭클은 불이 환하게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 강단에 서 있고,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자신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하면서 현실의 상황과 고통을 이기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야기다.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 죽음으로 이어진 사례도 이야기한다.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상황도 견딜 수 있다.(P123) 

 

 니체의 말이다. 이 말은 비단 수용소의 절체절명의 상황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서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다가 해방의 자유를 맞이했는데도 환희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는 부분은 정말 안타까웠다. 살아남기 위한 목표 한 가지에 열중하다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천천히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다시 배워야 했다. 또 자유를 얻은 후에도 애타게 만남을 기대하며 상상했던 가족의 상실로 또 한 번 좌절하게 된다. 가족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주었는데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슬픔은 얼마나 컸을까.

  

2.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로고테라피는 환자가 이루어야 할 미래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하며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본다.’(P163~P164)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P164) 

 

 ‘로고테라피(Logotherapy)’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 로고스(Logos)’를 말하며 빈 제3정신 의학파로 부르는 이론이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으로,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다. 어떤 가르침도 아니고 설교도 아니며 비유하자면 화가라기보다는 안과 의사가 하는 일에 가깝다고 했다. 화가가 자기 눈에 비친 세상을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라면, 안과의사는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해 주려는 것과 같은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에 의존해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인생에 책임감을 갖고 삶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깨는 느낌이다. 유한한 삶을 낭비하지 말고 덤으로 얻은 시간이라 생각하고 지금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로 여겨진다. 살면서 후회를 줄일 수 있는 진지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되었다.

  

로고테라피를 활용하여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P166)

 

 이렇게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일을 하거나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시련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 도착하고 나서 정신적인 자식같은 원고를 잃는 고통을 당해야 했는데 물려받은 다른 수감자의 외투 속에서 찢어진 히브리 기도책 <셰마 이스라엘(Shema Yisrael)> 한 장을 발견하고 살라는 의미의 신의 계시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은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것과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걸 상기하게 된다. 또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잘 살아 남았고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했다. 이런 긴장은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well-being)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3. 비극 속에서의 낙관

 

 이 내용은 19836, 서독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열린 제3회 로고테라피 세계 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으로 쓴 것이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의 비극적인 요소는 인간의 삶을 제한 할 수 있는 고통, , 죽음을 의미한다. 이 모든 비극을 맞이한 상황에서 yes’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가 있다고 인지하는 것을 전제한다. 중요한 것은 낙관적인 생각이 명령이나 지시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가지고 임했을 때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로고테라피가 오늘날 미국 문화가 지니고 있는 건전하지 못한 성향을 근절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오늘날 미국에는 자신의 시련을 자랑스러워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그것을 품위 있는 것으로 만들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 치유 불가능한 환자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불행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있다.”(P209) 

 

 에디트 바이스코프 요엘슨은 로고테라피에 대한 희망을 위와 같이 피력했다고 한다. 베트남전 전쟁 포로생활로 엄청난 고문과 지병 등으로 스트레스을 겪었음에도 성장에 도움이 되는 체험이었다는 연구 사례와 다이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목 아래 부분이 마비된 제리 롱의 사례를 보더라도 시련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반드시 시련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이후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히로시마 이후 무엇이 위험한지 알게 되었으니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를 맺고 있다. 네 군데나 전전해야 했던 절체절명의 강제 수용소 체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독자가 있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크다고 느꼈던 자신의 고통이 깃털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 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P125)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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