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르샤흐 - 잉크 얼룩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다
데이미언 설스 지음, 김정아 옮김 / 갈마바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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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렬한 인상의 어디선가 본 듯한 배우를 닮은 헤르만 로르샤흐가 나온 책 표지가 시선을 사로잡아서 기대감에 읽고 싶었다. 어릴 적 물감을 종이에 짜서 반을 접었다 폈을 때 완전한 대칭을 이루는 그림을 보며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바로 그 데칼코마니 기법의 잉크 얼룩으로 심리검사를 고안해낸 정신과 의사이자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로르샤흐의 평전을 만났다. 그 잉크 얼룩 카드 10장은 지금도 남아서 검사에 활용되고 있는데 로르샤흐에 대해 다룬 전기는 한 권도 없었다고 한다. 1954년 앙리 엘렌버거가 간략한 정보만으로 펴낸 40쪽 짜리 전기 형식 논문이 전부였으며 그후 로르샤흐를 다룬 모든 이야기는 엘렌버거의 글을 근거로 삼았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로르샤흐에 대한 평가가 왜곡된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태어난 스위스에서부터 시작하여 세계 곳곳을 둘러보며 그와 관계한 사람들을 만나고 편지 자료 등 수많은 자료를 통해서 그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로르샤흐는 다시 태어난 듯 생생한 드라마틱한 그의 생애를 알 수 있었다.

 

 1884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헤르만 로르샤흐는 화가인 아버지 울리히와 따뜻하고 활기찬 성품을 지닌 어머니 필리피네의 사랑 속에서 자랐다. 12세에 어머니가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이모 레기나와 재혼을 하지만 오래 살지 못하고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때부터 헤르만과 아나 파울 세 남매는 새엄마 레기나와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이때 고등학생인 헤르만은 레기나와 대화를 통해서 남을 사랑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동생들에게 새어머니에게 날을 세우지 말라고 타이른다. 일찍부터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섬세함이 있었던 듯하다. 여동생 아나에게 있어 아버지와 어머니의 존재였던 헤르만은 일찍 철이 들었고 아픈 아버지를 보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인간의 영혼은 세상에서 더없이 흥미로운 존재라고 생각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아픈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톨스토이주의자의 강렬한 마음과 트레구보 같은 러시아인에게 느낀 호감 때문이었다.

 

 저는 러시아 사람들을, () 상반된 요소가 뒤섞인 러시아 사람들의 정신과 진심 어린 감정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 그토록 쾌활하면서도 슬플 때 울부짖을 줄 알다니, 질투가 나도록 러시아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 그리스와 로마 사람처럼 세상을 보고 빚어낼 줄 아는 능력, 독일 사람처럼 세상을 느낄 줄 아는 능력, 이런 능력들이 한 번이라도 하나로 합쳐질 수 있을까요?(P75) 

 

 이것은 대문호 톨스토이에게 쓴 편지라고 한다. 이렇게 풍부하고 현실감 있는 자료는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얼마나 러시아를 사랑했으면. 아내도 여섯 살이나 연상인 러시아인인 올가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감성적인 그에 비하면 올가는 화가가 나면 무엇이든 내던지며 격렬한 반응을 보여서 로르샤흐도 올가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사랑하면서도 무서워했다니.

 

 사람들에 대한 낯가림이 있었지만 여러 언어를 배우고 특히 러시아어는 유창할 정도로 학업성적은 거의 상위권을 차지했다. 자연을 사랑했으며 인간의 마음을 읽고 싶었다는 로르샤흐에 대한 생애를 읽으면서 경외감이 일었다. 지금도 잊을 만하면 뉴스 기사에서 접하게 되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그들과 생활하면서 검사를 통해서 대화를 하는 사례가 많이 나와서 직업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이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읽는 내내 흥미로웠던 것은 20세기의 위대한 위인들이 총집합한 것처럼 20세기의 역사적 상황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리학의 거장 카를 융, 프로이트를 비롯하여 톨스토이, 헤켈, 레닌, 아인슈타인, 슈바이처 등과 사람이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사상 처음이자 유일무이한 로르샤흐 평전이라는 이 책을 만난 덕분인 것 같다.

 

 당시 의료계는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경계가 생긴다. 심리학의 목표를 과학의 눈으로 정의해야 할지, 개인과 그 개인의 고통을 인문학의 눈으로 더 깊이 이해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로르샤흐가 학생이었을 때는 이러한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프로이트는 이미 무의식과 성 충동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이론을 수립한 상태였다. 심리학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1899년에 출간된 꿈의 해석이 출판 후 6년 동안 고작 351권이 팔렸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나온다. 또 카를 융이 블로일러의 조수로 들어가 일을 했는데 계급간의 갈등으로 인한 반목으로 융이 스승인 블로일러를 지워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블로일러를 모르게 되었다는 일화가 흥미로웠다. 더 성공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융과 프로이트, 블로일러를 심리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블로일러가 배제된 것처럼 로르샤흐도 그랬다. 로르샤흐와 블로일러의 공통점을 언급한 것이 흥미로웠다. 둘 다 사회적인 배경이 대단하지 않았고, 심각한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였고, 다른 동료들에게 없는, 자기만의 길을 찾을 때도 남을 존중하고 남에게서 배울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따뜻한 인품과 일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잉크 얼룩 실험을 거듭하고 출판사를 설득하는 우여곡절을 통해서 1921심리 진단이 출판된다. 그가 고안해 낸 잉크 얼룩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쓰인다고 한다. 수십 년 동안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오늘날 로르샤흐 검사는 미국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되고 의료보험 회사에서 검사 비용을 환급할 수 있는 검사가 되었다. 광고계 스포츠계는 물론 영화 예술계로 확산되어 로르샤흐 검사라는 말로 은유되는 것이다. 이것은 로르샤흐 검사 자체가 잉크 얼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고 수검자가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말하는 그 특성을 패러디한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왼쪽은 카드 3번의 초안. 오른쪽은 카드 3번의 초안(위)과 최종본(아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던 로르샤흐가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맹장 파열에 따른 복막염으로 수술대에서 죽음을 맞은 일은 정말 비극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었다.

 

 로르샤흐 사후 잉크 얼룩 검사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데이비드 모더카이 레비에 의해 처음으로 널리 알려진다. 영국에서는 완전히 외면받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인기 있는 심리검사라고 했다. 로르샤흐 검사를 추종자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람은 사무엘 j 벡과 브루노 클로퍼였다. 벡은 평생동안 잉크 얼룩 검사를 연구한다. 클로퍼는 가족과 독일을 떠나 카를 융의 보증을 받아 스위스에 입국허가를 받아 취리히 정신기법연구소에서 로르샤흐 검사 일을 수행하다가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 조수 자격으로 일을 시작한다. 바로 로르샤흐 검사에 관심있는 대학원생과 교직원에게 검사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이 두 추종자는 사이가 좋지 않아 대립을 하곤 했는데 어느 편에 서지 않고 비판을 하면서 지금의 로르샤흐 검사가 되기까지 발전시킨 초기의 개척자의 양심으로 불리는 사람은 마거리트 헤르츠다.

 

 헤르츠는 몇 년 동안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의 브러시 재단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여러 인종과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로르샤흐 검사 기록을 3천 건 이상 갖게 된다. 그것이 책으로 출판되었다면 미국의 로르샤흐 검사 역사를 바꾸었을 텐데 브러시 재단의 연구가 취소되는 바람에 폐기하게 되는데 실수로 소각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된다. 재앙이나 다름없는 이 사건으로 인해 아까운 로르샤흐의 귀중한 자료를 잃은 것이다.

 

 헤르만 로르샤흐가 세상을 떠난지 17년 뒤에는 잉크 얼룩 검사는 심리학과 문화 전반에서 최고의 투사법이자 현대의 성격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다행인 것은 심리학자 에르네스트 G. 샤흐텔(Ernest G. Schachtel(1903~1975)에 의해 로르샤흐의 철학을

가장 근접하게 계승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샤흐텔은 클로퍼가 쓴 저서 로르샤흐 기법전체 인간 경험과 유리되어 있다고 비판하면서 잉크 얼룩 실험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 심리를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고 로르샤흐는 이 목표를 한 번도 잊지 않았다고 설파했다. 오늘날에는 MMPI에 밀렸지만 그것이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에서는 수십 년 동안 가장 많이 활용된 성격 검사였다고 한다.

 

 심리학계의 선구자들 가운데 로르샤흐만이 시각을 중요시 하였고 시각심리학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친가와 외가 양쪽에서 물려받은 미술적 재능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평생 지각이 마음과 몸, 세상이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믿었다. 사람마다 보는 시간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어했다. 이 책을 통해 심리학의 역사적 배경과 20세기의 역사적 상황까지 돌아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완벽하게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 평전을 통해 로르샤흐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헤르만 로르샤흐라는 인물을 통해 그가 읽어내고 싶었던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오묘하고 변화무쌍한 것인지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열정어린 삶이 좀 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그 영향력이 좀 강하게 남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심리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번역카페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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