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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 안내서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25년 8월
평점 :
시인 메리 올리버는 1935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났으며, 열네 살 때 시를 쓰기 시작해 1963년에 첫 시집 『No Voyage and Other Poems』를 발표했다. <뉴욕 타임스>는 메리 올리버를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시인”이라고 평했으며, 그의 시들은 자연과의 교감이 주는 경이와 기쁨을 단순하고 빛나는 언어로 노래한다. 그는 월트 휘트먼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내면의 독백, 고독과 친밀하게 지냈다는 측면에서 에밀리 디킨슨과 비교되기도 한다. 저서로『천 개의 아침』을 포함한 스물여섯 권의 시집이 있으며 『완벽한 날들』, 『휘파람 부는 사람』, 『긴 호흡』 등 일곱 권의 산문집을 썼다.
내가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지난 9월, 23년 만에 백일장에 참여하고 11월 시상식에 다녀온 것이 계기였다. 그날 문학상 시상도 함께 이루어졌는데 우리 지역 이름의 신인문학상을 받은 사람은 다른 지역에 사는 고3 여학생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어린 학생이 문학상 수상자라는 것에 놀랐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것도 시를 배운지 6개월 만의 성과라고 했다. 오, 그럼 나도 한번 써 볼까. 그 신인문학상은 오로지 시 장르만 응모할 수 있었다. 아, 나도 저 단상에 서서 신인문학상을 받는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일까, 상상했다. 그렇다면 일단 시 쓰기를 배우는 것이 먼저지. 바로 희망 도서로 신청하고 두 달 넘게 기다리다 손에 들어온 책이다. 참 희한하다. 시 쓰기를 배워 볼 생각은 한 적이 없는데. 학창시절 시를 암송하고 애송 시집을 정성 들여 만들었던 추억은 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발상으로 선택한 책인데 미국 문단에서 꽤 유명한 시인이었다는 점과 시 쓰기의 기본기를 알려주는 내용이어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사설이 너무 길었다. 이제 시 쓰기 안내를 따라가 보자.
목차의 내용은 준비, 시 읽기, 모방, 소리, 소리의 또 다른 장치들, 행, 몇 가지 주어진 형식, 자유로운 시, 어법ㆍ어조ㆍ목소리, 이미지, 고쳐쓰기, 창작 교실과 고독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에서 보듯 시를 쓰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시작해야 하는지 준비 과정이 있고 시를 구성하고 있는 행과 연 등 소리와 이미지는 어떻게 담아내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고쳐쓰기를 한 다음 하나의 시로 탄생한다. 메리 올리버는 시 한 편을 사오십 번 정도나 수정한 뒤에 만족감을 느낀다고 해서 놀라웠다.
그렇다면 시를 쓰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메리 올리버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밀 연애 얘기를 꺼내면서 시를 쓰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 두 사람이 만날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것처럼 매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책상에 앉아있겠다고 약속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라고. 또 하나는 시 읽기다. 좋은 시는 최고의 스승이라고 했다. 좋은 시와 시인을 찾을 때는 스타일이나 시대, 나라와 문화의 경계에 갇히지 말라고 했다. 시인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단일 부족이고 자신은 그 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라고 말이다. 적어도 크리스토퍼 스마트, 이백, 마차도 같은 시인들의 시를 만날 것을 권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모방을 죄악으로 여기지 말고 최대한 활용할 때 진짜 시를 탐구하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본격적인 시 강의에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눈 오는 져녁 숲가에 멈추어」를 비롯한 존 키츠, 윌리엄 블레이크, 에밀리 디킨슨 등 여러 위대한 시인의 시를 언급하며 설명하고 있다. 영시 원문과 번역된 시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알파벳-소리의 계보, 두운, 모운 등 소리의 또 다른 장치들, 행과 길이와 리듬에 대한 설명으로 계속 이어진다. 길이와 리듬에서는 네 가지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1. 운율시에서는 시의 각 행을 운보로 나누고 각 운보는 강세(음절의 소리)로 나누어 전체적인 리듬 패턴을 나타낼 수 있다.
2. 행을 운보로, 운보를 각 구성 요소로 나누는 과정을 운율 분석이라고 한다.
3. 약강격 또는 약강운보는 약한 강세 다음에 강한 강세가 오는 구조다(기호ˇ´)
4. 약강격 다섯 개가 연속되면 약강 5보격이 된다(ˇ´ˇ´ˇ´ˇ´ˇ´).
약강 5보격 행은 영어 운율시에서 가장 널리 쓰이며 밀턴의 『실낙원』,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소네트, 워즈워스의『서곡The Prelude』등 특히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도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이처럼 5보격 행은 영미 시인들이 주로 쓰는 기본 행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영어 사용자의(영어로 말할 때의) 폐활량에 가장 잘 맞아 특수한 효과에서 제일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고. 일종의 표준이라고 했다.

<사진>54쪽
이 부분은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데도 시에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어렵게 다가왔다. 세상만사 중 무엇이 첫술에 배부르랴. 시를 읽고 또 읽으면서 직접 느껴보아야 할 것이다. 이어 메리 올리버는 시를 읽을 때 가장 강력한 즐거움을 주는 것은 리듬이라고 하면서 새내기 시인은 이 리듬 패턴들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는지 기억해두어야 한다고 했다. 리듬은 모든 것의 바탕이라면서.
시는 문학 장르 중에서 가장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경제적인 언어라고도 했던가. 이 짧다면 짧은 시가 상당히 많은 구성 요소를 내포한다는 것이 너무나 경이롭게 느껴진다. 리듬을 비롯하여 어법과 어조 목소리, 이미지, 수사까지 조화롭게 담아야만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시가 될 것이다. 엘리자베스 비숍의 시 「물고기The Fish」를 소개하면서 어떤 시가 얄팍하고 빈약하게 느껴진다면 시인의 어휘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꽃들 사이에 오래 머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시를 읽으면 ‘시의 구체성과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시를 쓰는 작업의 고독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는다. 창작 교실에서 동료들과 교류하며 창작 의욕을 불러일으키며 귀중한 자양분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지만 시는 시인에게 교류나 가르침이 아닌 깊고도 온전한 고독을 요구한다고 했다. 물론 시 쓰기 모임이나 창작 교실을 만류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고독을 견디고 즐기는 가운데 그리고 자기와의 교감을 중요하게 여길 때 진짜 작업을 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시 쓰기 안내서』는 그 누구보다도 시 쓰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한 책이지만 시를 읽는 사람들도 시라는 장치에 대한 통찰과 시의 역사에 대한 유익한 생각을 얻길 바란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시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나 나아가 시 창작을 목표로 하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깊은 인상을 준 문장
‘운동선수들은 몸을 관리한다. 작가 역시 시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감수성을 돌보아야 한다. 책, 다른 분야 예술, 역사, 철학, 그리고 신성함과 즐거움에 자양분이 있다. (중략) 활기차고 탐구하는 마음, 연민과 호기심, 분노, 음악이나 감정이 가득한 마음도 시의 가능성으로 충만하다. 시는 삶을 소중히 여기는 힘이다. 그리고 시는 하나의 비전을, 구식 표현을 쓰자면 믿음을 요구한다.’(p172~173)
‘시는 단어들의 집합이 아니라 추위에 떠는 이들을 위한 불이며, 길 잃은 이들에게 내려진 밧줄이며, 굶주린 자들의 주머니 속 빵처럼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다.’(p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