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시라고 해서 나쁜 시가 아니며 어려운 시라고 해서 좋은 시는 아니다. 시가 쉬워서 독자들과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할수 있어야 소통이 되는 것이다. 독자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시가 쉬워지는 것은 오히려 시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므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P123
문학이란 결국 삶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존재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인들이란 삶을 너무 과식해서 배탈이 난 자들이지만 그 배탈을 시로써 치유하며 독자들을 구원하고자신도 구원하는 것이다. 그때의 구원은 소통에서 온다. 소통이란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이다. 소통에도 마음이 없으면 통하지 않는다. - P124
등산을 하면서 깨닫는 것은 시든 사람이든, 산이든 그 사이에는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물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때 사물이 더 잘 보이게 되고, 모든 사물에게서 생명력을 탐•색하는 상상력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될 때 좋은 시를 쓸 수있다고 생각한다. 그 거리가 주관을 객관화시켜주기 때문이다. - P127
시를 쓸 때는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선명해지려면 소리를 듣는 것보다 사물을 눈으로 보는 것이 낫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인식이 달라지고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놀라운 시간도 그리 길지는 않다. 자신과 영혼이 교감되는순간은 찰나처럼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했고, 니체는 『우상의 황혼 - P130
에서 ‘사람들은 보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을까. 그래서시인은 설명하지 않고 대상을 우리 앞에 보여주는 것일까. - P131
봄이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여름은 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초록의 전율로부터 시작되는것이 아닐까 싶다. 그처럼 여름은 초록으로 꽉 찬다. 나무들을 보면서 나는 문득 인생의 목적은 자신을 아는 데 있고, 글쓰기의 목표는글 속에 햇빛을 반짝이게 하는 데 있다고 한 말을 곰곰 생각해본다. 그때 나는 시인도 온몸으로 꽃을 피우는 저 나무들처럼 살아 있는말의 거부(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135
시의 완성은 7의 영감과 3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데 7의 영감도3의 노력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3의 노력이란 공부를 말한다.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공부란 마음 공부, 자연 공부, 책 공부, 인생공부, 사람 공부 등등이다. 시야말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정신감응이다. - P137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좋은 시를 쓸 수 없듯이, 누구나살고 있지만 아무나 잘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나를 살리고 내 삶을 살린다는 뜻이다. 내가 생각하는, 생활에서 실천할 수있는 잘 사는 방법은 우선 매일 아침 처음 하는 말을 좋은 말부터 시작하고, 헛말 헛소리를 되도록이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시한줄이라도 읽는다면 하루의 시작은 푸른 나무 한 그루를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 P146
나에게 시는 무엇이며 시를 통해 내가 찾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시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시가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왜 나를 이 고통스럽고도 피 말리는 일에 등을 떠미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생각만 바꾸면 다른 직업을 가질 수도있고 다른 직업을 가진 적도 있었는데 왜 시인으로만 살려고 하는지자신에게 묻게 된다. 그때 나는 주저없이 잘 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어떤 일을 해도 시만큼 나를 살려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시인된 지 올해로 오십 년이 되었지만 시를 못 쓰고 산 얼마 동안은 살고있어도 사는 것 같지 않았다. - P149
산을 오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책보다 산 자체가 교과서이고 참고서이겠지만 시를 쓰는 시인은 무엇보다 시로써 평가된다는 사실을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시인보다 위대하다고 했을 것이다. 시인에게 시쓰는 일은 시작도 끝도 없고 처음과 마지막이 없다. 시인에게 시는 초발심(初心)으로 쓰는 세계이며, 시를 쓰는 순간에만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를 쓸 때 마음속에 늘 시의 나라가 세워지고 파괴되는 것이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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