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쁨과 슬픔,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일은 인간의 본능이자 특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이 어렵다면 어떻게 될까. 진정한 의사소통에 장애가 생기지 않을까. 사랑하는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 것이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바로 그런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알렉시티미아감정 표현 불능증을 겪고 있는 주인공이자 화자 윤재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뜻밖의 사건을 목격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심박사, 윤교수, 곤이를 만나면서 삶의 큰 부침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알렉시티미아1970년대에 처음 보고된 정서적 장애라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편도체가 작았던 윤재는 웃지 않는 아이여서 놀라게 했고 자라는 내내 엄마를 애태운다. 어린아이들은 별거 아닌 일에도 잘 웃는데 언제나 침착하고 겁이 없는 아이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섬뜩한 기분이 들 것 같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윤재는 중학생쯤 되는 한 아이가 여러 명에게 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근처의 구멍가게 아저씨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며 도움을 요청했는데 아저씨는 믿지 않았다. 무서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아저씨의 아들이었다니.

 



그 얘기는 사람들 사이에 삽시간에 퍼졌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더욱 문제가 심각해졌다. 바로 앞에서 넘어진 친구를 보고도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는 걱정이 되어 머릿속의 아몬드가 커지길 기대하며 열심히 아몬드를 먹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친구들은 윤재를 냉혈한’, ‘사이코’, ‘로봇등 온갖 별명으로 불렀다. 다급해진 엄마는 상황에 따른 감정 표현을 종이에 적어 학습하도록 했다.



차가 가까이 온다. 몸을 피하거나, 가까워지면 뛴다.

사람이 다가온다. 부딪히지 않도록 한쪽으로 비켜선다.

상대방이 웃는다. 똑같이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윤재에게는 어렵기만 했다. 이럴 때 이 감정인지 저 감정인지 감정의 이름조차 헷갈렸다.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이 암기로 가능할까. 엄마는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어서 7년 동안이나 연락을 끊고 살았던 친정엄마에게 SOS를 날렸고 셋이 살게 된다. 엄마의 끈질긴 노력 덕분인지 그럭저럭 학교에서 별문제 없이 지내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당연했던 본능적인 규범을 배우는 것이 윤재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세 식구가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듯했는데 윤재의 생일이었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밖에 나갔다가 괴한에게 할머니를 잃고 엄마는 식물인간 상태가 된다. 엄마와 할머니의 빈자리를 느끼긴 했지만 여태 살아왔던 것처럼 슬픈 것도 몰랐고 눈물도 나지 않았다. 두 여자가 윤재의 세계에서 전부였는데 다른 사람이 하나씩 윤재 앞에 나타났다. 이때 심박사와 윤교수, 곤이를 차례차례로 만나면서 도움을 받기도 하고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유일한 낙이 있었다면 엄마가 운영하던 헌책방에서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이었다.

 



책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순식간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의 고백을 들려주었고 관찰할 수 없는 자의 인생을 보게 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 겪어 보지 못한 사건들이 비밀스럽게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그건 텔레비전이나 영화와는 애초에 달랐다.’(P54)

 



윤재가 책을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여러 사람 손에서 막 자란 곤이는 거칠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을 하는 아이였다. 툭하면 윤재를 폭행하고 괴롭혔다. 그것은 윤재에게 통과의례였을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두 소년은 어느새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고 때리던 곤이에게 윤재는 어떻게 마음을 열게 되었을까. 본의 아니게 윤교수의 아들 노릇을 하게 된 빚진 마음 때문이었을까. 모두 다 나쁜 아이라고 했지만, 윤재는 곤을 착한 아이라고 했다. 감정 표현을 하는 걸 어려워했던 윤재가 곤이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간 것은 너무나 의아하고 감동적이기도 했다. 엄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듯이 서서히 윤재 안에 웅크리고 있던 단단한 어떤 것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것 같았다.

 

손원평 작가는 첫아이를 낳고 그 아기를 보면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썼다 한다. 아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변함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큰다 해도 변함없이? 그런 상상에서 윤재와 곤이의 캐릭터를 만들었단다.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교수님의 아들로 곱게 자랐을 텐데. 그토록 기다렸던 아들이 이런 모양으로 나타난 것을 보고 윤교수는 인정할 수 없었다. 곤이를 보면서 인간이란 자라나는 환경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흔히 아이를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디 아이뿐이겠는가. 타인도 그렇고 나 자신도 그렇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마음과 행동은 따로따로다. 공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윤재는 못 느껴서 괴로운데 곤이는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도 전부 못 느꼈으면 좋겠다며 울었다. 할머니가 괴한의 칼에 맞아 쓰러지던 날도 아무도 나서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윤재도 그랬다. 우리도 그렇다. 멀리서 일어나는 일은 그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라본다. 아몬드는 국내에서 1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아시아권 최초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 전 세계 30개국에 번역 출간되는 등 청소년, 부모, 성인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라고 한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를 담은 것 같다. 인간의 마음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고 하듯이 누구나 내 안에 괴물이 있다. 감정 표현에 장애가 없는 멀쩡한 사람이면서도 우리는 이웃의 어려움을 방관하며 외면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몰입하며 읽었다. 작가의 상상력이란 얼마나 대단한지. 해피 엔딩의 결말도 감동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