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작가‘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버리는 두 개의 독립 - P68

체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개별적인 작가 말입니다. 여기서 두 독립체라는 건,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의 존재, 즉 개를 산책시키고 규칙적으로 밀기울을 먹고 세차를 하는 등의 일을 하는존재와 아무도 안 볼 때 그 몸을 넘겨받아 글쓰기에 사용하는 같은 육체를 공유하지만 좀 더 희미하고 애매모호한 또 다른 존재를 의미합니다. - P69

모든 작가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방금 전에 읽었던 그 책의 작가를 절대 실제로 만날 수 없으니까요.
글을 쓰고 출간을 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립니다. 출간할 때가 되면 책을 썼던 그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이 되고 없지요. 또는그렇다고 알리바이를 둘러댑니다. 작가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이런 편한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므로 별 신경 쓸 필요는 없으나 그게 사실입니다. - P71

이 짧은 글은 닮은꼴 우화처럼 작가의 자기 의심을 압축해서 잘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작품 및 작품에 적힌 이름과 동떨어져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작가로 살아가는 쪽, 그러니까 세상 저바깥에 있는, 죽음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쪽은 피와살도 없거니와 진짜 인간도 아닙니다. 그러면 글을 쓰는 ‘나‘는 누구일까요? 펜을 쥐거나 자판을 두드리는 건 손이지만, 글을 쓰는순간 그 손을 통제하는 건 누구일까요? 둘 중 하나라면 어느 쪽이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요? - P81

책도 저자보다 오래 살거나, 이동하거나, 내용이 변한 것처럼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하기와 같은 방식으로는 아니에요.
그보단 읽어내는 방식에 따라 변합니다. 많은 논평가들이 말하듯,
문학 작품은 각 세대의 독자들이 새로운 의미를 찾고 새로이 발견하면서 재창조됩니다. 그러므로 인쇄된 책은 악보와 같습니다.
그 자체가 음악은 아니지만 음악가가 연주할 때, 즉 ‘해석할 때‘
음악이 되는 악보이지요. 텍스트를 읽는 행위는 음악을 연주하면서 동시에 듣는 것과 비슷해요. 이때 독자는 고유한 통역가가 됩니다. - P87

물론 앨리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기록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는 잘못된 유추입니다. 그럼에도 작가와 작가의 모호한 닮은꼴에 대해, 실제 글 쓰는 행위를 둘러싼 각 자아의 역할에 대해최선을 다해 추측해보면 이렇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는 바로 앨리스가 거울을 통과하는 순간에 벌어집니다. 바로 그 순간, 똑 닮은두 존재를 가로막던 유리 장벽이 녹아내리고 앨리스는 이곳도 저곳도, 예술도 삶도,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곳에 존재하게 됩니다. 동시에 그 모든 곳에 존재하게도 되지요. 그 순간 시간이 멈추면서또한 확장되고, 작가와 독자 모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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