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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 계속 쓰려는 사람을 위한 48가지 이야기
은유 지음 / 김영사 / 2023년 1월
평점 :
몇 달 전부터 한번 읽어봐야지 했던 은유 작가의 책을 읽었다. 글쓰기를 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상담을 해주는 컨셉인가, 제목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 작가의 책은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에 이어 두 번째 읽게 되었다. 글쓰기 수업을 시작한 지 13년이 되었고 세 번째 쓴 글쓰기 책이란다. 글쓰기 수업과 강연, 칼럼을 연재하는 등 꾸준히 활동하는 작가로서 글쓰기 현장에서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까지 담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이제 책 한 권을 낸 나로서는 칼럼 연재나 글쓰기 수업, 강연에 대한 이야기에 포스트잇을 잔뜩 붙여가며 읽었다. 마치 버킷리스트를 쓰듯이 나중에 내가 해보고 싶은 목록을 적어가며. 그러려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나만의 멘트를 기록해 보기도 했다.
내용의 구성은 1. 혼자 쓰다가 주저한다면 2. 일단 써보고자 한다면 3. 섬세하게 쓰고 싶다면 4.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면 이렇게 네 가지 주제에 48개의 질문과 답 형식으로 되어 있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초보자부터 좀 더 잘 쓰고 싶고 나아가 글로써 삶을 꾸려가고 싶은 이들까지 궁금해할 만한 내용이 들어있다. 요즘은 글쓰기 교실이 많이 활성화되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혼자 글쓰기를 하다 보면 이게 맞는 건지 답답한 마음도 들고 슬럼프에 빠지는 일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또 자신에게 과연 재능이 있는 건지, 글쓰기 수업이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지 등 혼자 글을 쓰며 의기소침한 이들을 위한 친절한 답변이 들어있다. 이렇게 방황하는 글쓰기 초기 시절을 작가는 ’글쓰기의 유년기‘라고 하면서 글쓰기 수업에서 학인들에게 자주 반복했다는 격려의 말을 들려준다.
“글을 못 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 쓴 글이 잘 쓴 글입니다.”(P19)
빙그레 미소가 퍼지지 않는가. 글을 못 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다 쓴 글이 잘 쓴 글이라며 다독여 주는 말에 큰 응원을 받은 느낌이다. 더불어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은 소외의 시간이 아니라 내면을 다지는 풍요의 시기로 생각할 수 있어야 오래 쓰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고 한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은 글을 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혹평을 받거나 내가 쓴 글보다 더 잘 쓴 글을 보면 주눅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럴 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분발의 계기로 삼는 것이 낫다고 한다. 미국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말은 우리를 안도하게 한다.
‘기죽지 마라! 곁눈질을 하거나 당신을 다른 동료들과 비교하지 마라! 글쓰기는 경주가 아니다. 아무도 진짜로 이기지 못한다. 만족은 노력에서 나오고, 그 결과 보상이 따른다 해도 그런 보상은 아주 드물게 오는 법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당신 가슴 속에 있는 것을 써라.’(P61~62)
다양한 지면에 글을 쓰면서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라서 그런지 글에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성폭력 여성, 노동현장의 참사 사건 등 그들의 인권을 위해 발로 뛰고 그러한 현실을 알리기 위한 글을 쓰는 작가에게서 소명의식과 글쓰기 철학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널리 알려서 함께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 때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글쓰기는 나쁜 언어를 좋은 언어로 바꾸어내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배워야만 가능한 일이고요. 저는 글 쓰는 사람으로 살면서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어떤 단어를 쓸 때 타자에 대한 존중이 깃들어 있는지, 배제나 차별의 시선은 없는지, 살펴보고 쓸지 말지 판단해요. 좋은 언어는 적어도 타인을 마음 상하게 하거나 재단하지 않는 언어라고 생각해요.’(P167)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모든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자기 생각을 내보이고 논증해서 독자를 설득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날것의 생각과 사례를 다듬고, 데치고, 익혀서, 먹을 만한 이야기로 접시에 담아내 제공하는 거죠.’(P227)
좋아하는 일을 통해서 전문가가 되고 성공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렇게 되려면 글을 쓰는 일이 일상이 되고 계속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전에 메이슨 커리의 ≪예술하는 습관≫을 읽은 적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하여 수전 손택, 코코샤넬 등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인데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서 어떻게 창조적 영감을 길어 올렸는지 하루의 루틴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남성 작가와 여성 작가의 글쓰기는 또 다르지 않을까. 육아와 가정을 돌보는 전통적인 사회 통념상 여성 작가의 글쓰기는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도 ≪연과 실≫을 쓴 앨리스 매티슨의 글쓰기 에피소드가 나온다.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두고 집안일을 하면서 지하실에서 글을 썼다는 얘기다. 어떻게든 글쓰는 시간을 만들고 꾸준히 실천할 때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떤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한 거라서 인상 깊었다. 노래를 잘 부르고 말을 잘 하려면 잘 듣는 것이 우선인데 글을 쓰는 것도 결국 잘 듣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다. 시인과 작가는 관찰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여기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냥 흘리지 말고 듣고 메모하는 습관이 글을 쓰는 재료를 축적하는 일이겠다. 작가는 어떤 이야기든 편견 없이 빨아들이는 커다란 귀, 작은 차이도 구별해내는 섬세한 귀가 있는 사람이 작가일 거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 책은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에 관심 있는 독자가 많이 찾게 될 것 같다. 또 나만의 책을 쓰고 싶은 사람들도 말이다. 유명한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에피소드를 인용한 글이 풍성해서 좋았다. 나의 글쓰기 역사를 돌아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일기부터 시작해서 20대 이후로는 방송 매체에 투고하거나 각종 백일장에 열심히 쫓아다니던 추억이 있다. 그리고 오래도록 로망이었던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쓰기에 이르렀다. 계속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에서 나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작가들에게 있어 글쓰기는 아마도 비슷한 이유로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이사벨 아옌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가 악마를 쫓아내고 천사를 맞이하고 제 자신을 탐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글쓰기입니다.”(P288~289)라고. 글쓰기는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많은 독자가 자신을 탐구하는 길에 동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