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는 우리를 들뜨게 하지
바나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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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있고 소파에 앉아 대바늘뜨기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오렌지빛 표지와 어우러져 따뜻한 겨울밤의 사랑방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그렇게 책 제목도 잘 지었는지! 작가의 뜨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었다. 아일랜드인 남편과 함께 더블린에 살면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바나의 뜨개 라이프 에세이다. 어려서부터 손으로 꼼지락거리는 것을 좋아해서 십자수, 프랑스 자수, 건담 피규어, 퍼즐, 그림 그리기 등 여러 경험을 했지만, 평생 하고 싶은 것은 코딩이었고 그것이 직업이 되었다 한다. 개발자는 반복을 싫어한단다. 그런데 어떻게 같은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뜨개를 하게 되었을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과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작가의 일상도 변화시켰다. 바로 코로나 락다운으로 재택근무를 하게 된 상황에서 노동요를 고르다가 대바늘로 뜬 스웨터를 보고 니터들의 커뮤니티 라벌리(Ravelry)’의 세계에 들어갔다가 뜨개에 푹 빠지고 만다. 뜨개는 공방에서나 삼삼오오 모여 뜨개를 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던 바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렇게 2년 정도 되었을 때 뜨개 이야기를 책으로 내보자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았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뜨개를 경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게 되었다. 예전에 가방 하나와 조끼 하나를 겨우 떠보고 난 후 뜨개와 멀어졌던 나로서는 전문가 수준으로 성장한 그녀가 놀랍기도 하고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뜨개 도구가 그렇게 다양하다는 것도 또 낯선 전문용어나 이 분야의 디자이너도 언급되고 있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전문적인 예술의 분야이며 다양한 국적의 니터들이 뜨개를 사랑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원래 시간을 때우려고 시작했던 뜨개가 이제는 평생 취미가 되었다고 한다. 뜨개옷은 왠지 촌스럽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지만 바나는 뜨개로 자신의 옷을 만들어 입으며 자존감이 높아지고 이전보다 삶이 더 나아졌다고 한다. 술집과 맛집을 순례하던 그녀가 뜨개의 고수로 변신하고 미래의 꿈을 다시 쓰는 모습이 흥미롭고 멋져 보였다.

 



종일 앉아서 손을 놀리며 한 코 한 코 뜨면서 정성과 인내심이 필요한 뜨개 작업을 어떻게 단시간에 전문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바나는 그것을 함뜨’(함께 뜨개)의 공으로 돌린다. ‘뜨친’(뜨개 친구), ‘문어발’(뜨개를 하다 완성하지 못한 것), ‘뜨친놈’(뜨개에 미친 놈) 등 그들끼리 통하는 재미있는 줄임말을 접하며 폭소가 터졌다. 뿐만 아니라 뜨개하며 먹는 간식 이야기, 코를 빠뜨려 아까운 실을 풀어서 몽땅 버렸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뜨개에 진심인 지인들 이야기가 뭉클한 감동을 준다. 왠지 고루하고 다소곳하고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뜨개를 이렇게 즐겁게 할 수 있다니. 다양한 직업의 여성만이 아니라 실 가게를 운영하며 뜨개를 하는 남성의 이야기도 나온다. 16세기 말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남자라면 누구나 필수적으로 뜨개 스타킹을 가지고 있어야 할 만큼 뜨개가 유행하였고, 1400년대부터 뜨개의 예술성을 발전시키고 뜨개의 질을 향상시켜 더 부유한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남성만을 위한 뜨개 길드가 만들어졌다는 역사적 사례도 흥미로웠다. 어린 시절 우리집에 놀러오셨던 고모부가 아랫목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AI가 여러 분야에 도입되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뜨개는 어쩐지 잊고 있던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하지만 실값과 뜨개 작업에 드는 시간을 환산하면 오히려 가성비 좋은 기성복을 사 입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니터들은 뜨개를 하는 걸까. 육아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여성, 매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목격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줌이나 카톡에서)뜨개를 하면서 마음의 평화는 물론 도전과 성취감을 맛보면서 삶의 활력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뜨개는 요가이자 명상이라며 뜨개 예찬을 멈추지 않는다. 함께 그런 시간을 보내며 당연히 우정도 깊어졌을 것이다.

 



바나는 뜨개 유튜버가 되고 40개의 아보카도를 까서 염색에 도전하는 등 도안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그녀 지인의 말대로 미쳐도 아주 잘 미친결과물이 이 책으로 나온 거였다. 감히 흉내도 낼 수 없을 것 같은 고난도의 패턴을 가뿐히 소화한 완성작 사진들을 보며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리고 아일랜드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 동그란 색색의 탐스러운 실타래들, 한 코 한 코 엮어가는 시간이 쌓이고 완성된 옷을 보며 느끼는 그들의 뿌듯한 성취감이 내게도 전해져왔다. 바나처럼 몰두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면 어떨까. 밋밋한 일상에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평생의 취미가 되어 미처 몰랐던 재능을 찾아내고 좀 더 나은 삶이 될지도 모른다. 나를 들뜨게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바나의 통통 튀고 재미있는 뜨개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해답을 얻을지도 모른다.

 

 

 

다시 도전해도 못하겠으면 또 잠시 치워 두고 할 수 있는 다른 걸 뜨면 된다. 꼬불꼬불 라면처럼 말린 실은 스팀을 주면 되니, 내가 잃을 건 시간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그 시간 역시 결코 낭비한 건 아니다. 결국은 그런 경험들이 모여서 내공이 쌓이고 언젠가는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점을 찍는 거라고 생각하고,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할 시간에 일단 도전해보기를 바란다.(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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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6-20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전해 보고 시행착오가 생기고 또 생기고... 결국 그것들이 쌓여 마음의 근력을 키우고 능력이 키워지는 것.^^

모나리자 2023-07-01 18:0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결국 좋아함과 끈기의 문제인 것 같아요.
답글을 이제야 달았네요.ㅎㅎ
더운 날씨입니다. 건강한 7월 보내세요. 페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