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의 독서 (문고본) 마음산 문고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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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136쪽의 얇은 책인데 예상대로 금세 읽지 못했다. 프루스트가 쓴 글이 아닌가. 이 책에는 세 편의 서문이 들어있다. <독서에 관하여>는 영국 작가 존 러스킨의 책을 번역하고 쓴 역자 서문이다. 나머지 두 편 <침울한 주거지에 행복을><달콤한 비축품>은 지인들을 위해 쓴 서문이다. <독서에 관하여>99쪽이나 되는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긴 이야기다. 러스킨의 작품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프루스트 자신의 어린 시절의 독서 기억을 떠올리며 독서에 대한 흥미로운 성찰을 펼쳐나간다.



아마도 우정은, 개인을 상대로 한 우정은 변덕스러운 무엇인데, 독서는 하나의 우정이다. 그러나 적어도 진지한 우정이다. 독서가 죽은 이를, 부재한 이를 상대한다는 사실이 독서에 사심 없는 무언가를, 거의 감동적인 무언가를 부여한다. 게다가 독서는 다른 우정들을 추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우정이다.’(P78)

 



박웅현의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발견한 문장을 프루스트의 이 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책과 나누는 우정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누는 우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지한 우정이라는 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 속에서 우정은 돌연 본래의 순수성을 되찾는다. 책과 나누는 우정에는 상냥한 말이 필요 없다. 이 친구들과 우리가 저녁 시간을 같이 보내는 건 정말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들과 헤어지는 걸 대개 아쉬워한다. 우리가 그들 곁을 떠나고 나서도 우정을 망가뜨릴 이전 생각들은 전혀 들지 않는다.’(P79)

 



책에 대한 기호가 지성과 함께 커진다면, 우리가 보았듯이 그 위험은 지성과 함께 감소한다. 독창적인 정신은 독서를 자신의 개인적 활동에 종속시킬 줄 안다. 그에게 독서는 그저 가장 고결한, 무엇보다 가장 고상한 소일거리일 뿐이다. 독서와 지식이 정신의 우아한 예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성과 지성의 힘을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만, 우리의 정신적 삶의 깊이에서만 기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의 태도교육이 이루어지는 건 다른 정신들과의 접촉 안에서, 다시 말해서 독서 속에서다.’(P85)

 



‘(중략) (Beaune)같은 도시를 거닐면서 느끼는 작은 행복, 우리는 라신의 비극이나 생시몽의 책 한가운데를 배회하면서도 이 같은 행복을 느낀다. 이 작가들의 책이 사라진 언어의 모든 아름다운 형태를 간직하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관습이나 느끼는 방법들에 대한 기억을, 현재의 그 무엇과도 닮지 않은 과거의 흔적들을, 시간이 훑고 지나면서 색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 과거의 완강한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P90)

 



오래도록 어린 시절의 독서의 기억과 독서에 대한 성찰이 이어진다. 독서와의 우정을 논하는 부분은 감동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프루스트의 글을 읽다 보면 헤매기 일쑤다.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도대체 끝이 어디일까 확인하게 된다. 이 글은 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예고하는 글이라고 했다. 존 러스킨의 책에 쓰는 서문인데도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쏟아놓는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기억에서 희미해진다. 프루스트가 책을 대하는 자세를 배워야 할까. 그는 작품을 창조한 정신이 그 작품에 담아낸 아름다움만 우리를 위해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훨씬 더 감동적인 다른 아름다움도 받아들이는데, 그것들의 재료와 쓰인 언어가 삶의 거울과 같다는 사실에서 오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후루룩 읽고 잊어버리는 보통의 독자와 다르지 않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관습에 대한 향수, 기억과 지나간 시간의 흔적은 프루스트의 작품에 잘 드러나는 주제다. 프루스트의 글은 음미하며 반복하여 읽지 않으면 문장속에서 헤매다가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래서 손바닥만한 책이지만, 프루스트를 애정하는 독자가 아니고서는 읽다가 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세기 소설의 혁명”,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이라고 평가되는 잃시찾 시리즈에 도전하고 싶은 독자라면 프루스트의 독서관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프루스트의 문학에 대한 감수성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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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6-11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책은 늘 가까이에 있는 친구 같아요. 제 곁을 떠나지 않는. 손만 뻗으면 빠져 들 수 있는.
책이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생각해 보게 되어요.

모나리자 2023-06-13 16:2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냥 숨쉬는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책은 친구였지요.^^
오늘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페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