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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지만, 결국엔 위로 - 다큐 작가 정화영의 사람, 책, 영화 이야기 ㅣ 좋은 습관 시리즈 17
정화영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2년 2월
평점 :
‘위로’란 말은 얼마나 따뜻한 말인가. 좋은습관연구소에서 나온 이번 신간은 ‘위로’를 테마로 한 정화영 작가의 에세이다. 고교시절부터 방송작가가 꿈이었던 그녀는 생애 처음으로 기획한 SBS TV 문학상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을 받으며 메인 작가로 데뷔했다 한다. 이후 2018년 <엄마의 봄날>로 휴스턴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백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꿈을 이루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면 누구보다 활력 넘치는 에피소드가 나올 줄 알았는데, 스무 개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남편과의 불화와 외로움으로 불륜을 시작한 친구의 사연부터 배려 없이 내뱉은 상사의 말에 감정의 상처를 받고 위로를 나눈 선후배 이야기, 친구를 위로하려다 서툰 위로에 어긋나버린 우정에 대한 후회 등 일터에서 만난 출연자의 사연들을 담고 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고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고,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비교와 경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 사회에서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우리는 지금 3년째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제각각 다양한 이유로 힘들다고 하는데, 코로나라는 악재를 핑계로 인간관계가 더욱 소원해지지 않았을까, 문득 주변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방송 현장에서 일하는 방송작가여서 그런지 에피소드가 다양하고 드라마틱하게 느껴졌고 소설 같은 느낌도 들었다. 여기에 작가가 읽은 책이나 영화, 사람들 이야기 등이 곁들져 술술 잘 읽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책이고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과 그 해결방법을 모두 책과 영화에서 말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위로받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책과 영화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위로받곤 하지 않은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많지만, 나중에 읽을 독자를 위해 몇 가지만 소개해 보겠다.
어떤 재난이나 곤경에 처한 이야기를 만나면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 알게 된다. 여기에도 코맥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와 동명의 영화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책으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난 속에 버려진 아빠와 소년이 ‘불을 지키기 위해’ 끝없이 걸어야 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고받는 이야기에 시선이 머물렀다.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는 고통 속에 있지만, 지금 우리가 여기 있고,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하다, 는 아빠의 말이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에 갇힌 상황에서는 누구나 무력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작은 행복을 놓치기 일쑤다.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 아무런 위험에 휩싸이지 않고 안전한 집안에서 평온하게 지낼 수 있는 행복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방송 출연자의 안타까운 사연 이야기로 풀어내는 위로 이야기였다. 중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가족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치매 환자가 된 엄마와 함께 살게 된 이야기다. 지난날을 원망한들 기억이 없는 엄마에게 따질 수 있을까. ‘기억’은 안 좋은 기억은 더 오래 가슴 속에 남아 있지 않은가. 작가는 ‘기억으로 삶을 해석하는 습관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때가 있다.' 고 했다. 또 기억도 다르게 생각하면 다르게 쓰인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나쁜 기억은 깨끗이 잊고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좋은 인생을 만드는 길이 아닐까. 방송작가라는 특성상 다양한 상황의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하다 보면, 저절로 공감 능력이 생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자기만의 철학이나 사물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다를 것이고 물론 노력이라는 수고가 들 것이다.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어버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도 작가의 일에 대한 애정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따뜻한 시선 덕분이 아니었을까.
‘아픈 과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 새로운 기억을, 그것도 행복한 기억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P230)
이 밖에도 ‘분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도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비대면이 일상화되어 있는 요즘에,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쏟아내는 감정표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관계를 지키면서도 나를 지키는 방법을 작가의 경험과 에피소드를 사례로 알려준다. “당신이 그렇게 하면 나도 아파요” 하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기 스무 개의 이야기는 우리와 관계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과 회사 생활 등 인간관계 속에 흔히 부딪힐 수 있는 상황의 이야기다. 어쩌면 이야기 속에서 이건 내 얘기잖아?, 하는 공감을 자아내며 동지의식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를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게 될 줄 몰랐다.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걱정과 관계 속에서 힘듦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달라진 일상 때문에 소원해진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위로 이야기는 우리의 주변을 한번 돌아보자는 메시지로도 들렸다. 어떤 특별한 위로는 아니다. 그저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함께 울고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는 얘기다. 어쩌면 너무 평범한 얘기 같지만, 지금 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따뜻한 ‘위로’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 이 리뷰는 좋은습관연구소 대표님이 보내주신 책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