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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인문학 -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평점 :
언제부턴가 인문학 열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식을 줄을 모른다. 퇴근길 인문학 등 책 제목에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붙은 다양한 인문학 관련 도서가 계속 나오고 있다. 어쩌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는 많은 부분 우리 삶을 변화시켰고 앞으로의 삶의 문제를 인문학 관점에서 찾으려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정일 저자는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카드 뉴스에 소개된 ‘은유’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 호기심으로 읽게 되었다. 저자는 인문학은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문학 전공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며 그런 취지에서 ‘만인’에게 전하려는 의도로 쓴 책이라 한다. 도정일 저자는 우리 시대의 ‘공적 지식인’으로 불리고 있으며 책 읽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을 설립하였고 어린이 전문 도서관인 ‘기적의 도서관’을 전국 14개 도시에 건립하였으며 저서로 『보이지 않는 가위손』, 『공주는 어디에 있는가』 등 다수 있다.
여기서 다루는 내용은 1부 만인의 시학 2부 만인의 인문학 3부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우리의 삶을 시학으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삶의 작가이며 창조자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연습이 없는 실전이다. 누구나 삶에서 무언가를 추구하고 성취하고자 노력한다. 각자가 삶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야 하는데 어떤 자세와 태도로 살아가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시학의 눈’을 갖고 삶을 살아갈 때 ‘이야기를 쓰듯 인생을 살기로 하는 사람은 자기 삶을 함부로 운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고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알려주고 싶다면, 아마도 한시를 허투루 살지는 않을 것이다. 기초가 튼튼한 집을 짓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나아가 이야기를 쓰듯 인생을 살기로 할 때 세상의 모든 존재물과 이야기로 연결되고 대화하고 정을 통하고 서로 대접하며 살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존재의 확장’이며 인간관계에서의 ‘사랑의 확장’이며 삶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 신화 읽기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신화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에 실용적인 의미에서는 과연 유익할까 싶은 생각이 앞선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의 삶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답답한 상황이 되었을 때 마술처럼 펼쳐지는 신화의 세계에서 대리만족을 느낀 적 있지 않은가. 바로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신화 읽기의 혜택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신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현실원칙’을 들이대며 비교하지 말고 환상적인 세계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즐기는 태도야말로 신화 읽기에 가장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신화가 현대 우리 삶에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은 ‘정의가 있는 세계를 선택하고자 한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으로 나아가는 변화의 시대이다. 이러한 상황에 신화 읽기라니 격세지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신화는 우리 삶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신화는 결국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화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을 읽으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두 번 읽었는데 2부 만인의 인문학에서 또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그가 황제가 되고 난 후 한 사람의 노예를 두고 하루에 몇 번씩 “폐하, 폐하는 인간이십니다.”라는 말을 하도록 특별한 임무를 맡겼다는 유명한 일화에 다시 감동했다.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자는 인생의 유한성, 유약성, 오류 가능성이라는 인간 한계조건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과학, 문학, 예술, 신화 등 다양한 주제로 풀어나가는 인문학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한번 인문학은 우리 삶과 아주 밀접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내가 예전에 아주 어렵게 겨우 읽어냈던 『작은 사건들』의 작가 로망롤랑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사실 나는 그 책을 읽은 후로는 로망롤랑의 작품을 읽지 않았다. 그런데 정희진 작가 덕분에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긴 이때, 그가 “이분법 사라지는 곳에 낙원 있다.”는 멋진 말을 했다니, 새로운 관심이 생졌다. 선악, 백흑, 남녀, 이성/감성, 아(我)/타(朶) 등 인간이 만들어낸 이분법 말이다. 그래서 다시 로망롤랑의 작품을 만나고 싶어졌다. 이처럼 이 책을 읽은 소득이라면 선입견을 갖고 있던 작가나,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 읽지 못했던 책을 읽고 싶어졌다는 점이다. 그 책은 바로 ≪코스모스≫다. 제2의 칼 세이건이라고 불릴 만큼 천문학계에서 영향력 있는 학자가 된 닐 타이슨에게 ‘미래의 과학자에게’라고 서명해 준 책 한 권과 “오늘 밤 눈 때문에 버스가 못 가면 그냥 우리 집으로 와서 자게”라고 따뜻한 말을 건넸다는 칼 세이건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최근에 쓴 글이 아니라 다양한 지면에 실린-20년도 훨씬 넘은 글도 많다-원고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어서 현시점과 맞물리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대체적으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생각 거리를 안겨주었기에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인문학적인 통찰을 얻고 싶은 독자라면 좋은 혜안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