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나무 아래 - 시체가 묻혀 있다
가지이 모토지로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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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인스타에서 먼저 접하고 벚꽃 무리를 닮은 분홍빛 화사한 표지에 사로잡혔다. 처음 만나게 된 작가 가지이 모토지로가 31세에 요절한 천재작가라고 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작가 소개를 읽고 나서 맨 뒤의 작가 연보를 읽었다. 형이 빌려온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읽고 나쓰메 소세키에 빠져서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 카지노 소세키라고 서명하기도 했다는 얘기를 접하고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좋아했다니. 요즘 긴 글만 계속해서 읽다가 만난 단편은 짧은 호흡으로 쉬면서 생각할 수 있는 틈이 있어 읽기에 좋았다.

 


 가지이 모토지로가 실제로 작품 활동을 한 것은 7년 정도이며, 거의 병상에서 구상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온천 여관에 요양하러 가서 쓴 이야기가 많고, 아픈 사람, 불안을 안고 사는 우울한 사람, 피로에 지친 고단한 사람 등이 많이 나온다. 그렇게 병으로 시달리는 중에도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그 열정에 숙연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고통스런 삶 속에도 희미하지만, 유머도 느껴졌다. 그랬기에 그 힘으로 버텨냈겠지. 열두 편의 단편 소설이 들어있는데 이 중 인상적인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태평스러운 환자


 폐병으로 고생하는 요시다가 주인공이다. 열이 오르고 심한 기침으로 고생하면서도 단순한 독감이라 여기고 의사를 만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의사를 찾아갈 무렵에는 꼼짝도 못 할 만큼 쇠약해졌다. 잠을 제대로 못 이루게 되면서 불안감에 휩싸여 온갖 생각이 부유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요시다의 방에 고양이가 들어온다. 역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에 등장한 고양이를 연상시켰다. 몇 번이고 쫓아내어도 자꾸만 들어와서 아픈 요시다의 신경을 건드린다. 이 고양이도 나름 자기주장이 강한 녀석 같다. 전에는 요시다의 베개 쪽으로 찾아들었는데 이번에는 이불에서 잠들려고 한다. 아무리 못 오게 막아도 대담하게 베개 위로 올라와 이불 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기분 좋게 잠 잘 수 있는 것이 소원인 요시다는 이제 고양이와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고양이 때문에 어머니를 깨울 수도 없고 이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억누르느라 안간힘을 쓴다.



 다행인지, 조금 견딜 수 있게 되었을 때 힘들었던 2주간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그 병으로 죽었다든가 병을 치료하려고 별별 방법을 쓰다가 죽어간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우울해진다. 게다가 어떤 사람이 폐병을 낫기 위해 인간의 뇌수 구이를 먹었다며 어머니가 요시다에게 그것을 권하자 심기가 불편해진다. 또 언젠가는 누군가 목매어 죽은 밧줄을 그냥 속는 셈치고먹어 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고, 병원에서 만난 간병인은 주전자에 생쥐를 넣고 다린 것을 아주 조금씩 나눠 마시다 보면 한 마리를 채 다 먹기도 전에낫는다는 끔찍한 말을 듣는다. 정작 자기 자신은 태평한 환자이건만 주위에서 먼저 알아차리고 처방전을 내리는 것이다. 병에 걸려 마음이 약해진 사람들에게 무엇이 좋다는 말엔 귀가 솔깃하기 마련이지만 는 그렇지 않다. 결국 병이란 살아있는 동안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는 말로 매듭짓는다.

 


병이란 결코 학교의 행군처럼 견딜 수 없는 약한 사람을 행군에서 제외시켜주지 않는다. 마지막 죽음의 골로 갈 때까지는 어떤 호걸이든 겁쟁이든 모두 같은 줄에 서서 마지못해 질질 끌려가는 것이다.’(P41)

 


어느 벼랑 위에서 느낀 감정

 


 화자는 어느 무더운 여름 저녁 한 카페에서 두 청년의 이야기를 듣는데, 그 얘기가 소설의 주된 이야기다. 벼랑 위에서 다른 사람의 창문을 바라보는 이야기다. 창문을 통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린아이와 밥을 먹고 있는 남자를 보며 눈물을 흘릴 뻔했던 기억,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는 장면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보였다. 어떤 때는 음흉한 욕망으로 비밀스럽게 다른 사람을 훔쳐보려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그 감정은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바뀐다.

 


그것은 인간의 기쁨이나 슬픔을 초월한 어떤 엄숙한 감정이었다. 그가 생각하던 인생의 무상함이라는 감정을 넘어선 어떤 의지력이 느껴지는 무상함이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풍습을 떠올렸다. 죽은 자를 눕히는 석관의 표면에 음탕한 장난을 치는 사람의 모습이나 암양과 성교를 하는 목양신의 모습을 새기던 그리스인의 풍습을……. 그리고 생각했다.‘

그들은 모른다. 병원 창문 안 사람들은 벼랑 아래 창문을. 벼랑 아래 창문 안 사람들은 병원 창문을. 그리고 벼랑 위에 이런 감정이 있다는 것도…….’(P110)



 두 청년 이시다와 이쿠시마는 비밀스럽게 타인을 엿보는 행위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이들의 창문 바라보는 행위는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살아가는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고,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다는 인식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지는 않은지.

 


겨울 파리

 


 아픈 몸을 요양하기 위해 온천 여관에서 지내면서 겨울 동안 방에서 함께 살았던 파리들을 관찰한 이야기다. 바깥으로 절대 나가지 않고 병자인 를 흉내 내는 것 같다고 한다. 여름의 파리는 씩씩하지만, 겨울의 파리는 움직임이 느리다. 하지만 말라죽기 직전인 파리들이 햇빛 속에서 교미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면서 이 무슨 살고자 하는 의지란 말인가!‘ 라며 탄식을 한다. 그저 자연스러운 파리들의 생존 본능을 깨닫고 화자도 힘을 얻는 듯하다.

 


 한번은 우체국에 나갔다가 지쳐서 승합차를 얻어 탔는데, 여관으로 돌아갈 길이 멀어진 것을 알아차리고 어두워지는 산속에 내리게 된다. 아픈 몸을 산골짜기에 스스로 내치게 된 셈이다. 첩첩산중에 쥐죽은 듯한 고요와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걷고 또 걷는다. 자신이 내버려두고 온 우울한 방이 생각나고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는 상상을 한다. 이 산속을 벗어나려면 걷고 또 걷는 수밖에 없다.

 


이 얼마나 괴롭고도 절망적인 풍경인가. 나는 나의 운명 그대로인 길 안을 걷고 있다. 이것은 내 마음 그대로의 모습이고, 여기에서 나는 햇빛 속에서 느끼는 어떤 기만도 느끼지 않는다. 내 신경은 어두운 전방을 향해 뻗어 있고, 지금은 나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형벌 같은 어둠, 살을 에는 듯한 혹한, 그 속에서 내 피로는 즐거운 긴장감과 새로운 전율을 느낄 수 있다. 걸어라, 걸어라, 지쳐 쓰러질 때까지 걸어라.

나는 잔혹할 정도로 자신을 채찍질했다. 걸어라. 걸어라. 걷다가 죽어버려라.(P132)

 


 극한의 추위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산속을 걷는다는 건 얼마나 오싹한 일인지. 그럼에도 차가운 공기 속을 가르며 걷는 화자에게서 어떤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온 는 상한 몸으로 며칠을 앓아누워 있다가 문득 파리가 한 마리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후련한 마음이기보다는 오히려 파리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버린 것을 알고 우울해진다. 귀찮은 존재였지만 무언가 움직이는 생물과의 동거에서 무언지 모를 살아있음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레몬


 교토가 배경인 이 이야기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한 덩어리를 안고 있는 화자가 온종일 이 거리 저 거리를 떠돌아다닌다. 초라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에 강하게 끌렸는데, 큰길보다는 지저분하고 친숙한 뒷골목이 좋았다. 병색이 짙은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고 깨끗한 여관방에서 한 달 정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자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화자가 보였다. 레몬을 좋아하던 는 과일가게에서 레몬을 샀다.

 


나는 오랜 시간 거리를 걸었다. 계속해서 내 마음을 짓누르던 불길한 덩어리가 레몬을 손에 쥔 순간부터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 같아서 나는 거리 위에서 굉장히 행복했다. 그렇게도 집요했던 우울함이 이런 과일 하나로 풀리다니. 때로는 확실하지 않은 어떤 것이 역설적으로 사실인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얼마나 불가사의한가.’(P147)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이더라도 무언가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는 마루젠(서점)에 가서 화집을 탑처럼 쌓고 그 위에 레몬을 올려놓고 나온다. 마치 폭탄을 설치하고 나온 악당이 된 것처럼 기이한 상상을 하면서. 역자 후기의 해설에 의하면 <레몬>의 무대인 마루젠 교토는 1907년 산조에 문을 열어 1940년 가와라마치로 자리를 옮겨 영업하다가 2005년 폐점했다고 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고 교토 시민들은 이 서점 예술 서적 코너에 레몬을 놓아두는 이벤트를 벌여 화제가 되었다는 얘기가 들어있다. 이 작품의 단편들을 통해서 작가가 고통 속에서도 마냥 주저앉지 않는 맑고 깨끗한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기이한 상상력과 짧은 일탈도 때로는 삶의 의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벚꽃나무 아래


 봄이 왔다. 겨우내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여린 싹이 나오고 아름답게 활짝 핀 꽃을 보면 경탄해 마지않는다. 그게 보통 건강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 화자는 너무 아름답게 핀 벚꽃을 보고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생각해 보니 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기 때문이란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오랫동안 병에 시달리다가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면 싱싱하게 피어오른 아름다운 꽃도 너무 낯설게 보이지 않을까. ‘는 아픈데 주위의 모든 것은 건강하고 빛나 보인다. 그래서 더욱 정이 가지 않는다. 뭔가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위안거리를 찾아야 한다. 아래의 문장이 이것을 증명해 준다.

 


이 골짜기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휘파람새와 박새도 하얀 햇빛을 새파랗게 물들이는 나무의 새싹도 단지 그것만으로는 몽롱한 이미지에 불과하지, 나에게는 슬프고도 잔인한 사건이 필요해. 그런 균형이 있어야 비로소 내 이미지가 명확해지거든. 내 마음은 악귀처럼 우울하게 메말라 있어. 내 마음속 우울함이 완성될 때만 내 마음은 온화해지지.’(P200)

 


 아픈 시간을 오랫동안 보내다 보면 누구든지 악귀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저 벚꽃이 원래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시체를 파먹고 살아서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는 거라고 상상하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 아닐까. 내 동생이 예쁘지만 내가 좀 더 예뻤으면 좋겠다는 시가 떠올랐다. 조금 삐딱한 시샘이라도 해서 화자가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눈감아 주고 싶다. 사물을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고유의 미를 발견해 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 이전에 작가 자신이 고통스러운 삶을 이겨내는 방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화자의 기이한 상상력에 충분히 공감하고 미소짓게 한다.

 


아프고 고단하고 지친 삶 이야기를 읽으며 건강한 것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가 새삼 느꼈다. 이제 벚꽃은 다 지고 말았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누구나 피로감이 역력해 보인다. 몸은 건강하지만, 마음이 복잡한 오늘을 살고 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남긴 이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우리가 가진 소박한 일상이 한층 더 소중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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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5 0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랑 내용이 완전 끌리네요^^

모나리자 2021-04-15 10:26   좋아요 1 | URL
그쵸.ㅎ
병상에 있던 시간이 많았다는데 이렇게 작품으로 남겼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글쓰기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받지 않았을가 싶기도 해요.

문장들이 명징하고 생명력이 느껴져서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