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마치 회계 장부나 유언장처럼 가서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모든사람에게 동일한 물질로 구성된 전체가 아니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타인의 생각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아는 사람을보러 간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아주 단순한 행위라 할지라도, 부분적으로는 이미 지적인 행위다. 눈앞에 보이는 존재의 외양에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 모든 관념들을 채워 넣어 하나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 P43
나는 어머니로부터 눈길을 떼지 않았다. 이제 모두들 식탁에 가 앉으면, 엄마는 내가 저녁 식사가 끝날 때까지 남아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버지의 비위를 거스르지않으려고,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는 내 방에서 하는 것처럼 여러 번 키스를 해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하기 시작하면 식당에서 그 시간이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그렇게도 짧고 덧없는 키스에 대비하여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해 두자고 다짐했다. - P57
내 방에 올라가야 한다는 슬픔은 계단 특유의 바니시 냄새를 흡입함으로써 - 정신적인 침투보다 더 독성이 강한 —— 아주 빨리, 거의 순식간에, 갑작스럽고도 엉큼하게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난 모든 출구를 막고, 덧문을 닫고, 이불을 들추고, 나 자신의 무덤을 파헤치면서, 잠옷이라는 수의를 걸쳐야만 했다. 그러나 여름에 큰침대 주위에 친 커튼 안에서 자는 것이 너무 더워 방 안에 들여놓은 작은 침대로 들어가 몸을 파묻기 전에, 갑자기 반항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유죄 선고를 받은 자의 술책을 써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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