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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김정운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는데 문화심리학자라는 직함이 주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엉뚱함과 진지함이 어우러진 재미있던 글로 기억한다. 이 책 또한 그랬다. 제목에서 벌써 낭만이 느껴진다. 바닷가 공간에 작업실이라니! 뭍과는 차원이 다른 시간이 흐를 것 같다. 아무 연고도 없는 여수 바닷가에, 어릴 적 좋아하던 꿈을 위해 화실을 마련하기까지의 과정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역창고(美力創考)’,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는 멋진 뜻이 담긴 공간. 여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운 풍경과 직접 그린 그림도 눈을 즐겁게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슈필라움’을 꿈꾸며 살아온 지난 몇 년간의 삶을 ≪조선일보≫에 연재했고, 그 글들을 모아서 출간했다고 한다.
생소하고 낯선 단어 ‘슈필라움(spielraum)’이 왠지 근사하게 느껴진다. ‘놀이(Spiel)’와 ‘공간(Raum)’이 합성어로 우리말로는 ‘여유 공간’ 정도로 번역할 수 있으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단다.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인데 그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단어가 우리말에는 없다고 했다. 우리에게 그러한 공간이 아예 없었거나 그런 공간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도 예전에 집이 아닌 다른 곳에 나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시내 접근이 용이하면서도 약간 변두리라도 공기 좋은 곳. 마루가 있는 주택이며 마당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다. 마당이 있으면 쓸고 관리를 해야 하니까 일이 많아지려나. 조그마한 텃밭이 있어서 채소를 가꾸어 먹어도 좋겠다. 거기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방해받지 않는 그런 공간에서 글을 쓴다면 엄청 잘 써지지 않을까. 새벽에 일어나서 시원한 공기도 느껴보고, 저녁 해질 무렵이면 아름다운 노을도 볼 수 있고 얼마나 좋아. 이런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역시 남자가 쓴 이야기라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특히 한국 남자들의 ‘슈필라움’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할 수 있었다. 자동차 운전석에 대한 애착이나 ‘자연인’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이유를 알게 되어서 너무 웃겼다. 버지니아 울프가 저절로 떠올랐다.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있으면 얼마든지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던. 초고속 성장을 경험한 우리 사회의 사회심리학적 문제는 ‘슈필라움’의 부재에서 찾는다. 남녀를 떠나 ‘심리적 여유 공간’이나 최소한의 ‘물리적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때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이다. 살다 보면 ’물때‘와 같은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시간‘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물이 들 때가 있고, 나갈 때가 있다. 잘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가 당연히 있다. 이 ’물때’와 같은 시간마저 통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조급함’이다. 항상 잘되어야 하고, 안되면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조급함 때문에 참 많은 이가 불행해졌다.(p44)
여수에서 정착하기 위해 배 조종 면허까지 따는 등 발품을 팔아 준비하는 과정은 제법 진지하다. 바다의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선 그 정도는 해야겠지만. 역시 아무나 못할 일이다. ‘물때’라는 말도 뭍에서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루 중 밀물과 썰물이 있고 물이 들고 빠지는 ‘사리’와 ‘조금’이라는 이 ‘물때’와 우리의 ‘삶’에서의 시간, 기다림에 대해 성찰이 느껴져 좋았다. 역시 장소가 바뀌면 살아가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겠다. 물의 흐름을 보고 느끼며 기다림을 배우고 둥근 마음으로 변화하는 한 사람이 보인다.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회자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이미 있던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개념을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는데. 여기서 낯선 ‘단언적’과 ‘담론적’이란 단어가 나온다. 문학과 예술이 ‘단언적’이라면 학문은 ‘담론적’인 것이라 한다. ‘산업혁명’ 자체가 ‘과학과 기술의 통합’이라는 ‘지식혁명’인데 어떻게 낡은 개념인 ‘산업혁명’으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담론적’이어야 할 학문적 개념을 ‘단언’하며 혼란을 부추긴 상황을 질책하는 것 같다. 너무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이 중심이 되는 ‘단언적’인 삶, ‘나다운’ 삶을 살라는 조언으로 들린다.
<깊이 공감했던 문장>
‘공연한 불안’의 개념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그 개념들을 ‘가나다순’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보는 것도 좋다. ‘가나다순’으로 정리하는 것은 ‘개념의 개념화’, 즉 메타 개념화‘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생각’인 ‘자기 성찰’ 또한 이런 ‘메타 개념화’의 한 형태다. 개념화된 불안을 다시 한 번 상대화하면 불안의 실체가 더욱 분명해진다. 더 이상은 정서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은 불안은 기하급수적으로 부풀어 오른다.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 힘으로 도무지 감당하기 힘들어진다.(P83)
조금 틈만 생기면 걱정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되살아난다. 거의 쓸데없는 걱정이 대부분이라는데. 그래서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자꾸 줄어든다.
불안의 개념화, 이 방법으로 소중한 시간을 벌어야겠다.
행복 혹은 ‘좋은 삶’에 좀 더 실천 가능한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이야기다. ‘싫은 것’, ‘나쁜 것’, ‘불편한 것’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하나씩 제거해나가면 삶은 어느 순간 좋아져 있다. ‘나쁜 것’이 분명해야 그것을 제거할 용기와 능력도 생기는 것이다. ‘나쁜 것’이 막연하니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참고 견딘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스스로 아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 아무도 내 행복이나 기분 따위에는 관심 없기 때문이다.(P115)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쓴 말년의 역작 『공간의 생산』의 핵심 내용이다. 공간은 그저 비어 있고, 수동적으로 채워지는 곳이 아니다. 공간은 매순간 인간의 상호작용에 개입하고, 의식을 변화시킨다. 오늘날 ‘문화 연구(cultural studies)’에서 ‘공간’은 아주 새롭게 각광받는 주제다. 그동안 ‘시간’에 밀려 시답잖게 여겨졌던 ‘공간’이 갖는 문화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려는 학자들의 시도를 ‘공간적 전환(spatial turn)’이라고 부른다.(P203)
이제는 좀 천천히 가도 된다. ‘직선의 모더니티’는 평균수명이 채 50세도 안 되던 시절의 이데올로기다. (중략)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는 ‘하면 된다’가 아니다. 되면 하는 거다. 부딪히면 돌아가는 ‘곡선’을 심리학적으로는 ‘관대함’이라 한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가장 못하는 거다. 이렇게 ‘곡선의 섬’에서 ‘직선의 삶’에 관한 메타 인지적 통찰을 얻는다.(P231)
내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을 보면, 열이면 아홉이 꼭 물어봅니다. “이 책들을 다 읽으셨어요? 아, 말문이 콱 막히는 질문입니다. 그런 질문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하는 겁니다. 단언컨대, 책은 다 읽고 책장에 꽂아두는 게 아닙니다. 앞으로 읽으려고 책장에 꽂는 겁니다! 책장에 책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는 뜻입니다.(P273)
와! 빵 터졌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지만 신간에 자꾸 눈이 가서 이래도 되나 했는데 이제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다. 언젠가는 꼭 읽을 테니까. 책이 가득한 책장을 보는 뿌듯함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지금까지 살던 장소와 전혀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분명히 삶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원한다고 해서 누구나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가 발목을 잡는다. 경제적인 여건도 받쳐줘야 하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좌절해야 하나? 아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면 된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꿈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건이 완벽해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순 없지 않은가. 짧은 인생이니까. 지금 여기서 소박한 공간이나마 만들어 놓고 꿈을 키워나가는 행복한 시간을 만들면 된다. 나는 이렇게 위안을 삼으려한다.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가장 부러웠던 것은 저자의 외국어 실력이다. 세상에! 나는 겨우 일본어 공부 하나로 쩔쩔매고 있는데 모국어 외에도 3개 국어라니.
100세 시대의 무기는 외국어 공부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그래서 좀 더 분발하기로 했다.
저자의 바닷가 작업실을 엿보는 것은 부럽고도 동기부여가 되는 시간이었다. 신혼시절 1년 넘게 여수에서 산 적이 있다.(그때는 여천이었다.) 그 동네 작은 기차역이 아직도 있는지 아름다운 절 향일암은 어떻게 변했을까 문득 궁금하다.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펼쳐지는 도전적인 삶, 그 이야기를 공유한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자꾸 뇌리에 남는다. 푸른 바다와 대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미역창고’에서 창조하는 좋은 책과 멋진 그림 많이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리뷰 대회를 계기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