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도쿄 - 공PD의 아주 깊숙한 일본 이야기
공태희 지음 / 페이퍼로드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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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길을 소재로 한 노래나 시가 얼마나 많은가.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골목길에 대한 향수가 있을 것이다. 사실 오래 전 골목에 대한 내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여고시절 어느 토요일 방과 후에 자취방으로 신나게 뛰어가다가 골목길에서 이상한(?) 남자를 발견하고 놀라고 무서워서 몇 시간을 주변에서 뱅뱅 돌다가 해가 다 지고서야 집에 들어간 기억. 중고등학교 시절 여학생이라면 누구라도 흔히 경험하지 않았을까. 다행히 그 이후 골목에 대한 기억은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우리의 민속촌 골목이 그랬고, 5년 전 가족여행으로 간 교토의 골목이 그랬다. 특히 가랑비 내리던 기온 마치의 고즈넉한 풍경의 그 골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빡빡한 일정으로 수박 겉핥기에 그쳤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천천히 오래 걸어보고 싶다. 그 후 두 번의 도쿄 여행을 하고 만나게 된 골목 도쿄가 정말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했던 여행과 몹시 대비되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읽고 나서도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고민했다. 너무 재밌어서 어떻게 제대로 표현해야 할지 난감했다. 음악 방송 PD가 도쿄를 다룬 첫 책이란다. <PD의 여행 수다>에 스스로 출연 신청을 했다가 그가 자신 있는 일본 이야기를 하고 예상외의 큰 반응에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일본 입국 도장을 무려 이백 번이 넘게 찍었다는 여행 덕후답다. 골목 이야기만이 아니라 일본의 역사, 철도, 음식 등 깊이 있는 이야기, 펄펄 살아있는 구수한 입담이 끊이지 않는다. 어서 빨리 가보고 싶어 근질근질할 정도로 실감나게 이야기한다. 나는 도대체 어디를 돌아다닌 거지. 대로와 빌딩숲 사이를 돌아다녔으니 오래된 골목은 생각지도 못했다. 도쿄를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몇 군데라도 가 보았을 텐데. 그래 다음에 갈 때 가면 된다. 두 사람이 어깨를 붙이고도 겨우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골목, 그 안에서 오랜 세월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단골 고객과 부대끼며 살아온 그 골목 사람들을 꼭 만나보고 싶다.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히트를 친 인기 드라마 <심야식당><고독한 미식가>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도 물론 두 드라마를 보았다. 좁디좁은 디귿자형의 카운터석에 삼삼오오 손님이 들어온다. 서로 안부를 묻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원하는 메뉴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어라, 실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심야 영업 역시 드높은 인건비 때문에 가능한 곳이 몇 군데 없고 드라마적 상상력과 낭만이 지나친 환상에 불과하다며 그것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너스레를 떤다. 바쁘고 지친 일상에 대한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은 드라마의 성공이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구나 싶다. 실제 위치한 골목은 신주쿠 가부키초의 골든가로 작고 아담한 골목이란다. 어른 두 명이 어깨를 딱 붙이고 걸으면 꽉 찰 정도의 작은 이 골목이 신주쿠의 가장 큰 길인 야스쿠니대로에서 불과 30여 미터 거리에 있다고 한다. 이런 골목길이 도쿄 어디에나 있다는데. 이쯤 되면 우리의 대도시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우후죽순 들어서는 빌딩들에 밀려 정작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쫓겨나는 상황을 두고 누구를 위한 개발이냐고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골목이 골목으로 살아남는다는 건 건강한 도시생태의 지표와 같은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도쿄의 골목은 확실히 축복입니다. 여전히 번성하는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는 서민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골목길도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이건 조금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대도시가 아니고서는 골목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니까요. 도쿄의 골목이 여전히 건재한 반면 역시 대도시인 서울의 골목은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서울과 도쿄, 사소하게 보이는 이 차이는 의외로 두 거대도시가 지닌 다양성의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도쿄의 다양한 취향의 총합은 확실히 우리보다 커 보입니다.’(p12~13)


 대를 이어 오래도록 이어가는 가업, 오래된 건물이 지금도 건재하고 있다는 것은 무척 부러운 일이다. 무엇이든 새로 만들고 높이 만들려는 우리와 분명히 차이가 있다. 편하다는 이유로 단지 형태로 지어지는 아파트촌을 볼 때마다 착찹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꼭 필요한 개발은 피할 수는 없겠지만 간직해야 할 것은 최소한으로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나고 자라고 이웃을 이루며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며 수 십 년을 살았는데 다른 사람이 그곳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돈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면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세계의 도시 뉴욕보다도 더 다양한 취향이라는 도쿄에서는 어떻게 이런 골목이 넘치는 것일까.   <고독한 미식가>그저 아저씨가 밥 먹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뭔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며 솔깃해지기 마련이다. 실상 알고 보면 대단한 가게가 아닌 평범하고 수수한 곳이다. 역에서 가까운 접근성과 아무 때나 들어가서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혼밥과 혼술의 원조는 일본이 아닐까. 그들이나 우리도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의 힘든 현실을 밥 먹는 것이라도 좀 편하게 먹어보자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짠해지기도 한다. 이것이 두루두루 일본 동네식당의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한 동네에서 십 수 년을 살아가는 일본이기 때문에 단골이 소중하고, 50100년을 넘어 노포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이 다니던 닌교초, 에도 시대 제일 번화가 니혼바시, ‘긴자 오브 긴자의 흔적이 남아있는 지하골목이 있는 긴자4번가로 골목 덕후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일본의 역사와 어우러진 도시의 역사 이야기도 정말 재미있다. 에도시대만 해도 도쿄의 변두리에 지나지 않았던 긴자가 도쿄를 대표하는 곳이 되었고 도쿄의 스카이라인을 책임지는 신주쿠나 롯뽕기, 도쿄만 일대를 매립해 건설된 오다이바는 도쿄의 근-미래를 보여준다. 그렇게 거대한 빌딩숲 속에 조그만 골목들이 얼키설키 숨 쉬듯 살아있다니 오묘한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외국인은 물론 각지에서 찾아드는 일본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니 부러운 광경이다. 니혼바시, 신주쿠, 긴자 등 도쿄의 큰 도시를 돌아보면서 사람들 물결로 넘치던 모습은 경이롭고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그 자체만으로도 일본의 힘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천국 일본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一生懸命,客?ばれるような?かない正直商?がけなさい

정성을 다해 고객이 즐거워하도록 거짓을 벗어버리고, 솔직한 장사를 마음에 새길 것.

   -(p92)-


 니혼바시에서 무려 5대째 가업으로 140년이 되어가는 요시노스시의 선대의 가르침이 묘한 울림을 준다. 오랜 세월 동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으며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이렇게 소박한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운영할 수 있는 장인 정신이 우리에겐 몇이나 될까. 자본주의의 한 가운데인 21세기에도 이러한 정신으로 무장한 노포들의 힘이 오늘의 일본을 이루지 않았을까. 술꾼들이 바글바글한 신주쿠의 오모이데요코초?의 정겨운 모습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가보고 싶을 정도다. ‘추억 골목이라는 이름도 얼마나 멋진가. 딱 쇼와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좁은 골목이며, 단골과 뜨내기를 차별하지 않는 곳, 마음껏 사진 찍고 마음껏 마셔도 되는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환상이라는 <심야식당>이 없으면 또 어떤가. 골목에 대한 향수를 마음껏 느끼고 올 수 있으면 그만이지. 오래된 가게와 골목에 대한 행간에 가득한 애정이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함께 살아가며 역사를 만들어가는 곳, 골목은 우리들 부모 형제들의 삶의 터이기에.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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