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의 비밀 - 중국 역사에 나타난 관리들의 생존법
천웨이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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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중국 역사에 나타난 벼슬살이 관리들이 자리를 지키거나 승진에 필요한 비법 46가지의 생존법 전략을 다룬 책이다. 구성은 제1장 면벽십년/ 제2장 모르는 사람과 관계 맺기/ 제3장 예물이 많아도 탓하지 않기/ 제4장 완급의 책략/ 제5장 머리 조아리기, 꼬리 내리기, 꼬리 흔들기/ 제6장 신중, 냉정, 침착, 결연, 단호함/ 제7장 값싼 자존심 거두어들이기/ 제8장 윗사람 명령에 절대 복종하기/ 제9장 ‘밉보이기’의 보이지 않는 규칙으로 되어 있다.


 한 사회에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듯이 관리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관계맺음 속에서 자리를 지키고 승진하는데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맨 입으로는 되지 않는다. 무언가 대가가 있어야  성립하기 때문이다. 뇌물은 ‘예물’이라는 이름으로 근사하고 우아하게 포장되어 불린다.


‘설령 상사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을지라도 예물을 먼저 보내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p113)

‘돈이면 신과도 통한다.’(p115)

‘이 사람이 내게 보낸 코담배가 정말 훌륭했소. 그러니까 괜찮은 양반이라고 알고 있소.’(p116)

‘뇌물을 주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다.’(p127)

‘벼슬길에 오른 인물이 자기를 지키고 보전하는 일은 큰 돈을 써야 한다. 큰 돈 쓰기를 아까워하면 자리보전은커녕 목숨까지도 날라 갔다.’(p136)


 이와 같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금품을 받음으로써 인품이 높이 평가되고 벼슬의 가까이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별난 예물을 받아 축적한 경우도 있었다. 당나라 때 원재라는 재상의 집에서는 후추가 8백석, 지금의 64톤에 해당하는 양이 나와 사람들을 탄식하게 했다. 수입에 의존했던 그 당시로서는 고급 소비품이었다. 이는 하루아침에 모은 것이 아니라 하찮은 벼슬아치들의 손에서 오랫동안 걷어 들인 것이다. 이렇게 예물을 보내는 일은 벼슬살이의 길에서 대대로 이어져 하나의 제도로 굳어지고, 출세의 지름길로 통했다.


 ‘한 번은 조이고 한 번은 푸는 방식’(p146)은 벼슬살이의 기술이다. ‘잠깐을 참으면 바람 솔솔 구름 둥실, 한 발을 물러서면 얽매임 아무것도 없어라.’(p147) 이는 새 벼슬아치가 자리에 앉은 뒤에는 자신을 둘러싼 관아의 환경이나 일의 상황을 잘 살피어 ‘느슨함’을 보여 주는 방식과 한 발 물러나 훗날을 도모하기 위한 전진을 위한 방식이다. 한나라의 명장 한신이 깡패들 가랑이 사이로 기어간 일화나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으로 자신을 단련시킨 유명한 이야기는 ‘완급의 책략’이다.


 한서(漢書)에 ‘지나치게 맑은 물에는 노는 물고기가 없으며, 지나치게 따지는 사람에게는 따르는 무리가 없다.’(p192) 재능이 출중했던 공융은 조조에게 조소와 풍자로 통쾌함을 얻은 대신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머리를 조아리고, 꼬리 흔들기에 서툴렀던 탓이다. 삼려대부(三閭大夫) 굴원은 충만한 정기와 나라를 위한 마음뿐이었지만 오히려 권신들에게 눈엣가시가 되었고, 곧 남후(南后)의 모함으로 유배를 당한다. “그대는 깨끗하게 씻은 몸에 다시 더러운 옷을 입는 이를 어디서 보았소? 나 참! 어떻게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뒤집어쓸 수 있겠소?”(p195) 라며 멱라수에 뛰어들어 천고의 명예를 남겼지만, 관계의 어두운 면을 용납하지 못하고 스스로 막다른 길에 몰아넣은 것과 다름없었다. 자신을 꿈을 펼치지 못 한 점, 그의 죽음 자체는 국가의 손실이었다. 안타까운 삶이다.


 명나라 성조 때 해진도 그러한 예이다. 오래된 규범인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들어 성조의 둘째 아들의 태자의 옹립에 반대했다가, 그의 모함으로 눈 속에 생매장 당하는 불행에 처했다. 한 편 주원장의 의심병에 꼬리를 내리고 미친 척 한 원개는 천수를 다 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예에서 볼 때 너무 자신의 의지와 도덕을 앞세우면 반드시 모함하는 자가 나타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조금은 어리석은 체 하며 주위를 살피는 것도 자기 목숨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는 진리임을 알 수 있다. 벼슬살이도 좋지만, 생명은 더 소중하니까 일단은 살아남아서 훗날을 도모해야 한다.



 ‘머리 조아리기, 꼬리 내리기, 꼬리 흔들기’의 겸손을 실행하여 성공적인 벼슬아치의 길을 간 인물도 있다. 당나라 초기의 태종 이세민의 눈에 들어 궁중으로 들어간 마주이다. 이는 국가가 대량의 인재가 필요했던 시기에 기회를 준비하며 기다린 것이 적절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는 간언을 올릴 때에도 아름다움과 효(孝)를 중시하는 내용으로 꾸며 태종이 한 마디의 짜증도 없이 받아들이게끔 하는 재주가 있었다. 이 세민의 대단한 총애를 받았다.


 역사속의 삶에서 사람들이 살아간 흔적을 발견하는 일은 참 흥미진진하다. 한 편 안타까움도 있다. 내가 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적이 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삶을 위한 각축전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친구의 목숨을 없애야 하는 비정함이 끊임없이 도사리고 있다. 손빈과 방연의 이야기는 그 비정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미친 척 하며 겨우 살아남은 손빈에 의해 방연은 계책에 말려들어 사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깊은 못에 이르는 것 같고 살얼음을 디디는 것 같이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p330) 뿐만 아니라 언제나 ‘윗사람을 즐겁게’(p330) 하는 것이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며 끊임없이 승진하는 방편이었다. ‘감투를 얻기 위하여 뇌물이나 예물을 쓰고 다니는 일’유세(遊說)라고 한다. 이러한 일을 제일 먼저 한 일은 공자였고,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인 맹자, 묵자, 순자도 있다. 간알(干謁)도 마찬가지이다. ‘높은 어른께 올린다.’는 의미이지만, 결국 감투를 ‘찾아 헤매는 일’이다. 시인으로 뛰어난 두보도 벼슬길에 올라 명예를 얻기 위한 욕망이 남달랐다고 한다. 두보의 시를 보면 공자처럼 부끄러움도 없이 찬 밥 더운 밥 가리지 않았음을 잘 알 수 있다.


아침이면 부잣집 문을 두드리고,

저물면 살찐 말 뒤를 따릅니다.

마시다 남은 술과 식어빠진 고기 조각뿐이니,

가는 곳마다 슬프고 가슴 쓰립니다.(p345)


 예로부터 벼슬아치가 되고자 하는 관리에게 청렴과 결백이 요구되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청렴하고 공정한 벼슬아치는 대체로 윗사람이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부조리한 점 인 것 같다. ‘비뚤어진 것이 바른 것을 이길 수 없다.’는 말도 참 씁쓸하다. 오래 전 이야기 <관리의 비밀>은 현 시대에 대입시켜 볼 때 좀 황당한 면도 없지 않지만 ‘뇌물의 법칙’은 수 천 년이 흘렀어도 그대로 제도화 된 점은 어쩔 수 없는 관행인가. 시대를 거듭하며 살아오면서 유전자에서 답습한 삶이런가. 오늘날에도 참고 견디고, 한 발 물러날 줄 아는 지혜, 뛰어난 재능이 너무 돋보이지 않게 감출 수 있는 센스, 관계의 원만한 유지 등 두루 살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한 방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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