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과 내시 - 조선조 정치적 복종의 두 가지 형식
박종성 지음 / 인간사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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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전과 내시>라는 제목만 보면 재밌게 보던 사극이 떠오른다. 수없이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희한한 목소리를 내던 내시와 관아의 문 앞에 서서 출입을 하는 사람들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아전. 여기서는 사극에서의 재미와는 좀 거리가 멀다. ‘조선조 정치적 복종의 두 가지 형식’으로 정치적 상황에서의 ‘아전과 내시’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백년 넘도록 왕조국가체제를 지탱한 힘의 근본은 뭘까. 가장 가까이 꼽는 이유는 유교의 막강한 저력이었고, 정치체제를 강고히 지탱한 정치적 기운은 견제와 균형을 중심으로 한 제도적 긴장이나 힘의 균형을 도모하려는 지배 권력과 민중 부문의 길항이었다.’(p6~7)


 단일 성씨로 세습군주체제를 이어 간 예는 세계역사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 시대의 정치미학은 ‘변화’를 지향하지 않고 ‘보존’과 ‘유지’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나의 체제가 그것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는 법제도를 비롯한 많은 것이 있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지배하는 자가 믿을 수 있는 심복을 두는 것이 우선일 게다. 자신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자신들이 할 수 없는 (또는 하기 싫은) 궂은일을 도맡아 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아전은 지방행정의 일을 내시는 왕명의 출납을 맡아, 왕이 눈과 귀가 되어 줌으로서, 서로 공존하고 공생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된 셈이다. 신분상으로 말하면 ‘중인’이라 하였지만, 형식적인 말이었을 뿐 엎드려 조아리는 자에게 더욱 불공평이 존재하는 채로.


 두 가지 모두가 역사에서 들여다보면 부정적인 편견이 많은 편이다. 아전에게는 공식적으로 급여를 주지 않았으며 이것을 당연시 했다. 이것은 그들의 불안정한 경제적 처지를 빌미로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음을 대변해 준다. 내시는 군왕과 내시, 양반관료 사이의 긴장의 삼각구도를 이용하여 삶이 유지되는 직군이었다.


 ‘바닥 찧도록 머리 조아린 채 곁눈으로 세상을 향하면 가없이 너른 땅일랑 그리고 잘 보이고 저리도 키 큰 이가 아니건만 어찌하여 그처럼 높이 보이나 희한하였다. 그 이치인 즉 아전이나 내시에게도 매일반이었다. 굽히라는 명을 받아 하는 수 없이 엎드린 땅이라면 도저한 눈길이야 같을 리 없었을 터다. 복종의 미덕은 기나긴 세월 물려받은 법도요, 습관보다 더한 관행으로 몸속 깊이 배어든 운명이었다. 굳이 천직이라 이름붙이지 않아도 굽힘의 자세는 그들에게 굴욕도 수모도 아닌 일상의 생활이자 체화한 삶, 바로 그 자체였다.’(p174)


 이처럼 아전과 수령, 내시들에게는 임금이 그들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빌붙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봉급이 없는 아전들의 부정부패와 타락을 보면서도 집권세력은 어쩌지 못하는 무능은 왕조가 해체되는 결말을 보게 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자신의 비리를 알고 있는 자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러한 역사 속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현 시대에도 그러한 사례는 넘친다. 감추고, 눈감아주는 비굴함의 반복. 수 세기가 흘러도 그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강자에게 빌붙어 힘을 얻고자하는 삶의 몸부림으로 치부하기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과제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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