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예금통장 - 고백 그리고 고발 다음 이야기
안천식 지음 / 옹두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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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찢어진 예금통장>은 안천식 저자의 <고백 그리고 고발>의 후속편으로 쓰인 책이다. 작년 9월 그 책을 읽고 만인에게 공평하게 다루어야 하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부조리한 현장을 보고 분노와 불편한 마음에 휩싸인 적이 있다. 10여 년간 20번의 소송에 번번히 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좀 더 투명하고 솔직해지기를 기대하는, 멈추지 않는 그의 집념에 미미한 힘이나마 보태보려는 마음으로 다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여전히 읽기도 쉽지 않고 반복적인 내용이 되풀이되고 재미도 없다. 심지어 화가 나기까지 한다.


 나도 저자처럼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전편에서 다루었던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김포시 고촌면 향산리에 사는 기노걸이 1997년 9월, 자신 소유의 토지와 건물을 19억 6천만 원에 D건설에 매매하기로 하고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한다. 매매대금의 절반인 9억 8,300만 원을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받은 후, 1998년 IMF 사태로 D건설은 부도가 났고 나머지 잔금은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대기업 H건설은 D건설로부터 부동산 매매계약을 승계 인수받았으며, 1999년 11월 24일 H건설은 기노걸과 새로운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잔금 9억 8,300만 원을 계약 체결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지급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H건설이 증거로 제출한 이 사건의 계약서에는 매도인 기노걸이 아닌, 다른 사람의 필체로 작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또한 기존에 기노걸의 계약서에는 한문 인감도장이 찍혀 있었지만, 이 사건 계약서에는 한글 막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바뀐 계약서가 기노걸이 사망한 후에야 법정에 제출되었다는 사실도 의문점으로 남는다.


 증인 A,B의 거짓 증언, 증인C는 진술을 번복한다. 또 2000년 2월경에 작성된 향산리 주민 4명의 위조된 부동산 매매계약서 4건도 추가로 발견된다. 이것을 추적한 결과 증인A의 필체로 드러났고, 그 관련 증거를 재판부에 제출하였다. 그럼에도 이 사건의 최종 승리자는 H건설이었다.


 판결의 주요 내용은 증인 A,B와 사망한 기노걸의 진정한 의사에 의하여 작성되었음이 인정된다는 점, 해지된 농협통장이지만, 병석에 있던 기노걸이 착오로 계좌번호를 불러주었을 가능성, 막도장으로 날인하는 것을 매도인 기노걸이 승낙하였을 가능성, A의 증언 중 기노걸이 건네주는 도장을 이지학이 날인하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까지 허위로 단정할 수 없으므로 이 계약서의 진정성립을 인정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점, 증인 C의 증언의 상당 부분이 위증죄의 유죄로 확정되었더라도, 기노걸의 막도장을 누가 날인하였는지 기억에 없다는 부분까지 허위로 단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계약서의 진정성립을 인정하는 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기을호(기노걸의 아들)측에서 증거자료로 제출한 부동산 매매계약서 등 Y건설에서 기노걸에게 보낸 ‘승계계약에 협조해주지 않아 토지수용권을 발동하겠다’는 내용의 통고서, 예금 계약을 해지한 찢어진 예금통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승소하기에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후 기을호의 대리인으로서 저자는 2006년 12월 12일 제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소송 패소, 2007년 10월 11일 서울고등법원의 항소 기각, 2008년 1월 17일 대법원 상고 기각으로 1차로 패소 판결이 확정되었다. 대기업 H건설은 승소 판결문으로 기을호의 토지를 빼앗아 갔다. 분명히 약탈이었고, 이러한 허무맹랑한 판결에 도저히 승복할 수 없음이다.


 약자들이 기댈 곳은 법밖에 없다. 그런데 법은 약자를 외면한다. 대형로펌을 오른팔로 이용하여 휘두르는 대기업의 횡포에 약자는 다시 한 번 짓밟혀지는 현실이다. 철저하게 신분을 보장받는 법관에게 재판에 관한 모든 권력을 독점하게 하는 현 구조, ‘전관예우’는 권력의 남용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재판권의 남용은 타 권력보다 우선하여 예방, 견제되어야 할 것이다. 현직 변호사로 일하면서 사법부의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 쉬운 일 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의 지난한 노력, 집념어린 열정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사법부가 되기를 희망하는 일은 아직도 요원한 일일까. 단시간에는 힘들겠지만, 조금이라도 서서히 믿을 것은 법밖에 없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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