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작삼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이소영 옮김 / 봄고양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현재까지도 일본 최고의 작가로 불리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생후 7개월째에 생모의 정신병 발작으로 외가에 입양되었으며, 35세에 치사량의 수면제로 생을 마감하였다. 전에 그의 단편선집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은 <덤불 속>외에는 처음 접하는 작품이 많아서 반가웠다. 그의 친우이자 <문예춘추사> 설립자인 기쿠치 칸은 그를 기념하여 1935년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하였고, 오늘날까지 일본 최고 권위의 순수문학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1.덤불 속

도둑 다조마루는 거울이나 날붙이를 오래된 무덤에서 파내어 덤불 속에 묻어 두었는데, 그것을 팔아넘길 거라며 말을 탄 부부를 유인한다. 욕심에 혹하여 남자가 도둑을 따라 들어갔다가 화를 당하는 이야기. 목격자들을 상대로 진술을 듣고, 죽은 원혼을 비롯한 용의자 즉 도둑과 아내의 자백과 참회를 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각각 자신이 범인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욕심으로 인해 위기에 빠지고, 그 과정에서는 오해가 빚어진 상황에 맞닥뜨린다. 수수께끼같은 이 상황, ‘덤불 속’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을까.


3. 희작삼매

목욕탕 풍경으로 시작한다. 지금이야 많이 희석됐지만, 전통적인 목욕탕의 풍경이란. 이웃들이 만나서 안부를 묻기도 하고 이런저런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다. 그리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곳에 들어서면 누구나 평등한 몸이 된다. 이 작품에서도 비슷하다. 시키테이 산바의 <곳케이본>에 ‘하늘과 땅의 신, 석가의 가르침, 사랑, 무상, 이 모두가 뒤섞인 대중목욕탕’이라고.

여기서 주인공 바킨은 자신의 소설에 대하여 악평을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조금 더 수준 높은 상대’가 아니라, 사팔뜨기로부터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더욱 불쾌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호평에 들뜨지 말고, 악평 또한 담담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자신을 향한 관대함이 작가노릇을 하기에 수월하겠다.


희작(戱作)은 일본어로 게사쿠, 에도 시대 후기의 통속 오락 소설을 지칭한다. 작가들의 고뇌를 알 수 있는 부분이 자주 나온다.


“어떻게든 전진하지 않으면 금세 밀려 넘어집니다. 그러니 일단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기 위한 고민이 중요하겠습니다.”(P74)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가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든 일반 직장인이든 치고 올라오는 후배와 선배의 등살에 끼어 마음고생 하기는 매 한가지다. 다른 분야보다 힘든 것은 관리의 도서검열을 예로 든다. 관청 직원이 뇌물을 받는 대목이 있으면 고쳐 쓰라는 명령을 받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언론, 출판의 자유가 옛날에 비하면 좀 낫겠지만, 옛 시대의 문인들은 참으로 고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후 50년, 100년이 지나면 관리들은 사라지고 어르신의 <핫켄덴>만 남을 것입니다.”(P76) 그렇다. 바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진리. 인생의 무상함, 희노애락을 글로 담아내야 하는 작가들의 삶과 작품의 창작 과정에서의 고충, 그들의 마음을 세밀하게 엿볼 수 있는 이야기. 문득 찾아오는 기쁨어린 웃음도.


“힘닿는 데까지 계속 써라. 지금 내가 쓰는 것은 지금이 아니면 쓰지 못하는 것일지 모른다.”(P85)


4. 개화의 살인

주인공인 의사 기타바타케 기이치로는 첫사랑의 아키코를 잊지 못해 그녀의 남편을 독살하고도, 다시 그녀의 남편이 된 그의 친구 혼다 자작을 향한 분노와 살인의 의지를 깨닫고 자신이 자살하게 되는 이야기. 그가 남긴 유서에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회한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절규가 절절하다.


6. 게사와 모리토

와타루에게 시집간 게사를 이미 사랑하고 있었던 모리토, 그 둘의 독백으로 인간의 욕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게사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일부러 노래까지 배우는 등 각고의 노력을 한 와타루에게 귀여움을 느끼면서, 또 게사를 향한 마음은 순수한 사랑의 열정이 아닌 정복하려는 욕망이었음을 토로한다.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와타루를 죽이자고 합의를 하는데... 게사와 모리토의 내면의 심리를 통해서 남녀의 그릇된 사랑의 이해와 밑바닥에 깔린 비도덕적인 이기심을 잘 보여준다.


<보은기>는 일본의 대도(大盜) 아마카와 진나이가 교토의 유명한 부자인 호조야 야사우에몬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훗날 부도 위기에 빠진 야사우에몬의 은혜를 갚는다. 물론 돈을 훔쳐서. 야사우에몬의 노름꾼 아들 야사부로는 아마카와 진나이 대신 죽음으로써 가문의 은혜를 갚는 이야기.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대도 진나이가 화자가 되어 담담하고 유쾌하게 들려준다.


<한줌의 흙>은 8년간 투병하던 남편이 죽었는데, 시어머니 오스미의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가하지 않은 채 남자 몫까지 일만 죽어라고 하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는다. 오직 어린 아들에서 전답을 물려받기만을 바라며 쉬지 않고 일을 한다. 부를 일구어 놓았지만, 행복한 삶을 만끽하지도 못하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오타미.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위에 언급한 작품을 포함하여 11편의 아쿠타가와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그의 작품의 주인공들은 도둑, 작가, 평범한 시어머니, 젊은이 등 다양하고 개성 있는 사람들이다. 문체에서는 약간의 능청스러운 유머와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열정적으로 살다간 그의 작품세계와 삶의 내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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