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조조전 1 - 농단의 시대, 흔들리는 낙양성
왕샤오레이 지음, 하진이.홍민경 옮김 / 다연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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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탄 박종화의 삼국지 8권짜리 시리즈를 세 번 읽은 적이 있다.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하고는 말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왠지 대단한 느낌으로 다가와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지, 하고 다짐했었다. 그 후로도 차례대로는 아니지만, 자주 들춰 보았었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 전쟁에 이기기 위한 계책, 살아남으려고 속고 속이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 책의 저자 왕샤오레이는 조조의 ‘21세기 대변인’이라 불리며, 현존하는 조조의 모든 자료를 통독하며 조조의 흔적을 쫓아 10여 년간 연구했다 하니 대단한 조조 사랑의 저자라고 생각된다. 한 인물의 집중탐구 덕분인지, 살아있는 인물 군상을 느낄 수 있었다. 삼국지만큼이나 재미있다. 이전에 배경 인물로서 조조에 대한 사적인 면은 잘 알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환관 조등의 양자였다. 이것부터가 벌써 파격적이다.



이 책 1권은 후한(後漢) 영강((永康) 원년(167년)을 배경으로 ‘당고지화(黨錮之禍)’(후한 말기 환제와 영제 시절, 조정을 쥐락펴락하며 기강을 어지럽히는 환관세력에 불만을 품은 사대부와 귀족세력이 서로 공격한 사건. 환관세력이 승리함. p13)인 정변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조조가 도성에서 쫓겨나는 부분까지이다.



조조의 아명은 아만(阿瞞)이고 맹덕은 그의 자다. 조숭 첩의 소생으로 덕아(德兒)라는 동생이 있었다. 덕아는 인정받는 모범생이었다. 하루 종일 글공부, 책읽기를 즐겼다. 게다가 겸손하고 예의바르기까지 하다. 반면, 조조는 글공부는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이었고, 동네에서 이름난 말썽꾸러기 대장이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짓을 해도 아버지 조숭은 무조건 감쌌다.



이렇게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던 조조가 서울 낙양을 떠나 고향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한밤중에 몰래 싸움닭을 들고 놀러 나갔다가, 정변을 피해 달아나던, 피투성이가 된 태학생 하옹과 마주치게 된다. 사정을 들어보니 나쁜 사람은 아닌듯하여 피신을 돕게 된다. 하옹은 선물로 아만에게 청동보검을 주고, 조숭의 아들 조조임을 알게 된다. 그는 하늘의 뜻이로다. 라는 말을 반복하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한편 곤궁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도운 것뿐인데, 도대체 왜 그렇게 노기등등한지 아버지와 숙부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어린 열 두 살이니 세상에 대한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었다고 할까.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심하게 혼나고, 고향 패국(沛國) 초현(譙縣)에 살고 있는 칠숙 조윤에게 맡겨진다. 아직도 분노와 원망을 가슴에 품은채로. 그 마을엔 또 한 명의 말썽꾸러기 대장 이숙 조치의 아들 조인(曺仁)이 있다. 자신들의 근거지를 두고 하후염(夏候淵)과 하후염(夏候廉)의 하후가(家) 아이들과 조가(曺家)의 아이들의 패싸움이 벌어졌다. 이를 지켜보기만 했던 아만은 조가(家)의 아이들에게 심한 핀잔을 듣게 되고. 이 싸움을 통해서 아만은 병법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공부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의욕을 갖고 집중한 결과 아만은 <손자병법> 13편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모두 읽어낸다. <논어>도 자다가 일어나서 줄줄 외울 만큼 완벽하게 익혀 자신감을 얻는다. 드디어 하후가(家) 아이들과 대결하여, 그들의 근거지를 되찾는데, 성공을 거둔다. 그리하여 아만은 조가(家) 아이들의 자랑스럽고 믿음직한 형님이 된다.



그 후 4년이 지나고, 이제 조조는 이전의 꾀병과 술수를 일삼던 망나니가 아니었다. 준수하고 건장한 청년이 되었다. 이제 제법 조윤과 대화 상대가 된다. 그리고 가문을 영광을 위해 멀쩡한 사람이 환관이 되어야 했던 잔혹한 가족사의 비애(悲哀)를 듣게 된다. 전에는 대승상 조참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이때부터 마음 한쪽 구석은 항상 열등감이 자리한다.



천하의 정의롭고 의로운 선비들은 환관, 외척 세력을 증오하고 있는데, 아버지 조숭과 조치, 조정 세 형제는 환관 세력과 결탁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현실. 아버지가 환관 왕보에게 돈을 바치면서 아들의 앞날을 부탁하는 것을 엿들으며 비굴함을 느낀다. 강한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마음. 두 번의 살인, 효렴으로 천거되어 관직을 얻은 일. 잘못을 하고도 아무 벌을 받지 않고 승승장구 한다. 조조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시시비비를 공정하게 처리함으로써, 명성이 자자해진다. 잘못이 있는 자를 탄핵하는 상주문을 올리지만, 아버지 조숭의 손에 다시 들어오고, 이로 인해 도성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나름 잘 해보려고 했지만, 조조 부자가 정반대편의 관점으로 일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요지경이다.



조조에 대한 야누스의 얼굴을 보여준다.

비굴함과 수치로 얻은 관직에서 정의를 구현한다는 것이야말로 야누스적인 일이 아닐까. 조조만이 아니다. 현 시대를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것은 아닐까 싶다. 어떤 일이 정의로운지는 알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려면 대단한 용기와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섣불리 나설 수 없다. 그렇게 현상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통용되는가 보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골고루 인맥을 쌓으며 양다리를 걸쳐놓으면 별 문제가 없을 걸세'(P258)


어쩜 그렇게 오래된 삼국지 시절의 이야기 속이나 현실이나 똑같은지 모르겠다. 이 말처럼 적나라하게 삶의 처세를 말 한 것이 또 있을까. 시대는 달라졌어도 삶의 모습은 똑같다. 한 사람의 고결한 성품도 비리가 판을 치는 세계에서 눈엣가시가 된다. 수많은 군상의 삶의 모습에서 현재의 삶을 돌아다 볼 수 있다. 지금도 칼만 들지 않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시기를 불문하고 인간은 살아가고 대대손손 이어진다. 살아남기 위해 어떤 처세로 임해야 할까를 고민한다면 이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아직 서막에 불과하다. 여기까지는 조조 나름의 정의편에 서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만, 도성에서 쫓겨나는 계기로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백 퍼센트 야누스의 얼굴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임기응변에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는 조조는 다음엔 어떤 말과 어떤 얼굴로 독자를 사로잡을까.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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