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계월전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19
조광국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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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누가 지었을까. 남자보다 더 뛰어난, 문무와 덕성까지도 겸비한 여성호걸의 이야기다. 옮긴이만 나오는 걸 보면 작가는 따로 있는 것 같은데 따로 작자는 밝히지 않는다. 처음엔 조선시대의 땅에서 일어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시대와 배경이 명나라 헌종 임금 시절 형주 구계촌으로 나온다.


 보통의 영웅소설의 구조가 충실히 들어있는 이야기다. 다만 주인공인 영웅이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점이 다르다. 출생부터 부모의 늦은 나이에 선녀의 꿈을 꾸고 잉태되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부모와 이별을 겪는다. 아버지는 도적 장사랑의 난을 만나 붙잡히고, 어머니와 계월은 피난을 가다가 붙잡혀서 다섯 살 계월은 이불에 싸여 강물에 던져진다. 이를 보국의 아버지 여공이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해서 자신의 아들과 같이 친자식처럼 키운다. 잘 키워서 훗날 영화를 볼 생각에. 일곱 살이 되었을 때, 곽도사에게 두 아이를 맡겨서 공부도 시키고 무술도 익히게 한다.


 계월은 얼마나 영특했는지, 한 자를 가르치면 열 자를 알았다. 용병술과 온갖 술법을 배우면, 검술과 지략이 당대에 이길 자가 없었다. 계월은 스스로 이름을 평국으로 바꾼다. 여기에 곽도사는 바람과 비를 부리는 술법까지 가르쳤다. 평국은 이것을 삼 개월 만에 마스터했는데, 보국은 일 년을 배워도 통달하지 못한다.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여자의 실력이 출중하게 그려냄으로써 벌써 남자의 우위에 있는 영웅임을 표현했다.


 곽도사는 평국의 재주는 이 세상에서 으뜸이라며, 황성에서 과거시험이 있으니 부디 역사에 이름을 빛내라고 한다. 두 아이의 나이 이제 열다섯 살. 과거시험에 합격하였는데, 평국은 장원이고 보국은 부장원이다. 보국은 절대 평국을 이길 수 없다. 천자의 부름을 받고 평국은 한림학사, 보국은 부제후가 되고 천리준총마 한 필씩 선물로 받는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기쁜 영광을 부모와 나눌 수 없음에 계월은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첫 번째 임무, 도적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한 천자를 구하라는 도사의 명으로 서달의 난을 평정한다. 평국은 대원수가 되었고 보국은 대사마 중군장이 되었다. 용맹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여자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벽파도에 도적을 해치우러 갔다가 부모를 만나고, 잦은 전쟁으로 피곤해져서 병이 들어 여자임이 밝혀진다. 천자의 명으로 둘을 결혼을 시킨다는데... 이를 어길 수 없는 평국은 남자로 태어나지 못했음을 분하게 여겨 눈물을 흘린다.


 마음에 없는 결혼은 했지만, 평국의 지위와 권력은 여전히 유지된다. 오히려 보국이 눌려 지내며 불만이 불쑥 고개를 들지만 어쩌지도 못한다. 남편의 애첩이 예를 보이지 않자 군법으로 다스려 처형하고, 적진에서 포위된 남편 보국을 필마 단신으로 쳐들어가 구해서 오는 장면 등은 스릴 있고 박진감 넘친다. 복숭아 빛 예쁜 얼굴에 남자 못지않은 용맹까지 가졌으니, 어이 남편을 두려워 할 것인가. 위기에 빠졌다가 목숨을 구한 천자도 심정은 마찬가지다.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두려워한다. 남자가 여자가 되었으니, 또 보통 남자가 못하는 일을 여자가 당당하게 해치우고 있으니 불편한 심정이야 이루 말할 것이 없다.


 그리하여 천자의 신임은 더욱 두터워지고 이들 부부도 3남 1녀의 아이를 모두 영민하게 키워내고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이야기이다.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으며, 이러한 좋은 이야기를 기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맺는다.


 이 이야기 속에 페미니즘 관점이 보인다. 원래 계월은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평생 부모 슬하에 있다가 죽은 후에 다시 남자가 되어 공자와 맹자가 가르친 행실을 배우고자’ 하였다. 하지만 천자의 명을 어길 수 없어서 지시대로 보국을 남편으로 맞이했다. 여성적인 삶을 거부하고 남성적인 삶을 살았다.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러한 점은 남편 보국과 대립이 될 수밖에 없다.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여자는 조신하게 가정에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야 하는데, 그 몫을 온전히 ‘즐겨서’ 하는 이는 계월이었다. 제3자의 입장인 천자, 조정신하, 여공, 홍무, 곽도사 등은 그것을 인정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남자의 삶이냐, 여자의 삶이냐를 이분법으로 생각하지 않고, 계월이 남성적인 삶을 사는데 도움을 준 셈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부분을 보면 둘째 아들의 성을 ‘홍씨’로 하여 초나라 태자로 보낸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은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시대에는 더더욱 파격적인 생각이다. 고전소설 속 허구의 세계를 통해서 현재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양성에 대한 관점을 볼 수 있었다. 당시의 신분사회, 입신양명의 길이 차단된 여성의 삶에서 한 번쯤 탈피하여, 남성 우위에 서서 통쾌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분분했던 마음이 작품으로 표출된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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