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60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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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서부터 뭔가 풍기는 게 있었다. 남녀 고교생의 이야기라는데. 그 시기는 친구나 연예인에 대한 매우 호기심이 많을 때다.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죽고 못 살 정도로 사이좋게 지내던 단짝 친구와 절교를 선언하기도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하츠는 중학생 때부터 절친 이었던 키누요가 다른 아이들의 그룹에 들어가 어울리자 큰 실망과 함께 소외감을 느낀다. 예전처럼 둘이서 계속 잘 지내면 안되느냐는 말에 키누요는 싫다고 한다. 자신은 남녀혼성 그룹을 동경했다면서. 하츠에게 그룹에 끼어 같이 놀자고 하지만, 하츠 또한 거절한다. 그래서 하츠는 키누요한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생물시간에 과학실에서 5명씩 조를 짜서 실험을 한다는데, 친구가 없어서 혼자 남는다. 그런 아이가 하츠 말고 니나가와라는 남자아이가 더 있다. 이렇게 ‘나머지’ 아이들이 같은 조가 되었는데, 니나가와는 수업시간에 여성 패션 잡지에 빠져 있었다. 그 속엔 하츠가 중학생때 우연히 MUJI(무지:일본의 대중적인 잡화점)에서 만났던 패션 모델인 올리짱의 사진이 있었다. 그것을 아는 척 했다가 엉겹결에 니나가와의 집에 초대되어 가게 된다. 오래된 집의 풍경이다. 낡은 가구, 어둠침침한 방. 어떻게 덥석 따라오긴 했는데,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머릿속 생각과 달리 니나가와는 올리짱을 만났던 곳의 약도를 그려달란다. 올리짱의 팬인데, 죽을 만큼 좋아한다고. 올리짱을 진짜로 만난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에 감격해 한다. ‘사랑스러운 듯이’ 바라보던 니나가와의 눈길에 헛다리 짚은 하츠는 갑자기 어수선한 기분에 빠진다. 올리짱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닮은 사람이라든지, 뭐든지 얘기해 달라는 니나가와의 말에 하츠는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먹먹하다.



 어느날, 니나가와는 그려준 약도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며 같이 가자고 부탁한다. 육상부원인 하츠가 달리기를 연습하다 넘어져서 다친 상처를 보고 반창고를 붙여주며. 하츠는 니나가와의 손길을 느끼며 기분이 좋아진다. MUJI에서 니나가와는 올리짱이 앉았던 의자랑 테이블의 사진을 정신없이 찍어댄다. 현장학습 나온 초등생처럼 하츠가 말해준 것을 뭐든지 메모한다. 이것을 보며 하츠는 시식용 콘플레이크를 아침식사로 하던 자신과 비교하면 둘 중 누가 더 해괴망측하고 민폐를 끼치는 행동일까를 생각한다. 뭐든 지기 싫어하지만 이런 승부에서는 이기고 싶지 않다고. 돌아오는 길에 니나가와에게 너네 집에서 잠깐 쉬었다가 가도 되느냐는 말이 쉽게 나오는 자신을 깨닫고 놀란다. ‘다른 사람에게 편하게 말 걸기’ 조차도 힘들었는데, 니나가와에게는 이것이 가능하구나. 이런 간단한 대화도 오랜만에 했다는 걸 깨달으며 메말랐던 감정에 물기가 배어듦을 느낀다.



 니나가와는 올리짱의 방송시간이라면서 하츠를 내버려두고 혼자 이어폰을 꽂고 등을 돌리고 앉아있다. 이상한 분위기. 이상한 존재감. 이 아이의 사교성은 아마도 유치원생때 멈췄을 것이라며. 그렇게 니나가와가 올리짱의 세계에 빠져 있는 동안, 하츠는 커다란 상자를 탐색한다. 향수, 티셔츠, 가방, 옷, 잡지 등 올리짱과 관련된 물건으로 가득하다. 파일 속에는 올리짱의 상세 프로필은 물론 올리짱의 얼굴과 완전히 다른 소녀의 나체를 합성한 누더기 사진까지...그리고 나를 인간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 듯한 저 차가운 눈빛. 감정이 울컥한 하츠는 자기도 모르게 니나가와의 등짝에 정확히 펀치를 날린다. 이야, 실제로 이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 발로 차이고도 그의 눈빛은 동경하는 어른을 보는 듯하다.

이러한 니나가와가 올리짱의 세계에서 조금 빠져나오게 된 것은 올리짱의 공연을 보고 나서다. 키누요, 하츠와 셋이서.



“감전된 거 같았어. 전신의 땀구멍이 다 열린 거 같은 느낌이랄까.…… 아아, 나, 대기실 앞에서, 미친놈처럼 굴어서 욕먹고, 그저 한낮 변태 같았겠지.”

“아까 올리짱 가까이 갔을 때, 나,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그 사람이 가장 멀게 느껴졌어. 그녀의 흔적들을 긁어모아 상자를 채울 때 보다 훨씬 더.”(P142)



 동경했던 스타는 그냥 스타일 뿐이다. 나는 그를 잘 알지만, 스타는 나를 모른다. 당연한 거리감. 그 거리감은 현실을 깨닫게 해 준다.


내 앞에 보이는 저 등을 아프게 하고 싶다. 발로 차 주고 싶다. 안쓰러움보다 더 강한 이 느낌은 무엇일까. 자신의 얘기를 쏟아 놓기만 하는 아이. 그러다가 생기는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듣는 것도 어색하다. 자신의 마음에 낀 ‘검은 실오라기’를 누가 버려주었으면 싶다. 남에게 해주고 싶은 것은 생각나지 않고, 바라기만 하는 자신을 자책한다. 이 남녀 고교생은 잘 성장하였을까. 이 작품은 와타야 리사가 2004년 와세다대학교 국문과 재학 중에 발표한 소설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제130회 아쿠타가와 상을 역대 최연소로 수상했다. 벌써 13년이나 흘렀으니 이제 성인이 되었겠다. 평범할 수 도 있지만, 학창시절 겪을 수 있는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다. 자신만의 세계에 사로잡혀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은 시한폭탄과 같은 사춘기. 이런 저런 경험을 하면서 마음이 성장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마음이 짠하지만 은근한 귀여움도 느껴지는 재미있는 성장소설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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