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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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칭 밥벌이용 글을 써야 하는 ‘문필하청업자’라는 저자는 우선 글을 참 잘 쓴다. 간결하면서 재치 있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시원시원함이 있다. 말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고 거침없다. 읽기 시작한 거의 초반부터 매우 공감하며 울다 웃다 했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고 살아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엄마, 아내, 며느리, 딸의 온갖 역할 속에서 한 평생 살아간다. 성격이나 가치관 자라온 환경이 다른 사람과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산다. 남자의 역할보다 여자의 역할이 훨씬 많고 고되다.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다. 그로인해 병을 앓게 되는 경우도 많다. 오죽하면 여자가 속 썩히던 남자와 헤어지면 전보다 훨씬 젊어지고 예뻐진다는 말도 있는가.



 저자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증권회사에 근무하는 남편이 혼자서 아내 몰래 집을 처분하여 재산은 물론 신뢰까지도 몽땅 없어진 상황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대단하다. 짧은 별거도 있었지만, 이혼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 울분과 슬픔을 글쓰기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리라. 쓰지 않고는 도저히 나날을 견뎌낼 수 없었겠지.



 우리가 흔히 주고받는 말 속에서 상처받는 소수자도 있음을 알았다. 예를 들면 세월호 사건을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한 대통령을 보고 ‘애를 안 낳아봐서 그렇다’는 말이 나왔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한 듯 수긍했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애를 낳고 안(못)낳고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적인 지적, 정서적 무능이라는 말, 그리고 그것은 애 낳지 않은 여자들에 대한 집단적 모독이라는 말로 일침을 가했다. 또 하나 ‘남자는 개’라고 생각하면 전혀 싸울 일이 없다는 김제동의 말은 남자를 비하하고 여자를 치켜세우는 말 같지만, 결코 아니라는 것. 관계의 개선이나 유지를 위해서 온전히 여자가 참아야 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한 쪽은 힘든 참음을 견뎌야 하고 한쪽은 편안함에 무임승차하는 꼴이다. 이 얼마나 가부장적 사고인가. 우리는 사고는 이렇게 무의식에 잠식당한 채 살고 있는 것이다.



 외동딸로 태어나 쌀 씻는 것조차 해 본 적이 없던 그는 결혼과 함께 가부장적 사회로 편입되어 ‘집안일부터 세상일’까지 수시로 울컥한다. 평등하지 않은 일상. 평소 니체와 시를 읽으며 세상을 향해 질문을 쏟아낸다. 2011년부터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R에서 글쓰기 강좌를 시작해 현재 학습 공동체 ‘말과활’ 아카데미‘와 글쓰기 모임 ’메타포라‘에서 정기적인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놀랍도록 폭넓은 책읽기의 편린들이 보인다. 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물‘을 먹지 않은 채 책을 쓰는 작가, 그 ‘평범하지 않음’을 가진 그가 대단하게 여겨진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는 지금은 절판된 저자의 첫 산문집 <올드걸의 시집>에서 추린 글들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보와 <한겨레>에 가장 최근까지 연재한 칼럼을 모아서 만든 것이다. 시를 좋아한 저자라서 그런지 시들과 어울려 울컥 했던 심상을 완만하게 치유해주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눈물 많고 감성이 풍부한, 친구와 술을 좋아하는 그의 살아온 이야기가 ’온갖 노릇과 역할‘에 지친 여성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줄 것이다. 한 가지 아쉽게 생각되는 것은 자신의 내면과 세상에 쏟아내는 말이 강하다보니 삶에 대한 애착이나 행복감은 뒤로 한 채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사회의 모든 병폐를 원한다고 다 뜯어 고칠 수는 없다. 누구나 고통 없는 삶은 없으며 ‘살아있는’ 자체로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갈 때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다. 싸움만 하고 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좀 더 푸근한 마음과 눈으로 삶의 아름다운 면도 풀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에.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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