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스 무하와 떠나는 미술관 여행
컬쳐앤아이리더스 기획팀 지음 / 컬쳐앤아이리더스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알폰스 무하의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작년엔가 여러 블로그에서 보게 되었고 도서관에서 책 탐방을 하다가 눈에 띄어 읽게 되었다. 표지부터 눈을 사로잡는 책이었다. 꽃 화관을 쓴 아름다운 여인. 무하의 그림의 공통점은 보통의 그림과 달리 화려하고 꽃을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 같다. 물결치는 듯한 긴 머리에서 역동적인 힘이 느껴졌고 정열적인 인생을 그림에 모두 쏟아 부었구나 싶었다.

 

 이 책은 지난 2013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알폰스 무하, 아르누보와 유토피아 >을 찾은 관람객들의 뜨거웠던 사랑에 힘입어 2016년 겨울에 새롭게 기획된 <알폰스 무하, 모던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 >을 기념하며 출판되었다고 한다. 아르누보를 표하는 체코의 국보급 화가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알폰스 무하의 일생과 예술사적 발자취를 살펴보는 책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획했단다.

 

 ‘아르누보새로운 예술을 뜻하며 19세기 말 유럽에서 등장한 예술 사조이다. 이 단어의 어원은 독일 출신의 딜러인 지그프리트 빙(Siegfried Bing 1838-1905)1895년 문을 연 파리의 화랑 메종 드 아르누보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아르누보 양식은 1890년에서 1910년 사이에 성행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조금씩 다른 형태로 등장한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는 아르누보, 영국과 미국에서는 모던 스타일, 독일에서는 유겐트슈틸, 오스트리아에서는 제체시온, 이탈리아에서는 스틸레 리베르티로 각 나라의 문화와 특성에 따라 발전했다. 나무의 줄기, 꽃과 같은 자연의 소재를 모티브로 활용한 유연한 장식성이 특징이며, 회화는 물론 건축, 가구 디자인, 생활용품 등으로 확대되었다.

 

 기존의 예술을 거부한 세기말의 새로운 양식이던 아르누보를 독특하게 표현해낸 예술가들이 주목 받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예는 빅토르 오르타의 카셀저택, 엑토르 기마르의 파리 지하철 입구, 안토니오 가우디의 카사 바트로를 들 수 있다.

 

 알폰스 무하는 1860724일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를 받던 슬라브 지역의 하나인 모라비아 남쪽의 작은 도시 이반치체에서 평범한 가정의 여섯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감각이 남달라서 그림을 잘 그렸고 노래도 잘 불러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모라비아의 브르노에 위치한 성 베드로 성당과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면서 성당 건축과 회화, 조각, 장신구를 가까이 보고 자란 것이 무하에게 지속적인 예술적 영감이 되어 여러 작품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하루의 시간: 깨어나는 아침, 낮의 밝음, 저녁 사색, 밤의 휴식. 1899. 채색 석판화.

하루의 시간을 아름다운 여인으로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이 참으로 탁월한 상상력의 대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꽃 장식과 긴 머리카락의 역동적인 표현은 여러 작품에도 나타나는 주된 특징이다.

 

연극 포스터들이다.

왼쪽부터 <카멜리아(동백꽃 부인)>, <로렌차초>, <햄릿>, <메데>, <라 토스카>

 포스터는 당대 연극계의 여왕으로 불리던 사라 베르나르는 르메르시에 인쇄소에 연극 <지스몽다>역을 위한 포스터를 주문했는데 모든 직원이 연말 휴가를 떠나 무하만 남아 있었는데

우연히 포스터 디자인을 맡게 된 무하의 손끝에서 모두의 탄성을 자아내는 결과물이 탄생한다.

1895년 새해 첫날 <지스몽다>가 엄청난 성공을 이루면서 사라 베르나르는 무하에게 6년간의 전속계약을 의뢰하였고 위의 연극 포스터 제작으로 이어진 것이다.

 

장식 패널: 사계- 봄, 여름, 가을, 겨울, 1896. 채색 석판화.

 텍스트 없이 순수한 예술적 감상과 벽장식을 위해 제작되었다. 무하는 아름다운 미술작품을  통해서 삶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대량생산으로 대중들과 가까워지고자 노력했다. 특히 무하의 작품은 일반 대중이 대상이어서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예술이었다고 한다.

 

백일몽. 1897. 채색 석판화.

 

"예술가의 임무는 대중이 아름다움과 조화를 사랑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각종 포장 디자인.

무하의 예술적 영감은 대중 문화 속에 파고 들었다고 할 수 있다.

문화 행사, 각종 서비스뿐만 아니라 소비 물품인 향수와 담배 종이, 맥주, 샴페인 초콜릿, 비스킷 등에서도 만날 수 있다.

 

 

무하가 디자인한 스테인드 글라스.

 체코의 프라하성 안에 위치한 성 비투스 대성당은 프라하를 대표하는 신 고딕 건축물이자

무하가 디자인한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 원작을 살펴볼 수 있는 건물로 유명하단다.

습작의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도 싣고 있어서 실제 모습의 그림과 비교하면서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밖에도 무대 디자인과 의상 디자인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뉴욕의 독일극장에서 작업하던 중에 의뢰받은 셰익스피어 연극의 의상 디자인을 위한 연필과 수채화 스케치들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이는 무하가 빈과 파리에서의 경험으로 무대 의상 디자인에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슬라브서사시 20편 대작의 일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되면서 무하의 조국은 1918년 10월 28일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새로 건국된 조국의 발전을 위해 도움을 주고자 했던 무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첫 우표와 지폐를 디자인해 달라는 제안을 수락한다. 또 국가의 휘장이나 경찰의 단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의 상징물이 무하의 손길을 거쳐 나온다.

 

 그리고 1912년에 시작되어 25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 슬라브서사시는 무하가 그리던 꿈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으며 1928년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10주년을 기념으로 <슬라브서사시> 전시가 열렸고 그후 작품들은 프라하 시에 공식적으로 기증되었다.

 

 독립을 이룬 지 20년도 지나지 않은 1938년 뮌헨협정이 체결되면서 독일 나치의 통제를 받게 된다. 게슈타포가 첫 번째로 체포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무하였고 심문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열정적인 예술혼으로 살았던 무하는  1939년 여름 79세의 나이로 영원히 잠든다.

 

 아르누보의 별은 그렇게 졌지만 무하 재단에 의해 1998년 체코 프라하에 설립된 무하 미술관은 세계 유일의 박물관으로 무하 생애 전반에 걸친 수많은 작품이 전시 및 보존되고 있단다.

한 해 1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무하 미술관은 체코공화국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미술관 중 하나이고 체코를 방문한다면 꼭 들러야 하는 프라의 명소가 되었다.

 

무하 미술관 내부.

미술에 조금씩 다가가는 중이다.

예전 같으면 도서관에 가더라도 미술쪽은 들여다 본 적이 없는데 요즘 신기하게도 자주 기웃거리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하듯이 누가 아는가. 미술이 나에게 어떤 영감을 줄 지.

체코의 프라하는 내가 좋아하는 유럽 작가 프란츠 카프카와도 밀접한 도시인데 언제 갈 수 있을까.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그때는 무하 미술관에도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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