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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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소세키가 마지막으로 쓴 미완의 작품으로 소세키의 문학적 시도의 도달점이며 최고봉에 위치한다고 평하고 있다. 육백 여 쪽이나 되는 상당한 분량이다. 제목에서 떠오른 것은 인간의 삶의 밝음과 어둠의 대조적인 드라마틱한 삶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극적인 사건이나 파란만장한 비극적인 상황은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 쓰다는 산시로,그 후,의 주인공인 산시로, 다이스케, 소스케를 떠올리게 한다. 고학력자이며 성격적으로 허세와 우유부단함,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당시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병폐와 그로 인한 사회적 모순을 꼬집은 작품으로 보인다. 남녀, 부부, 부모와 자식, 친척이나 주변의 인물로써 타자의 갈등 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언제나 내면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로운 것 같다.


 쓰다 부부는 교토에 있는 부모로부터 매달 생활비를 지원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세가 밀렸다, 수리비가 많이 들었다는 이유로 돈을 보내줄 수 없다는 편지를 받는다. 쓰다는 고질적인 질환인 치질에 걸려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난감하기 짝이 없다. 쓰다는 아내가 자기 아버지를 경멸할까봐 두려우면서도 오노부의 고모에게 가서 융통해 보면 어떠냐고 묻는다. 이 말에 오노부는 단칼에 거절한다. 그렇지 않아도 좋은 데로 시집가서 생활의 곤란함도 겪지 않고 행복하게 살 거라는 말을 듣는 마당에 절대로 내색할 수 없다고 한다. 결혼한 지 6개월 남짓, 애틋한 사랑이 싹틀만한 시기임에도 밖의 시선을 의식하는 이들 부부가 왠지 좀 위태로워 보인다.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면 좋을 텐데 남의 눈을 의식하며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성격도 정반대이다. 쓰다는 남에게 어필하기 위한 지식을 쌓기 위해 책을 파고들지만 오노부는 눈치가 빠르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며 적극적인 성격이지만 불행히도 허영심 같은 자존심을 갖고 있다. 소세키의 다른 작품에서는 희미했던 여성상이 여기서는 변화된 모습이다.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는 남편을 향해 속상한 마음 등 안에서 충족되지 못한 자존심을 채우기 위해서였을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남편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때문에 시누이인 오히데는 오빠가 오노부의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는 것으로 오해를 한다. 당시의 시대상으로 볼 때 튀는 성격일 수도 있는 오노부는 주변의 미움을 받는 편이다. 예쁘게 포장한 선물꾸러미의 속은 알 수 없다. 화려한 겉모습이 진실을 보는 눈을 흐리게 할 수도 있지 않은가. 백년이 넘은 소설이지만 지금도 낯설지 않은 인물군의 내면을 들여다본 것처럼 실감나는 심리 묘사의 대가 역시 소세키였다.

 

 오빠의 병문안을 오면서 오히데는 돈을 준비해 가지고 왔는데도 말다툼이 일어난다. 쓰다는 돈이 필요하고 받고는 싶지만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며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부모님과 여동생이 자신을 제외시키고 은밀히 어떤 말이 오가지 않았을까 의심하며 불만이 가득하다. 이 작품은 이렇게 가족, 형제, 부부 등 주변인들과의 심리적 갈등을 그리고 있다. 자기중심적인 자존심은 오해를 부르고 진실을 왜곡시킨다. 오노부는 오카모토 고모의 딸들이 쓰다 형부가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말을 듣고는 마음이 찔린다.


내 과실에 대해서는 내가 괴로워하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P197)


 오노부는 평소에 이런 변명을 마음속 깊이 저장시켜 자신의 자존심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고모댁에서 자라면서 화술에 능하고 활달한 고모부의 지지를 받으며 자유롭게 성장한 오노부에게 자신과 딴판인 남편을 대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원래 활달한 자신의 성격을 자제하고 남편에게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 왠지 속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 답답하다.


 쓰다의 오노부에 대한 무미건조한 태도는 왜 그럴까 궁금했다. 오노부만 있는 집에 쳐들어와서 쓰다의 낡은 외투를 얻으러 온 고바야시는 쓰다의 과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기 시작한다. 짓궂게도 쓰다의 과거의 여자 이야기를 흘리게 되는데...

 

 쓰다는 수술 후 퇴원을 하면서 요시카와 부인의 제안으로 온천 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한때 사랑했던 여자 기요코가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준다. 어떤 핑계를 대서든지 남편을 따라 가려고 애를 썼지만 끝내 쓰다는 혼자 간다. 남편의 사랑받기 위해 그렇게 마음 졸였던 오노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조각 설렘을 갖고 떠난 쓰다는 기요코와 만나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미완성으로 끝난다.


한편에는 하늘을 찌를 듯이 큰 나무가 우뚝 솟아 있었다. 별빛이 달빛처럼 환한 밤에 비치는 굉장한 그림자로 판단하자면 늙은 소나무와 같은 나무와 돌연 한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여울물 소리가 오랫동안 도회를 떠나지 않았던 쓰다의 마음을 불시에 전환시켜주었다. 그는 잊어버린 기억을 떠올렸을 때와 같은 감상에 젖었다.

아아, 세상에 이런 게 존재했단 말인가, 지금까지 왜 그걸 잊고 있었을까?’

(중략)

잃어버린 여자의 모습을 좇는 그의 마음, 그 마음을 멋대로 번역하자면 곧 이 야윈 말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의 눈앞에서 코로 숨을 내쉬는 가련한 동물은 그 자신이고, 그 동물에게 거칠게 채찍을 가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중략)

운명의 업이다. 그것을 목표로 찾아가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P527~528)


쓰다와 오노부를 중심으로 ()’의 세계와 요시카와 부인의 계략으로 기요코를 만나러 간 ()’의 세계를 암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첫사랑은 다시 만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변화된 옛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잠시 딴 마음을 먹었던 자신을 반성할 수도 있다. 또는 사랑에 갈증을 느끼는 오노부가 찾아와서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기 위해 열연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완의 소설로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독자에게 다양한 문학적 상상력의 여지를 남긴 것도 소세키 나름의 문학적 궤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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