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 지나고까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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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의 제목은 새해 첫날부터 시작해서 춘분이 지나고까지 쓸 예정이라는 소세키의 소망으로 지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제목과 이야기의 내용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이러한 작품은 그 후도 있다. 소세키는 각각의 단편을 써서 그것을 모두 모아 장편을 만들어 재미있게 읽도록 시도하려고 했는데 이 작품은 그런 의도로 쓰인 것이라 한다.


 대학을 졸업한 게이타로에게는 어머니와 외롭게 살아가면서도 취업에 연연하지도 않고 고상하게 생활하는 스나가라는 친구가 있다. 게이타로는 일자리를 부탁하기 위해 스나가에게 간다. 경시청의 탐정 일을 하고 싶지만 그의 마음이 허락지 않는다. 탐정이 하는 일이란 사회의 잠수부 같은 존재라 그만큼 인간의 불가사의함을 포착하는 직업도 없을 것이며 남의 어두운 면을 관찰할 뿐이고 애석하게도 죄악의 폭로에 있기 때문에 남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속셈 하에 성립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꺼려진다.


일자리도 일자리지만 그보다 먼저 경탄할 만한 사건을 만나고 싶은데, 전차를 타고 이리저리 아무리 돌아다녀도 전혀 소용이 없네. 소매치기도 못 만난다니까

이보게, 교육은 일종의 권리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뭐 완전히 속박이네. 아무리 교육은 일종의 권리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뭐 완전히 속박이네. 아무리 학교를 졸업해도 먹고사는 게 힘들다면 그게 무슨 권리라고 할 수 있겠나? 그렇다고 지위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멋대로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느냐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니니 말일세. 지독하게 사람을 속박하네, 교육이 말이야”(P54)


 백 년 전에도 이렇게 일자리를 얻는 게 힘들었을까. 백 년이 더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취업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것은 여전한 것 같다. 아무 일이나 할 수 없어서 교육을 받은 자체가 사람을 속박한다는 말이 어쩜 그렇게 와 닿는지 모르겠다. 스나가는 게이타로의 일자리를 위해 이모부 다구치를 소개하는데 여러 번의 우역곡절 끝에 만나게 된다. 게이타로는 우선 놀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하는데. 한참 후 해야 할 일이 들어있는 편지 봉투가 도착한다. 그런데, 그가 할 일이란 마흔 살 쯤 되는 사내가 오가와마치 정거장에서 내린 후 두 시간 이내의 행동을 정찰하여 보고하는 내용이다. 결국, 마음에 두었던 탐정 일과 비슷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스나가와 그의 가족들과 관계된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야기다.


 원래 소세키는 호기심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탐정이라는 직업이 무척 흥미롭지만 도의적인 면에서는 이 직업을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자신이나 타인의 마음을 날카롭게 통찰할 필요에 의해서 탐정소설 기법을 차용한 것 같다.


 스나가의 이모부인 다구치, 이종사촌 지요코, 외삼촌 마스모토를 둘러싼 가족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밝혀진다. 특히 스나가의 어머니는 이미 아들이 아기였을 때 조카딸 지요코와 혼인하도록 약속을 했는데 혼령기에 접어든 스나가와 지요코의 관계는 친척 이상의 사이로 발전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 마음을 내 주지 않는 스나가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 지요코가 애처롭기만 하다.


 그런 말 있지 않나. 자신의 것으로 정하기는 망설이면서 남 주기는 아까운 것. 지요코를 향한 스나가의 마음이 딱 그랬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황을 그려보고는 결국은 도리질을 한다. 두려움 없이 행동하는 지요코에 비해 스나가는 두려움이 너무 많다. 만약에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된다면 그녀가 원하는 남편상이 못 될 거라는 생각에 빠진다. 이 나약한 성격은 사회 속으로도 들어가지 못한다스나가는 자신의 유약한 마음을 이렇게 합리화한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 여자를 억지로 안는 기쁨보다는 상대의 사랑을 자유의 들판에 놓아주었을 때의 남자다운 기분으로 내 실연의 상처를 쓸쓸하게 지켜보는 것이 양심에 비추어 훨씬 더 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P274)


 스나가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일까. 자신보다 명석한 두뇌를 갖고 있는 스나가가 자신의 결점을 줄이기 위해서는 안으로 숨어들지 말고 외부에 응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마스모토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리고 이쯤 해서 나타나야 하는 반전... 생각지는 못했는데. 역시 그랬다.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마음을 빼앗는 훌륭한 사람이나 아름다운 사람이나 자상한 사람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좀 더 변덕스러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P312)


 바로 스나가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에 어울리는 문장이다. 의지할 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불행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리재고 저리재고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좀 변덕스럽더라도 일단 해보는 것, 우리의 삶이란 실수 속에서 배우고 성장해가는 것이 아닐까.


 청년이 되었어도 아직도 둥지 안에서 보호받으려는 오이디푸스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맨 앞의 이야기에서 게이타로는 같은 하숙에 있었던 모리모토의 지팡이를 갖게 되는데 지팡이에는 뱀의 머리가 새겨져 있다. 신화에서 뱀은 부활을 상징한단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밖으로 향하는 게이타로와 집안에만 안주하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에도 어려워하는 스나가의 성격이 묘하게 대비된다. 결국 탐정의 일자리로 인해 스나가의 가족과 연결되고 전반적인 가족사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스나가는 둥지를 박차고 나올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풍요로운 이 시대에도 자아 정체성의 고민과 주변인들의 관계맺음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하나 살아있는 듯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알고 있는 이웃을 만난 듯하다. 그것이 백 년 전에 쓰인 오래된 작품임에도 위로와 감동을 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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