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팔기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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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부터 나쓰메 소세키의 팬이 되었다. 언젠가 도쿄에 가면 그의 발자취를 찾아가보리라 생각했던바 작년 도쿄 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머문 숙소에서 도쿄대학이나 소세키의 산방기념관이 가깝다는 것을 알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찾아가 보았다. 그에 앞서 도쿄대학의 산시로의 연못을 둘러보며 발자국을 먼저 찍은 다음에. 산방기념관은 그가 죽을 때까지 살았던 집이고 그 서재에서 우미인초』『산시로』『마음을 집필했다 한다. 건물 바로 앞 도로는 그 동네 주민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이 보여서 대작가의 집이 멀리 동떨어지지 않고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니 놀랍고 신기했었다.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고 이렇게 족적을 남기고 떠났구나 싶어서 아련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왜 이렇게 사설이 길었을까 생각해보니, 이 작품은 1915년 그의 사망 1년 반 전에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며 대표적인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걸 알고 더욱 내밀한 소세키를 마주한 기분이 들어서다.

 

도쿄대학 안에 있는 '산시로의 연못'.

 

 주인공 겐조의 일거수일투족에 나쓰메 소세키를 이입하며 읽었다. 이야기 속에서 느껴지는 말투와 분위기가 외모에서 풍기는 약간 오만한 듯한 -그 느낌마저 멋지다.-소세키의 성격이 연상되었고 지식인이었지만 궁핍하고 신경쇠약으로 고생했던 짧은 삶, 고독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다 읽고 나서도 감동의 여운에 취해서 책장을 뒤적이며 한동안 바라보았다.

 

 대략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말하면,

영국에 유학을 다녀온 겐조가 도쿄의 고마고메에 살림을 차리고 교편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어린 시절 양부였던 시마다와 마주치게 되고 겐조의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가 현실로 툭 불거져 나온다. 첫 만남 이후 엿새째 되는 날, 다시 마주치게 되면서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힌다그것은 이 작품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달라붙어 겐조를 괴롭힌다.

 

아무래도 이게 끝이 아닐 것 같다.’(p18)

 

 그렇다. 끝이 아니라 이것이 시작이었다. 누구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성격도 아니어서 얼마 되지 않는 친척들부터 괴짜 취급을 받는다. 고독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사람을 피하고 머릿속에 활자를 채우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형제라고 해야 배다른 누나와 형이 다인데도 별로 친하지도 않아 왕래하지 않았지만 시마다를 떠올리며 누나를 찾아간다. 천식을 달고 사는 수다스런 누나는 물 만난 듯이 자기 얘기를 시작한다. 점점 나이를 먹어 몸도 약해지고, 마누라가 어떻든 신경도 쓰지 않는 남편 이야기 등 이런 몸이라 오래 살 수도 없을 것이라는... 다달이 주는 용돈을 올려달라는 이야기로 겐조는 알아차린다. 평생 말단 관리로 살아가며 세 번이나 결혼한 형 조타로, 그렇게 아픈 누나를 외면하는 매형 히다 등 불편한 시선들이 겐조의 삶을 옥죄어오는 것 같다.

 

 누나부터 시작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돈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백 년도 더 전의 이야기나 이렇게 세월이 흘렀어도 돈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다. 가족과 이렇다 할 유대관계도 없이 어른이 되어 가장이 되었지만 아내와 자녀들과의 유대감도 데면데면하다. 그 시절이니 가부장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감안하더라도. 유학을 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나름 출세했다고 생각하고 여기저기서 돈을 뜯어내려한다. 하지만 겐조의 현실을 들여다봐도 풍족하다 느껴지는 구석은 없다. 없어서 절약할 수밖에 없는데 생활력이 강한 사람으로 비쳐지고 자신과 같은 사람이 친척 중에서 가장 출세했다고 여겨지는 것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시마다는 처음에 대리인을 겐조의 집에 보내더니 다음에는 직접 찾아오기 시작한다. 정중하게 경어를 쓰다가도 자식에게 말하듯이 말을 놓고 아주 적극적이고 뻔뻔스럽게 돈을 요구한다. 시마다 부부가 이혼하면서 다시 생가로 돌아오고 관계는 정리가 되었는데 왜 찾아와서 옛정을 운운하는 것일까. 오지 말라고 단호하게 거절해도 되는 입장인데 겐조는 그러지 못한다. 그렇다고 기쁜 마음으로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 울분을 참으면서 마지못해하면서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내에게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겐조가 답답하기도 하다. 독단적인 남편에게 말붙이기도 힘든 아내는 항상 불만이다. 오죽하면 도둑놈이나 사기꾼이라도 자신을 아껴주기만 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할까.

 

 그뿐이 아니다. 시마다에 이어 초라한 행색으로 양모 오쓰네가 겐조를 찾아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일어나면서 겐조에게 5엔을 받고는 이러려고 찾아온 건 아니라며 미안해한다. 두 번이나 그렇게 5엔을 건네고는 세 번째로 올 오쓰네에게 줄 5엔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생각하며 겐조는 어이가 없어진다. 정말이지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것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처음 받은 원고료에서 나온 돈으로 보인다. 또 한때 번영을 누리던 장인은 영락하여 겐조에게 보증을 서달라고 부탁을 해온다. 누구 하나 마음 터놓고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성격적으로 그렇기도 하지만.

 

 체면 생각하지 말고 확실하게 거절하라는 아내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식이 많던 겐조의 아버지는 장차 의지하지 않을 자식에겐 돈을 쓰는 것이 아깝다하여 양자로 보낸다. 아무리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더라도 친부모에게 내쳐진 일은 두고두고 마음의 상처로 자리 잡지 않았을까. 평판도 좋지 않은 양부모가 겐조에게는 애정을 많이 주었다. 비록 어린 겐조를 그들의 전유물로 각인시키려는 행동이 보여서 싫어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몇 년을 거두어준 양부모였기에 뿌리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마도 체면보다는 측은지심이 앞섰는지도 모른다.

 

 양가에서 생가로 돌아와서도 확실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를 간직한 채 그대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그런 사랑을 나누는 법이 서툴렀을 것이고. 아내와의 긴장감 도는 분위기에서 그것이 읽혀졌다.

 

세상에 매듭지어지는 일은 거의 없어. 한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니까 남들도 자신도 알 수 없을 뿐이야.”(P287)

 

 빚쟁이처럼 계속 찾아와서 마지막엔 삼백 엔을 요구하는 시마다에게 백 엔으로 합의하고 증서를 받으며 일단락된다. 안 주어도 될 돈을 깎아서 주는 것도 참 웃긴다. 이제 시달림은 끝난 것일까. 이제 매듭지어져서 다행이라는 아내의 말에 겐조는 이 말을 덧붙인다. 끝난 것 같지만 결코 끝나지 않는 일들이 되풀이되는 삶,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 산꼭대기에 올리기를 반복해야 했던 시지프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명암이 미완의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사망 전 마지막 완결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고백하고 싶었을까. 양자로 입적되었던 마음의 상처, 원만한 성격이 아닌 고지식함이며 인생을 통해 느낀 고독감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남은 삶을 자각하고 지식인의 위선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도 살갑지 못했던 겐조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기뻐하는 아름다운 위안거리(화초 화분)’를 무자비하게 파괴해 놓고, 이런 사람이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자각하면서 슬퍼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아이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내 책임이 아니야. 이런 미치광이 같은 짓을 하게 하는 자가 누구냐?

그놈이 나쁜 거다.’(P163)

 

 여기서 그놈은 겐조의 상처받은 과거겠지. 변명처럼 내뱉는 말이지만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랑을 받고 자랐어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뭐든 억지로는 안 되는 법이지.

 

너는 결국 뭘 하러 세상에 태어난 거냐?’(P271)

 

  ‘사람이 오기만 하면 반드시 돈을 빼앗긴다며 화가 나서 찬바람 부는 거리를 쏘다니다가 또 다시 자조 섞인 말을 내뱉는다. 어릴 때는 친부모의 사랑도 빼앗기더니 어른이 되어서는 과거의 삶이 불쑥 튀어나와 돈도 빼앗아간다. 대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궁핍과 고독한 삶이 절절하게 느껴져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옆에 있다면 이렇게 위로해 주고 싶다. 뭘 하러 태어나다니요. 당신의 훌륭한 작품으로 독자에게 위안을 주려고 태어난거죠.

 

 

 몰래 찍느라고 흔들렸다.

산방기념관. 나쓰메 소세키의 서재.

 


 

  산방기념관 뜰에 있는 소세키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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