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도쿄
임진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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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묵혀두었던 숙제같은 일본어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일본과 관련된 책이라면 저절로 눈길이 갔다. 문학은 물론이고 여행 이야기, 역사, 에세이 등 다양하게 접하고 싶은 마음에 들뜨곤 한다. 더욱이 큰 아이가 도쿄로 떠나면서부터는 도쿄라는 도시가 그리움 이상의 도시가 되었다. 임진아 작가의 <아직, 도쿄>는 그런 그리움을 더욱 부추겼다. ‘아직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서 필명이 아직 임진아라는 작가의 소개말에 아직이란 단어가 새삼 신선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직 미지의 세계인 도쿄를 그리며 구글맵에 아직 도쿄라는 이름의 지도를 만들고 가보고 싶은 장소를 체크하며 정보를 모아갔던 작가의 설렘이 내 마음에도 전해질 정도였다. 무서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도시가 왜 그렇게 좋은 걸까 묻는 작가와 동지가 된 듯한 공감을 하며 웃음이 났다. 그 많은 인파도 나에겐 활기로 느껴졌고 살아있는 도시로 느껴졌으니까. 두 번의 도쿄여행을 하였지만 아직발자국을 찍지 못한 곳이 너무 많아서 다음에 도쿄에 가면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담아올까, 기대하며 읽어나갔다.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모습에도 다양한 색깔이 있는 것 같다. 모험과 도전을 위한 활동적인 여행이 있을 테고, 이름난 곳을 순례하는 여행,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물며 휴식을 하는 여행 등 다양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여행의 모습을 구경하는 일은 참 재미있었다. 작가는 도쿄의 상점, 카페, 밥과 술이 있는 곳, 미술관과 공원 등 산보할 수 있는 곳, 도쿄의 책방 등 자신의 추억이 아로새겨진 장소를 소개하고 있다. 보통은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 않을까. 일본 관련 책을 많이 읽다보니 지난 3월에 읽었던 책들이 다시 떠오른다. 도쿄의 골목을 찾아 떠난 작가, 일본의 미술관을 순례한 작가의 이야기, 또 온천 명인이 된 작가의 이야기다. 언급한 책이 한 공간을 찾은 여행이라면 임진아 작가는 어떤 시간을 좋아해서 그 시간이 여기 없을 때그 시간을 향한 이동이었다. 많은 사람들 속에 놓인 를 구경하고 싶었고, 그 최적의 도시가 도쿄였다니.


 왠지 근사한 것 같다. 커다란 도시에 놓인 자신을 구경하는 일이. 여럿이 일정에 맞춰 계획대로 움직여야 하는 틀에서 벗어나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고 온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시간을 찾아 여러 공간에 앉아보는 일. 혼자 여행이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다. 작은 도장부터 오래된 필기구와 잡화가 오밀조밀 모여 있는 문구점 사브로에서는 초등학교 시절 문구점에서의 추억을 소환해낸다. 오랜 시간 눈에 새기듯이 구경을 하다가 작은 문구를 사고, 그 작은 문구를 소중히 여기던 미소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말에 따뜻해진다. 잡화식당 롯카(六貨에서는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육화점이라는 뜻으로 많은 물건으로 넘치는 상점이 아니라, 적더라도 여섯 가지 요소를 갖춘 상점을 의미한다는 점주의 삶의 방식이 들어있었다. 의식주(衣食住) , 입고, 먹고, 사는 것과 함께 읽기, 만들기, 선사하는 것, 이란다. 조그만 가게이지만 나름의 운영방식으로 손님을 맞는 이 가게의 분위기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귀가 솔깃해진다.


 강아지도 환영받을 수 있는 카페, 어린아이와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책방 팡야노홍야(???本屋),폐점한 옛 점주가 쓰던 커피 잔을 사용하며 누군가의 추억을 이어주는 재즈 카페 킷사 하야시의 이야기가 훈훈하게 다가왔다. 각 장소마다 느껴지는 분위기와 간략한 메뉴 소개, 주소,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트위터 주소까지 상세하게 안내해 준다. 또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느낌의 일러스트는 그 장소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가보고 싶은 장소를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정보라서 여행할 때 유용할 것 같다.


여행이라고 해서 아주 거창한 경험을 얻게 되거나, 삶에 대해 새로이 깨닫게 되진 않는다. 비행기 타기 전과 비행기에서 내린 후가 완전히 다른 시간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게 있다면 주어지는 시간이 내 것이냐 아니냐의 차이, 여행에서의 매일은 온전히 나를 위해 시작된다.’(P218)


 단조로운 일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면 여행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자신을 가두고 있는 틀에서 무작정 발을 뺄 수 없음이 발목을 잡기도 한다. 이럴 때는 여행을 상상하고 계획하는 것으로도 설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언젠가의 여행을 위해 조금씩 준비하고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거창한 경험이나 새로운 깨달음은 아니더라도 내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여행의 장점이 아닐까. 때로는 길을 헤매기도 하고 혼자 여행의 울적함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꿈을 꾸고 집 생각이 나서 안부를 묻기도 한다. 길 위로 나서면 내 집이 최고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디서든 배울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여행은 누구나가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용하고 묵묵하게 좋아하는 걸 하며 지내는 삶을, 영화라는 창을 통해 나는 조용히 지켜보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도쿄에서 처음으로 혼자가 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찾는 여행을 하는 중이다.(P247~248)


 좋아하는 일과 여행은 환상적인 세트가 아닐까. 나는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꿈을 꾼다. 당장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젠가의 나의 여행을 떠올리면서 게을러지는 마음을 다잡게 된다. 책에서 드라마에서 본 곳을 가보고 싶은 마음에 설레기도 한다. 여행을 통해서 보고 듣고 나눈 것을 이야기로 쓰는 것, 그것은 꿈에 그리던 일이 되었다. 누구나 비슷하구나. 만화를 좋아하다가 그 작가의 원화 전시를 보러 여행을 하고, 머물렀던 공간에서 인연이 되어 도쿄 책방 서니 보이 북스(SUNNY BOY BOOKS)에서 개인전 [?はストレッチング(실은 스트레칭)을 열기도 한다. 전시를 위해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고 온전히 함께 했던 시간은 다정함의 흔적으로 남는다. 이러한 여러 인연들이 차곡차곡 쌓인 도쿄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좋은 일 같은 거 없어도 좋아. 있으면 좋겠지만.

[카페 뤼미에르]의 엔딩 노래 가사를 떠올린다.

언제나 이런 마음으로 내 삶을 살고, 여행을 한다. 좋아하는 것이 있기에 꾸준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일을 내심 기다리면서도, 몸을 움직여 좋은 일 쪽으로 먼저 다가가면서 말이다.(P253)


 이야기 속에는 혼자 여행도 들어있고, 친구와 연인과 동행한 여행도 있다. 좋은 걸 보고 그 좋아하는 점이 같은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은 행복해 보였다. 좋은 일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더라도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요즘 대세인 소확행이 아닐까. 도쿄라는 같은 도시라도 여행하는 사람에 따라 그 숫자만큼의 여행 방법이 있을 것이다. 도쿄에 닿기 전부터 좋아하는 것을 마주하고 꿈꾸었던 것이 도쿄와 만나면서 교차되어 풀어내는 이야기다.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라서 그런지, 감성이 알알이 스며있어서 좋았다. <아직, 도쿄>는 도쿄를 동경하고 그리움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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