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베개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8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석륜 옮김 / 책세상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풀베개>라는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며칠 전부터 읽고 있었다. 화자는 도쿄에서 온 서른 살의 남자이고 화가이다. 그동안 읽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도련님>등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몰입도가 좀 약하고 도중에 문장을 놓치고 산만해지기도 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더니, 화가 등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그들의 감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부족함이리라. 오늘(1.29일) 날씨 온통 잿빛의 하늘, 그리고 약한 빗방울 흩날리는 이런 날은 마음이 차분해져 이러한 작품을 읽기엔 제격이라 생각이 든다. 들뜬 기분으로는 몰입할 여지가 없다. 겉돌던 초반의 분위기를 지나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두 세 번씩 읽고 필사하면서 조금씩 화가인 화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1896년 문학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후 그 해 연말에 오아마 온천을 여행하며 소재를 얻어, 1906년에 발표한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 사전> 등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옮긴이와 나쓰메 소세키의 가상 인터뷰 대화도 흥미롭다. 여기서 <풀베개>라는 제목은 여행을 상징하는 한다는 것과 자연속의 ‘비인정(非仁情)’-(각주: 인간의 의리나 인정 따위에서 벗어나 그것에 구애되지 않는 일을 가리킨다.)-의 경지를 상징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하이쿠적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자연을 섬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시적으로 형상화한 수법을 작품 전반에서 볼 수 있다.



 산길을 오르면서 눈에 들어오는 여러 풍경들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하이쿠에도 그 모습을 담는다. 가는 도중 마부도 만나고 찻집 할머니를 만난다. 시호다 온천장의 사연도 듣게 된다.



 ‘저무는 봄의 색깔은 곱고 아름다워, 잠시 어스름한 문을 환영으로 채색하고, 눈부실 정도의 허리띠는 금란(金?)인가. 산뜻한 옷감이 오락가락, 날이 저무는 색깔은 창연한데 고요하고 적적한 건너편, 요원한 저쪽으로 점차 사라진다. 찬란한 봄별이 새벽녘에 보랏빛 짙은 하늘 저 멀리 빨려 들어가는 풍경이다.’(p93)



 화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같은 장소를 배회하는 여인의 모습을 슬며시 지켜보면서 말도 못 붙이고 안달한다. 화자의 안달하는 마음을 그 여인은 알리도 없다.

온천장의 나미라는 이름의 여자는 결혼했다가 전쟁으로 남편의 은행이 망해서 다시 친정 나코이로 되돌아 왔는데, 사람들을 이를 두고 인정이 없다느니 박정하다느니 여러 가지 말이 많았다. 약간 정신이 이상하다고도 했다. 화자가 욕탕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데, 나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들어왔다가 갑자기 나가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려고 이곳에 왔지만, 아직까지 한 점도 못 그리고 있는데...



 나미는 “내가 몸을 던져서 둥실 떠 있는 것을, 괴롭게 떠 있는 장면 말고요. 편안하게 죽어서 떠 있는 장면을 예쁘게 그려 주세요.” 라고 거침없이 말 한다.



 가가미가 못에 빨간 동백꽃이 뚝뚝 떨어진다. 하나 둘 꽃송이가 떨어진다. 요전에 온천장의 나미가 말했던 농담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떠 있는 장면을 그리면 어떨까 생각한다. 가가미가 못(연못)은 오래 전 온천장 시호다가의 아가씨가 투신을 했는데, 그때 거울(かがみ[鏡],가가미)을 가지고 있어서 ‘가가미가 못’이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하지만, 평소 나미의 얼굴에 떠 있는 사람을 얕잡아 보는 미소와 자유분방함이 넘치는 그 태도와 표정으로는 ‘인간 이상의 영원이라는 느낌’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통, 증오, 질투, 분노, 원한의 표정이 아닌 ‘동정’의 정서만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그림이라고. 나미의 표정 속엔 이러한 ‘동정의 정념’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서 화자는 불만스러워 한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면, 나미의 사촌 동생 규이치가 전쟁터로 떠나는 것을 배웅하는 기차의 차창으로 이혼한 전 남편의 얼굴을 보게 되고 망연해 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애련함’의 느낌을 떠올려 마침내 그림을 완성하게 된다.



 이 작품에는 한문과 중국의 학자, 문장가, 그리고 일본의 화가나 문장가, 하이쿠, 노(のう[能])-(각주: 일본의 대표적인 가면 음악극이다. 노가쿠(のうがく[能?])라고도 한다.)- 등과 서양의 화가나 문인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그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작품을 이해가 한결 수월하고, 그에 대한 감동도 배가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작품과는 다른 느낌의 작품, 자연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화가의 눈에 비친 아름다움의 정서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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