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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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확고한 문학적 위치에 있는 일본의 국민작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 작가다. 이 작품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B세트 제 87권에 속한다. 그의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도련님>등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네 번째로 읽은 작품이고...  100년이 넘은 작품인데도 고루하지 않고 사회비판과 함께 지식인의 삶의 태도의 모순을 잘 묘사하여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인 다이스케는 사업에 성공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직업이 없는 채로 그야말로 한량처럼 유유자적하며, 미술에 탐닉하거나 음악회도 가고 나름의 교양을 쌓는 등 문화생활에도 참여하며 살아간다.

서른이 다 되도록 직업을 가질 생각도 하지 않는다. ‘빵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을 가장 저열한 경험으로 생각하며, 무위도식하며 아버지의 돈을 꼬박꼬박 받아가며 산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나이가 차면 결혼을 시키려는 부모의 마음은 전통인가 보다. 사가와 집안의 딸을 소개하며 결혼을 종용하지만, 대학시절 친한 친구 히라오카의 아내 미치요가 아직도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느낀 다이스케는 끝내 결혼을 거부한다. 이로 인하여 분노한 아버지는 앞으로 아들로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며, 모든 물질적, 금전적 지원을 그만 두겠노라고 선포한다.



 그렇게도 당당했던 다이스케도 ‘돈’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친구를 배신하고, 나아가서는 사회적 인습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서까지 미치요를 선택했으나, 마지막에 커다란 궁지에 몰리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 <그 후>에는 ‘그 후’가 없다. ‘그 후’의 전야, 폭풍의 전야만 있을 뿐이다. 밋밋한 책의 제목을 짓기로 유명한 나쓰메 소세키는 이 소설에도 역시 평범한 제목을 붙였지만 그의 문학 세계의 전환을 예고하는 지극히 ‘문제적 작품’에 속한다고 한다.



 어느 소설속이든 현실에서든 모두 사랑하는 남녀가 행복하게 잘 살려면 ‘돈’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더구나 직업이 없이 놀면서 지낼 수 있는 혜택을 누리려면 더욱 더 절대적인 것이다. 돈이 없어도 사랑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오래 지속 되지는 않는다. 기본적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먹는 것만 해결하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삶의 아름다움을 누려야 하고 갖고 싶은 것을 가져야 하며, 또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맨 마지막에 다이스케가, 생전에 빵을 위해 직업을 가져보지 않았던 그가, 일자리를 알아보러 뜨거운 햇볕 속으로 급히 걸어가며 “타들어 간다. 타들어 가” 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햇볕도 뜨겁지만 곤궁한 마음속은 더욱 ‘타들어 가는’ 심정이었을 게다. 사랑도 행복도 어느 정도는 물질적인 기반이 있어야 오래 가는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매여 일을 하는 것을 ‘부품’ 운운하며 자유를 갈망하지만, 쉽사리 결단하지는 못한다. 시간에 묶여 있더라도 조금씩 주어지는 휴식 같은 여유에서 삶의 소소한 기쁨을 누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삶에 열정이 없으면서 사랑만을 갈망하는 삶은 위험하다. 어디엔가 마음 바칠 곳 없이 무위도식하는 삶에는 회한이 자기도 모르게 기습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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