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추억 - 아내 교코가 들려주는 소세키 이야기
나쓰메 교코 구술, 마쓰오카 유즈루 기록,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1928년에 아내 교코가 구술하고 소세키의 제자이자 사위인 마쓰오카 유즈루가 기록한 것이다. 첫 만남부터 결혼생활, 임종까지 그들과 함께 교유하며 울고 웃던 모든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준다. 조금은 가부장적인 면, 고지식한 면도 있지만,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좋은 옷을 입고 멋을 느끼는 즐거움도 안다. 단 머리병이 나타나지 않을 때에만. 남의 이목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찾아오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겉치레하지 않으며 없으면 없는대로의 소탈함을 보여준다. 또한 <우미인초>를 한창 쓰고 있을 때 총리대신의 축하연 초대를 단호히 거절하거나, 문부성의 박사학위 수여를 거부한 점에서 유명세에 우쭐하지 않는 겸손과 강직함을 볼 수 있다.


 이 책이 발표되자 “교코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소세키를 미치광이 취급한 악처”라며 따가운 시선을 보였다 한다. 그동안 몰랐던 일이 세상에 드러나고 나면 놀라운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삶을 같이한 사람보다 그 사람에 대해 더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소설 속에서 많이 드러난 부분이라 그리 놀랍지만은 않았다. 영국에 2년간 다녀오고 나서부터는 신경쇠약과 머리병이 더욱 심해져서 교코에게 심하게 대하고 친정으로 가라, 교코의 부모에게는 딸을 데려가라, 심지어 이혼편지까지 그녀의 부모에게 보내려하는 등의 괴롭힘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싶다. 꿋꿋하게 참고 견디며 곁에 끝까지 있어준 것을 보면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매우 깊었음을 알 수 있다. “발병했을 때는 어쩔 수 없어. 발병하지 않을 때는 그 사람만큼 좋은 사람도 없으니까”라고 하며. 만약 교코가 그런 상황을 참지 못하고 그를 떠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묵묵히 견디고 이겨낸 교코의 내조도 소세키가 대문호가 되는데 일조했으리라 생각된다. 한참 힘든 시절 그의 서재 책상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고 한다.


 “내 주위의 사람은 모두 광인이다. 그 때문에 나 역시 광인 흉내를 내야 한다. 따라서 주위의 모든 광인이 완쾌되기를 기다려 나도 거짓으로 미친 체하는 것을 그만두어도 늦지 않다.”(p151) 그야말로 소세키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고양이가 집에 들어온 이야기는 참 신기하고 재미있다. 어느 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고양이가 들어왔는데, 교코는 고양이를 싫어해서 자꾸 쫓아냈다. 그런데도 자꾸만 들어와서 밥통 위에 떡 하고 앉아 있거나 심지어 흙 묻은 발로 밥통에 앉아 있는 것을 소세키가 들어와서 보게 되고. 그러면 그냥 놔두라는 그의 말에 같이 살게 된다. 신문을 보는 소세키의 등에 올라 앉아 시치미 떼는 당돌한 모습은 작품에 나오는 그대로다. 그 즈음에 안마사 할머니의 온 몸과 발톱까지 까만 이런 고양이는 보기 드문 복 고양이라서 반드시 집안이 번창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을 듣고부터는 밥에 가다랑어포를 얹어 주는 등 고양이의 대우가 상당히 달라진다. 그리고 1904년 말 무렵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탄생하게 된다. 원래는 분량이 길지 않고 신문에 연재형식으로 시작했는데,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는 독자의 주문에 의해 2년간 계속 쓰게 되었다. 글을 쓰고 난 후부터 가난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정말 복 고양이의 힘도 있나 싶을 만큼. 이 무렵 <풀베개>, <도련님>이 나왔다. 매월 잡지에 발표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라니 가히 천재적이라 하겠다.


 평화롭게 잘 지내다가도 머리의 상태가 나빠지면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위장병이 다시 생기면 머리병은 자취를 감추고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바뀌었다. 위장병이 머리병의 구원자였다고 말한다. 다시 머리병이 나타난 상태에서 <행인>이 나왔는데, 의심이 많고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면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고 한다. 어려서는 양자로 가게 되어 양부모에게는 살가운 육친의 정을 못 느끼고 친부모는 양자로 준 아이여서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등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 했다. 평생을 위병, 당뇨병, 머리병을 앓고 위장병은 직접적인 사인이 되었다. 사후(死後)에 그의 유지를 받들어 대학에 사체를 연구를 위해 맡겼다. 뇌의 중량이 보통 사람보다 무거웠는데 이것은 뇌의 능력이 뛰어남을 증명해준 것이고, 천재는 정신병자의 한 변형이라고 한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없다. 어릴 때의 기구한 운명이 어떤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심리불안을 가중시킨 점도 있을 것이다. 50년의 짧은 인생을 살다 갔지만, 아내 교코의 깊은 사랑과 존경으로 받으며 나름대로 행복한 인생은 아니었을까. 천재적인 두뇌와 삶 속에서 영감을 얻어 하이쿠를 비롯한 많은 명작을 남기고 갔으니.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자신을 완전히 발가벗겨 그대로 내 보이는 것이 소설이라 한다. 독자는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본다. 그의 작품 속에는 그가 그림자처럼 살아 움직인다. 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단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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