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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글쓰기
니콜 굴로타 지음, 김후 옮김 / 안타레스 / 2020년 9월
평점 :
이 책을 읽은 느낌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담백한 수채화를 감상한 느낌이라고 할까. 글쓰기를 하는 과정에서 맞이할 수 있는 상황을 열 개의 계절로 표현하다니. 그 참신한 비유에 공감하면서도 어떻게 그런 표현을 이끌어 냈을까 궁금했다. 이 책의 제목이 나오게 된 것은 메리 올리버(Mary Oliver)의 시 <아침 Morning>에 나오는 시 구절의 일부를 활용했고 각 장의 ‘~의 계절‘은 함께 일하던 옛 동료의 “여자의 삶은 계절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에 무척 공감한 나머지 이야기의 주제로 끌어낸 듯하다. 어쩌면 너무 사소해서 지나칠 것 같은 말을 흘려듣지 않는 시인의 촉각이 느껴졌다.(니콜 굴로타는 일곱 살 때부터 나만의 이야기를 상상했고 운율이 있는 노랫말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시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아침에 고양이가 깨어나 기지개를 펴고 그릇에 담긴 우유를 마시고 정원으로 나가 잔디밭을 거닐다가 풀 위에 앉는 장면이다. 그 모습을 보고 시인은 “있는 그대로의 말로써 무엇을 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니콜 굴로타는 감탄하며 예찬하는 것이다. 삶에 주목하고 있는 시인 자신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이며 이것이야말로 작가의 일이라고. 관찰하며 주목하고 기록하는 일이 작가가 하는 특별한 작업이라고.
여기서 말하는 열 가지 계절은 시작의 계절, 의심의 계절, 기억의 계절, 불만의 계절, 돌봄의 계절, 양육의 계절, 문턱의 계절, 눈뜸의 계절, 피정의 계절, 완성의 계절이다. 3시간 단위로 아이에게 젖을 먹여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배변 기록을 하는 등 어린 아이를 양육하면서 글쓰기를 했다는 게 놀라웠다. 생각해 보라. 잘 자다가도 무엇을 할라치면 귀신같이 일어나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아이를 키우던 때를. 하지만 작가가 되기를 염원했기에 하루에 한번, 한 번에 한 단어씩이라도 쓰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주변 환경의 변화는 불편했지만 오히려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가 큰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에세이는 아름다우며 치유의 책이라는 스테프 페라리의 추천 평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열 가지 계절 중 특히 공감할 수 있었던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각 장의 이야기는 작가가 경험한 하나의 에피소드마다 ‘의식과 루틴’ 코너를 곁들여 마치 처방전처럼 독자들이 적용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것을 따라하다 보면 글쓰기 과정에서 부딪히는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고 복잡한 마음이 슬슬 풀릴 것 같다.(읽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신기하다.)
(P118~119 불만의 계절)
1.시작의 계절(The Season of Beginniings)
한계 상황에서의 글쓰기
꽃을 잘 피우기 위해서는 매일 또 매주 단위로 잘 돌봐야 한다.
(중략)
글쓰기 또한 이런 식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려고 애쓰며, 한 번에 단 한 문장이라도 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그 정도가 내가 하루 내내 쓴 전부일 때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결국 책 한 권을 완성할 수 있다.(P27)
무슨 일이든지 시작이란 마음에 부담을 주기도 하지만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굴로타는 작가로서 삶을 시작했거나 아직 작가로서 이름을 얻지 못했더라도 꽃에 물을 주고 돌보듯이 글쓰를 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 번에 한 문장 밖에 쓰지 못했더라도 그것으로 충분하고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하루 10분의 글쓰기일지라도 결국은 책 한 권을 완성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글쓰기의 시작은 언제나 당신 혼자만 겪는 일이다. 당신의 글이 수많은 사람에게 연결되고 전달될 잠재력 또한 당신에게 달려 있다. 어두운 숲속을 천천히 통과해, 가까이 가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아름다운 그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첫걸음을 내디뎌 첫 문장을 썼다면, 이제 숲에서 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그곳을 통과하는 것뿐이다.(P41)
글쓰기를 오랫동안 해왔지만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글쓰기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숲속을 통과하는 일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숲길을 들어왔다면 거기를 빠져나와야만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의 과정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끝까지 마무리를 해야만 수많은 독자와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3장 기억의 계절(The Season of Going Back in Time)
<의식과 루틴>- 나만의 호수를 찾아서
당신 자신의 이야기가 담겼던 글쓰기 기억과 경험을 기억하는 일은 모든 작가로서의 삶에 매우 유용한 연습이다. 이 짧은 시각화 작업은 당신의 잠재의식이 자신을 도와주기 위한 방법이다.(P77)
내가 호수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하면서 만나고 싶은 기억을 떠올려보고 그것을 자유롭게 적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이 계절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의식적으로 찾아 들어가는 계절이라고 했다. 또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며, 꾸준히 작가의 길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는 계절이며 자신의 기원을 밝히는 연습이란다. 긴 시간 동안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노력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다고 했다. 기억을 되살려내는 ‘나만의 호수’를 떠올리는 연습을 종종 활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글을 쓰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좀 더 편안하지 않았을까 하고 고민해본 적 없는가? 아니면 모든 세세한 거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가능한 한 질문도 하지 않으며, 미완성된 상태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하지 않으면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은? 나는 그런 적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글쓰기를 떨쳐낼 수 없다. 당신의 열망은 흐릿해질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글을 써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 글쓰기 욕망이란 그런 것이다.(P87)
흑인 여성 문학가(마야 안젤루(Maya Angelou)
“당신의 이야기를 내면에 간직한 채 참고 있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P88)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욕망은 떨쳐낼 수 없다고 하는 말에 무척 공감이 간다. 그러면서 자신의 창작 역사를 존중하는 것은 글쓰기 작업에 연료를 공급하는 일 중 한 가지 방법이라고 덧붙인다.
제5장 돌봄의 계절(The Season of Listerning to Your Body)
몸이 먼저다.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없다. 글쓰기는 평생의 추구이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를 챙기고 가꾸어야 한다. (본문 도입부)
특히 글쓰기는 작가의 삶과 동행하는 것이기에 서둘러 앞서지 말아야 하며, 어떤 계절이 오든지 포용함으로써 설사 5분이라는 짧은 한계 상황 속에서라도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면 된다. 이것이 글을 잘 쓰는 기술이다. 이것이 느린 글쓰기다.(P141)
<의식과 루틴>-느린 글쓰기 연습
느린 글쓰기는 ‘적게 쓰는 것이 많이 쓰는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글쓰기의 삶은 길게 보고 가는 것이기에 서두르거나 경쟁할 필요가 없으며, 스스로를 탈진 상태까지 몰아넣을 까닭도 없다는 생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P143~144)
여기에 덧붙여, 직관에 따라 계획을 세울 것, 자신의 몸을 최우선으로 할 것, 과욕을 부리지 말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면 쓸 것, 다른 사람의 글쓰기와 비교하지 말아야(매우 중요)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느린 글쓰기 사고방식을 글쓰기 삶과 통합하기 위한 지침을 이야기한다. 몸을 먼저 돌보라는 것, 느린 글쓰기를 지향하는 것이 최고의 작품을 쓸 수 있다는 말을 명심해야겠다.
(P168. 제6장 양육의 계절)
여성이 작가의 삶을 살면서 출산과 양육의 시간을 보낸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이런 시기를 다 보내고 나서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니콜 굴로타는 양육을 하는 과정의 시간을 ‘내 것이 아닌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돌이켜보면 너무 공감할 수 있는 말 아닌가. 2주 동안 빨지도 않은 헐렁한 운동복 바지만 걸친 채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머핀을 데워 먹으며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고 살았단다. 이 책을 쓰기로 계약을 하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쓸 수 없다면 절대로 끝낼 수 없다고 선언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육을 하는 엄마가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있을 턱이 없다. 꾸준히 쓰는 것이 힘들다면 하루에 딱 한 줄이라도 쓰기를 권하고 있다. 작가는 노트를 침대 곁에 두고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한 줄을 적었단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제7장 문턱의 계절(The Season of Liminal Space)
니콜 굴로타는 이 계절의 비밀은 이 시기에 우리의 영혼은 변화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불확실성을 환영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처방전을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나는 불확실함에 만족함을 받아들인다.
나는 평화롭게 기다린다.
나는 듣고, 호흡하고, 반복한다.
나는 미래가 희망적이다
나는 내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P186)
글쓰기가 잘 나아가지지 않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기다리고 미래를 희망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참으로 위로가 되는 조언이 아닌가. 읽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문턱의 계절에서는 창조적 측면이 침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신이 어떤 일을 마치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 전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때라면 글쓰기 능력이 빛을 잃었다는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 기회가 있다. 콩을 씻는다든지 감자 껍질을 벗기는 일을 떠올려보자. 단조롭고 예측 가능한 루틴은 당신이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다.(P192)
“내 글의 절반은 채소를 써는 동안 나온다. 내가 콜리플라워 대가리를 잘라낼 때 내 머릿속에는 문장들이 휘젓고 다닌다.”(P192)- 에린 보일(Erin Boyle)(단순한 문제들(Simple Matters)
니콜 굴로타는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강연가, 블로거, 콘텐츠 개발자, 요리 레시피 연구가 등 다양한 역할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첫 번째 책으로 음식과 글쓰기를 융합한 ≪이 시를 먹어라: 시에서 영감을 얻은 레시피로 차린 문학의 향연Eat This Poem: A Literary Feast of Recipes Inspired by Poetry≫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 책의 바탕이 된 글쓰기 커뮤니티 “와일드워즈(Wild Words)'를 만들어 예비작가들의 내적, 외적 성장을 돕고 있다 한다. 생각해 보니 이 책의 제목 ‘있는 그대로의 글쓰기’는 니콜 굴로타가 글쓰기에 완벽한 상황이 아닌- 출산과 양육의 상황이라는 힘들 수도 있는- ‘있는 그대로의 삶’에서 쓴 이야기라는 중의적인 의미로도 생각되었다. 그래서 더욱 대단하게 생각되었고 감동적이었다. 나도 글쓰기를 하면서 종종 막막한 상황을 맞기도 했는데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다. 그리고 틈새 시간을 활용할 정도로 한계 상황의 글쓰기를 해야 했던 저자의 열정적인 글쓰기 자세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고 있다면 모두 작가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글쓰기가 항상 마음에 드는 건 아닐 것이다. 좀 더 성장하는 글쓰기를 원하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위로와 치유와 반성의 시간을 통째로 선물해 줄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