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 엔젤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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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으로서 국가가 앞장서서 국민들에게 담배를 파는 것에 대해 항상 부조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겐 건강을 내세워 금연하라 종용하는 것만큼 위선적인 행위는 없으며 이와 마찬가지로 카지노 영업에 대한 것도 도박을 금지하면서 관광을 목적으로 도박장을 개설하거나 특수 지역의 경기를 살린다는 명분을 내세워 국민들이 도박을 하는 것에 대해 묵인하는 건 앞과 뒤가 다른 행위라 생각하는 데 스노우 엔젤은 여기서 더 나아가 국가에 의해서 불법이었던 것들이 소기의 목적 아래 합법화가 추진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음모를 다루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 이제껏 금지되어왔던 카지노가 국가의 공인 아래 합법화가 추진되던 즈음 도쿄에서는 대낮에 약에 취한 상태로 차를 몰아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고 본인은 백화점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오래전 수사를 하던 중 범인들이 판 함정에 빠져 파트너를 눈앞에서 잃고 남은 사람 모두를 총으로 쏴 죽인 후 경찰을 그만두고 도피생활을 하고 있던 남자 진자이 아키라를 찾아온 마약 단속관 미즈키 쇼코

그녀는 아키라에게 시중에 은밀히 나돌고 있는 신종 환각제...표면에 천사가 새겨진 일명 스노우 엔젤을 유통하는 책임자를 찾아 줄 것을 요구한다.

게다가 이 약물 유통에 어쩌면 마약 단속국 내부에서도 관여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자신과 아키라 단둘만 아는 비밀유지를 해야 하며 만약 수사를 하다 경찰에 검거되거나 사고를 당할 경우 그를 지켜줄 수 없음을 명확히 했지만 언제나 부채감에 시달리던 아키라는 이를 승낙... 마약 판매자와 접촉한다.

그리고 그가 접촉한 마약 판매상 이사 라는 남자도 사실 평범하진 않다.

유학을 가서 현지에서 마약을 접한 후 귀국해 마약 판매상이 된 케이스지만 스스로도 마약의 유래나 역사에 대해 해박할 뿐 만 아니라 마약 중독자 수나 도박 중독과 같은 중독자 수가 줄지 않는 이유에는 국가의 묵인 혹은 은밀한 권장이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통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들춰 의표를 찌를 뿐 아니라 전체를 냉정한 시선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지성 또한 갖추고 있다.

게다가 별 볼일 없는 마약 판매상에 불과할지라도 그는 나름의 확고한 믿음이 있는데 자신의 주장 즉, 지금 현재는 불법이라 단속을 하고 걸리면 교도소에 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아주 오래전 마약이라 불리는 약물 대부분은 치료제로 쓰이거나 국가에 의해 국민들에게 처방된 전적이 있었으며 결국 불법과 합법의 경계 또한 시대적 상황이나 그 주체의 대상에 따라 바뀔 수도 있음을 설명하는 이사의 대사들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것이 마약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사고파는 담배나 합법적인 도박장 강원랜드나 카지노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마리화나와 같은 걸 합법화한 곳도 있는 데 중독의 위험성은 적은 반면 스트레스 해소와 같은 치료제의 긍정적인 효과에 손을 들어준 거라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이면엔 누군가의 이득을 위한 조치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을 가와이 간지는 소설 속 마약 판매상 이사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모든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선 판매자가 아니라 그걸 사는 최종 소비자에게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던가 세상에서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종교 때문이라는 등... 어쩌면 궤변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오랫동안 많은 걸 생각해온 사람의 의견이 들어있었다.

한때 국가 권력에 의한 음모론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이 많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스노우 엔젤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실에서 벌어지면 엄청난 파급력을 가질 것이 분명하지만 터무니없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국가 권력 역시 언제나 감시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

몰랐는데 자신의 실수로 인해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괴로워하며 오랫동안 그 범인을 찾아 헤매고 있는 아키라의 이야기는 데블 인 헤븐의 이야기와 연결되고 있다.

그 편에선 과연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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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범죄
요코제키 다이 지음, 임희선 옮김 / 샘터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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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체가 떠올랐다.

배 엔진에 의해 훼손이 많이 된 그 시체는 당시 집에서 가출한 지 일주일 정도 된 도쿄의 한 주부라는 게 남편에 의해 밝혀지고 절벽 아래 그녀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던 점등을 참작해 자살로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그녀가 죽기 직전 한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의 증언이 나오면서 사건은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살인가 사고인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한 타살인가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는 타살로 보기 힘들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그 사건을 캐들어가다 이 사건에 피해자의 남편이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제목에서도 밝혔듯이 어느 한 여자의 단독범행이 아닌 그녀들... 최소 2명 이상이 범죄에 가담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그 가담한 사람들의 면면이 생각지도 못한 연합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매력이 발한다.

첫 번째 여자는 지방에서 도쿄로 상경해 간호사로 일하던 중 우연히 만난 잘생기고 부자인 의사 진노 도모야키와 결혼에 성공한 유카리

대대로 부잣집으로 시집을 온 그녀를 남들은 신데렐라로 부러워할지 모르지만 남편과는 데면데면한 지 오래... 그저 이 넓은 집에서 시집 식구들의 수발을 드는 하녀 그 이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걸 자각하게 된 건 우연히 알게 된 남편의 바람과 이웃집 여자의 시선을 통해서이다.

두 번째 여자는 남편의 불륜 상대인 마유미

그녀는 요즘 시선으로 보기엔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지만 실제로 일도 잘하지만 당시 시대적 분위기에서는 그저 결혼하지 못한 노처녀에 불과한 신세다.

스스로도 하루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압박감을 느끼던 중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해오는 남자가 대학때 알았던 부자이고 잘생긴 의사라는 점에서 깊은 고민 없이 그와의 연애에 빠졌지만 그가 유부남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그녀를 좀먹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여자는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거액을 상속받아 평생을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살 수 있지만 한날한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혼자 남았다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죽음을 생각한다.

이렇게 서로 접점이라곤 없을 것 같은 세 명의 여자들의 이야기 속에 그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런 그녀들에게 진노 도모야키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이 모든 일들에 알게 모르게 연관되어 있는 문제적 남자 진노 도모야키의 면면을 살펴보면 태어나면서부터 부자집 외동아들로 태어나 타고난 외모와 머리로 어디서든 리더로 활약하는 정형외과의사인 그는 누가 봐도 매력적이고 앞으로의 길 역시 순탄하리라 예상할 수 있는 남자.

그런 그가 누가 봐도 그와 어울리지 않는 여자를 아내로 두고 있으며 그의 내연녀는 눈에 띄는 미모의 미혼 여성

언뜻 생각해봐도 아내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면 가장 의심 가는 인물은 남편인 도모야키와 그의 불륜 상대인 마유미다.

그들에게는 아내를 죽일 이유가 있었고 그런 이유로 그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하다 생각지도 못한 남편의 행적이 드러나면서 그에게 모든 혐의가 짙어지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하나둘씩 나오는 증거는 모두 그를 향하고 그의 내연 상대인 마유미는 왠지 이 모든 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을 꾸민 건 마유미일까?

자신의 결혼을 방해하는 유카리라는 존재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는 처지의 그녀가 완전범죄를 꿈꾸고 유카리를 죽인 걸까?

책 처음부터 즉 목차에서부터 이 모든 일에는 그녀들의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놓고 있다.

그녀들의 각자 처해 있는 사정부터 그녀들의 거짓말과 그녀들의 숨기고 있는 비밀 순으로...

어찌 보면 그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평생을 여유롭게 군림하며 살던 진노 도모야키는 여자들을 상대로 적당히 거짓말을 하고 바람을 피울 수는 있어도 진검승부에서는 그녀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지금의 환경이라면 여러 가지 과학적 증명으로 도모야키가 걸린 올가미를 설치할 꿈도 꿀 수없을지 모르겠지만 당시는 1988년...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한 옛날이라는 점에서 다소 어설프게 보이는 사건의 흑막이 먹힐 수 있었고 여자라는 존재는 그저 몇 년 일하다 때가 되면 결혼해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는 게 당연했던 시대적 분위기가 있었기에 그녀들의 범행이 돋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시원하게 뒤통수를 친 그녀들의 범행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거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없었을 거라는 걸 짐작한 듯한 작가의 마지막 포석은 완벽한 결말이었다.

잘 짜인 플루트와 결말에 가독성까지... 일본 추리소설로는 모처럼 재밌게 읽은 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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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벨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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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요정 팅커벨이다

소설 원작 속 주인공들과 현실 속 주인공들이 서로 연결된 채 하나둘씩 죽어나가는 식으로 원작을 살짝 비틀고 거기에다 살인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엮어 히트를 친 고바야시 야스미의 죽이기 시리즈가 피터팬의 영원한 단짝인 팅커벨을 살인의 대상으로 해 누가 팅커벨을 죽였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 팅커벨 죽이기는 기존의 죽이기 시리즈와 비슷한 포맷을 가져왔다.

늘 잊어버리기 예사고 성질 급한 피터가 웬디와 그 일행을 데리고 네버랜드로 돌아가는 길

시작부터 온갖 불평과 짜증을 내면서 등장하는 피터팬은 동화 속의 그 아이가 아닌 것처럼 성질머리가 고약하고 거슬리는 것은 가차 없이 죽여버리는 잔인한 면을 보이고 있지만 그런 피터도 웬디에게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말을 들어주고 있다.

웬디가 폭주하는 피터를 막을 수 있는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

그런 피터에 의해 잡아먹힐 뻔했던 도마뱀 빌은 웬디의 친절 덕분에 살아남아 그들과 함께 네버랜드로 가지만 얼마 안가 팅커벨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 버려진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자신과 함께였던 팅커벨을 기억하지 못하는 피터팬에겐 팅커벨이란 존재는 그저 파리나 모기와 같이 하잖기만 하고 자신이 왜 범인을 잡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지만 웬디의 요청이어서 마지못해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시리즈의 다른 편과 마찬가지로 동화 속 네버랜드에서 사건이 벌어질 동안 지구에서는 오랜만에 모인 동창들이 깊은 산속 산장에서 동창회 모임을 하고 팅커벨이 죽은 시간 동창 중 한 사람이 누가 봐도 이상한 자살을 한다.

꿈속에서 네버랜드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알고 있던 이모리는 현실과 꿈속 네버랜드와의 연결점을 찾아 서로의 세계가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네버랜드 속 캐릭터가 이곳에서 아바타라임을 깨닫지만 모두에게 밝히는 게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도 자신이 아바타라임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에다 더해 네버랜드 속 캐릭터와 현실 속에서 누가 그 아바타라인지를 곳곳에 뿌려둔 작은 단서를 찾아 밝혀야 하는 이 시리즈만의 매력이 빛을 발한다.

그러는 동안 이상한 사고사나 자살이 연이어 발생해 모두의 분노가 피터팬을 향하면서 그의 아바타라를 색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알고 보니 피터에겐 사건 당시 그의 결백을 증명해 줄 증인이 있다.

모두가 피터의 난폭함을 두려워해 말을 못 하고 있었지만 그가 팅커벨을 죽였음을 의심하던 상황이 역전되고

이제는 범인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피터팬에 의해 죽은 걸로 알고 있던 해적 선장 후크뿐... 그가 실제로 죽었는지 아니면 살아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은 그의 아바타라를 찾으면 되지만 가장 혐의가 짙은 후쿠 선생은 이에 협조를 거부한다.

게다가 모두의 의심과 반감을 살만한 행동을 일삼기만 할 뿐 스승으로서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 그에게는 어딘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그렇다면 그는 모두의 짐작대로 후크선장이 맞는 걸까?

아니면 이름부터 시작해 너무 뻔히 보이는 걸로 봐서 트릭인걸까?

시리즈 전체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조건 즉 동화 속 세계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현실에서 누군가가 죽어 나간다. 그 사람은 동화 속 캐릭터의 아바타라인 셈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아바타라인 사람이 살해당하거나 죽는다 해도 동화 속 세계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죽었던 사람도 마치 꿈을 꿨던 것처럼 새롭게 바로 전의 환경으로 리셋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동화 속 세계가 현실이고 지금의 현실이 마치 매트릭스 속의 세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혼돈스러운 것도 이 시리즈의 특징이다.

이런 단순해 보이는 듯한 법칙 속에서 뭔가 이질적이면서도 미묘한 다름을 찾아 그 다름으로 범인을 색출하는 죽이기 시리즈는 원작 속의 우리가 알던 캐릭터와는 아주 다른 모습들을 보여줘 어리둥절하게 하지만 원작 속 캐릭터의 새로운 해석으로 봐도 괜찮을 듯하다.

팅커벨 죽이기에 나오는 피터팬은 우리가 알고 있던 어른이 되기 싫어서 영원히 소년인 채로 남은 그 피터팬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몸뿐 아니라 마음도 그대로 자라지 못해 어린아이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변덕이 심하고 싫증을 잘 내고 단순하면서 모든 것이 본인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어른의 눈으로 보면 짜증 나는 모습이지만 피터팬을 그저 아이라고 생각해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고바야시 야스미는 그런 미묘하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잘 캐치해 자신의 특기인 그로테스크한 살인과 잘 섞어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다.

죽이기 시리즈는 그야말로 캐릭터의 생생함이 얼마나 잘 표현되었는지가 생명이기도 한데 그런 점에서 보면 팅커벨 죽이기에서의 피터팬은 참으로 제대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살인사건의 범인찾기보다 현실속 캐릭터중 누가 어떤 역활인지를 찾는 게 더 중요한 죽이기 시리즈의 다음편은 어떤 소설을 비틀어 새롭게 보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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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은 여자의 일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김도일 옮김 / 허클베리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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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남자 여자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잔인해졌을 뿐 아니라 그 이유도 다양해졌는데 이전에는 여자보다 남자가 살인사건의 범인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살인사건의 범인이 여자라는 게 다소 익숙하지 않은데 이 책은 이를 살짝 비튼다.

살인은 여자의 일이라고... 마치 살인이란 게 단순할 뿐 아니라 사소한 일인 것처럼 표현해놓았는데 그래서인지 책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대담하게 저질러버리는 살인이라기보다 상황에 따라 우발적으로 깊은 고민 없이 저질러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이 하는 일인 출판사 편집자라는 커리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독신으로 사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던 여자가 우연히 합석한 자리에서 추리소설 작가 지망생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 끌림을 느끼지만 그가 이미 결혼한 남자라는 걸 알고 좌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의 아내를 본 순간 맹렬한 살의를 느끼게 되는데 자신이 동경하는 미남 작가의 아내라는 여자의 외모가 평범함을 넘어 초라하기 그지없어 어떻게 그런 여자가 이런 남자의 아내일 수 있는지 모욕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보란 듯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수시로 작가를 불러내 시간을 가지고 자신이 작가와 함께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우월감을 느끼던 중 우연한 기회에 그 아내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지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악의적인 마음으로 남편에게 전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것도 잠시... 작가의 아내와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살인은 여자의 일

이와는 반대로 남편의 불륜 상대로부터 지독한 괴롭힘에 시달리던 주부가 느낀 한순간의 살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살의를 품고 어둠 속으로는 지인의 파티에서 이제껏 목소리로만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의 여자를 마주한 후 그녀가 어둠 속에 숨어 여자가 오기를 기다리게 된 과정이 아주 흥미롭게 그려져있다.

처음 남편의 외도를 눈치챈 순간부터 그녀가 느끼는 감정의 변화 즉 그럴 리 없다 부인했다가 어쩔 수 없이 인정한 후에는 스스로를 속이며 납득하다 마침내 혼자서 용서해 주고는 원망의 화살을 남편이 아닌 상대의 여자에게 돌리게 된다. 마치 모든 게 그 여자가 나쁜 여자이고 남편은 우연히 걸린 것처럼...

이와 때를 같이 한 듯이 상대편 여자로부터 집요한 전화 공격이 시작되어 바람피운 남편의 잘못은 사라지고 상대 여자는 천하의 악녀이자 바람둥이가 된다.

그런 여자를 지인의 파티에서 만났는데 너무나 당당하게 활보하고 화려한 모습의 그녀에게 맹렬한 살의를 품는 여자의 마음도 십분 이해가 갔다.

먼저 파티를 나가 어둠 속에 숨어 그 여자가 올 때를 기다리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완전범죄를 꿈꿨을까 아니면 그녀만 사라지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을까

조금은 나이 많은 남편과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둔 아내가 벌이는 하루의 일탈을 다루는 털은 미스터리보다 그녀가 일탈을 위한 준비과정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그녀의 심리가 잘 표현되어 있다.

남편과 아이가 깊이 잠든 틈을 타 외간 남자에게 보이기 위한 샤워를 하고 정성스럽게 치장을 하는 여자는 사실 바람이 목적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탈출, 잠깐의 일탈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잠깐의 일탈을 즐기고 온 후 집으로 돌아와 그녀가 발견한 것은...

도둑과 백화점 경비 사이에서 생긴 분홍 색깔 로맨스를 다룬 여 도둑의 세레나데는 사실 오래전 읽은 한 미스터리가 생각나는 시놉이긴 했다.

이제껏 수많은 도둑질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던 여자가 자신을 처음 잡은 전직 형사출신 백화점 경비원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남자 역시 귀신같은 그녀의 솜씨를 보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두목이 이 지역을 뜨기 전 크게 한탕하고 자 한 거사 일은 그들의 작전과 상황이 다르게 펼쳐지게 되고 운명의 순간 그녀는 의외의 선택을 해서 모두를 놀라게 하는데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그 남자를 향한 그녀의 사랑이 있었다는 이야기~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은밀하게 접근해서 시행하는 살인이 아닌 살의가 쌓여 찰나의 기회가 왔을 때 뒤를 생각하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순간을 담고 있는 살인은 여자의 일은 단편의 특징을 제대로 살리고 있다.

지난한 과정은 생략한 채 왜 살의를 품게 되었나 와 어떻게 그 살의를 표현할까에 집중하고 여기에 양념처럼 의외의 결말을 첨가해서 가볍게 읽기 좋은 미스터리 단편이 탄생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 변호 측 증인을 재밌게 봤는데 그와는 다른 느낌이지만 여자들의 미묘한 심리와 살의를 품는 순간의 포착이 뛰어나 재밌게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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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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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나이트를 비롯한 여형사 레이코 시리즈로 유명한 혼다 데쓰야

늘 강력한 살인사건을 필두로 그 사건을 해결하는 강력반 형사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잘 다루었던 작가가 이번엔 기존의 작품과 전혀 다른 느낌 다른 소재를 가지고 왔다.

여전히 범죄자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어떤 사건을 저지르고 그걸 해결하는 식이 아닌 이미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죗값을 치르고 나온 후의 이야기라고 보면 될 듯...

우리 사회는 전과자가 살아가기에는 녹록지 않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 내가 알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알고 보니 어떤 죄를 지어 교도소에 갔다 온 전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평소대로 그 사람을 볼 수 있는가 하면 그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전과자가 사회에 복귀에서도 또다시 쉽게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악순환이 된다는 것도 알지만...

이 책 플라주에서는 그런 전과자를 내세워 비록 한때 죄를 지었지만 다시 새 출발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들도 전과자이기 전에 사람임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편견에 아파하고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려주고자 한 게 아닐까 싶다.

직장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다 단 한 번 각성제를 한 죄로 집행유예를 받고 전과자가 된 다카오는 설상가상으로 살던 집까지 불이 나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다.

그런 그를 안쓰럽게 여긴 보호사의 도움으로 입주하게 된 셰어하우스 플라주는 식당을 겸하고 있는 다소 이상한 곳으로 방마다 입주자가 있지만 문이 없는 독특한 구조였다.

그곳의 입주자들 역시 평범하지는 않은데 우연한 기회로 그중 한 명이 살인을 저지르고 형을 살다 온 전과자임을 알게 되고 다카오는 당황하지만 알고보니 세입자 모두가 자신처럼 전과자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이내 그들에게서 어떤 위험도 위협도 발견하지 못하고 그들 역시 자신과 별다를 바 없는 사람이란 걸...잔인한 범죄를 예사로 저지르는 악당들이 아니라 그들도 자신처럼 사회에서 받아주는 곳이 없어 살 곳을 찾다 이곳으로 들어왔고 근근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한때 한순간 잘못된 선택을 한 죄로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그 죗값을 다 치르고 나왔지만 어디에서도 용서받지 못한 채 아직도 감옥에 갇힌듯한 시선 속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책을 읽으면서 누구나 쉽게 떠오르는 말이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하지만 그 범죄의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 본다면 쉽게 용서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교도소에 몇 년간 갇혔다는 걸로 그 죗값을 다 치렀다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 않기에... 그렇게 쉽게 용서를 입에 담는 말을 용납하기 어렵다는 것도

그렇지만 죄를 지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한순간의 실수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고 심지어는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한 채 사회로부터 몇 년간 격리된 걸로도 모자라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고 차가운 냉대를 받으면서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죗값을 두 번 치르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결국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기 어렵게 만들어 죄를 짓고 싶지 않은 전과자에게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기 쉽도록 하는 것 역시 사회적으로 보면 막심한 손해라고 보면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계속 죄를 짓는 상습범이 아닌 다음에야 사회에서 무조건 전과자라는 낙인을 찍고 그들을 발 못 붙이게 하기보다는 다시 한번 제대로 살 기회를 주고 좀 더 넓게 포옹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어필하고 싶은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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