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아이
조진주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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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성공하기 어려운 범죄 중 하나가 유괴고 범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대부분 검거되지만 안타깝게도 유괴되었던 피해자들은 죽음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유괴사건이 빈번하게 벌어진 때가 있었는데 그 대상은 안타깝게도 어린아이일 때가 대부분이었고 결과 역시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을 맺은 게 대부분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아이의 귀가가 늦거나 행방이 불분명할 때 즉각적으로 전국에 경보가 내려지기도 하고 CCTV가 사방에 깔려 있어 이런 범죄가 줄어들었지만 우리에게 아직도 범인이 검거되지 않은 채 피해자 가족에게 돈을 요구하던 유괴범의 목소리만 남은 사건이 기억에 남아있다.

이 책 살아남은 아이는 유괴사건의 피해자면서 살아남은 후 혼자만 살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목격자면서 제대로 된 진술을 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믿지 못해 끝없이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범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희는 오늘도 한 사람의 몽타주를 그리고 있다.

자신이 돌보던 동생 같은 아이 미성이랑 함께 유괴된 후 혼자서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자신이 봤다고 생각하는 유괴범의 얼굴을 매일매일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범인의 얼굴은 유괴당한 미성의 아빠 얼굴이었고 당시 지희의 증언으로 그는 상당히 고초를 겪은 후 풀려났었다.

그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고 당시의 충격과 범인의 협박이 트라우마로 작용해 당시의 기억 일부가 지워졌고 특히 범인의 얼굴은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나지 않아 미성이의 구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매번 바뀌는 증언에다 엉뚱하게도 미성의 아빠 이동형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바람에 증언에 신빙성이 떨어져 나중에는 그녀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게다가 미성이가 결국 죽어 돌아오면서 미성이를 구출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뿐 아니라 그녀 역시 피해자라는 걸 간과한 사람들의 독촉과 차가운 시선에 상처받고 마음을 다친 채 오늘에 이르렀다.

17년이 흘러 마침내 당시의 범인이 죽음으로서 밝혀졌지만 이상하게도 지희는 그가 범인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모든 증거가 그가 범인임을 밝히지만 이도형에 대한 의심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던 지희는 더 이상 현실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마침내 행동에 나선다.

여기서 지희는 피해자이면서도 생존자이고 유일한 목격자이기도 하다.

그녀 역시 엄청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아직 유괴범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미성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두가 그녀에게 범인에 대해 질문을 하고 또 질문을 하면서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실망한다.

그리고 그 실망은 이내 어린 지희를 향한 비난으로 쏟아지고 어느새 그녀는 보호받아야 할 범죄 피해자의 신분에서 목격자로서만 존재한다. 그것도 제대로 제 몫을 해내지 못한 실패한 목격자로...

범죄 피해자로 살아가면서 그 사람이 겪는 죄의식과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을 느끼는 생존자의 심리와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살아남은 아이는 이제껏 죽은 희생자나 범인에 대해서만 모든 포커스를 맞춘 여느 작품과는 조금 다른 살아남은 피해자의 심리에 맞췄다는 점에서 색다르게 다가왔다.

여기에다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의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가미해 대중성도 갖추고 있어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다소 가볍게 한데다 과연 누가 진범인지 진실을 찾는 과정의 흥미로움을 더해 가독성 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섬세하면서도 세심하게 그려진 점도 그렇고 소재의 색다른 접근이라는 점에서도 점수를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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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은 어디에
재클린 부블리츠 지음, 송섬별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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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인사건이 나면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피해자보다 누가 그 사람을 죽였을까 즉 피의자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긴 한데 피해자는 이미 죽은 사람이고 혹시라도 범인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함이라고 말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피해자보다 피의자의 동기나 살해 방법 등이 더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이목과 관심을 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결국은 아무리 억울하게 살해당했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든 간에 남의 일 즉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반영해서 모든 살인자가 등장하는 스릴러 영화나 소설 속에서의 주인공 대부분은 범인이거나 그를 잡는 형사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볼 때 이 책 네 이름은 어디에는 살인사건이 나오고 범인 역시 등장하지만 오롯이 피해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다소 색다른 소설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주인공인 소녀 앨리스는 이야기 초반부터 살해당한 즉 이미 죽은 사람으로 자신을 처음 발견한 여자 주위에 맴돌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뉴욕에 두 사람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도착한다.

한 사람은 열여덟 살의 앨리스이고 또 다른 사람은 호주에서 온 서른여섯 살의 루비

두 사람은 살아온 환경도 외모도 다르지만 무언가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뉴욕을 선택한 공통점이 있고 무엇보다 이 둘을 잇는 연결점은 서로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단지 한 사람은 죽은 채 피해자의 모습이고 또 다른 사람은 이를 맨 먼저 발견한 목격자라는 차이점이 있을 뿐...

앨리스는 이제까지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

아빠는 누군지도 모르고 엄마는 자살로 생을 마감해 세상 천지에 그녀 홀로 서야 하는 외로움에 흔들리다 믿었던 선생님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뉴욕으로 와 간신히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을 거라 희망에 부풀어있었다.

하지만 그런 앨리스의 희망찬 순간에 마치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살해함으로써 그녀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고 이제는 누구도 그녀의 이름과 신분을 아는 사람이 없어 신상 불명의 시신에게 붙여주는 이름인 수많은 제인 중 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호주에서 온 루비 역시 약혼자가 있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그가 약혼을 깨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다 끝내 자신은 그에게서 숨겨둔 연인 이상은 될 수 없음에 좌절하다 도망치듯 이곳으로 온 상태였다.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 목을 매며 술로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비 오는 날의 조깅에서 앨리스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녀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지만 아무도 죽은 소녀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에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며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모든 사건이 그렇듯 사람들은 이내 이름도 알 수 없는 소녀의 죽음에서 관심이 사라지고 경찰 조사 역시 미진한 상태로 시간만 흘러 자칫 미제 사건 중 하나로 남을 수도 있는 순간 자신이 처음 발견했던 소녀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왜 그 아이가 살해당해야 했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루비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당연하지만 이런 마음가짐은 루비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기존의 범죄소설과는 전혀 다른 걸음을 보이는 네 이름은 어디에는 이제까지 모두의 관심사였던 범인의 정체나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이 아닌 이름 모를 피해자가 된 한 소녀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쩌면 기존의 스릴러소설이나 크라임 스릴러의 전개를 기대하는 사람에겐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피해자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로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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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A 살인사건
이누즈카 리히토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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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발전하고 개방될수록 범죄에 노출되는 아이들의 연령은 낮아져만 가지만 법은 현실을 따라 잡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지금의 십 대는 옛날의 십 대와 발육상태도 다르지만 정서적인 면에서도 천지차이... 당연히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나이 역시 갈수록 어려질 뿐 아니라 범죄의 잔인성이나 치밀함은 성인 범죄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법에서 정하는 형벌은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오래된 법에서 명시하는 연령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문제는 영악해진 아이들이 자신들이 어떤 짓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법으로 보호받는 이른바 촉법소년이라는 걸 이용한다는 점인데 일본에서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런 딜레마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 책 소년 A 살인사건은 그런 촉법소년의 이야기와 과연 법이 이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보호하는 게 정당한 일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터넷의 은밀한 통로인 다크 웹에 20년 전 일본을 떠들썩하게 한 여아 살해 사건 당시를 찍은 일명 스너프 필름이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다.

경시청에서 재빨리 문제의 필름을 손에 넣지만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한동안 잊혔던 그때의 사건 즉 어린 소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걸로 모자라 안구를 적출해 그 부모에게 보내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고쿠분지 여아 살해 사건이자 일명 소년 A 살인사건으로 불렸던 사건이 20년 만에 다시 화제에 오르는 계기가 된다.

이 사건이 파란을 일으킨 건 사건이 잔인한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범인이 당시 14세의 중학생이었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해자 소년은 소년법에 의해 법으로 보호를 받아 이름도 신상도 어느 것 하나 공개되지 않은 채 제대로 된 처벌 없이 의료 소년원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4년을 지낸 후 사회에 복귀해 살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공분을 사게 되고 문제의 스너프 필름은 소년 A 가 돈 때문에 경매에 부친 거라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가고 있었다.

경찰 역시 스너프 필름이 유출된 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경찰은 이 필름이 유출된 과정에는 당시 모든 필름의 원본을 증거물로 압수했지만 소년 A가 몰래 복사본을 가지고 있다 돈이 필요해 경매에 올렸거나 아니면 그 필름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경찰 측의 누군가가 몰래 복사해뒀을 것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조사에 들어가 용의자를 추출한다.

하지만 경찰의 조사와는 별개는 인터넷상에는 일명 소년 A로 불리는 당시의 소년이 범인이라는 게 기정사실처럼 굳어져 신상정보를 밝혀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결국엔 그의 정체가 밝혀지게 된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이미 그의 모든 것이 공개되면서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리고 그의 죄를 앞장서서 주장했던 인터넷 자경단 앞으로 협박 문과 더불어 목이 잘린 고양이의 머리가 배달되는 등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며 협박을 해오는 존재가 등장한다.

이들의 폭로로 모든 걸 잃은 소년 A의 반격일까? 아니면 또 다른 범죄자의 등장일까?

이야기는 잔인한 범죄로 한 가족을 붕괴시킨 범인이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오히려 법의 보호를 받을 뿐 아니라 몇 년간의 보호 조치 후 새로운 신분으로 아무런 제제 없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정당한 가 하는 문제 제기와 더불어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사적인 제재에 대한 문제를 화두로 삼고 있다.

정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익명성 뒤에 숨어 여론몰이를 하고 누군가의 신상을 까발리는 데 있어 아무런 죄책감이나 거리낌이 없는 요즘 세태에 대한 비판을 촉법소년 문제와 엮어 독자로 하여금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 작가의 참신한 주제 선정도 놀랍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토리텔링 역시 탁월해 그가 왜 이 작품으로 데뷔와 동시에 요코미조 세이지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한 작가라 생각되고 사회문제를 제기하는 방식 또한 단순한 흑백논리를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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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라의 비밀 약방
사라 페너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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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여자들에게만 은밀하게 건네지는 독약 가게가 있었고 오직 여자들에게만 그 약방의 문이 열린다

단 한 줄의 카피로 시선을 사로잡고 궁금증을 폭발시킨 책이었다.

원래 비밀이란 게 그렇다.

은밀하면 할수록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 수록 비밀의 유지가 더 쉬운데 카피를 읽으면서 그런 의문이 들었다.

비밀리에 여자들에게만 독약을 파는 가게는 과연 그 비밀이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었을까?

18세기의 이야기라고 해도 충분히 독자들에게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데 작가는 현대 런던과 교차하는 보험까지 들었다.

어떤 이유로든 남자를 죽이고 싶어 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단순히 오래전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의미하는 지도 모르겠다.

결혼 10주년을 기념하는 런던 여행을 불과 며칠 앞두고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캐롤라인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배신감과 절망감을 안고 혼자 런던으로 날아왔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으로 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템스강 진흙 속 뒤지기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때 발견한 작은 곰이 그려진 하늘색 약병은 캐롤라인의 인생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

사실 현재의 그녀는 매일매일 그저 그런 생활을 하고 있지만 오래전 그녀는 호기심이 많았고 역사 속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던 역사 학도였었기에 이 오래된 약병은 그녀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여기에다 약간의 상상력과 검색을 통해 200년 전 약제사 살인사건을 발견하게 되고 그 흔적을 쫓으면서 오래전 자신의 모습을 점점 찾아가는 캐롤라인의 변화를 볼 수 있다.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듯이 캐롤라인이 발견한 약병은 대를 이은 약제사이자 여자들 사이에 은밀하게 독약을 조제해 주는 일을 하는 넬라의 것이었고 이렇게 18세기 넬라의 마지막 의뢰와 캐롤라인이 연결된다.

눈에 띄지 않는 어두운 약방의 가벽 뒤 비밀공간에서 [ 2월 4일 새벽, 주인마님의 남편, 아침식사]라고만 적혀있는 쪽지에서 의뢰한 대로 독약을 제조하면서도 꺼림직함을 느끼는 넬라에게서 약을 받으러 온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어린 소녀 엘리자였다. 어쩌면 모든 일이 엉기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 일 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약제사였던 그녀가 왜 여자들의 은밀한 주문대로 특별한 독약을 처방해 여자들의 살인을 도와주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연은 오로지 남자들만 죽이는 독약을 제조하는 그녀의 행동으로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신분이 높은 여자든 밑바닥의 하녀든 심지어는 어린 여자아이까지 남자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남편이 눈앞에서 다른 여자에게 손을 뻗어도 참아야만 하고 때리면 그저 맞을 수밖에 없는 여자들이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그 상대인 남자가 죽어야만 가능했기에 넬라의 존재가치는 높을 수밖에 없었고 이토록 허술해 보이는 거래방법에도 불구하고 그 비밀이 오랫동안 지켜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여자들만의 비밀 공유와 연대감은 생각보다 튼튼했을 뿐 아니라 넬라는 비밀이 발각될 순간에도 놓지 않을 만큼 책임감이 강했고 그건 어린 엘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모두의 이해가 맞아떨어져서 은밀하게 이뤄진 복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넬라는 어느 순간부터 내내 후회하는 삶을 산다.

그토록 원하던 복수에 성공하지만 행복하지도 않고 슬픔이 사라지지도 않았을 뿐 만 아니라 자신이 한 짓에 대한 죄책감을 내내 짊어지고 살아야 했기에 웃을 수도 행복할 수도 없었던 넬라의 모습은 남자들을 죽이기 위해 거침없이 독약을 제조하는 악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분명 남자들의 허를 찌르고 독약을 이용해 복수에 성공하는 통쾌한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했던 내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지만 작은 단서 하나를 쫓아 오래전의 비밀을 파헤쳐 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했다.

생각했던 거랑은 달랐지만 충분히 매력적으로 어필할 만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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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 - 오사카 게이키치 미스터리 소설선
오사카 게이키치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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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어수선하면 이런저런 괴담이 유행하기 마련이다.

괴담이란 건 대체로 사람들의 불안함과 공포를 자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고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면서 조금씩 살을 더해 나중에는 원래의 이야기가 뭐였었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기 마련인데 그 괴담의 뿌리를 더듬어 가다 보면 한두 건의 사건에다 이런저런 사연이 보태지고 범인이 오리무중인 상태일 때 생기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손안에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요즘 시대와 괴담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도시괴담이라는 형태로 유행되는 걸 보면 지금보다 훨씬 옛날 사람들이 자신들의 시각에서 납득하기 쉽지 않거나 다소 괴이하다 생각되는 사건들이 괴담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흉흉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 침입자에서도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빨리 범인을 특정 지을 수 없었다면 괴담이나 흉흉한 소문이 되어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만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건의 괴이성이나 수수께끼적인 면모를 단숨에 파악해 조기 해결해 가는 과정이 허술하지 않을 뿐 아니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근거까지 보여주면서 독자를 매료시키고 있다.

놀라운 건 이 작품이 쓰인 연대가 1930년대였다는 사실이다.

작품들을 읽어보면 지금 읽어도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만큼 세련되었을 뿐 아니라 용의자를 특정 지을 때 내세운 근거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는 것이다. 요즘 추리소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 책에는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데 표제작으로 한 침입자는 일종의 밀실 상태에서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화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적한 별장으로 간 화가 부부와 화가의 친구는 이층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뭔가에 뒤통수를 맞고 죽은 남편을 아내가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은 화가는 그림을 그리던 도중이었는데 문제는 그가 그린 그림이 지금 있는 동쪽의 방에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그림이었다는 점... 이런 걸로 인해 화가는 아내가 있던 남쪽방에서 피살된 후 동쪽방으로 옮겨진 거라는 걸 추론할 수 있었고 당연하지만 아내는 중요 용의자가 된다.

더군다나 아내와 화가의 친구는 불륜 관계가 의심된다는 점에서 더욱 두 사람의 혐의는 짙어갈 뿐...

추운 밤이 걷히고에서는 학교 선생님이자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는 남편이 부재 중일 때 늘 겨울이면 이곳에 묵으면서 스키를 즐기던 아내의 사촌과 아내가 살해당한 채 발견되고 아이의 행방이 묘연해진 사건 이야기다.

죽은 사람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아직 어린아이의 실종... 창밖에는 누군가의 발자국이 남아있고 그 발자국을 따라갔지만 당연하게도 흔적이 사라져 모두가 당황한 상태에서 누군가가 사람들의 착각을 일깨워주면서 미스터리했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

세 명의 미치광이에서는 요즘도 흔히 사용하는 트릭이 나오고 긴자의 유령 역시 모호했던 사건의 실체를 하나의 발상을 전환시켜 해결한다.

그리고 가장 맨 먼저 소개된 탄굴귀는 가장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괴담에 어울리는 사건이 아닐까 싶다.

갑자기 무너진 탄광 그리고 그 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한 명의 광부...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틈을 비집고 광부가 빠져나오지 못한 채로 탄굴의 입구를 봉쇄해버린 기사와 감독이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가장 혐의가 짙은 죽은 광부의 가족은 알리바이가 확실하고 죽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일조한 사람들이라고 봤을 때 사건은 마치 죽은 자가 돌아와 복수를 한 것 같은 양상을 보여 남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탄굴의 입구는 완벽하게 막혀있고 빠져나올 구멍이 없는 밀실 상태... 만약 범인을 특정 짓지 못했다면 그야말로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할 괴담이 탄생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작가는 도저히 사람의 범죄가 아닌 것 같은 상황에서 논리와 정확한 근거로 사건을 해결해 보인다.

나오는 작품들 대부분이 미스터리하고 다소 괴이할 수 있는 것을 본격 미스터리답게 트릭을 찾아내고 증명해 보이는 데 과연 정통 미스터리를 계승했다고 평할 만하다.

잘 짜여진 트릭의 허점을 논리로 해결하는...요즘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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