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은 여자의 일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김도일 옮김 / 허클베리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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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남자 여자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잔인해졌을 뿐 아니라 그 이유도 다양해졌는데 이전에는 여자보다 남자가 살인사건의 범인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살인사건의 범인이 여자라는 게 다소 익숙하지 않은데 이 책은 이를 살짝 비튼다.

살인은 여자의 일이라고... 마치 살인이란 게 단순할 뿐 아니라 사소한 일인 것처럼 표현해놓았는데 그래서인지 책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대담하게 저질러버리는 살인이라기보다 상황에 따라 우발적으로 깊은 고민 없이 저질러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이 하는 일인 출판사 편집자라는 커리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독신으로 사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던 여자가 우연히 합석한 자리에서 추리소설 작가 지망생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 끌림을 느끼지만 그가 이미 결혼한 남자라는 걸 알고 좌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의 아내를 본 순간 맹렬한 살의를 느끼게 되는데 자신이 동경하는 미남 작가의 아내라는 여자의 외모가 평범함을 넘어 초라하기 그지없어 어떻게 그런 여자가 이런 남자의 아내일 수 있는지 모욕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보란 듯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수시로 작가를 불러내 시간을 가지고 자신이 작가와 함께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우월감을 느끼던 중 우연한 기회에 그 아내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지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악의적인 마음으로 남편에게 전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것도 잠시... 작가의 아내와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살인은 여자의 일

이와는 반대로 남편의 불륜 상대로부터 지독한 괴롭힘에 시달리던 주부가 느낀 한순간의 살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살의를 품고 어둠 속으로는 지인의 파티에서 이제껏 목소리로만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의 여자를 마주한 후 그녀가 어둠 속에 숨어 여자가 오기를 기다리게 된 과정이 아주 흥미롭게 그려져있다.

처음 남편의 외도를 눈치챈 순간부터 그녀가 느끼는 감정의 변화 즉 그럴 리 없다 부인했다가 어쩔 수 없이 인정한 후에는 스스로를 속이며 납득하다 마침내 혼자서 용서해 주고는 원망의 화살을 남편이 아닌 상대의 여자에게 돌리게 된다. 마치 모든 게 그 여자가 나쁜 여자이고 남편은 우연히 걸린 것처럼...

이와 때를 같이 한 듯이 상대편 여자로부터 집요한 전화 공격이 시작되어 바람피운 남편의 잘못은 사라지고 상대 여자는 천하의 악녀이자 바람둥이가 된다.

그런 여자를 지인의 파티에서 만났는데 너무나 당당하게 활보하고 화려한 모습의 그녀에게 맹렬한 살의를 품는 여자의 마음도 십분 이해가 갔다.

먼저 파티를 나가 어둠 속에 숨어 그 여자가 올 때를 기다리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완전범죄를 꿈꿨을까 아니면 그녀만 사라지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을까

조금은 나이 많은 남편과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둔 아내가 벌이는 하루의 일탈을 다루는 털은 미스터리보다 그녀가 일탈을 위한 준비과정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그녀의 심리가 잘 표현되어 있다.

남편과 아이가 깊이 잠든 틈을 타 외간 남자에게 보이기 위한 샤워를 하고 정성스럽게 치장을 하는 여자는 사실 바람이 목적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탈출, 잠깐의 일탈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잠깐의 일탈을 즐기고 온 후 집으로 돌아와 그녀가 발견한 것은...

도둑과 백화점 경비 사이에서 생긴 분홍 색깔 로맨스를 다룬 여 도둑의 세레나데는 사실 오래전 읽은 한 미스터리가 생각나는 시놉이긴 했다.

이제껏 수많은 도둑질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던 여자가 자신을 처음 잡은 전직 형사출신 백화점 경비원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남자 역시 귀신같은 그녀의 솜씨를 보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두목이 이 지역을 뜨기 전 크게 한탕하고 자 한 거사 일은 그들의 작전과 상황이 다르게 펼쳐지게 되고 운명의 순간 그녀는 의외의 선택을 해서 모두를 놀라게 하는데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그 남자를 향한 그녀의 사랑이 있었다는 이야기~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은밀하게 접근해서 시행하는 살인이 아닌 살의가 쌓여 찰나의 기회가 왔을 때 뒤를 생각하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순간을 담고 있는 살인은 여자의 일은 단편의 특징을 제대로 살리고 있다.

지난한 과정은 생략한 채 왜 살의를 품게 되었나 와 어떻게 그 살의를 표현할까에 집중하고 여기에 양념처럼 의외의 결말을 첨가해서 가볍게 읽기 좋은 미스터리 단편이 탄생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 변호 측 증인을 재밌게 봤는데 그와는 다른 느낌이지만 여자들의 미묘한 심리와 살의를 품는 순간의 포착이 뛰어나 재밌게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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