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범죄
요코제키 다이 지음, 임희선 옮김 / 샘터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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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체가 떠올랐다.

배 엔진에 의해 훼손이 많이 된 그 시체는 당시 집에서 가출한 지 일주일 정도 된 도쿄의 한 주부라는 게 남편에 의해 밝혀지고 절벽 아래 그녀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던 점등을 참작해 자살로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그녀가 죽기 직전 한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의 증언이 나오면서 사건은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살인가 사고인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한 타살인가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는 타살로 보기 힘들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그 사건을 캐들어가다 이 사건에 피해자의 남편이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제목에서도 밝혔듯이 어느 한 여자의 단독범행이 아닌 그녀들... 최소 2명 이상이 범죄에 가담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그 가담한 사람들의 면면이 생각지도 못한 연합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매력이 발한다.

첫 번째 여자는 지방에서 도쿄로 상경해 간호사로 일하던 중 우연히 만난 잘생기고 부자인 의사 진노 도모야키와 결혼에 성공한 유카리

대대로 부잣집으로 시집을 온 그녀를 남들은 신데렐라로 부러워할지 모르지만 남편과는 데면데면한 지 오래... 그저 이 넓은 집에서 시집 식구들의 수발을 드는 하녀 그 이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걸 자각하게 된 건 우연히 알게 된 남편의 바람과 이웃집 여자의 시선을 통해서이다.

두 번째 여자는 남편의 불륜 상대인 마유미

그녀는 요즘 시선으로 보기엔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지만 실제로 일도 잘하지만 당시 시대적 분위기에서는 그저 결혼하지 못한 노처녀에 불과한 신세다.

스스로도 하루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압박감을 느끼던 중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해오는 남자가 대학때 알았던 부자이고 잘생긴 의사라는 점에서 깊은 고민 없이 그와의 연애에 빠졌지만 그가 유부남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그녀를 좀먹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여자는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거액을 상속받아 평생을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살 수 있지만 한날한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혼자 남았다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죽음을 생각한다.

이렇게 서로 접점이라곤 없을 것 같은 세 명의 여자들의 이야기 속에 그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런 그녀들에게 진노 도모야키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이 모든 일들에 알게 모르게 연관되어 있는 문제적 남자 진노 도모야키의 면면을 살펴보면 태어나면서부터 부자집 외동아들로 태어나 타고난 외모와 머리로 어디서든 리더로 활약하는 정형외과의사인 그는 누가 봐도 매력적이고 앞으로의 길 역시 순탄하리라 예상할 수 있는 남자.

그런 그가 누가 봐도 그와 어울리지 않는 여자를 아내로 두고 있으며 그의 내연녀는 눈에 띄는 미모의 미혼 여성

언뜻 생각해봐도 아내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면 가장 의심 가는 인물은 남편인 도모야키와 그의 불륜 상대인 마유미다.

그들에게는 아내를 죽일 이유가 있었고 그런 이유로 그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하다 생각지도 못한 남편의 행적이 드러나면서 그에게 모든 혐의가 짙어지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하나둘씩 나오는 증거는 모두 그를 향하고 그의 내연 상대인 마유미는 왠지 이 모든 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을 꾸민 건 마유미일까?

자신의 결혼을 방해하는 유카리라는 존재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는 처지의 그녀가 완전범죄를 꿈꾸고 유카리를 죽인 걸까?

책 처음부터 즉 목차에서부터 이 모든 일에는 그녀들의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놓고 있다.

그녀들의 각자 처해 있는 사정부터 그녀들의 거짓말과 그녀들의 숨기고 있는 비밀 순으로...

어찌 보면 그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평생을 여유롭게 군림하며 살던 진노 도모야키는 여자들을 상대로 적당히 거짓말을 하고 바람을 피울 수는 있어도 진검승부에서는 그녀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지금의 환경이라면 여러 가지 과학적 증명으로 도모야키가 걸린 올가미를 설치할 꿈도 꿀 수없을지 모르겠지만 당시는 1988년...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한 옛날이라는 점에서 다소 어설프게 보이는 사건의 흑막이 먹힐 수 있었고 여자라는 존재는 그저 몇 년 일하다 때가 되면 결혼해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는 게 당연했던 시대적 분위기가 있었기에 그녀들의 범행이 돋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시원하게 뒤통수를 친 그녀들의 범행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거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없었을 거라는 걸 짐작한 듯한 작가의 마지막 포석은 완벽한 결말이었다.

잘 짜인 플루트와 결말에 가독성까지... 일본 추리소설로는 모처럼 재밌게 읽은 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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