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한 짝이 남았다. 사실 양말 값은 얼마 안 된다. 짝 잃은 양말 한 짝을 내버리고 새 양말 한 켤레를 가게에 가 돈 주고 사면 된다.

문제는 새로 산다 하여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달아난 다른 양말 한 짝이 일으킬지 모를 사건이 문제인 거다.

 

남은 양말 한 짝은, 아내가 빨래거리들을 세탁기로 돌린 뒤 말리려고 건조대에 하나하나 너는데 등장했다. 다른 양말들은 다 짝을 지었는데 오직 그 양말만 한 짝뿐이라니 갑자기 근심이 생겼다. 세탁기 안을 살피고 세탁기가 놓인 다용도실을 살피고…… 심지어는 혹시 처음부터, 그 양말의 다른 한 짝을 방구석에 방치한 채 세탁기를 돌린 게 아닌가?’싶어 방마다 뒤지기까지 했으나 영 찾을 수가 없었다.

하잘 것 없는 양말 한 짝의 실종에 근심을 떨치지 못하는 까닭이 있다. 혹시 그 양말의 다른 한 짝이 물 빠지는 좁은 관 어느 곳에 걸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함 때문이다. 그런 관이 뭐에 걸려 막히면 해결이 쉽지 않다. 왜냐면 관이 아주 좁은 데다가, 똑바로만 나가는 게 아니라 가끔씩 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도 관이 막혔었다. 파리채니 긴 나뭇가지니 하는 것들로 관을 막은 무엇을 끄집어내려고 무진 애를 쓰다가, 결국은 기술자를 불러 돈 주고 해결했다. 그는 긴 쇠줄 같은 거로 관 속을 쑤셔 보다가 여의치 않자 독한 황산을 갖다가 부음으로써 그 무엇을 아예 녹여 버렸다. 그 무엇은 정체도 드러내 보이지 않고 저 세상(?)으로 가 버린 것이다.

어쨌든 그 날 관이 뚫렸기 망정이지 만일 실패했다면 다용도실 바닥을 뜯는 대 공사를 각오해야 했다.

 

현재 남은 양말 한 짝을 거실 한 구석에 따로 보관해 놓았다. 아직은 관이 막히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봐, 관이 아닌 다른 곳에 그 짝이 방치됐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시간이 나면 가구들도 옮겨 그 자리도 살피고 방마다 다시 뒤져볼 생각이다.

 

살다보면 피할 수 없는 자질구레한 일들이 적지 않다. 세탁 후 덩그러니 남은 양말 한 짝, 그 자질구레한 일들의 상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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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는 사람만등장하지 않는다. 자연현상도등장하여 사람 이상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라는 영화가 바로 그렇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말로야 스네이크를 나는뱀 구름이라고 우리말 화()하고 싶다. 물론뱀의 구름이란 뜻이 아니고뱀 같은 구름이라는 뜻이다.‘웅장한 알프스의 계곡 사이로 거대한 뱀 한 마리처럼, 긴 구름이 스르륵 지나가는 자연현상이 과연 이 영화에서 맡은 역은 무엇일까?

 

 

 

 

  나는 이뱀 구름갈등 많은 인간사와 대조되는 묵묵한 자연 현상으로서 한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화려한 젊은 시절이 지나간 늙은 여배우, 그녀를 옆에선 돕는 매우 까칠한 여비서, 그런가 하면 늙은 여배우와 비교되는현재 잘 나가는 젊은 여배우……이렇게 세 사람의 숨 쉴 틈 없는 갈등 전개가 아무 말 없이 예나 제나 한결 같은 모습의 뱀 구름 현상과 비교 및 대조되었다는 분석이다. 이는 우리 옛 시조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상략)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하략)’

 

 

 

  잘 나가는 젊은 여배우와 비교되는 자신의 초라한 처지에 몹시 갈등하지만, 결국은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늙은 여배우의 쇠락(衰落).

    이 영화의 감독이 마지막 장면에서 마리아의 표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도 언젠가는 늙어서 시들어 버린다. 그와 달리 여전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대 자연의 풍광…….  그렇기에주인공 마리아가 결국은, 뱀 구름을 닮아가는 표정으로 이 영화가 막을 내린다는 영화평론가의 말씀에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격한 갈등에서 출발해 체념 및 순응이라는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주인공 마리아와 달리 뱀 구름은 그런 일 없이, 한결 같은 존재의 모습으로 이 영화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긴, 인간은 자연과 동격이 아니라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스토리 전개상 9부 능선쯤에 다다랐을 때다. 늙은 여배우 마리아가 함께 공연하는 젊은 여배우 조앤한테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를 몇 초간 보다가 퇴장하는 것으로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지만당신은 그럴 만큼 중요한 역이 못 된다.’는 냉랭한 대답이나 듣고 마는데…… 두 여자의 내밀한 갈등이 일방적인 자존심 추락으로 순식간에 종결됨을 보여주는 백미 장면이다.

 

 

 

  그 후 마리아는 조잡하기 짝이 없는 SF영화의 주인공 역까지 받아들이는 인물로 전락한다. 삶을 관조하거나 달관하는 표정이 아닌, 단지 쇠락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하긴, 흐르는 세월 앞에서 그 누가 장사이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말로야 스네이크’를 나는 ‘뱀 구름’이라고 우리말 화(化)하고 싶다. 물론 ‘뱀의 구름’이란 뜻이 아니고 ‘뱀 같은 구름’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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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무협영화를 보면 무술의 고수는 한결같이 허연 수염의 노인들이다. 백발노인들이 펄펄 날며 젊은 협객들을 상대한다.

결코 현실에서는 가당치 않다. 현실에서의 노인들은 무릎이나 손목의 관절이 안 좋아 모든 동작을 조심스레, 느릿느릿 해야 한다. 무협영화에서처럼 땅 위를 펄펄 뛰었다가는 그 날로 정형외과에 입원해 장기 치료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물론 노인들이 펄펄 뛸 수 있는 분야가 있긴 하다. 몸으로 뛰는 분야가 아닌 머리를 쓰는 학문의 분야다. 여기에 전제가 있다. 기억력의 쇠퇴나 감퇴가 없어야 한다.

 

중국 무협영화 속에서 펄펄 나는 백발노인들의 모습은…… 경로사상의 구현일까, 노화라는 숙명을 부정하고 싶은 욕심일까, 과장을 즐기는 중국 사람들의 습관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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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17-01-1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조금 긴 글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짧을 수가... 너무 하세요 ㅠ ㅠ ‘바람의 파이터‘(방학기)에 보면 최배달이 중국 무예 고수와 겨루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고수는 노인입니다. 그런데 결코 최배달에 밀리지 않아요. ‘바람의 파이터‘ 내용이 최배달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이기에 결투 내용은 사실이라고 보여요. 저의 결론: 중국 무협의 백발 노인 고수는 실제다! ^ ^

무심이병욱 2017-01-1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최배달이 노후에, 온몸의 관절이란 관절이 다 병들어서 극심한 고통 속에 삶을 마쳤습니다. 그분의 아들이 정형외과 의사인데 그런 사실을 어느 잡지에 기고했지요. 절대, 중국 무협영화 속의 ‘백발노인 고수‘는 있을 수 없습니다. ‘바람의 파이터‘라는 건 실화에 픽션이 가미된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링을 주름잡던 레슬러들이 이제는 노후를 맞아, 동네를 조심조심 걸어다니십니다. 일반 노인네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습니다. 저 유명한 박치기 왕 ‘김일‘이란 분이 말년에 병든 몸으로 고생 많았던 사실 또한, ‘중국 무협 영화에 나오는 백발노인 고수‘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게 아니겠습니까? 복싱 챔피언 ‘모하마드 알리‘ 역시 복싱경기 때 머리에 받은 충격 탓에 노후를 폐인으로 보낸 거지요. 이 정도만 예를 들겠습니다.

찔레꽃 2017-01-18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걸 가지고 논쟁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래도 굳이 한마디 더 보태면 무심님이 든 분들은 무림의 고수가 아니라 모두 격투기 선수들입니다. 이분들과 무림의 고수를 동격으로 놓아 말하기는 좀 그렇지 않을까요? 아이고, 이건 그냥 떠오른 생각을 적은 거니, 답변 하지 마셔요. ^ ^ 그나저나 왜 무림의 고수 얘기를 하셨는지, 사실은 이게 더 궁금해요. ^^

무심 이병욱 2017-01-19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실 ‘무림‘이란 이야기꾼 사이에서 나돌던 언어입니다. 허구적 단어란 말이지요. 인터넷으로 ˝ namu.wiki/w/무림 ˝이라 치면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김 용이란 소설가가 무협소설을 쓰면서 ‘무림‘이란 단어를 많이 등장시키는 바람에 마치 그런 세계의 사람들이 중국 땅에 실재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논쟁은 사양합니다. ^^^^^
이런 기회에 ‘찔레꽃‘님을 알게 되었고, 짧은 글에도 관심을 보여주는 데에 감사할 뿐입니다.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은 존재의 본질을 규명하는 성질이다. 정체성은 자기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위키백과

 

자동차가 어떤 구조물에 부딪쳐 낸 사고 중에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진입로의 윗부분 충돌 사고가 흔하다. 충분히 상상이 된다. 운전자가 차체(車體) 높이를 순간적으로 망각한 탓에 차체의 윗부분이 진입로 상부 구조물에 부딪치고 만 것이다. 차체가 높거나, 차체는 높지 않은데 차 위에 무슨 물건을 얹었거나 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사고다.

그렇기에 운전자는 시동을 건 순간 그 차의 정체성부터 인식해야 한다. ‘나는 지금 차체가 높은 산타페를 운전할 참이다.’ 혹은 나는 차체가 긴 버스를 운전하려 한다. ’ 혹은 이 차는 본래 차체가 낮지만 위에 물건을 얹었다하는 등등의 인식이다.

이런 경우를 자동차의 정체성이라고 이름 붙일 만하지 않을까?

 

달리 말하여 주제 파악이다. 자전거 길을 자동차가 가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약한 교량 위를 탱크가 가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좁은 골목에 버스가 가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국정에 자격 미달의 여인이 임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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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와 단 둘이 술자리를 가진 것만 해도 감회가 남다른데, 그 친구가 건넨 ‘50년 전인, 중학교 3학년 2반 봄 소풍 때 찍은 사진한 장은 정말 특별한 감회에 젖게 했다.

친구와 헤어진 뒤 집으로 걸어오면서 이런 특별한 감회를 한 번, 부담 없이 편하게 수필로 써 보자고 생각했다. 마냥 길게 쓸 수 있을 것 같아 수필로는 매우 드문 연재 형식까지 구상을 마쳤다. 문제는 실존하는 친구라서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친구한테 문자를 보내 이러이러한 수필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려는데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이니 양해해 달라고 하였다. 친구가 쑥스럽지만괜찮다고 답장을 보냈다.

마음 편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생각 외의 일들과 잇달아 맞닥뜨렸다. 글에 등장하는 사람마다 자기 얘기를 제대로 써 주기를 바라던 것이다. 돌아가신 지 25년이 돼 가는 아버지부터 당신의 한 많은 사연을 남김없이 써 주기 바랐다. 돌아가신 지 13년이 돼 가는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남편 잘못 만나 고생 많았던 삶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대변해 주기 바랐다. 문제의 봄 소풍 날 사진 또한 그냥 있지 않았다. ‘교복 상의의 단추들을 풀어 제치고 교모는 약간 삐딱하게 쓴 자네 모습이 언뜻 불량기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내성적인 성격으로 고민이 많았다는 사실을 표현하라고 난리쳤다. J라는 친구 또한 자네와 학창시절 때 가장 친했고 그래서 둘만의 사연이 간단치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지나갈 수 있냐?’고 항변했다.

마음 편하게 붓 가는 대로 한 번 길게 써 보자는 초심과 다르게 곳곳에서 맞닥뜨리는 사연들에그 사연들을 제대로 들어줄 수 없음에 무척 힘들어졌다. 연재를 10회까지 생각했지만, 주마간산처럼 5회로 마무리 지은 게 그 때문이다.

이번의 시도가 뜻대로 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실패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우선 수필과 소설의 차이를 확연하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수필이라 해도 등장하는 인물들의 프라이버시 문제로, 마음 편하게 쓰기 어려웠다. 이 점은 신변잡기 류()의 수필이 필연적으로 직면할 문제였다.

어쨌든 좋은 경험이었다. 기회가 되면 이 수필의 얘기를 소설로 바꿔 써 보려한다. 소설로 완성한 뒤 수필과 비교해 보는 것 또한 아주 좋고 귀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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