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 야산을 오르다가 한 마리 개와 맞닥뜨렸다. 주인도 보이지 않고 혼자 산길을 어슬렁거리는 그 모습이라니. 주인이 방심한 탓에 제멋대로 가출해 떠도는 개 같았다. 개와 나는 좁은 산길에서 약 10미터 거리를 두고 조우(遭遇)한 것이다. 그렇다. 결코 만나려는 뜻이 없었다.
나는 머리털이 일제히 솟는 것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 강아지도 아니고 중개라 부를 만한 크기의 개. 만일 내게 적의를 느끼고서 덤벼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은데 다행히 개가 먼저 옆의 숲속으로 사라지면서 원치 않은 조우 상황이 마감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나는 더 이상 산을 오르지 않고 뒤돌아 부지런히 하산해 귀가해 버렸다.
아득한 옛날 인류 주위에서 기웃거리며 음식을 받아먹던 늑대 중 일부가 지금 개들의 조상이다. 그렇기에 개들에게는 늑대의 야성이 숨어있다. 잘못 건드리면 맹수로 돌변하는 게 그 때문이다.
그렇게, 개의 유래를 재확인해 봄으로서 그 날 야산에서의 대단한 공포를 이해해 봤지만 왠지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다. 깨달았다. 내가 그 날 그 개와 맞닥뜨렸을 때 대단한 공포에 휩싸인 까닭 중 가장 큰 것은 ‘그 개가 통제를 벗어난 모습’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류사란, 사람이 주위의 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확장의 역사가 아닐까? 산과 들에 나고 피는 식물들 중 필요한 것들을 선택해 통제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식량자급에 이르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동물들 또한 잡아서 가축화하거나 애완물로 삼는 데 성공함으로써 식량자급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의 위안까지 얻었다. 어디 그뿐인가. 땅바닥에까지 눈을 돌려 석유 같은 에너지원을 얻는가 하면 각종 편리한 기기들까지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인류는 눈에 뜨이는 사물들마다 통제하여 마음대로 살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기에 그 날 내가 야산에서 맞닥뜨린 개는 현 인류사에서 있을 수 없는 모습― 통제를 벗어난 모습이었기에 나는 대단한 공포감에 휩싸였던 거다.
나의 지나친 억측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