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법천자문 > 저는 리뷰를 2곳 이상에 쓴 적은 없지만 어쨌든 깊이 반성하겠습니다
1. 취직시험 원서를 2곳에 동시 제출해서 중복 합격한 만행을 저지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두 회사 가운데 하나를 어릴 때부터 동경하며 십 년 이상을 준비했을지도 모를 어떤 사람이 불합격 발표에 충격을 받고 자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저는 요즘도 악몽에 시달립니다.
2. 주택복권을 한꺼번에 2매 구입하는 패륜적인 행위를 저지른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둘 다 꽝이었습니다. 잘못해서 제가 1등에 당첨되기라도 했다면, 내 집 마련의 꿈에 부풀어 주택복권을 구입한 가장이 실의에 빠져 한강에 몸을 던지는 사태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 때 당첨이 안 된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3. 저는 초콜릿을 좋아합니다. 어느 날 편의점에 가니 제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이 딱 2개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무심코 2개 모두를 사버렸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하니, 자녀에게 그 초콜릿을 사주겠다고 굳게 약속한 엄마가 저의 싹쓸이 때문에 초콜릿을 못 사는 바람에 자녀가 가출하고 가정이 풍비박산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졌습니다. 저는 편의점으로 돌아가 환불을 해달라고 할까도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귀찮아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양심도 없는 독사의 자식인 모양입니다.
4. 제가 좋아하는 밴드 드림 시어터의 신보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레코드 가게로 달려갔습니다. 마침 아는 사람이 하나 사다 달라고 해서 레코드 가게에 마지막으로 남은 2개를 집어 들고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드림 시어터의 음반이 진열된 코너에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학생이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2개를 다 가지고 오는 바람에 그 학생이 음반을 못 샀다면? 그 학생은 학교 일진짱의 심부름으로 음반을 사러 왔는지도 모릅니다. 화가 난 일진짱이 분풀이로 구타하는 바람에 그 학생은 장애인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구제불능의 인간쓰레기입니다.
저는 숨 쉬고 살 가치조차 없는 인간쓰레기이자 패륜아이며 사회의 암적인 존재입니다. 전두환, 유영철도 저에 비하면 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저에게 돌을 던지세요. 제발 저를 용서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오늘도 위에 열거한 네 가지 추악한 범죄를 반성하며 참회의 삼천배를 올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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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이 그 다음에 쓰신 글입니다^^
제목: 치졸한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정말로 이게 범죄인 줄 몰랐습니다
남들 텔레비전 볼 때, 남들 게임 할 때, 남들 낮잠 잘 때, 저는 책을 읽었습니다.
직장 회식도 뿌리치고 항상 일찍 귀가했습니다.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기 위해서였습니다. 주위에서 별종이라고 놀렸지만 저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 갈 때도, 밥 먹을 때도, 지하철을 탈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단 1분, 아니 1초가 아쉬웠습니다. 마음 편하게 책 읽을 시간이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꼬박꼬박 독후감을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단골 인터넷 서점에 올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추천도 해주시고 '잘 읽었다' 고 방명록에 글까지 남겨 주셨습니다. 부끄럽고도 뿌듯했습니다. 제가 쓴 작은 리뷰 하나가 다른 분들께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단 한 분이라도 제가 쓴 리뷰를 읽고 그 책을 사봐야겠다고 결심하는 분이 있다면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리뷰를 올릴 때 한 문장, 한 문장을 더욱더 정성껏 다듬고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일리지 등의 문제로 단골 서점을 정해놓고 주로 그 곳에서 책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다른 서점 이용자들에게도 내 리뷰를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두 곳의 큰 인터넷 서점에 같은 리뷰를 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솔직히 졸라 귀찮았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클릭 몇 번 더 하면 되는 것 같지만, 리뷰를 일일이 두 곳의 사이트에 올린다는 게 의외로 번거로웠습니다. 그래도 내 리뷰 때문에 단 한 분이라도 도움 받는 분이 있다면 이까짓 번거로움 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 그 책에 대한 느낌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것, 그리고 단 한 명이라도 내 리뷰에 공감해 비슷한 경험을 할 기회를 가진다는 것, 그야말로 인터넷이 없었다면 상상도 못할 경이로움이었습니다. 가끔씩 단골이 아닌 서점에 올린 리뷰를 보고 저에게 '잘 읽었다, 도움이 됐다' 는 댓글을 달아주시거나 메일을 보내주시는 분이 계실 때 번거롭다는 생각쯤은 순식간에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가끔, 두 곳에서 동시에 우수리뷰로 뽑히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두 곳의 편집자들 모두에게서 우수리뷰로 인정받았다는 건 그만큼 내 리뷰가 엉터리가 아니고 내 리뷰 때문에 선의의 피해를 입는 분들이 생길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책을 사서 더 좋은 리뷰를 많이 올리는 것으로 보답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은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저의 이러한 행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저에게 'ㅆㅂㄻ' 라고 했습니다. 또 '박쥐' 라고도 했습니다. 겉으로는 진보인 척 하면서 마일리지에 환장하고 덤벼드는 '위선자' 라고도 했습니다.
아, 그랬구나. 나는 박쥐같은 위선자이자 ㅆㅂㄻ 였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주신 그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떤 분은 '왜 중복리뷰가 나쁜가' 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무조건 나쁘다고 거품을 물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해당 인터넷 서점들의 약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방방 뛰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들을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모든 잘못은 저에게 있으니까요. 책을 너무 사랑한 게 죄고, 리뷰를 열심히 쓴 게 죄입니다. 그리고 리뷰를 너무 잘 써서 우수리뷰에 자주 뽑힌 게 죕니다. 저는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보다 흉악한 범죄자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신 훌륭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