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 처음으로 서재가 생겼을 때, 난 '서재평정'이란 목표를 세우고 서재지수를 올리려고 밤낮으로 글만 썼다.
다른 분야에서 잘하는 게 없으니 이거라도 일등해보자는 취지였는데,
희한하게도 그 시절엔 나처럼 서재지수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우린 스스로를 '서재폐인'이라 부르며 즐거워했다.
그 당시 난 나보다 점수가 높은 사람이 내 서재를 방문하기라도 하면
"아이고, 이런 유명하신 분께서 누추한 제 서재를..."이라며 황송하기도 했는데,
술을 먹고 다음날 깨보니 알라딘 화면을 띄워놓고 댓글을 달고 있었다는 일화를 남길만큼 열심히 한 끝에
내 서재순위는 점점 상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가장 기뻤던 때는 당시 굳건하게 1위를 지키던 플라시보라는 분이 내게 댓글을 남겼을 때였다.
그가 나를 언제부터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진작부터 플라시보님을 알고 있었다.
일상으로부터 소재를 찾아내고, 그걸 하나의 페이퍼로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어서 난 플라시보만큼 출중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날 긴장하게 만드는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고,
거기에 더해 '미녀'였다.
그런 사람이 내게 댓글을 달았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는가?
댓글을 주고받으며 난 그와 친해졌고,
나중에는 서로의 즐거움과 고민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그가 다른 일로 서재질에 뜸해지게 되면서,
그리고 내가 안하던 연구에 매진하면서 자주 연락은 못하게 되었지만,
매일같이 3-4개씩의 페이퍼를 쓰면서 "제발 글 좀 작작 써라. 넌 일은 안하냐?"고 서로에게 핀잔을 주던 그때의 추억은 내 머릿속에 아름답게 각인되어 있다.

그 플라시보님이 책을 냈다.
<연애, 오프 더 레코드>라는 책으로, 연애에 대해 본인이 썼던 글들을 묶은 거란다.
나이가 듦에 따라 연애에 대해서는 한시간 이상 떠들만큼의 경험이 생겼지만,
그 유명한 플라시보가 과연 어떤 글을 썼을지 궁금하지 않는가?
저자가 직접 보내준다는 데 불구하고 교보로 달려가 책을 산 건, 그게 궁금해서였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지인이 책을 냈을 때 한권씩 사주는 걸 난 친구로서 해야 할 도리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난, 내 인생에서 소중했던 서재질의 추억을 함께 한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