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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 - 명랑한 사랑을 위해 쓴다
정이현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12월
평점 :
가끔은 '교육'이란 명목하에 몇시간을 우두커니 앉아 있어야 할 때가 있다. 어제 받았던 방화관리교육이 그 중 하나로, 난 4시간 동안이나 어두침침한 건물에서 강의를 들어야 했다. 그때 가져간 책이 바로 정이현 작가의 <풍선>, 난 그 책 덕분에 4시간을 정말 재미있게 보낼 수 있었다.
평소엔 시간이 있어도 누워서 TV만 볼 뿐 책읽기를 게을리해 "내가 과연 책을 좋아하긴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어젠 쉬는 시간에도 자리를 뜨지 않을 정도로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199명의 다른 참석자들이 잠을 자거나 심드렁한 얼굴로 앉아 있는 걸 보면서, 독서는 정말 좋은 취미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탁월했던 건 그런 자리에 어떤 책을 가져가야 할지를 아는 내 센스였다. 요즘 난 '어릴 때 안읽은 세계명작 읽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 <적과 흑>을 읽고 있는데, 어수선한 곳에서 외부 소음을 차단할 용도로는 적합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풍선>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사실 난 정이현 작가를 좋아한다. 미녀라는 게 이유 중 하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의 글이 일단 재미가 있다는 거다. 사악한 재미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난 이미 그에게 빠졌고, <달콤한 나의 도시>는 날 그를 숭배하는 많은 이들 중 하나로 만들었다. 영화 감상문을 묶고 저자의 다른 에세이를 더한 <풍선> 역시 재미 면에서 탁월했는데, 이 책이 재미있었던 건 내가 책에 언급된 영화들을 대부분 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풍선>은 내가 신혼이라 잊고 있었던, 우리가 디디고 사는 비루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느끼게 해줬다. 이건 재미와 더불어 여운까지, 잘 쓴 산문집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리라.
전지현의 CF 모음집 격인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제복 페티시즘에 빠진 사람들의 욕망을 달래주는, '소수자의 인권'에 관한 영화라고 말하는 재치 또한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일테지만, 그에게선 여성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엿보여 더더욱 좋다. 한 미녀가 냉장고 옆에서 활짝 웃으며 "여자라서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CF를 언급하며 "새 냉장고가 여자만의 행복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의 행복이 될 때, 대한민국 여자들의 평균 행복지수가 가일층 상승할 것"이라고 써놓은 정작가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