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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평점 :
이건 전에도 했던 얘긴데, 어떤 사람이 사업이 잘 안되어 자살을 하려다 막무가내로 춘천에 사는 모 소설가를 찾아갔다. 그는 소설가를 붙잡고 제발 좀 살려달라고 얘기를 했고, “이 사람 안도와주면 진짜 죽겠구나” 싶었던 소설가는 버리려고 창고에 놔둔 원고뭉치를 그와 함께 뒤졌단다. 그 원고는 결국 ‘말더xxx xxxx'이란 제목으로 출간이 됐고, 그 책은 상당한 부수의 판매고를 올려 그 남자의 목숨을 살렸다. 남자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소설가는 상당 기간 동안 그의 출판사에서 책을 냈는데, 소설가의 기대에 걸맞게 사장이 된 남자는 제법 좋은 책들을 냈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이거다. 나같은 사람이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좋은 책이 나오기 힘들지만, 소설가는 버리려고 구겨둔 원고뭉치를 모아도 양서가 된다.
<박노자의 만감일기>를 읽으면서 그 소설가의 일화를 떠올린 이유는, 박노자 선생이 블로그에 썼던 일기가 훌륭한 책으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보통 일기 하면 날 괴롭힌 사람에 대해 뒷담화를 하거나, 직접 말하지 못할 타인에 대한 감정을 써내려간다든지 하는 식이 될 텐데, 어찌된 게 이 책은 일기가 아닌 칼럼 모음집 같다. 그의 주장을 익히 들어왔기에 특별히 새롭다 이런 건 없을지 몰라도, 정신을 좋게 만들어 주는 약은 자주 먹는다고 해로울 건 아니다 싶었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다. 그는 끊임없이 우리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고발하고, 나 또한 그 가해자의 위치에서 자유로울 게 없기에 읽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는데, 자꾸 읽다보니 화끈거림의 정도가 엷어지고, 그냥 그런가보다 싶어진다. 이런 것도 면역이 생기는구나 싶기도 하고, 내가 유부남이 돼서 좀 뻔뻔해진 건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찌되었건 나이가 들수록 바르게 사는 건 어려워지는 것 같다. 젊은 학생들이 이런 책을 읽었으면 좋겠지만, 학교 과제로 읽으라는 책도 도서관에서 대출받아 읽고 그러는 요즘 학생들이 이 책을 사서 읽을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알라딘의 세일즈 포인트를 보니 14,016, 그렇게 낮은 것도 아니지만 재테크의 비밀을 다룬 책이 35,000을 넘는 걸 보면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헷갈리기 시작한 사실 하나. 방효유라는 중국 선비가 왕위를 찬탈한 연왕에게 협조를 거부하다 그의 일가친척 847명이 옥사를 했다. 내가 배운대로라면 무척이나 아름다운 행위일 수 있겠지만, 박노자의 말은 다르다. “지배계급의 정통성 논리로야 찬탈이냐 정통 계승이냐가 중요하겠지만 농민의 입장에서는 세곡을 거두는 게 누구인가가 별 상관이 있을까?... 아이들을 포함한 847명의 목숨이 희생되도록 왕고집을 부린 걸 보면 그 양반이 고집불통이거나.. 허영의 위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169-170쪽)]
그러니까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에게 협력하기를 거부했던 사육신을 우리가 받들어 모시지만, 백성들 입장에서는 누가 왕이든 그게 뭐 중요하냐는 거다. 전혀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논리라면 군사독재에 협력하는 것도 용납이 되는데, 이거이거 내가 박노자의 글을 잘못 읽은 건지 심히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