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속삭여줄게 - 언젠가 떠날 너에게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런던을 속삭여 줄게>(이하 <런던>)라는 환상적인 제목을 단 이 책은

책에 대한 내 환상을 모조리 다 충족시켜 줬다.

지적인 갈망,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재미, 이 사람은 왜 이리 글을 잘쓸까,라는 탄식까지.

저자는 런던의 주요 명소를 찾아가 그곳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에 담아 주는데,

이야기와 더불어 다른 책에서 인용한 아름다운 문구들이 기가 막히게 배치되어

책의 깊이를 더해준다.

거기다 다음과 같은 엉뚱한 면까지.

“나는...‘알고보면 무척 놀랍고 사랑에 이끌리면 미인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남자 운운 지지리도 없는, 남녀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자’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동석해보려고 했지만 깨끗이 실패했다 (41쪽)”


내가 저자 정혜윤을 처음 알게 된 건 CBS의 방송프로그램에서였다.

“아니 방송국에 이런 미녀 PD가!”라는 게 당시 첫 느낌이었는데,

그와 더불어 두달 남짓 방송을 하면서 참 능력있는 피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은 그의 세 번째 책인데,

앞의 두 책에서도 저자는 자신의 감정표현 능력과 기막힌 인용실력을 뽐내지만,

이 책은 그런 능력이 극한의 경지에 오른 게 아닌가 싶을만큼의 수작이다.

그전까지 내 휴대전화에 입력된 전화번호의 명칭은 ‘정혜윤피디’였는데,

<런던>을 읽고 나서 난 그걸 ‘정혜윤작가’로 수정했다.

작가로서의 능력이 이렇게 뛰어난 사람한테 피디시절의 인연을 빌미로

‘정피디’라고 부르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다.


알랭 드 보통은 어느 책에선가 런던에 대해 부정적인 스케치를 했었는데,

정작가가 쓴 <런던>을 읽고 나니 갑자기 런던에 가고 싶어진다.

한가지 부러웠던 건 영국엔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람이 꽤나 많다는 것.

브론테 자매, 시인 바이런, 넬슨 제독, 그리고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서 떼어 온 ‘엘진 마블’ 등등.

책 속의 장소와 거기 얽힌 인물들이 상승효과를 나타낸 건 내가 그네들을 다 알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영국의 방송국에 근무하는 미녀피디가 <서울을 속삭여 줄게>라는 책에서

“오죽헌은 신사임당이 아들을 유명한 학자로 키우던 곳이다. 오죽하면 책이 헌책이 됐을까,란 의미로 ‘오죽헌’이라고 불린다”라고 한다면

신사임당과 이율곡을 모르는 그네들이 오죽헌에 대한 로망을 품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가도

영국의 방송국엔 그런 책을 쓸 미녀피디가 없을 것이란 생각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찬란한 역사보다는 날 위해 멋진 책을 써주는 미녀피디, 아니 미녀작가의 존재가 난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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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0-02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윽. 보관함에 넣어야 겠어요. 읽고 싶어 졌어요!!

추석 잘 보내세요, 마태우스님!!
:)

마태우스 2009-10-0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덕분에 잘 보냈사와요^^ 늘 감사합니다. 님이 아니었다면 무플글이 될 뻔했다는...^^
 
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화제가 되었던 <88만원 세대>를 이제야 읽었다.

사놓고 오래도록 안읽었던 이유는 각종 매체에서 그 책에 대해 하도 떠들어대는지라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대는 삼성전자나 한국전력 같은 데 취직을 못하고 비정규직으로 남아 88만원을 받아야 한다”는 게 그 책의 요지 아니던가?

한 가지가 더 있다면, 책 표지에 있던 격문도 내게 거부감을 줬다.

“20대여,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아니 지금이 어느 땐데 짱돌을 들라는 걸까?

20대가 그렇게 한다면, 20년 전의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사람들이 20대를 응원이라도 한데?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거였고,

<88만원 세대>는 충분히 읽을 만한 책이었다.

경쟁이란 바로 옆에 있는 내 동료와 하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던 내게

‘세대 간 경쟁’이란 개념은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 느낌이다.

게다가 저자가 말한 “짱돌을 들라”는 구호는 실제의 짱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20대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대신

20대가 사장인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커다란 저항이 될 수 있다는 거다.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장황하고 지루한 면은 있었지만,

내게 깨달음을 줬다는 점에서 고마운 책이라 할만하다.

이 책의 미덕은 문제점만 나열한 게 아니라

그에 대한 해법들도 충분히 제시를 하고 있다는 건데,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읽혀서 20대, 나아가서는 10대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들이 마련되면 좋겠다.


끝으로 이 책을 읽기 싫었던 이유를 한가지만 더 말해본다.

이 책이 나오고 난 뒤 많은 기성세대들이 20대를 질타했다.

“너희는 왜 저항하지 않니?”

“그때랑은 시대가 다르잖아요”라고 대답하면 이런 조롱이 돌아왔다.

“그래서 너희들은 88만원을 받아야 하는 거야.”

즉 사람들은 이 책을 빌미로 20대를 욕하기 바빴고,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자기 세대들의 우월감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이 책을 사용했다.

20대도 아닌 난 그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강렬한 저항감을 느꼈는데,

그것도 이 책을 오래도록 처박아 놨던 이유였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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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9-09-28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저도 딱 그런 이유에서 저 책 안 읽었는데...
너무너무 공감합니다. 추천 꾹.

풀먹는사자 2009-09-28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구, 유기농 생협에 가입했지요 ㅎㅎ

결혼이 늦어지는 이유, 20대 여자들의 외모 올인 전략 같은 얘기가 재미있더군요.
"88만원 세대" 재밌다고 대학생들에게 추천해줘도
'저런거 읽다보면 비정규직 밖에 안되요. 사람은 긍정적으로 살아야해요',
'전 비정규직 안될거니까 읽을 필요가 없겠네요'
이런 답변이 돌아오면
'난 비정규직 안될거야'라며 비정규직 법 때문에 운동하는 애들 무시하던 저의 대학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구요.....
생각난김에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참고로 우석훈 최고의 책은 "조직의 재발견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인거 같습니다

마냐 2009-09-29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그런 이유로 20대를 욕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군요.그분들은. 내참.
전 한동안 열렬한 우석훈님 팬이었고...한때의 사랑이 살짝 식긴 했으나 여전히 좋아합니다. 그분 저작들. 마태님 오랜만이어요~ ^^

soyo12 2009-09-29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목이 너무 무서워서 아직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태우스 2009-10-0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요님/그러시군요. 읽으면 암담해진다는...
마냐님/글게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우석훈 씨가 이 전에도 이미 유명한 분이셨군요. 하여간 제가 가는 사이트에서 어찌나 20대에 대한 비아냥이 심하던지, 재수가 없더군요.
풀먹는사자님/책에 보면 대안도 제시하고 있구,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안읽는단 말이죠. 저같은 40대가 읽구^^ 조직의 재발견 읽어보겠습니다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딸기님/오랜만이네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엔 추천에 목이 말라서용^^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알랭 드 보통을 처음 접한 건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그 책에서 드 보통은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의 감정을 해박한 지식으로 담아냈는데,

당시 그런 류의 지식에 목말라 있던 난 드 보통에게 흠뻑 매료됐다.

그 뒤에도 보통은 날 실망시키지 않았고,

난 그가 쓴 <여행의 기술>, <행복한 건축>, <불안>, <프루스트를 아시나요>를 읽으면서

거의 빈 채로 놔뒀던 내 지적 호기심을 마음껏 충족시켰다.

딱 한번 그에게 실망했던 건 <Kiss & Tell>인데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라는 제목에 속았던 탓이었다 (알고보니 철학책!).

그 책이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재밌는 책 없냐?”는 친구의 부탁에 당시엔 읽지도 않았던 그 책을 추천한 거였는데,

나중에 내가 읽고 나서 친구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그랬다고 해서 내가 드 보통을 싫어하게 된 건 아니었고,

주위 사람들한테 “앞으로 난 드 보통 씨와 쭉 함께 한다”고 떠들고 다녔을 정도였다.


드 보통의 거의 모든 책을 다 읽었던 내가

이번에 나온 <일의 기쁨과 슬픔>을 주문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책이 오자마자 난 그의 책을 읽을 땐 늘 그렇듯이 막연한 설레임을 안고 책을 폈는데

이상하게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한줄 한줄이 다 예술인지라 음미하다 보니 그런 적도 있었겠지만,

한 일주일 쯤 읽다 자다를 반복하다 결론을 내렸다.

“이 책, 별로 재미없잖아!”

일주일이면 대개 책 한권을 읽는 스피드를 감안할 때

열흘이 넘도록 아직 참치 얘기에 머물러 있는 걸 재미없다는 말 이외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설마 드 보통이 쓴 책인데 재미가 없다는 게 말이 되냐,

혹시 내가 이상한 게 아닌가 싶어 다른 분들이 쓴 리뷰를 찾아봤다.

“역시 그의 책은 보통이 아니다”-이환님

“그에게 팬이 많은 이유를 발견하다”-violamuse님

내가 이상하구나,란 결론을 내리려고 보니 그렇지 않은 리뷰도 있다.

“...문장들은 너무 길고 난해하다”-하쿠나마타타님

“난 에세이에 취미가 없으며, 그 결과 알랭 드 보통의 글솜씨에도 빠져들지 못한다는 것을 그저 확인만 했을 뿐”-몽자&콩자님

보통이 갖는 이름값을 생각할 때 이 정도의 반응은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

확실히 이전 책들보다 이번에 나온 책은 재미가 덜한 것 같다.


한때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열광했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한국 독자들도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베르베르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소설 주인공을 한국 사람으로 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했는데,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느라 그런지 정작 소설은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난 그 책의 리뷰에 이런 말을 썼다.

“천재작가에게 우리가 바라는 건 한국 사람을 넣어주는 게 아니라

소설을 재밌게 써주는 거다.”

물론 베르베르는 내 리뷰를 읽지 않았고,

계속 재미없는 소설을 쓰다가 지금은 과거의 명성을 많이 잃었다 (이건 물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근데 <일의 기쁨과 슬픔>을 보면 드 보통도 한국 독자들에게 보답하려는지

우리나라를 여러번 언급한다.

그리고 이 책 역시 재미가 없다.

베르베르와 드 보통은 급이 다르다고 생각은 하지만,

좀 불안하다.

앞으로 드 보통의 책이 점점 재미가 없어질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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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9-24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그냥... -_-

비연 2009-09-25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신나게 사둔 저로선 충격입니다..;;;;;

비로그인 2009-09-25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일이 더 괴로워지면 읽으려고 사둔 저로서도 충격이어요 흐흑

무스탕 2009-09-25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베르베르와 드 보통의 책을 한 권도 안 읽어본 저로서는 할 말이 없..

무해한모리군 2009-09-25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님의 글은 제게 늘 보통이었던 관계로..
이 책은 제목부터 좋아하던 주제가 아닌 관계로..
그럼에도 보관함에 있었는데..
마태우스님이 결정을 내려주시는군요 ㅎㅎ

다락방 2009-09-25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의 글은 제가 한번도 좋아한 적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섯권인가를 읽었었는데 이 책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던 저로서는 앞으로도 그러해야겠군요.

마태우스 2009-09-25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흠, 저처럼 보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잼없다니, 염두에 두지 않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친절한 댓글 주셔서용
휘모리님/제가 오늘 여럿 구하는군요 호홋!!!
무스탕님/이미지가 언제 저리도 귀여워지셨는지요. 말보다 훨 낫군요!!
주드님/울지 마세요 기분에 따라 책은 달라지니깐요...
비연님/앗 제가 오늘 여럿 충격 드리는군요ㅠㅠ
아프님/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stella.K 2009-09-25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작가든지 한때 열광하는 때가 있고 그때를 정점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작가가 자기 영향을 더 이상 재대로 발휘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독자가 그 작가에 대해서 관성이 생겨서인지 정확한 걸 잘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전자쪽이 혐의가 더 짙겠죠?
저도 보통의 책은 몇권 읽었고,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몇권있는데 이 책부터는 그닥 읽게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제목에 2를 넣었죠? 언제 같은 제목의 1을 쓰신 적이 있는가요?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던데...OTL

가넷 2009-09-25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 보통은 <불안> 하나만 달랑 사놓고 아직 읽지도 않은 상태라(드 보통을 좋아하는 친누나가 가져가서 주지를 않네요...-_-;;;) 별 할말은 없지만, 보통을 좋아하시는 분도 그저 그렇다니... 그냥 넘기는게 좋겠네요.ㅎㅎ;

저도 베르베르는 좋아하는 작가에 속했는데, 개미 이후에 너무 하향곡선이라... 저 같은 경우에는 <천사들의 제국>을 읽고 정나미(?)가 급작스럽게 떨어져 베르베르라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있어요..-.-;;;

마태우스 2009-09-28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그렇겠지요.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 재미가 점점 반감될 거예요. 제목이 2를 넣은 이유는 본문에서 말한대로 베르베르한테 이 말을 한번 써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리뷰는 교봉에 실은 관계로 검색에 안나온 거구요.
가넷님/네 그냥 넘기는 게 좋을 듯합니다. 흠, 님도 베르베르랑 결별하셨군요! 혹시 아멜리 노통은 어떤가요? 몇년 전에 그녀와도 결별했다는...^^

마냐 2009-09-29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팬을 자처한 시절이 있지만...이 책은 외면 중. 목차만 봐도, 안 땡기던데요. --

마태우스 2009-10-0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참고 읽으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군요. 좀 더 우울해지면 한번 다시 시도해 보려구요.

sceptic 2009-10-06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절한 평가와 재밌는 이야기들 잘 읽고 갑니다. 댓글로 다른 분들의 평가도 덤으로 얻어가네요...^^

마태우스 2009-10-0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식의 힘님/안녕하세요 좋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ㅇ로 열심히 하겠사와요.
 
싱글, 오블라디 오블라다 - 뜨겁게 사랑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 싱글들의 행복 주문
박진진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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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교 졸업과 동시에 집을 나온 박진진은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혼자 힘으로 해결하며 학교를 마친다. 그 후에도 그는 부모님께 손을 벌린 적이 딱 한번밖에 없는데, 그나마도 “한 달에 50만원씩 30개월 동안 갚아 나가기로” 한 거였다. 결국 그는 1년 5개월만에 이 돈을 다 갚았는데, 마흔 둘까지 엄마 품에서 살았고, 지금도 ‘어머님 돈은 내 돈’이란 이상한 생각에 물들어 있는 나로서는 그 앞에서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그가 이 정글같은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는 그리 쉽지 않았을 텐데, 그가 <싱글, 오블라디 오블라다>를 쓴 건 자신처럼 혼자 힘으로 일어서려는 여성 싱글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저자와 친분이 있고, 이 책에 추천사를 쓰기까지 했지만, 시중에 나온 ‘여자는 20대에 뭘 해야 한다’ 류의 책들보다 이 책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감히 말씀드린다.


이 책에서 공감한 대목이 여럿이지만, 특히 공감한 대목이 있다. 남자들은 연애를 해도 모임에 빠지지 않지만, 여자들은 연애를 하면 잠수를 타다가 헤어진 후에야 다시 나타난다. 혹시 여자들은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우정을 이용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여자들은 “남자를 만나는 동안에는 그 남자에게 최선을 다하느라 미처 친구들을 챙길 정신이 없”고, “남자와 헤어지고 나면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어서 친구들을 찾아와 축 처진 어깨를 기댄다”. 저자의 말대로 이건 “내 친구들이 나를 기다려주고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그러니 몇 달만 안나오면 바로 제명해 버리는 남자들의 우정보다 여자들의 우정이 훨씬 더 차원 높은 거다.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남자가 생긴 여자들이 잠수를 타는 건 우리 사회가 남성 위주로 되어 있는 것도 이유가 된다. 남자들은 자신의 여자를 자랑스럽게 모임에 데리고 가지만, 여자들의 모임에 기꺼이 따라가는 남자는 그리 흔하지 않다. 남자 모임에 간 여자는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최선을 다하는 반면, 그 남자는 여자 모임에서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하는 게 영 귀찮다. 이런 배려심의 차이가 남자들끼리 술을 마시는 게 점점 재미가 없어지는 이유가 아닐까?


물론 공감이 어려웠던 대목도 있다. 저자는 뭘 사러 집 앞에 갈 때도 치장을 하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걸친 옷과 가방과 구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준다(146쪽).” 하지만 쇼핑중독을 질타하는 다른 글에서는 “좀 더 나은 가방과 옷과 신발을 걸치면 나 자신의 가치도 그만큼 올라간다고 믿기 때문일까?(170쪽)”라고 쓴다. “아기들만 보면 호들갑 떠는 여자”에 대한 저자의 비판에도 동의하기 어려웠다. 이건 물론 이 책에서 겨우 찾아낸 사소한 비공감일 뿐,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주옥같은 교훈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니 여성 분들이여, 당당한 싱글로 살기 위해서는 이 책을 읽으시라. 남자들도 이 책을 읽으면 좋은 것이, 190쪽부터 열페이지에 걸쳐 남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금기사항들이 적혀 있어서다. 싱글, 오블라디 오블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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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9-21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사놓고 아직 못봤는데, 언능 봐야겠군효. ^^

플라시보 2009-09-21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추천사도 감사했고 서평도 너무 고마워요.
항상 마태우스님의 글에 자극받고 그로 인해 제가 자라는 것 같아요.^^

마태우스 2009-09-24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부끄럽습니다^^
아프님/그럼요 얼른 보세용 님도 싱글이잖아요!

2009-09-30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9-10-0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앗 저도 반가워요. 저도 그시절이 그립네요. 알라딘 덕분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추억이 꽤 많더군요. 님 댁에서 감자탕 먹던 기억도... 갈비는 역시 제가 사야 맛있는데, 제가 홀몸이 아니라서...흑.
 
괜찮다, 다 괜찮다 - 공지영이 당신에게 보내는 위로와 응원
공지영.지승호 지음 / 알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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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소설가는 소설로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내가 ‘저자와의 대화’ 같은 모임에 잘 가지 않는 것도 가봤자 무슨 별 얘기가 있겠느냐는 지레짐작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공지영에 대한 인터뷰로만 책 한권을 만든 <괜찮다, 다 괜찮다>를 읽으면서 소설가도 때로는 말을 할 필요가 있다는 걸 느낀다. 이 책이 아니었던들 난 공지영에 대해, 그리고 그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로 사는 동안 공지영은 숱한 비난에 시달렸다. 예컨대 공지영의 책 세권이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된 1994년, 사람들은 그에게 이런 비난을 했단다. “얼굴로 책을 판다, 운동과 페미니즘을 팔아서 책을 판다, 대중에게 영합해서 책을 판다.” 유치한 비난이다. 책을 사준다고 작가가 만나 주는 것도 아닌데, 책날개에 있는 저자 사진 때문에 책을 사는 사람이 나 빼고 얼마나 될까? 운동과 페미니즘이 비매품이란 소리는 처음 들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하고 등을 져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그네들은 별로 솔직하지 못했다. 그냥 공지영이 싫다고 할 것이지, 왜 엉뚱한 걸 가지고 비난을 할까?

 

우석훈이 잘 지적했듯이 한국의 40대 남자들 중에는 공지영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마찬가지인데, 문학계에서 말발 좀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공지영을 싫어하는 이유는 별 게 없다. 공지영이 여자고, 예쁘고,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것. 이게 이유다. 좀 끔찍한 소리지만 공지영이 나처럼 생겼다고 가정해 보시라. 아마도 평론가들은 그에게 “신의 작가” 어쩌고 했을 거다.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지지리 궁상인 삶을 살았다면 평론가들은 미모도 되고 술도 잘 마시는 그를 좋아했을 거다. 그가 세 번의 이혼을 한 건 여자들이 그를 싫어하는 이유가 된다. 예컨대 이런 것.

“공지영 자기가 뭔데 세 번이나 결혼을 해? 하여간 있는 것들이 더하다니까. 그러니 내 차례가 안오지.”




조선일보 기자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대해 열심히 인터뷰를 하고 나서 다음과 같은 제목을 뽑았으니 말이다.

“세 번 이혼하고 성 다른 애 셋 키워요.”

그 기자가 이런 뜬금없는 제목을 단 건 이런 심리다.

‘그러게 나랑 결혼하지 그랬어? 내가 행복하게 해줄텐데 왜, 왜?’

 

이랬어봐라. 평론가들이 왜 욕을 하겠는가?



남들이 싫어하거나 말거나 공지영은 여전히 잘 나가고 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이어 <도가니>까지 히트시키며 사회파 소설가로 거듭나기도 했는데,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본다는 속담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늘 좋은 소설로 날 기쁘게 해준 공지영에게, 그리고 최고의 인터뷰어 지승호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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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8-21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러요~ 마태님 안뇽?^^
이 책 사놓기만 하고 여직 안 읽었어요. 8월 27일 광주에 오는 공지영 작가를 만나기 전에 읽어야할 텐데...

마태우스 2009-08-21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안녕하셨어요?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작가님 저도 먼 발치에서라도 뵙고 싶네요. 인터뷰 내내 사람들이 공작가님을 못알아봤다는데, 그 사람들은 엄청난 행운을 놓친 것 같더라구요. 8월 27일이면 낼모레군요! 글고보니 8월도 이제 다 갔네요ㅠㅠ

마립간 2009-08-22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래 사진은 남량특집? 여름도 다 지나가는데...
마태우스님 잘 지내시죠?^^

꼬마요정 2009-08-22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공지영 좋아요~~~ 조선일보 기자의 저 선정적인 인터뷰 제목은 싫구요~~
마태우스님은 좋아요~^^
부산은 갑자기 더워졌어요~ 서울이 푹푹 찌는 동안 부산은 시원했거든요. 이제 여름 같아서 저는 신나지만 주위에서는 불쾌지수 높다고 절 째려보는군요~^^ 여름이 더워야 제 맛인데..쩝^^;

마태우스 2009-08-23 0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반갑습니다. 저같은 놈을....흑흑. 서울도 더웠던 것 같은데 어젯밤 시원한 바람이 불더군요. 더위가 이제 간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님같은 미녀분을 째려보는 건 아무리 덥다해도 옳지 않지요!
마립간님/안녕하셨어요? 저 사진은 아무리 봐도 약했어요. 좀 더 괜찮은 납량특집을 올렸습니다 꾸벅.

2009-08-30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gdfg 2013-05-06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뭐래.. ㅁㅊ... 공지영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