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속삭여줄게 - 언젠가 떠날 너에게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런던을 속삭여 줄게>(이하 <런던>)라는 환상적인 제목을 단 이 책은

책에 대한 내 환상을 모조리 다 충족시켜 줬다.

지적인 갈망,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재미, 이 사람은 왜 이리 글을 잘쓸까,라는 탄식까지.

저자는 런던의 주요 명소를 찾아가 그곳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에 담아 주는데,

이야기와 더불어 다른 책에서 인용한 아름다운 문구들이 기가 막히게 배치되어

책의 깊이를 더해준다.

거기다 다음과 같은 엉뚱한 면까지.

“나는...‘알고보면 무척 놀랍고 사랑에 이끌리면 미인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남자 운운 지지리도 없는, 남녀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자’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동석해보려고 했지만 깨끗이 실패했다 (41쪽)”


내가 저자 정혜윤을 처음 알게 된 건 CBS의 방송프로그램에서였다.

“아니 방송국에 이런 미녀 PD가!”라는 게 당시 첫 느낌이었는데,

그와 더불어 두달 남짓 방송을 하면서 참 능력있는 피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은 그의 세 번째 책인데,

앞의 두 책에서도 저자는 자신의 감정표현 능력과 기막힌 인용실력을 뽐내지만,

이 책은 그런 능력이 극한의 경지에 오른 게 아닌가 싶을만큼의 수작이다.

그전까지 내 휴대전화에 입력된 전화번호의 명칭은 ‘정혜윤피디’였는데,

<런던>을 읽고 나서 난 그걸 ‘정혜윤작가’로 수정했다.

작가로서의 능력이 이렇게 뛰어난 사람한테 피디시절의 인연을 빌미로

‘정피디’라고 부르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다.


알랭 드 보통은 어느 책에선가 런던에 대해 부정적인 스케치를 했었는데,

정작가가 쓴 <런던>을 읽고 나니 갑자기 런던에 가고 싶어진다.

한가지 부러웠던 건 영국엔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람이 꽤나 많다는 것.

브론테 자매, 시인 바이런, 넬슨 제독, 그리고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서 떼어 온 ‘엘진 마블’ 등등.

책 속의 장소와 거기 얽힌 인물들이 상승효과를 나타낸 건 내가 그네들을 다 알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영국의 방송국에 근무하는 미녀피디가 <서울을 속삭여 줄게>라는 책에서

“오죽헌은 신사임당이 아들을 유명한 학자로 키우던 곳이다. 오죽하면 책이 헌책이 됐을까,란 의미로 ‘오죽헌’이라고 불린다”라고 한다면

신사임당과 이율곡을 모르는 그네들이 오죽헌에 대한 로망을 품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가도

영국의 방송국엔 그런 책을 쓸 미녀피디가 없을 것이란 생각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찬란한 역사보다는 날 위해 멋진 책을 써주는 미녀피디, 아니 미녀작가의 존재가 난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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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0-02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윽. 보관함에 넣어야 겠어요. 읽고 싶어 졌어요!!

추석 잘 보내세요, 마태우스님!!
:)

마태우스 2009-10-0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덕분에 잘 보냈사와요^^ 늘 감사합니다. 님이 아니었다면 무플글이 될 뻔했다는...^^